‘돈맛’을 알아버린 국경

[2014.05.19 제1011호]

[세계_ 버마 로힝야, 제노사이드 경보 ② 인신매매를 거쳐 말레이시아까지 ] 위험을 알고도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
460명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본 이슬람,
총격전을 겪은 라피크, 국가의 ‘인신매매’를 경험한 살림

* 필자는 <리영희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3~4월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를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인권단체들은 지난 1월 ‘두쉬얀단(Du-chee-yar-dan)학살’, 최근의 비정부기구(NGO) 공격과 추방 등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 버마(미얀마) 서부 아라칸주에서의 ‘제노사이드 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아라칸주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로 버마를 떠난 로힝야 난민이 가장 많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에서의 생활, 그리고 보트피플이 된 이들이 인신매매 과정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기까지, 라카잉 불교도 무장단체와 버마-방글라데시 국경의 다이내믹한 종족·종교 갈등 상황 등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3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지면상 싣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보충하여 게재합니다. / 이유경 Penseur21  

로힝야 보트난민 포르카나(28)가 밀항선과 정글캠프에서 어떤 자세를 강요받았는지 재연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로힝야 보트난민 포르카나(28)가 밀항선과 정글캠프에서 어떤 자세를 강요받았는지 재연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버마(미얀마) 아라칸주 주도 시트웨 출신인 이슬람(20)은 2012년 6월 반로힝야 학살 때 방화로 인해 어머니가 운영하던 구멍가게와 자신이 돌보던 양계장을 잃었다. 아버지는 룬틴(Lon Htein, 시위진압경찰의 일종)의 총격으로 가슴에 총상을 입고 즉사했다. 이슬람은 여동생을 데려가려던 룬틴에게 칼을 들고 덤벼 겨우 막아냈다고 털어놨다. 그때 입은 부상으로 오른쪽 허벅지와 눈 아래에 상처가 있다. 시트웨 외곽의 게토나 다름없는 피란민(IDPs) 캠프에서 지내던 그는 올해 초 난민 밀항선을 타기로 결심했다.

2013년 한 해에만 8만 명 탈출

1월16일 밤, 로힝야 브로커들이 이슬람을 포함한 40명을 어선에 태운 곳은 시트웨 보가티 선착장. 1인당 약 10만차트(버마 화폐·약 10만원)를 냈다. 다음날 어선은 큰 화물선 2척이 보이는 해역에 도달했다. 이슬람은 600명가량을 태운 화물선에 올랐다. 배에는 여성 약 80명과 젖먹이를 포함한 어린이가 10명쯤 있었다. 또 다른 배에는 460명을 태웠다고 들었다. 두 배는 거의 동시에 출항했고 대부분의 항로를 같이하며 망망대해에서 ‘동지선’이 되었다.

“4일째 되던 날, 저쪽 배에서 식수가 부족하다기에 우리 물을 좀 건네줬다.”

이슬람은 ‘타이 찍고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밀항 과정에서 브로커들의 고문과 인신매매의 위험을 잘 알고도 배를 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눈앞에서 펼쳐질 참사는 예측하지 못했다.

“브로커들이 나를 고문하고 괴롭힌들 라카잉들이 괴롭히는 것보단 덜할 거라고 생각했다.”

7일째 되던 날, 타이 해안가가 가까워질 즈음 풍랑이 거세졌다. 460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우리 눈앞에서 배가 뒤집히고 460명이 고스란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곳에 도착한 난민들의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이 오고 또 온다. 친척이나 가족이 겪은 위험을 다 알면서도 그 전철을 기꺼이 밟겠단다.”

말레이시아 내 로힝야 단체인 RSM(Rohi ngya Society in Malaysia) 대표 압둘 하미드는 이전과 달리 ‘위험을 속속들이 다 알고 타는’ 최근의 경향은 아라칸주 내부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반영한다고 강변했다. 하미드 대표에 따르면, 1990년 이래 2012년 6월 폭력 사태 이전까지 말레이시아에 온 로힝야 보트난민은 약 3만 명이다. 그러나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학살의 여파로 봇물을 이룬 탈출 인원은 지난 한 해에만 8만 명이고 대부분이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보트난민의 증가 수치가 암시하듯 경로도 다양해졌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2013년 초까지만 해도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 영토에 첫발을 딛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거기서 다시 2시간을 항해한 뒤 (방글라데시 영토인) 생마린섬으로 가서 큰 배로 옮겨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라칸주에서 직항하는 보트가 늘었다. 물론 방글라데시를 거쳐오는 경우도 여전히 있다.

브로커들의 총은 보이지 않지만

또 다른 변화는 생마린섬에서 출발하는 큰 배의 브로커들이 이전보다 폭력의 강도를 낮췄다는 점이다. 총기류로 위협하고 여성을 성폭행하고 항해 중 일부 난민을 바다 속으로 내던지기까지 하던 만행 소식은(제967호 세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참조) 최근 밀항선을 타고 온 난민들의 사례에서는 잘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0만타카(방글라데시 화폐·약 280만원)를 내고 테크나프에서 배에 오른 자심(35)은 배 위에서 총기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보트난민들의 증언에서 무장한 브로커 얘기가 수도 없이 나왔다. 우린 그들이 라카잉 무장그룹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언론과 인권단체 등이 이 문제를 집중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노골적인 위협 방식이 노출되자 전술을 바꾼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경향이 바뀐 거다.” 하미드 대표의 말이다.

수많은 난민이 증언한 ‘큰 배에 탄 라카잉 브로커들’의 실체가 특정 무장단체 소속인지는 좀더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과도한 총잡이 모습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렇다고 배 위의 브로커들이 비무장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지난해 10월 마웅도를 출발한 무하마드 라피크(18)는 자신이 탄 보트의 브로커들과 타이 ‘경찰’들 사이에 총격전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250명을 태운 보트에는 여성 40명과 아이 15명 정도가 승선해 있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숲으로 우거진 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고 타이 해안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즈음 연발 총성음이 들렸다. (밀항선 단속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육지 쪽 타이 경찰과 밀항단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저쪽은 모르겠고 우리 배에서는 남녀 각각 5명, 3명이 사망했다. 잠시 뒤 다시 조용해졌다.”

브로커들은 주검 8구를 바다에 던졌다. 라피크는 선원 2명, ‘보디가드’ 2명, 그리고 (주로 통역을 맡는) 로힝야 1명 등 브로커 5명이 모두 권총을 차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서둘러 하선한 난민들은 정글로 숨어들어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새로운 배가 발빠르게 준비돼 있었다. 두 번째 배를 타고 30분쯤 항해한 뒤에야 이른바 ‘정글캠프’로 옮겨졌다. 본격적인 거래가 오가는 곳으로 몸값을 내지 못하면 고문, 살해, 실종을 당한다. 정글캠프는 말레이시아 국경과 가까운 타이 남부를 중심으로 서너 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피크는 정글캠프에서 2개월을 보낸 뒤 6천링깃(말레이시아 화폐·약 190만원)을 주고 풀려난 지 6개월이 되었다. 그러나 라피크의 걸음걸이는 아직도 예전 같지 않다. 무릎을 접은 자세로 밀항선과 정글캠프에서 여러 달을 보내는 난민들은 몸에 마비 증세를 보이고 일부는 풀려난 뒤 사망하기도 한다.

“절대 돌아오지 마라” 

“2012년 사태 이후 라카잉족들의 집단괴롭힘이 잦아졌다. 한번은 쌀을 사서 짊어지고 가는데 라카잉들이 화살로 맞혀 쌀이 모두 쏟아져나온 적도 있다.” 왜 고향을 떠났는지 묻자 라피크가 준 답변이다.

라피크 사례를 포함해 지난 1년여간의 난민 밀항·매매와 관련해 자국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타이 당국은 보란 듯이 여러 차례 단속을 했다. 그러나 일부 사례는 단속 과정마저 개입설을 되레 입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다. 밀항선에 대한 버마 보안 당국의 개입 역시 사실로 드러났다. 무하마드 살림(20)의 사례를 보자.

로힝야 보트난민 무하마드 살림(20)은 2012년 9월 아라칸주 시트웨에서 출발했다. 살림은 나사카, 경찰, 룬틴 등 보안군들이 로힝야들의 밀항선 마련을 적극 도왔다고 말한다. 방글라데시 영토인 생마린섬을 거치지 않고 말레이시아로 직행하려던 살림의 배는 타이 국기가 펄럭이는 배의 안내로 타이 해안가로 들어왔다. 살림의 사례는 타이 당국이 로힝야 난민을 ‘본국 추방’인 양 가장해 또 다른 타이 인신매매단에 팔았음을 보여준다 (Photo © Lee Yu Kyung)

로힝야 보트난민 무하마드 살림(20)은 2012년 9월 아라칸주 시트웨에서 출발했다. 살림은 나사카, 경찰, 룬틴 등 보안군들이 로힝야들의 밀항선 마련을 적극 도왔다고 말한다. 방글라데시 영토인 생마린섬을 거치지 않고 말레이시아로 직행하려던 살림의 배는 타이 국기가 펄럭이는 배의 안내로 타이 해안가로 들어왔다. 살림의 사례는 타이 당국이 로힝야 난민을 ‘본국 추방’인 양 가장해 또 다른 타이 인신매매단에 팔았음을 보여준다 (Photo © Lee Yu Kyung)

2012년 9월 시트웨를 떠난 살림은 2013년 이맘때에야 말레이시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살림은 보트를 갈아타지 않았다. 그가 탄 보트는 시트웨 외곽 피란민 캠프를 감시하던 나사카(Nasaka·경찰, 룬틴 등 보안군과 이민성의 결합 형태로 존재해온 특별 국경수비대. 아라칸주에만 있으며 결혼, 출산, 이동 허가 등 로힝야 업무를 전담해오다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테인 세인 대통령은 2013년 7월 나사카를 해체했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은 여전히 자기 제복을 입고 업무 중이다) 등이 ‘제발 떠나라’며 적극 마련해준 경우다.

“1인당 20만차트(약 20만원)를 냈고 50∼60명이 탈 수 있는 보트를 공동 구입한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사카, 군인, 경찰, 룬틴 등에게 최대 50만차트(약 50만원)씩 갖다바쳤다.”

선착장 주변으로 각 보안 당국의 사무실이 있었기에 그들의 승인과 뇌물 공여 없이는 어떤 배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보트 운항은 보안군과 의사소통을 하며 필요한 사항을 마련해온 로힝야 ‘리더’가 맡았다. 당국은 보트난민들에게 “이유 불문하고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살림은 자신의 보트보다 먼저 출항했던 보트 1대가 선착장 쪽으로 되돌아오는 걸 봤다. 몇백m 거리를 두고 시야에 들어오던 보트를 향해 보안군들은 “벵골인들이 되돌아온다!”며 ‘로켓’을 쏘아 복귀를 저지시키는 걸 목격했다. 시야에서 사라진 그 보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림 일행도 곧 항해에 나섰다. 목적지는 말레이시아.

7일 뒤 타이 국기가 펄럭이는 배 1척이 다가오더니 “당신들을 이슬람회의기구(OIC)나 유엔에 데려다주겠다”며 타이 해안가로 안내했다. 그렇게 말한 이들은 사복 차림이었지만 무장 상태였다.

살림 일행은 타이 해안가에 정박해 첫날 밤을 보트에서 보냈다. 다음날 나타난 인신매매 브로커들은 난민을 5명씩 정글캠프로 이송했다. 며칠 뒤 정글캠프에 타이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 시각 브로커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서로 이송된 난민들은 심문을 당하고 조서를 쓰고 뭔지는 모르지만 사인도 했다. 일부 타이 주민이 경찰서 안으로 음식, 물, 옷가지 등을 갖고 와 나눠주었다. 주민들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레이시아로 잘들 가시게”라는 말도 건넸다. 경찰과 동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한 난민들은 대기하고 있던 보트 2대에 올라탔다. 세 번에 걸쳐 이송 완료. 그들이 도달한 곳은 또 다른 정글캠프였다.

정글캠프를 나와 다시 정글캠프로

로힝야 보트난민 무하마드 라피크(18)가 고무줄 등을 이용해 자가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라피크는 자신이 탄 배가 타이 해안에 가까워질 무렵 단속 경찰과 브로커 간에 총격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이후 로힝야에 대한 집단괴롭힘이 급증했다고 말한다 (Photo© Lee Yu Kyung)

로힝야 보트난민 무하마드 라피크(18)가 고무줄 등을 이용해 자가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라피크는 자신이 탄 배가 타이 해안에 가까워질 무렵 단속 경찰과 브로커 간에 총격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이후 로힝야에 대한 집단괴롭힘이 급증했다고 말한다 (Photo© Lee Yu Kyung)

“두 번째 브로커들은 전부 타이인이었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로힝야들에게 전화해서 그 로힝야들을 통해 우리와 의사소통을 했다.”

몸값 6천링깃(약 190만원)이 없었던 살림은 이후 4개월 동안 정글캠프에서 끊임없이 도착하고 풀려나는 난민들의 식사 준비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했다. 그리고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몸값을 내고 말레이시아로 풀려났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지난해 12월5일 특집 기사에서 “타이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로힝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옵션 투’라는 비밀 정책이 탄생했고, 이는 본국 추방인 듯 보이지만 결국 인신매매 조직에 난민을 팔아넘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겨레21>이 취재한 살림의 경우를 보면 이 비밀 정책은 <로이터>가 보도한 2013년 10월보다 1년 앞선 2012년 9월에 이미 시행됐던 셈이다.

‘동지선’이 풍랑에 뒤집히는 걸 봤던 이슬람 역시 타이 당국의 단속에 걸린 적이 있다. 이슬람은 몸값을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정글캠프 둘쨋날 담뱃불로 살이 타들어가는 고문을 당했다. 셋쨋날 밤, 타이 경찰이 들이닥쳤다. 브로커들은 이미 도망친 뒤였고 경찰은 트럭 4대에 난민들을 태워 한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데려갔다. 모스크에서 4일을 보내고 이민성 감호소에 갇혔다. 감호소에서 풀려날 수 없을 거라고 직감한 이슬람은 다른 2명의 젊은이와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

“14일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말레이어로 말하는 남성을 만났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말레이 남성은 2350링깃(약 74만원)을 요구하며 3명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또 다른 남성을 불렀다. 두 번째 남성이 또 다른 이에게 3명을 넘겼고 이 세 번째 남성은 1인당 4500링깃(약 140만원)을 요구했다.

“전(두 번째) 사람한테서 우리를 샀다며 돈을 내라고 하고는 방 안에 가두었다.” 일주일 뒤, 또다시 탈출. 이번에는 혼자다. 나머지 2명은 돈을 마련하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는 거 같아 혼자 도망쳤단다.

점점 커져가는 인신매매·밀항 시장

지난 2년간 봇물을 이룬 로힝야 난민들의 보트 탈출은 라카잉, 로힝야, 말레이, 방글라데시, 버마, 타이 등 이 일대의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개입된 거대 인신매매·밀항 시장을 견고하게 확장시켰다. 게다가 ‘사람 장사’의 돈맛을 알아버린 타이-말레이시아 국경은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는 난민을 두고 선의는커녕 그 ‘값어치’에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값어치’를 감당할 수 없어 탈출한 이슬람은 알 수 없는 거리에 도달했다. 그리고 행인의 전화기를 빌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악몽 같은 난민 밀항에서 한 달간의 여정은 끝나가고 있었다. 4월 현재 형제는 금속 자재를 만드는 쿠알라룸푸르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선 라카잉 이주노동자들도 함께 일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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