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장 라오스의 ‘집속탄’

최대 피해국 현지 르포… 미군이 퍼부은 불발탄 터져 한해 300명꼴 사상

12월3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지구촌 시민사회의 관심 속에 집속탄금지협약(CCM) 조인식이 열렸다. 100여 국가가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중국·러시아·미국 등 군사강국은 여전히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집속탄 수출국인 한국 역시 협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집속탄은 흔히 ‘모자(母子)폭탄’이라 불린다. 한 개의 큰 폭탄이 폭발하면 함께 탑재된 수많은 작은 폭탄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살상 반경이 넓고, 그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또 다른 의미의 ‘대량살상무기’라 부를 만하다. 지난 1965년 이후 전세계에서 집속탄으로 인해 숨지거나 팔다리를 잃은 이들은 모두 10만여 명에 이른다. 피해자의 98%가 민간인이고, 4명 가운데 1명은 어린이다. 집속탄금지협약 체결을 앞둔 지난 11월10~30일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최대 피해국으로 꼽히는 라오스 현지를 다녀왔다. 편집자

‘�탄과 함께 살아간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라오스 북서부 샹쾅 지방은 불발탄이 지천이다. 주민들은 집속탄 모탄이나 대형 �탄의 잔해를 모아 집 기둥으로 쓰기도 한다.(Photo by Lee Yu Kyung)

‘폭탄과 함께 살아간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라오스 북서부 샹쾅 지방은 불발탄이 지천이다. 주민들은 집속탄 모탄이나 대형 폭탄의 잔해를 모아 집 기둥으로 쓰기도 한다.(Photo by Lee Yu Kyung)

똘망똘망한 알사탕 눈을 한 몽족 소년 야뷔(6)는 긴 소맷자락 안으로 손 하나를 자꾸만 감추려 들었다. 싸늘한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하나 없어져서 창피하다”는 소년은 집속탄 피해자다. 소년은 라오스에서 흔히 ‘밤비’(bombie)로 불리는 소형 집속탄두가 터지는 사고를 당해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왼팔에도 길고 깊게 파인 상처가 또렷이 남아 있다.

사고는 지난 8월13일 라오스 북서부 샹쾅 지방 주도인 퐁사반의 몽족 마을 ‘노이’에서 발생했다. 그날 야뷔와 여끄(7)는 동네 연못가에서 또 다른 친구 3명과 놀던 중 밤비 하나를 발견했다. 한 친구가 갑자기 그걸 집어던졌다. 아무 일이 없자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 친구는 연못가의 물고기를 잡겠다며 밤비를 다시 연못으로 던졌고 그때 터져버렸다. 밤비를 던진 소년과 그의 동생이 목숨을 잃었고, 야뷔와 여끄 등 세 어린이는 부상을 입었다.

소년은 손가락 잃고 친구는 숨져

“쓰러진 친구들이 죽은 줄 몰랐어요. 정신만 잃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동네 아저씨가 알려줘서 친구들이 죽은 걸 알았죠. 우리 모두 얼굴에 피가 범벅이었고…. 너무 슬프고 무서웠어요. 밤비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는데….” 야뷔는 한동안 입을 닫았다.

얼굴과 가슴에 화상을 입은 여끄는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부어오른 무릎은 조금 나아진 줄 알고 축구를 하는 바람에 더 나빠졌단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고기 잡던 그 익숙한 연못가에 밤비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소년은, 해맑아야 할 아이의 얼굴 대신 체념과 우울함이 가득한 중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이제 맘 놓고 축구를 할 수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잃었다. 아이에게 장래희망을 괜히 물었다. “꿈도 없다”는 대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5년여 만에 다시 찾은 라오스의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그 하늘 아래 흙바닥을 안방으로 여기고 뒹구는 아이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풍경도 바뀌지 않았다. 그 맑은 하늘에서 쏟아진 폭탄 세례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불발탄(UXO)을 안고 사는 나라가 또한 라오스다. 베트남전쟁 기간이던 1965년부터 73년까지 미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라오스를 상대로 비밀스런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에서 미군 전폭기는 50만 회 이상의 출격으로 집속탄 2억7천만 발을 포함해 2백만t이 넘는 폭탄을 라오스 땅에 퍼부었다. 집속탄의 불발탄 발생 비율은 약 30%에 이른다. 당시 투하된 집속탄 8천만 발이 전쟁이 끝난 뒤 지금껏 살아남아, 포화를 용케 피하고 목숨을 부지한 이들의 삶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

곳곳에 산재한 8천만 발 생명 위협

수도 비엔티안과 16개 주 등 모두 17개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라오스, 이 가운데 15개 지역이 불발탄 ‘오염지대’다. 650만여 인구의 80%가 농사를 짓는 나라에서 농토의 37%가 불발탄 오염지대란 꼬리표를 달고 있고, 거주지의 25%가량도 불발탄에 둘러싸여 있다. 특히 비엔티안에서 차량으로 12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샹쾅 지방은 ‘호찌민 트레일’(베트남전 당시 이웃나라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통해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을 오가며 병참·인력 등을 공급하던 루트)이 지나던 남부의 사바나켓 지방과 함께 베트공과 파테트라오(라오스 공산주의 운동으로 현 공산주의 정권의 전신) 전사들이 미군의 지원을 받는 로얄라오군과 내전까지 벌인 곳이다. 여기에 미군의 ‘비밀전쟁’까지 범벅이 됐으니, 샹쾅 전역이 사실상 불발탄의 밭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발탄이 발견되지 않은) 사야부리도 예산 부족 때문에 현장 조사를 못해서 정보가 없을 뿐, 불발탄이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3년간 불발탄 제거 작업을 벌여온 ‘UXO 라오’ 전국 프로그램의 완통 캄달라 차장은 진단한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과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벌였으니, 명목상으로라도 병원이나 민간인 구역에 마구 폭격을 퍼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라오스에선 그런 명목조차 없었기 때문에 집속탄도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졌다”고 말했다.

12살 때부터 5년간 가족과 격리된 채 동굴에서 혼자 피난 생활을 해가며 ‘비밀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수삿(52)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항상 배가 고팠고, 항상 입 안엔 뭔가 있었다. 사람 고기를 빼곤 뭐든 다 먹었던 것 같다.” 수샷처럼 샹쾅 지방 주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동굴이나 벙커 생활을 하며, 통계상 ‘8분’ 단위로 공습이 이뤄졌다는 ‘폭격의 세월’을 견뎌냈다. 베트남 국경 근처에 벙커를 짓고 피난 생활을 했던 주 후아(64)는 “당시 주민들은 새벽 4시30분과 오후 5시께, 공습이 덜한 시간대에 잠시 밖에 나가 바나나와 야생 감자 등 먹을거리를 후다닥 모아 굴로 들어갔을 뿐, 그 밖의 시간엔 굴을 나설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몽족 출신인 그는 파테트라오 당원이기도 했단다.

라오스 불발탄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속탄 ‘BLU 26’ 투하 장면을 모형화 해놓은 전시장. 큰 �탄 안에 수많은 작은 �탄이 들어 있는 집속탄은 살상 반경이 대단히 넓다(왼쪽). 샹쾅에 사는 톰미 실람판(19)은 12년여 전 대나무 죽순을 캐다가 땅속 깊이 박힌 집속탄 �발 사고로 왼손을 잃었다. (Photo by Lee Yu Kyung)

라오스 불발탄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속탄 ‘BLU 26’ 투하 장면을 모형화 해놓은 전시장. 큰 폭탄 안에 수많은 작은 폭탄이 들어 있는 집속탄은 살상 반경이 대단히 넓다(왼쪽). 샹쾅에 사는 톰미 실람판(19)은 12년여 전 대나무 죽순을 캐다가 땅속 깊이 박힌 집속탄 폭발 사고로 왼손을 잃었다. (Photo by Lee Yu Kyung)

불발탄 제거 작업 1%도 진척 안 돼

“베트콩과 파테트라오 전사들이 이따금 폭격을 퍼붓는 비행기를 격추시키면, 미군 조종사와 (미군 용병이던) 몽족 등 대여섯 명이 그 비행기 안에 있었어. 그래서 공습을 한 게 미군이란 걸 모두 알고 있었지.”

미군은 주민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동굴에까지 폭격을 퍼붓기도 했다. 1968년 11월24일 샹쾅 지방 무앙캄에 위치한 탐퓨 동굴에서 숨어 지내던 주민 374명이 미군의 공습으로 순식간에 몰사한 ‘탐퓨 학살’이 대표적 사례다. 매년 11월 말이면 샹쾅 주민들은 탐퓨를 찾아 그날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을 절대로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는 주민들. 그러나 그들은 사과보다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불발탄 제거 작업을 적극 지원하면 좋겠다는 현실적 바람을 더 갖고 있다. 종전 뒤 20여 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불발탄 제거 작업은 지난 13년간 0.5%에서 0.9% 정도밖에 진척되지 못했다. 폭탄 탐지 훈련을 받은 개조차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불발탄이 많기 때문이다. ‘UXO 라오’ 샹쾅 지방 책임자 킹펫 피마봉은 “불발탄을 다 제거하는 데 1천 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쓰게 웃었다.

모탄 1개에 소형 탄두 670개

지난 11월21일 샹쾅 지방 펙 지구 복 마을에서 불발탄 제거 작업을 벌일 ‘UXO 라오’ 팀을 따라나섰다. 10월6일 작업을 시작한 이래 같은 현장에서 240발의 불발탄을 제거했고, 6발을 더 폭파시킬 참이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학교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주민들은 이 ‘불발탄밭’에서 감자 농사를 지어왔다. 불발탄 제거팀 관계자는 “이곳에서 발견된 불발탄은 거의 100%가 밤비 집속탄”이라며 “라오스에선 한 해 평균 300명가량이 불발탄 폭발로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를 잃는데, 이런 사고 대부분이 집속탄 때문”이라고 전했다.

라오스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집속탄은 ‘BLU 26’이다. 야뷔와 여끄에게 상처를 입히고 친구들은 물론 소년들의 ‘꿈’마저 빼앗은 것도 이 탄두다. 12년 전 배가 고파 대나무를 찾아 땅을 파던 7살 소년 톰미 실람판(19)의 왼손을 앗아간 것도 역시 이 탄두다. 커다란 모탄(CBU) 1개에 670개의 소형 탄두(자탄)가 들어 있는 이 집속탄은 “축구장 3개 크기의 공간을 거뜬히 폭파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670개나 되는 소형 탄두 표면에는 다시 200~300개의 파편이 박혀 있고, 그 파편 하나하나가 200~300m까지 흩어지며 애꿎은 목숨을 위협하는 게다.

라오스 전역에 산재한 불발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집속탄은 터지지 않고 남아 있는 대형 폭탄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야구공보다 작은 공 모양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땅속 여기저기에 숨어 있어 언제 어떤 자극을 받아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인애플탄’으로 불리는 노란색 집속탄 ‘BLU 3B’는 색깔까지 곱다. 이 때문에 라오스 아이들이 장난 삼아 폭탄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시장에서 꽤 비싸게 거래까지 되고 있다. 하긴 불발탄으로 인해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난한 라오스 농민들에게, 불발탄 잔해를 주워모아 국경 너머 베트남으로 팔아넘기는 것은 중요한 가외 수입원이다. 불발탄 잔해물들이 유독 많이 쌓여 있던 타족 마을 주민들은 집속탄금지협약(CCM)이 곧 발효될 것이란 얘기를 들었는지, “불발탄 잔해 거래도 금지되는 거냐”고 심각하게 물어오기도 했다.

집속탄금지협약이 절실한 이유

“대부분의 밤비는 지표면 10cm 깊이에서 발견되지만, 그렇다고 더 깊은 곳에 밤비가 없는 건 아니다.” ‘UXO 라오’ 활동가의 지적이 아니어도, 폭발하지 않은 집속탄은 땅속 깊이 위험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앙쿤 지역 꾸아 마을 주민 분미 비자르(28)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 그는 10년 전 연못을 파다가 1m 깊이에 도사리고 있던 밤비가 터지면서 팔 하나를 잃었다. 그는 “집속탄이 위험하다는 건 대강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그렇게 깊은 곳에 터지지 않은 집속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거기에….’ 라오스 집속탄 피해자들이 앵무새처럼 내뱉는 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집속탄 폭파 작업을 마치고 현장을 둘러보던 폭탄 해체반 팀장이 불발탄이 터지면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75년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증오의 광기를 빼곡히 채운 집속탄은 ‘폭력의 씨앗’으로 여전히 라오스 땅에 남아 있다. 최근 몇 년 새 라오스에서 불발탄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절반이 ‘전후 세대’란 점은 라오스가 여전히 ‘전시 상황’에 있음을 웅변해준다. 불발탄 피해자에게 의수·의족을 공급해주고 있는 재활지원단체 ‘코프’의 조 페레이라 활동가는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껏 집속탄으로 죽고 다치는 이들이 숱하다”며 “라오스는 집속탄 사용을 왜 금지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비엔티안·샹쾅(라오스)=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출처 :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3945.html (한겨레 21 / [2008.12.12 제7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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