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라도 그들의 존재는 암덩어리”

[2014.05.26 제1012호]

[세계_ 버마 로힝야, 제노사이드 경보 ③ 국경의 위험한 신호 ] 로힝야에 대한 적개심 감추지 않는 아라칸 군인들
‘소수집단의 권리를 위한 모임’, 대량 학살 위험군 9개 지역 중 하나로 버마 꼽아

* 필자는 <리영희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3~4월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를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인권단체들은 지난 1월 ‘두쉬얀단(Du-chee-yar-dan)학살’, 최근의 비정부기구(NGO) 공격과 추방 등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 버마(미얀마) 서부 아라칸주에서의 ‘제노사이드 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아라칸주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로 버마를 떠난 로힝야 난민이 가장 많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에서의 생활, 그리고 보트피플이 된 이들이 인신매매 과정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기까지, 라카잉 불교도 무장단체와 버마-방글라데시 국경의 다이내믹한 종족·종교 갈등 상황 등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3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지면상 싣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보충하여 게재합니다. / 이유경 Penseur21  

버마 북부 카친 반군 수도 라이자에 위치한 아라칸군 캠프 입구. 아라칸군은 한때 아라칸주와 치타공 일대를 통치했던 아라칸 왕국의 부활을 꿈꾸며 아라칸주 국민군대로 입성하길 바라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버마 북부 카친 반군 수도 라이자에 위치한 아라칸군 캠프 입구. 아라칸군은 한때 아라칸주와 치타공 일대를 통치했던 아라칸 왕국의 부활을 꿈꾸며 아라칸주 국민군대로 입성하길 바라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서 만난 니니마웅(26·가명)은 약 5년 전 버마(미얀마) 서부 아라칸주 고향을 떠난 이래 한 번도 집에 간 적이 없다. 이따금 방글라데시-아라칸주 국경을 넘나들지만 맡은 일에 대한 사명감 때문에 고향 방문은 하지 않는다. 그는 아라칸주 주류족인 라카잉 불교도다.

아라칸 왕국을 가슴에 품고

“저기 저 여성을 봐. 검게 뒤집어쓴 무슬림 여성들. 만일 한국에 ‘벵갈리’들이 득실대고 당신이 저렇게 입어야 한다면 어떤 심정이겠나?”

‘반(反)벵갈리’ 정서로 무장한 그의 수사는 자기 종족 누이들에 대한 염려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버마 내 반무슬림 증오 캠페인을 주도하는 ‘969운동’ 승려들이 불교도 여성과 무슬림 남성의 결혼 금지 법안을 압박하는 논리는 고스란히 그의 논리이기도 했다.

그동안 버마 내 불교 극단주의 세력들은 로힝야가 방글라데시 불법 이민자라며 ‘벵갈리 추방’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니니마웅 자신도 사실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할아버지는 ‘방글라데시 라카잉’이다. 오래전 아라칸주 라카잉 마을로 이주한 뒤 거기서 동족 여인을 만났고 그들 사이에서 니니마웅의 아버지가 태어났다. 한때 아라칸 왕국의 통치를 받았던 치타공 일대에는 약 20만 명의 라카잉 불교도들이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니니마웅이 방글라데시에 친척이 있듯, 양쪽 라카잉족들은 혈연관계로 얽힌 경우가 많다. 이들이 ‘친척 방문’차 구멍 난 국경을 오고 가는 건 이 일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원래 다카(방글라데시 수도)도 아라칸 왕국의 영토였다.”

다카까지 포함시키는 니니마웅은 여느 라카잉보다 훨씬 더 애국심이 강했다. 그는 현재 아라칸주 신생 반군인 ‘아라칸군’(Arakan Army)의 방글라데시 총책을 맡고 있다.

아라칸군의 본부와 군 캠프는 예상외로 버마 북부 카친주 반군 수도인 라이자에 자리잡고 있다. 니니마웅 역시 카친주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2년을 보낸 뒤 방글라데시 국경에 배치됐다. 그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캠프에서도 군사훈련이 진행된다. 그 과정을 거쳐 아라칸군의 일원이 된 초 한(28·가명)은 방글라데시 라카잉이다.

“라카잉족에게 국경이란 없다. 어느 나라에 속해 있든 우린 한민족이다.” 니니마웅의 말이다.

기자는 지난해 11월 카친주에서 아라칸군을 밀착 취재한 바 있다. 라이자 본부에서 오토바이로 반 시간 흙길 언덕을 오르면 닿는 군 캠프는 카야붐과 멀지 않았다. 카야붐은 2013년 초 정부군과 카친 반군 간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아라칸군은 당시 카친 반군과 나란히 그 전투에 참여했다. 캠프는 시설 면에서 조금도 빈곤해 보이지 않았다. 캠프의 너른 광장 한켠에 위치한 대형 강당 안에 들어서니 정면으로 영문 표어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내 조국은 왜 캄캄한가

‘부국(父國)의 수호자들’(Defenders of Our Fatherland).

“붉은색은 용감무쌍함을, 푸른색은 정직함을, 그리고 가운데 일곱 방향으로 뻗은 별은 아라칸주 7개 종족을 의미한다.”

안내를 맡은 웨이타트완이 아라칸군 깃발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 보면 아라칸주에 라카잉족과 로힝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카잉·므로·마르마·캄만 등 공식 인정받은 7개 세부 종족과 인정받지 못하는 로힝야들이 살고 있다. 이 중 로힝야와 캄만족은 무슬림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몽골계 불교도이며 극소수 힌두교도들도 있다.

“무장투쟁을 위한 주변 환경을 고려하다보니 기존 (아라칸 무장) 단체들이 기반하던 방글라데시 국경은 너무 빈곤하다고 판단했다. 후보 지역 무장단체들이 얼마나 기강이 잡혀 있는지도 고려했다. 그래서 카친주로 오게 됐다.”

최고 사령관인 트완므왓나잉(35) 준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카친주로 오게 된 내막을 털어놨다. 카친독립군(KIA) 현 부사령관인 군모 소장에게 우선 접근해 군사훈련을 부탁했단다. 최종 수락을 얻어내기까지는 1년 넘게 걸렸다.

“학창 시절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면 다른 도시들은 나무에 전등이 걸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지만 내 조국은 캄캄했다. 전기가 하루에 2시간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땅에 자원이 풍부한데 왜 전기조차 보급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지, 왜 이를 위해 제대로 싸우는 건재한 무장단체가 없는지 친구들과 고민한 적이 많다.”

가난한 버마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아라칸주, ‘캄캄한 조국’을 아파하며 무장투쟁을 꿈꾸던 젊은이 26명은 2009년 1월 드디어 카친 반군으로부터 첫 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4월10일 ‘아라칸군’ 깃발을 올렸다. 카친주 본부가 ‘임시’라는 점을 강조하는 트완므왓나잉 준장은 머잖아 아라칸주의 ‘국민군대’로 입성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아라칸군은 신생 반군답게 혈기 왕성한 신병이 적잖았다. 타이 남부 얄라 지방 목공소에서 1년여간 이주노동자로 살았던 터도아웅(20·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카친주 반군 수도 라이자의 아라칸군(AA) 대원들. 이들이 나치 심벌인 스와스티카가 박힌 군모를 쓴 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반로힝야 인종주의와 극우민족주의는 이들의 무장투쟁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카친주 반군 수도 라이자의 아라칸군(AA) 대원들. 이들이 나치 심벌인 스와스티카가 박힌 군모를 쓴 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반로힝야 인종주의와 극우민족주의는 이들의 무장투쟁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지난해 말 카친주 반군 수도 라이자에서 열린 전소수민족무장단체 회의에서 아라칸해방당(ALP) 카잉 투카 사무총장(맨 왼쪽)과 아라칸군 최고 사령관 트완므왓나잉 준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라카잉 무장단체 중에서 반로힝야 인종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이 두 조직은 현재 통합 협상을 진행 중이다 (Photo © Lee Yu Kyung)

지난해 말 카친주 반군 수도 라이자에서 열린 전소수민족무장단체 회의에서 아라칸해방당(ALP) 카잉 투카 사무총장(맨 왼쪽)과 아라칸군 최고 사령관 트완므왓나잉 준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라카잉 무장단체 중에서 반로힝야 인종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이 두 조직은 현재 통합 협상을 진행 중이다 (Photo © Lee Yu Kyung)

“아라칸군에 대한 비디오 영상과 인터넷 정보를 봤다. (버만족으로부터)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해방하고 외세(이슬람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터도아웅의 말이 암시하듯 아라칸군 영상물은 아라칸주에서 제법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4월 ‘틴잔’(Thingyan)이라 불리는 새해 물축제 기간이면 그들의 행진가가 여기저기서 물싸움과 어우러진다.

트완므왓나잉 준장이 밝힌 2013년 11월 현재 아라칸군의 규모는 4천~5천 명 정도다. 카친주는 물론 타이, 인도-버마 국경, 방글라데시-버마 국경 등에 대원들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버마 랑군과 아라칸주 내부에는 언더그라운드 조직으로 대원들을 배치해놓았다. 이 대원들의 임무 중 하나는 바로 신병 모집이다.

인기 있는 신병 모집 영상

트완 웨이(26) 대위가 랑군의 슈웨다곤 파고다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도 그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승복을 입고 있었다.

“2009년 7월 우기였다. 10대 시절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인데 세 번쯤 더 만났을 때 친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털어놓으며 제안했다. 카친주에 우리 민족을 위한 무장단체가 있고, 자신은 랑군으로 파견된 거라고.”

트완 웨이가 라이자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09년 12월15일. 다른 신병 3명과 함께 라이자에 도착해서야 그는 승복을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2007년 시트웨시 한 사원의 승려로 있던 트완 웨이는 이른바 ‘사프란 승려’였다. 그해 9월 랑군 거리를 휩쓸던 혁명의 불씨는 한 달 전인 8월 시트웨 승려들의 시위가 시발점이었다. “경제 문제였다.” 당시 시트웨 시위를 조직했던 트완 웨이가 강조했다. 정부의 갑작스런 기름값 인상이 벼랑 끝 빈곤으로 몰고 간 군사정권에 대한 분노와 경제적 박탈감을 건드렸다. 그는 “당시 시트웨 시위를 주도했던 시트웨청년승려연합 의장도 지금 여기 있다”며 껄껄 웃었다. 전투에서 돌아온 뒤 ‘죽지 않고 살았어’를 되뇐다는 그에게 로힝야에 대해 물었다.

“가난한 자기 나라(방글라데시)를 떠나 우리 땅으로 와서 우리 국토를 흔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불쌍해 보일 때도 있다”고 동정 발언을 하긴 했지만 ‘침입자’라는 시각은 확고했다.

트완 웨이와 달리 ‘벵갈리’에 대한 적개심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던 소윈이(21)는 아라칸군 여성 교관이다. 소윈이는 3년 전 이모의 제안에 따라 카친주 옥광산의 허브인 파칸으로 이주노동을 온 뒤 아라칸군의 존재를 알게 됐다. 파칸은 전국 각지에서 ‘옥 노다지’를 캐러 온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천국이다. 그곳에도 아라칸군은 사무소를 열고 신병 모집을 하고 있었다. 대원은 먼저 이모에게 접근해 조카를 군에 입대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 다독였다. 2012년 6월 로힝야 무슬림과 라카잉 불교도 간에 충돌이 일어나던 즈음이다.

“라디오를 통해 벵갈리들이 라카잉들과 충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분노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버만족들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깔보는 현실도 머릿속에 중첩됐다.”

그해 10월10일 소윈이는 아라칸군의 대원이 되었고 2013년 초 3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았다. 힘들 때마다 동포들과 ‘벵갈리’를 생각하면 피곤함이 가신단다.

“더 큰 적은 버만족이지만 지금 당장 큰 적은 벵갈리다.”

매서운 눈매와 다부진 인상의 여전사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아라칸군은 현재 기존 무장단체 중 하나인 아라칸해방당(ALP)과 통합을 논의 중이다. ALP는 2012년 반로힝야 폭력 사태의 배후로 끊임없이 의심받아온 조직이자 반로힝야 수사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조직이다.

“이슬람화와 버만화라는 중대한 도전에 맞서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문화, 종족, 정체성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아라칸군 트완므왓나잉 준장의 말도 차분하긴 했지만 독설이 담겨 있었다.

“벵갈리 인구가 고작 5% 안팎인데 왜 이슬람화를 우려하냐고?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단 1%일지언정 그들의 존재는 암덩어리와 같다. 작은 암덩어리라도 그냥 내버려두면 치명적이지 않은가.”

버마 정부와 이해를 맞춰

지난해 8월 랑군에서 만난 로힝야 정치인 아부 타헤는 ‘라카잉 무장단체’의 반로힝야 폭동 배후설을 주장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라카잉 극단주의자들에겐 숨겨진 의제가 있다. 바로 1784년 버마 왕국에 빼앗겼던 아라칸 왕국을 되찾는 것인데, 버마가 과도기에 놓인 지금이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부 타헤는 버마 정부가 ‘분리주의 기운’을 용납하진 않겠지만 대신 이 상황을 라카잉과 로힝야 간의 분열 정책으로 적극 이용할 것이라고 봤다. 사실상 버마 정부가 수십 년간 로힝야에 대한 차별과 축출을 국가적 의제로 삼고 실행해온 중심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로힝야 전선에서 버마 정부와 라카잉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어긋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ALP는 2012년 4월 아라칸주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고 현재 연방 단위 휴전협상을 진행 중이다. 4월 협정에 따라 대원들은 비무장을 조건으로 버마 전역으로 이동이 자유로운 상태다. 본부는 여전히 버마-방글라데시-인도 미조람주 국경이 만나는 ‘트라이앵글’ 지점에 있지만 약간 남하해 방글라데시-아라칸 월경이 어렵지 않은 지점에 아라칸해방군(ALA, ALP의 군사조직) 1대대와 9대대가 주둔하고 있다. 최근에는 “라카잉 무장단체들이 방글라데시-버마 국경 수비를 맡아 ‘불법 이민자’들이 우리 땅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가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에) 강요하는 ‘국경수비대’(Border Guard Force) 방식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길 원한다”고 ALP 카잉 투카 사무총장은 덧붙였다.

휴전협상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미얀마평화센터(MPC)에 따르면 ALP의 공식 무장대원은 100명 수준이지만 2천 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 카잉 투카 사무총장은 “아라칸주 안에 우리 대원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정부 쪽에 요청한 연락사무소 개설 희망지에는 최북단 친주의 팔레와와 로힝야 무슬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아라칸주 마웅도 타운십이 포함돼 있다. 이미 연락사무소를 개설한 촉토는 반로힝야 폭력 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 중 하나다.

‘트라이앵글’ 찍고 팔레와를 거쳐 촉토에 이르는 길, 이 경로는 아라칸군 방글라데시 총책 니니마웅의 월경 경로와 일치한다. 두 조직의 합병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지만 국경 일대의 공조는 이미 이뤄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탄력받는 합병 논의

라카잉 인종주의로 똘똘 뭉친 행보는 여전히 숨가쁘게 진행 중이다. 정부의 로힝야 말살 정책에도 조금의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게다가 최소한의 구호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게 로힝야들의 지금 현실이다. 지난 4월 ‘소수집단의 권리를 위한 모임’(Minority Rights Groups International)은 대량 학살 위험군 9개 지역으로 수단, 시리아, 소말리아 등과 함께 로힝야 문제를 근거로 버마를 포함시켰다. 또 유엔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으로서 아라칸 일대 조사 활동을 벌여온 토마스 퀸타나 변호사는 최근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열린 ‘로힝야 제노사이드’ 포럼에서 일련의 과정에 ‘제노사이드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27일부터 5월1일까지 아라칸주 촉푸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라카잉 조직의 대표자들과 현지 주민들이 대거 참여한 ‘아라칸민족회의’(Arakan National Conference)가 개최되었다. 회의의 중요 결의안 중 하나는 바로 “무슬림으로부터 불교도 주민들을 보호할” ‘아라칸국민군대’(Arakan National Defence Army) 창설이다. 이에 따라 아라칸군과 ALA의 합병 논의는 좀더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라카잉 정치권은 이미 단합 기조를 보여왔다. 최대 정당 라카잉민족개발당(RNDP)과 최고령 정당 아라칸민주동맹(ALD)은 지난 1월 아라칸민족당(ANP)으로 합당했다.

“아라칸 역사에 로힝야란 없다. 그들은 이 땅에 머물러선 안 되고 나는 이슬람 사상을 용납할 수 없다.”

ALP 말레이시아 망명 지부장이자 전 정치범이었던 타툰아웅(53)은 아라칸민족회의 참석차 떠나기에 앞서 기자를 만나 호령하듯 그렇게 말했다. 아라칸 의회 최대 정당이자 방글라데시 라카잉 출신인 닥터 에 마웅이 이끄는 RNDP로 말하자면 2012년 폭동 당시 인종주의적 언사와 증오 스피치로 비판받아온 정당이다. RNDP의 기관지인 <더 프로그레스>의 2012년 11월호 사설을 보자.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조차 ‘국가 운명의 생존을 위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설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우리가 이(로힝야) 문제를 다음 세대로 넘긴다면 우린 역사의 비겁자로 추락할 것이다.”

치타공·콕스바자르·반다르반(방글라데시)·말레이시아·버마=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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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_ 버마 로힝야, 제노사이드 경보 ③ 국경의 위험한 신호 ] ALP 사무총장 카잉 투카 인터뷰

“지역 정부와 잘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소수민족 무장단체 회의 참석차 방문한 카친주 라이자에서 <한겨레21> 인터뷰에 응한 (ALP) 사무총장 카잉 투카(43)의 어조는 단호했다. “벵갈리들이 지하드(성전)를 치르기 위해 아라칸주로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그즈음 아라칸주 탄드웨에서 발생한 반무슬림 폭동 사건을 일축했다. 널리 보도되고 주정부 대변인까지 인정했던 사건, 94살 캄만 무슬림 할머니가 불교도 폭도의 칼에 두 군데를 찔려 죽음을 맞이한 사실 자체도 부인했다.

아라칸주 로힝야 무슬림 주류 지역인 마웅도와 부티동, 그리고 폭력 사태가 자주 보고되는 촉토 타운십 등 아라칸 북부에 확산되는 ALP의 영향력은 작금의 분쟁이 악화될 가능성을 단연 높여주고 있다. 카잉 투카 총장은 숨기지 않았다. “로힝야 문제에 대해 지역 정부와 잘 협력하고 있다.” 아라칸주 경찰 다수가 라카잉족이라는 사실도, 일련의 폭력 사태에 경찰과 룬틴(진압부대)이 가담하는 현실도 모두 그가 말한 ‘협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그는 ALP가 반로힝야 폭력에 연루되고 있다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다.

“2012년 11월 (정부 쪽 협상대표인) 아웅 민 장관이 치앙마이 비공식 협상에서 그러더라. 우리가 그해 발생한 아라칸주 폭동의 배후세력이라고. 그래서 증거를 대라고 했다.”

카잉 투카 총장은 아웅 민 장관의 그런 의구심이 연방 단위 휴전협상이 정체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그즈음 (버마)군이 국경에서 사제 권총 160정을 압수한 걸 증거라고 들이댔는데, 그런 총들은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무기이지 우리 무기가 아니란 말이다.”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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