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2014.05.19 제1011호]

[세계_ 버마 로힝야, 제노사이드 경보 ② 인신매매를 거쳐 말레이시아까지 ] 생존자들이 전하는 두쉬야단 학살의 참상… 남자들은 비명횡사,
여자들은 성폭행당하고 실종됐는데 정부는 시종일관 “아무 일 없었다”

* 필자는 <리영희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3~4월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를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인권단체들은 지난 1월 ‘두쉬얀단(Du-chee-yar-dan)학살’, 최근의 비정부기구(NGO) 공격과 추방 등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 버마(미얀마) 서부 아라칸주에서의 ‘제노사이드 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아라칸주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로 버마를 떠난 로힝야 난민이 가장 많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에서의 생활, 그리고 보트피플이 된 이들이 인신매매 과정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기까지, 라카잉 불교도 무장단체와 버마-방글라데시 국경의 다이내믹한 종족·종교 갈등 상황 등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3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지면상 싣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보충하여 게재합니다. / 이유경 Penseur21  

버마 아라칸주 시트웨시 마지막 무슬림 구역인 아웅밍갈라에서 마을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룬틴. 두치야단 학살 당시 라카잉 폭도들은 경찰과 룬틴을 대동했다. 곧이어 도착한 군인들도 상황 진압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부 목격자는 군인들 역시 총격을 가했다고 말한다. 경찰과 룬틴은 대부분 라카잉족이고, 군인은 버만족이 많다. 2013년 8월 촬영. (Photo © Lee Yu Kyung)

버마 아라칸주 시트웨시 마지막 무슬림 구역인 아웅밍갈라에서 마을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룬틴. 두치야단 학살 당시 라카잉 폭도들은 경찰과 룬틴을 대동했다. 곧이어 도착한 군인들도 상황 진압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부 목격자는 군인들 역시 총격을 가했다고 말한다. 경찰과 룬틴은 대부분 라카잉족이고, 군인은 버만족이 많다. 2013년 8월 촬영. (Photo © Lee Yu Kyung)

1월25일 자정께 고기잡이배를 타고 방글라데시 국경 타운 테크나프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 30여 명은 마중 나온 친척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누르 베굼(여·가명) 가족 8명도 우선 친척집으로 향했다.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인 쿠투팔롱 미등록 난민캠프로 가려면 구걸부터 해야 했다.

“고향에서는 내 땅에서 농사지으며 먹고살았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땅을 사는 게 아니라 금목걸이를 사두는 건데.”

빈손으로 도망치듯 피란 온 누르 가족 8명은 지난 1월13일 늦은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이어진 두치야단 마을 학살에서 살아남았다. 그날 누르는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남쪽 방향 냇물을 건너 구두사라 마을로 피신했다. 그러나 구두사라 마을로 군인이 모여들었고 이동에 이동을 거듭해 결국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까지 온 것이다.

땅 대신 금목걸이 사둘걸

두치야단 마을은 아라칸주에서 로힝야 인구가 주류를 이룬 마웅도 타운십에 속해 있다. 마을을 구성한 7개 촌락(hamlet) 중 로힝야 촌락은 4개, 라카잉 촌락은 3개, 촌락 간 거리는 길어야 도보로 15분 정도다. 두 마을은 가깝게 공존해왔다. 로힝야가 주류인 마을이지만 마을 대표나 관료직은 모두 라카잉 몫이다. 이 마을 대표 아웅 잔 퓨도 라카잉 촌락 킨차웅에 사는 라카잉 마을 사람이다. 킨차웅은 일명 ‘모델촌’ 중 하나인데 이 모델촌은 1990년대 초반 군사정부가 개발하기 시작한 불교도 정착촌이다. 마웅도 전역에 이런 모델촌이 40개 이상 있다.

사건의 발단은 1월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9일 저녁 촉토 타운십 출신의 로힝야 일용직 8명이 킨차웅 촌락을 지나가다 잡혀 마을 대표 아웅 잔 퓨 앞으로 불려갔다. 그리고 1월13일, 이들로 추정되는 주검 8구가 아웅 잔 퓨 집 앞에 있는 걸 로힝야 주민들이 목격하게 된다. 두치야단의 두 커뮤니티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웅도 시민 기자 압둘(35·가명)에 따르면 1월13일 밤 9시30분께, 로힝야 입단속을 하려던 경찰과 룬틴(Hlun Tin·‘진압 경찰’, 지난해 7월 해체된 아라칸주 국경수비대 ‘나사카’ 구성원이었고,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보안군이다)은 물론 마을 대표 아웅 잔 퓨가 이끄는 라카잉 주민 무리가 로힝야 촌락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비틀넛(버마(미얀마) 전역에서 애용되는 기호식품) 노점에 앉아 있던 젊은이들을 잡아가려 했다는 것. 유엔의 비공개 보고서는 로힝야 주검을 손전화로 몰래 촬영한 목격자를 연행하고 증거물인 손전화를 압수하기 위해 보안군들이 로힝야 촌락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젊은이들이 목청 높여 도움을 청하자 로힝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연행에 실패한 라카잉 무리들은 일단 자리를 떴다.

그러나 자정께. 장칼과 장대, 총기류 등으로 무장한 라카잉 주민들이 경찰, 룬틴과 함께 마을로 들이닥쳤고 이어 군인들도 도착했다. 누르는 10명 안팎의 로힝야 젊은이들도 장칼과 장대를 들고 싸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관·군이 합심한 상대 진영을 당해내진 못한 것 같다. 그 새벽 네댓 시간 동안 두치야단은 살해와 성폭행이 난무한 학살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1월14일 이후 다 떠나고 텅 빈 마을에 방화와 약탈이 이어졌고, 1월28일 두치야단 서부 지역에선 또다시 방화가 발생했다.

“경찰관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사태 직후 유엔은 두치야단 학살로 48명 이상의 로힝야가 사망했다며 버마 정부에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유엔 보고서는 폭력 사태 직후 보안군들이 20구의 주검을 언덕으로 실어나르는 걸 봤다는 목격담도 전했다. 영국 거주 로힝야 단체인 브룩(BROUK·Burmese Rohingya Organization UK) 보고서에 따르면, 1월19일에도 군용 트럭 3대가 어린이를 포함한 주검 수십 구를 싣고 가는 게 주변 주민들에게 목격된 바 있다.

“그런 (폭력) 사태 없었다.”

대통령실 대변인 예 툿은 초지일관 이렇게 말했다. 16명으로 구성된 정부 진상조사단 역시 2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라카잉 경찰관 한 명 외에 사망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는 1월13일 밤 보안군이 로힝야 촌락에 들이닥친 이유가 아웅 초 테인이라는 한 경찰관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해왔다.

“폭도들이 지프차 4대에 좀 예쁘장하다 싶은 젊은 여자들을 태워갔어. 감옥으로 데려간다고 했는데….”

그 차량에 실려갔던 누르의 조카딸 로시다(15)는 며칠 뒤 마을 언덕배기에서 인근 주민에 의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장례를 위해 로시다의 몸을 씻기던 동네 아낙들은 그녀가 성폭행 뒤 살해당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단다. 로시다는 주검이라도 발견되었지만 대부분의 소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1월23일 약탈과 방화로 휑한 집을 찾았던 티다(가명) 역시 성폭행 피해자다.

“폭도들이 집 안에 들이닥쳐 남편이 어딨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아기를 낚아챘어. 저항하며 울었는데 날 밀치더니 아기를 데리고 사라졌다. 집 밖으로 나와 일단 도망쳤지. 근데 경찰 한 명이 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는….”

넘어진 티다를 8~10명쯤 되는 그 무리들이 집단 성폭행했다.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 파티마(가명)는 성폭행범들의 이름을 지목했다. 바로 폭도를 선두 지휘하던 마을 대표 아웅 잔 퓨, 그리고 마웅 쉘라, 에 멩 등 익숙한 라카잉 얼굴들이 있었고 마마투웨, 마웅 퓨 같은 경찰도 보였단다. 15살 아들을 잃은 마주마(가명) 역시 아웅 잔 퓨, 마웅 쉘라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1월13일 밤 마주마는 깊이 잠들었다가 총소리에 깼다. 집 바로 옆 가게에서 자던 아들의 비명 소리까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뛰쳐나가 본 광경은 참혹했다. 보안군 40명과 라카잉 폭도 20명 정도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15살 아들은 밧줄로 묶여 있었다. 아들을 향해 폭도들은 장칼을 휘둘렀고 아들을 보호하려 달려들었지만 품에 안긴 아들은 이미 피가 흥건해 있었다. 의식을 잃은 파티마는 깨어났을 때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음을 깨달았다.

아기, 소년, 청년들의 비명횡사. 성폭행 혹은 실종으로 사라진 여인들. 생존자들이 증언하는 이 학살은 무언가 섬뜩한 경향을 암시하고 있다. 학살 직전, 10살 이상 로힝야 남자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총을 찬 폭도들’

두치야단 주민이지만 이날 타운 근처 누룰파라 마을에 있었던 아부 탈람은 누룰파라 지역 관료들이 마을을 돌며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걸 들었다.

“두치야단에서 도망쳐온 놈들을 숨겨주는 이는 처벌을 각오하라.”

두치야단 학살이 일어나고 약 한 달 뒤에 촬영한 마을의 모습. 방화와 약탈의 흔적이 여전하다 (시민기자 압둘 제공)

두치야단 학살이 일어나고 약 한 달 뒤에 촬영한 마을의 모습. 방화와 약탈의 흔적이 여전하다 (시민기자 압둘 제공)

두치야단 학살 생존자인 누르 베굼(가명)은 학살 당시 사위를 잃었다. 조카딸 역시 경찰 트럭에 실려간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다른 가족들과 방글라데시로 피란을 온 베굼은 동냥으로 연명하고 있다 (Photo© Lee Yu Kyung)

두치야단 학살 생존자인 누르 베굼(가명)은 학살 당시 사위를 잃었다. 조카딸 역시 경찰 트럭에 실려간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다른 가족들과 방글라데시로 피란을 온 베굼은 동냥으로 연명하고 있다 (Photo© Lee Yu Kyung)

대부분의 희생자가 장칼에 목숨을 잃었지만 총상으로 인한 사상자도 적지 않았다. 실제 <한겨레21>이 방글라데시에서 직간접적으로 인터뷰한 생존자 5명과 마웅도 타운십 시민기자를 통해 입수한 생존자 영상 인터뷰 3건을 종합해보면 ‘총을 찬 폭도들’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16살 소년 샤피(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샤피는 룬틴의 총에 맞은 친구를 부축하며 사촌들과 함께 방글라데시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타운에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MSF)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병원 가는 길 다리에 경찰 초소가 있기 때문에….”

부상당한 친구는 방글라데시로 넘어와 쿠투팔롱 캠프 부근 MSF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3월 초 친구는 돌아갔지만, 샤피는 방글라데시에 남기로 했다. 아라칸주에서 로힝야 청년으로 존재하는 게 아주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샤피는 방글라데시 캠프 내 마드라사(이슬람 종교학교)에서 잠을 자고 동냥 식사로 배를 채우고 있다.

아버지의 눈 치료를 위해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로 넘어온 무하마드(가명)는 “마웅도에서 로힝야들이 치료받을 곳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마웅도 타운십에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이 딱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있는 유일한 의사와 간호사 11명 모두 라카잉족이다. 병원 문지기만 로힝야란다. 시민권이 없는 로힝야는 의학 공부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유일한 로힝야 의사였던 닥터 툰 아웅은 2012년 6월 폭력 사태 당시 ‘폭력 선동’ 죄로 잡혀가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뉴욕타임스> 3월1일치가 인용한 한 구호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아라칸주 18개 타운십 가운데 7개의 타운십 병원이 이미 로힝야의 병원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유엔 정보는 마웅도 지역 내 의사 한 명당 인구수는 8만3천 명이고 또 다른 로힝야 주류의 부티동 타운십의 경우 7만5천 명이라 밝히고 있다. 아라칸주 주도인 시트웨의 681명이라는 숫자와 비교해볼 만하다. 그나마 이 지역에서 차별 없이 진료해온 MSF 병원을 로힝야는 주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 어려워졌다.

MSF는 두치야단 사태 직후 심리적 충격을 받은 주민들을 포함해 22명의 부상자를 치료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그런 일 없다’고 주장해온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2월28일 버마 정부는 MSF에 아라칸주 활동 중단을 통보했다. 버마 전역에서 22년간 의료구호 활동을 펼쳐온 MSF는 아라칸주 전역의 피란민(IDPs) 캠프 난민 20만 명을 포함해 약 70만 명의 로힝야, 라카잉 주민들을 상대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3월26일 아라칸주의 국제 비정부기구(NGO)와 유엔 건물이 라카잉 폭도들에게 일제히 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아라칸주 내 NGO 직원 170명 이상이 거의 전부 철수해버렸다. “국제 NGO와 유엔 등이 라카잉 지방 내 종족 갈등을 부채질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적은 대통령 산하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의 일곱 번째 권고안은 효과를 본 셈이다.

하루 수십 명이 죽어나간다는 ‘소문’

구호단체가 떠난 지 1개월 반이 흘렀다. 시트웨 외곽과 파욱토에 위치한 피란민 캠프를 중심으로 병든 산모와 앙상한 아이들, 노인들의 사진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루 수십 명이 죽어나간다는 ‘소문’이 섬뜩한 사실이 아닐까 우려를 더하고 있다.

누룰파라에서 ‘두치야단 도망자는 숨겨주지 말라’는 경고를 숨죽이며 들어야 했던 아부는 다음날 학살 현장을 탈출한 가족과 조우했지만 만 2년6개월 된 막내딸은 보이지 않았다. 난리 통에 막내딸을 찾지 못했다며 아내는 눈물을 쏟았다. 막내딸이 빠진 아부 가족 9명은 지난 1월25일 방글라데시에 도착했다.

아부는 3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난민선을 타고 말레이시아로 떠나려다 풍랑으로 배를 되돌린 기억을 곱씹고 있다. 난민 밀항선이 타이를 거쳐 난민들을 팔아넘기듯 말레이시아로 내동댕이치는 현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돈만 있으면 탄다. 아라칸주에서 로힝야는 개 취급 받는다. 사람이 아니다.”

콕스바자르·테크나프(방글라데시)=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기사 내용 중 마웅도 주민 인터뷰는 시민기자 압둘(가명)의 기고로 보충했습니다.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기사원문 보러 가기 클릭

One response to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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