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리는 ‘군정’을 교체할 수 있을까

상원·하원 압승 통해 대통령 후보 2명 지명권을 갖게 된 버마 야당 민족민주동맹과 아웅산 수치. 2008년 헌법 개정 없이는 군·경찰력엔 손 못 대

제1087호 / 2015.11.16

격세지감이다. 2007년 9월 버마 승려들이 주도한 샤프란 혁명 직후, 기자는 버마 중북부 도시 만달레이 외곽 허름한 폐가에서 다부진 한 청년과 마주앉았다. 그는 민족민주동맹(NLD) 청년활동가 모조아웅이었다. 2003년 아웅산 수치 차량이 군부가 지원하는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던 ‘데파윈 학살’(Depayin Massacre) 당시 모조아웅은 수치의 보디가드였다. 당시 폭도들은 현 집권여당인 통합연대발전당(USDP)의 전신 통합연대발전협회(USDA) 소속 ‘주먹들’로 알려졌다.  그 공격에서 “살아남았던” 모조아웅이 지난 11월 8일 치뤄진 버마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 후보로 당선됐다.

야당 승리는 민중이 일궈낸 결과

샤프란 혁명을 주도했던 승려 우 감비라. 그는 6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 뒤 뇌수술을 받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고문의 후유증을 안은 채 타이에서 쉽지 않은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감비라는 총선이 끝나면 ‘민주화된’ 고국으로 돌아가 상처입은 무슬림과 불교도 간 화해에 헌신하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선거가 끝나자 그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족민주동맹이 승리했으니 조만간 집으로가겠다고.

버마 군부 독재 시절이던 2008, 2007년 아웅산 수치는 가택 연금중이었다. NLD 본부안에는 늘 걸려 있던 수치의 대형사진은 버마 민주화운동의 한 상징적 기록으로 남는다. (Photo © Lee Yu Kyung)

버마 군부 독재 시절이던 2008, 2007년 아웅산 수치는 가택 연금중이었다. NLD 본부안에는 늘 걸려 있던 수치의 대형사진은 버마 민주화운동의 한 상징적 기록으로 남는다. (Photo © Lee Yu Kyung)

버마 총선후  전 세계 언론이 아웅산 수치에게 온갖 찬사와 환호를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모조아웅과 보이지 않는 감비라들의 고된 역정이쌓아온 무수한 계단 위로 수치는 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 역시 2년전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희생이 주목받는 것이 “당황스럽다”며 “동료들이 훨씬 더 고된 길을 걸어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선거는 수치의 동료들인 버마민중들의 지난한 투쟁의 연장선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꼭두각시 정당 통합연대발전당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흉내내려던 군인들의 속셈은 보기좋게 심판받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군정 패배, 민주야당 승리의 단순도식으로 보면 큰 오산이다. 테인세인 대통령실 대변인 예 툿(Ye Htut)장관은 10일 CNN과의인터뷰에서 90년 총선후 군부가 정권 이양을 거부했던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0년도와 다르다. 그때는 헌법이 없었고, 지금 미얀마(버마)는 엄연히 헌법이 있다”

2008년 군정 헌법은 반세기 권력의 호사를 누려온 군인들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해도 될만큼 자신들의 중추적 권력을 선명하게 보장해 놓았다. 심지어 헌법 40조 (C)항은 “반란”(insurgency)이나 “폭력”(violence)으로 국가 주권 붕괴상황이 올 경우“국가안보”와 “국가통합” 을 위해 “군 총사령관이 (권력을) 인계할 수 있다”고 적어놨다. 사실상 ‘쿠테타’를 합헌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아직 민족민주동맹이 새 정부를 구성할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그들이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핵심 권력자는 군이다”

선관위가 개표결과를 조금씩 흘리는 11일 저녁, 버마 정치 평론가 시뜌 아웅 뮌 (Sithu Aung Myint, 50)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렇게 적었다. 그는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NLD 정부하에서 헌법 개정은 더더욱 먼 얘기”라고 말했다. 아웅 뮌은 쿠테타 등 선거 이후 위험변수들을 묻는 질문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3월31일까지 5개월이나 남았다. 그사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며 신중하게 답했다.

쿠데타도 합법화한 군정 헌법의 그림자

12일 정오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민족민주동맹은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238석과 110석을 얻어 단독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의석 329석을 거뜬히 넘었다.이 압승은 우선  민족민주동맹이 상하 양원이 추천하는 대통령 후보 2명의 지명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나머지 한 명은 헌법상 군인에게배정된 116명(25%) 군인의원들이 추천한다. 이렇게 총 3명의 대통령 후보를 두고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내년 2월 이후다. 대통령이 되지 못한 나머지 두명은 부통령이 된다. 대통령 후보는 반드시 의원일 필요는 없고 대통령이 된다면 권한은 막강하다. 그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들로 ‘라인업’을 마쳐야 비로소 정부가 출범한다. 3월 말의 얘기다. 현재로선 민족민주동맹 지명자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데 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버마 군은 11일 저녁 NLD와 아웅산 수치에게 축하공문을 보냈다. 군은 2008헌법에 따라 국가운영의 핵심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버마 군은 11일 저녁 NLD와 아웅산 수치에게 축하공문을 보냈다. 군은 2008헌법에 따라 국가운영의 핵심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막강한 민간권력은 국정운영의 요직을 건드리지 못한다. 국방부, 내무부 그리고 국경부 장관들은 모두 군 총사령관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또,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은 국방안보위원회(National Defense and Security Council, NDSC)에게서 나온다. 국방안보위원회 11명 중 최소 6명은 군인이고 여기엔 군 총사령관이 임명하는 3부 장관들과 총,부 사령관 그리고 군인의원들이 추천하는 부통령이 포함된다. 선거결과가 좋지 않으면 양원의회 의장이나 대통령, 그리고 또 다른 부통령도 군인 몫이 될 수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군총사령관이 주요 내각의 임명권과 통제권을 갖고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국방안보위원회의 과반이상이 군인일 수 밖에 없다는 건 군정 체제 종식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헌법에 기반하여 군 권력을 공고화하는것이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버마는 1948년 독립 직후부터 카렌 주를 시작으로 내전에 휩싸여온 세계 최장기 내전 국가다. 방대한 국경 지대가 소수민족반군의 통제하에 있고 소수민족 인구는 전체인구의30-40%다. 2008년 헌법에 따르면 아무리 압도적 지지를 받은 선출된 민간권력이라도 소수민족 분쟁 지역에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선거로부터이틀이 지난 10일 샨주의 반군 ‘샨주 북부군’ 본부가 있는 완 하이 지역이 정부군의 공습을 당한 건 선거와 ‘무관하게’ 계속되는 전쟁이 버마의 현실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군총사령관이 통제하는 또 다른 부서 내무부는 어떤가. 온갖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반정부 세력들을 감찰해온 경찰력, 로힝야 무슬림이나여타 무슬림을 겨냥한 종교폭동에서는 폭도들을 지켜만 보거나 폭력에 적극 가담하던 경찰력, 모두 내무부 통제하에 놓여 있다. 지난 3년간 안티무슬림 폭동 현장과 백린탄까지 사용되던 광산개발 반대 시위현장은 모두 내무부의 통제하에 있었다. 내무부 장관 코 코 (Lt. Gen. Ko Ko) 중장은 지난해 11월 하버드대 로스쿨 국제인권클리닉에 의해 ‘전쟁 범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2005-2008년 사이 동부 카렌주  ‘특수작전 3부대사령관’ 시절 카렌족에게 저지른 그의 범죄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구속영장을 발부해도 될 만큼의 충분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는 거였다. 이 모든 인권침해의 블랙홀인 군과 경찰을 민족민주동맹  정부는 통제할 수 없다. 헌법 개정없이 군정종식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8년 헌법 436조는 25% 군인의원들에게 사실상 비토권을 부여했다. NLD등 야당이 선출의원직을 100% 차지하지 않는 한 헌법개정에 군의원들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이때문에 평론가아웅 뮌은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민족민주동맹 정부하에서 헌법 개정은 더더욱 먼 얘기”라고 말했다.

2008 헌법 436조는 25% 군인의원들에게 사실상 비토권을 부여했다. NLD등 야당이 선출의원직을 100% 차지하지 않는한 군의원들의 찬성이 없는헌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아웅산 수치의 위험한 발상

2013년 88항쟁 25주년 행사장에 나란히 앉은 아웅산 수치와 88세대 대표적 학생운동가인 민코 나잉. 아웅산 수치 NLD는 이번 선거에서 88세대 그룹의 공천희망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배제했다. 차기정치 세력으로 떠오르던 88세대의 정치적 목소리를 선거정국에서 거의 사라졌으나 이제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 관심사다. (Photo © Lee Yu Kyung)

2013년 88항쟁 25주년 행사장에 나란히 앉은 아웅산 수치와 88세대 대표적 학생운동가인 민코 나잉. 아웅산 수치 NLD는 이번 선거에서 88세대 그룹의 공천희망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배제했다. 차기정치 세력으로 떠오르던 88세대의 정치적 목소리를 선거정국에서 거의 사라졌으나 이제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 관심사다. (Photo © Lee Yu Kyung)

민족민주동맹 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비단 헌법에만 있지 않다. 민족민주동맹 정부는 ‘아웅산 수치 체제’나 다름없고 그의 리더십은 이미 독선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는 지난 한 달 동안 최소 네 차례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통령 위에 군림할 것”이라는 발언을 반복했다. “이름뿐인 대통령” 을 자신이 조정하며 실질적 권력자가 되겠다고 거듭 말했다.  10일 <채널뉴스아시아> 와의 인터뷰를 보자.

“내가 결정한다. 내가 선거에서 이긴 당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우리 당의 지명으로 대통령이 되는 자는 절대적으로 아무런 권한(authority)이 없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막강한 대통령 권한 위에 군림하겠다는 수치의 발언은 뒤집어 보면 초헌법적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이다. 동시에 자신의 대선출마를막은 2008년 헌법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가 됐든 수치 자신의 모토인 ‘법치’(Rule of Law) 를 스스로 위반했다. 현실적 문제는 그런 꼭두각시 대통령에 오를 인물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민족민주동맹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지명할지는 세간의 관심사지만 민족민주동맹 안에는인물이 부재하다.

집권여당 전 당 대표이자 국회의장인 쉐만(Shwe Mann)이 오랫동안 아웅산 수치와 정치협상을 해왔던 탓에 ‘아웅산 수치가 미는 대통령 후보’로가능성을 높여왔다. 군정시절 넘버 3로까지 통했던 장성을 민족민주동맹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그림은 아웅산 수치가 그토록 강조해온 ‘화해’일수도있고, 대단히 정치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야심 가득한 인물 쉐만이 아웅산 수치의 꼭두각시가 될것으로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결국 수치와 가깝던 쉐만은 지난 8월 집권당 대표직에서 강제 축출당했다.

그동안 쉐만과 권력투쟁 관계에 있던  테인세인 현 대통령도, 군 총사령관 민 아웅 라잉(Min Aung Hlaing)도 최소 한번쯤은 대통령을 할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장성들만 득세한 가운데 정작 야당진영은 대통령 후보감이 빈곤해 보인다. ‘민주화 투사’가 적지 않은데도 말이다. 아웅산 수치의 독선적 리더쉽이 낳은 비극이고 수치의 독선은 지금 ‘초헌법적’ 지도자상을 향하고 있다.

소수민족 문제에 민족민주동맹은 어떻게 답할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오명은 로힝야 무슬림들이 선거권, 피선거권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는 점이다. 여타 다른 무슬림들도 공천에서 광범위하게 배제됐다. 버마 연방 출범이래 전례없는 경우다. (<한겨레21> 1078호 ‘민주주의 연꽃이 시궁창에 폈다’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이 있는무슬림들은 대거 민족민주동맹에 표를 줬다.

“현정권하에서 하루하루 억압받았다. (로히야들의 주요 거주지인) 서부 아라칸주 외에 살며 투표권이 있는 로힝야들의 경우 거의 모두 NLD를 지지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자유로웠을지 몰라도 공정하진 않았다”

이번 선거에 후보등록을 했으나 출마를 봉쇄당한 로힝야 정치인 타 에(Thar Aye)의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무슬림 관련 눈여겨 볼 지역중 하나는 2013년 무슬림 겨냥 폭동이 발생했던 중북부 멕띨라다. 멕띨라는 NLD가 휩쓸다시피한 만달레이 지역 (Mandalay Region)에서 보기 드물게 NLD가 패배했다. 멕띨라는 선거전까지만 해도 3년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NLD 우 윈 테인 (U Win Thein)의원의 지역구다. 2013년 폭동 이후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윈테인 의원은 “멕띨라 출신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은 불교도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의원 리콜’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전개됐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NLD의 무슬림 거리두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멕띨라는 NLD를 ‘심판’한 셈이다.

투표일이던 8일 서부 아라칸 주의 로힝야 피난민 게토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쌀을 배급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같은 날 버마 전역으로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선 이들의 모습과 대비됐다. 가장 자유롭고 공정했다는 이번 총선에서 로힝야 무슬림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다른 무슬림들은 공천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치욕을 겪었다. 이번 선거는 버마 연방 역사상 특정 커뮤니티의 투표권을 박탈한 첫 선거다. (Photo © Matthew Smith)

투표일이던 8일 서부 아라칸 주의 로힝야 피난민 게토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쌀을 배급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같은 날 버마 전역으로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선 이들의 모습과 대비됐다. 가장 자유롭고 공정했다는 이번 총선에서 로힝야 무슬림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다른 무슬림들은 공천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치욕을 겪었다. 이번 선거는 버마 연방 역사상 특정 커뮤니티의 투표권을 박탈한 첫 선거다.
(Photo © Matthew Smith)

한편, 투표일이던 8일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Fortify Rights) 국장 마튜스미스는 아라칸 주 게토 안에서 줄 선 로힝야들의 사진을 자신의 트윗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이들은 오늘 투표를 위해 줄 선게 아니다. 쌀배급줄이다” 마튜는 기자와의 메신저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로힝야들에게 치욕의 역사로 기억될 것”이라 말했다. “버마 전역이 선거로 흥을 돋고 수십년 투쟁의 성과로 받아여지는 동안 (최초로 투표권을 잃은) 로힝야들에게는 정부의 박해가 보다 더 쓰라리게 되살아난 날”이었다는 것이다. 아웅산 수치는 그동안 로힝야, 무슬림 문제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받을때 마다 자신은 “권한이 없다”며 정부에 공을 넘겼다.이번 선거로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은 80%를 웃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압도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제 이후 로힝야 무슬림 문제에수치가 무엇이라 답할 지 주목된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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