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이후 계획 명시한 협정서 원한다”

[2014.01.20 제995호]

[세계] 카친독립군 부사령관 군모 소장

* 필자는 <리영희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10월 26일부터 11월 19일까지 버마 북부 카친주∼중국 접경지대를 다녀왔습니다. 오랜 기간 무장 투쟁을 벌여온 카친족은 1994년 정부군과 휴전협정에 조인한 뒤 17년간 정치협상을 추구해왔으나 2011년 6월 군사 충돌이 재개된 뒤 3년째 산발적인 전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버마 정부는 10여개에 이르는 주요 반군조직들과 대부분 휴전에 합의했지만 카친족과의 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본 기획 취재는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을 통해 게재될 예정이며 본 사이트에는 지면상 싣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보충하여 게재합니다. / 이유경 Penseur21 

카친독립군 (KIA) 부사령관 군모 소장 (Maj-Gen. Sulmut Gun Maw)은  단순히 휴전협정에  사인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 협상을  병행하길 원한다.  정치적 의제와  향후  소수민족의  자치를  보장할  내용이  없는  협정문에는  사인하지  않을 거라는 게 그가 말하는 KIO입장이다. (Photo © Lee Yu Kyung 2013)

카친독립군 (KIA) 부사령관 군모 소장 (Maj-Gen. Sulmut Gun Maw)은 단순히 휴전협정에 사인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 협상을 병행하길 원한다. 정치적 의제와 향후 소수민족의 자치를 보장할 내용이 없는 협정문에는 사인하지 않을 거라는 게 그가 말하는 KIO입장이다. (Photo © Lee Yu Kyung 2013)

카친 휴전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카친독립군(KIA) 부 사령관 군모 소장 (Maj-Gen Sulmut Gun Maw)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무장조직 간부지만 그의 격없는 태도 때문이다. 10월 30일부터 4일간 열린 ‘소수민족 라이자 회의’기간 그는 ‘무대 뒷편’에서 바빴던 간부다. ‘라이자 회의’ 직전 그를 만나 휴전협상에 대한 고민과 전망을 들어봤다. – 필자 주

질. 정부는 몇달 째 ‘전국 휴전 임박’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카친휴전이 결정적 변수 같은데 뭐가 그리 어려운가?

답. 여러 소수민족들이 휴전을 맺었고 KIO역시 다섯번이나 휴전에 서명한 경험이 있다.  94년 서명 이후에는 17년 휴전했지만 다시 깨지고 전쟁 중이다.  정부는 휴전에 사인만 하면 자동으로 펑화가 온다고 믿는 것 같다. 우리가 서명하고 싶은 건 향후 계획까지 명시한 협정서다.

질. 국경 수비대 편입을 거부해서 내전이 재개된 거라 보나?

답. 국경수비대는 우리만 거부한 게 아니다. 우릴 쉽게 보고 공격하는 것 같다.

질. 2008년 헌법은 소수민족 안이 반영되지 않은 비포괄적 헌법이었다. 그런데 KIO는 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사실상 지지한 것으로 안다. 모순같다.

답. 우리가 헌법자체를 지지한 건 아니고. (국민투표를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민주화 과정에 화해 신호 보낸거다.

질. 그 ‘민주화 과정’이라는 게 93년부터 시작된 군부의 ‘7단계 로드맵’인데, 그걸 수긍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2008년 헌법 찬반 국민투표 당시 KIO 입장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답. 우린 성명에 분명하게 담았다. 그 헌법에 소수민족의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각 민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판롱 (Panglong *) 정신이 헌법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질. 아웅민 장관이 협상에 임하는 태도는 어떤가?

답. 아웅민 개인은 뭔가 이루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질. 테인 세인 대통령이 일방적 휴전을 선언한 바 있지만 전선에선 교전이 멈추질 않는다. 정부와 군의 불일치 현상인가?

답. 테인 세인 대통령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지 못한 건 맞는데 특정인에 초점 맞출 문제는 아니고 정책적으로 볼 문제다. 군과 정부 모두 동일한 정책선상에 있다. 아웅민 장관도 협상’임무’를 맡았을 뿐, 평화협상의 진짜 실세라 보긴 어렵다.

카친독립군 (KIA) 부사령관 군모 소장 (Maj-Gen. Sulmut Gun Maw, 사진 가운데 인물)은  KIA 얼굴 마담 이기도 하지만  뒷 무대  실무도 상당히 지휘하고 있다. 카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높다. (Photo © Lee Yu Kyung 2013)

카친독립군 (KIA) 부사령관 군모 소장 (Maj-Gen. Sulmut Gun Maw, 사진 가운데 인물)은 KIA 얼굴 마담 이기도 하지만 뒷 무대 실무도 상당히 지휘하고 있다. 카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높다. (Photo © Lee Yu Kyung 2013)

질. 1994년 휴전한거 후회하나?

답.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휴전 17년간 대중과 KIO간 상호 이해도를 높이기위해 나름 애썼다. 카친 대중들은 그 휴전기간 17년과 2년여의 전쟁 경험에 기반하여 KIO를 지지하고 있다.

질. 요즘 KIO가 역대 최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듣긴 했다. 그러나 휴전 기간에는 얘기가 좀 달랐다.

답. 우리가 94년 정부군과 휴전을 맺고 헌법 기안을 위한 ‘민족회의’ (National Convention)에 10여년 참여한 건 그 과정이 자치를 일궈내기 위한 정치협상의 지난한 과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카친 대중과 KIO간에 오해가 있었다. 2008년 신헌법이 우리보고 국경수비대나 하라고 했을때  KIO가 분명하게 거부하자 카친 대중들이 우릴 이해하기 시작했다.

질. 휴전기간을 활용하여 조직개발에 일정한 성과를 보인 걸로 안다. 자체무기도 생산 가능해졌고, ‘무기 공장’도 있다고 하던데..

답. 17년간 조직개발에 진전을 보인 건 사실이지만 그 기간 정부, 카친 그리고 다른 휴전 그룹들도 또 다른 전투를 준비한 꼴이었다. 그래서 강조하지 않나.  또 다른 전투를 위한 휴전은 거부한다고. 무기 공장은 그냥 고물수준의 무기들을 수리하는 작업장이다.

질. KIA병사가 교전 중 전사하면 어떤 보상이 주어지나?

답. 보상금 정책은 없지만 유가족을 돌보고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진다. 실제로 라이자에 사는 모든 주민들의 교육과 의료는 무료다. 종족에 관계없이 여기사는 이는 누구나 똑같이 대우받는다.

질. KIO의 수입원은 뭔가? 자원도 많고 비즈니스도 할테고

답. 세금이 주수입원이다. 내전재개 이후로도 꾸준히 걷고 있고 그전에 하루 평균 5억 쨧(한화 약 5억원)을 거두기도 있다. 아직 천연자원을 상품화하지는 못한다. 다만 전기는 공급한다. 미치나 (카친 주도, 정부 통치구역)까지 우리가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도 두달에 한 번 버마 정부에서 전기세 걷어 온다. (웃음)

질. 아라칸해방당 (ALP **)은 소수민족연대 차원에서 보면 당신들의 동맹군이다. 라이자 회의에도 초청받았고. 그러나 아라칸 주 (로힝자) 무슬림 커뮤니티에 매우 적대적인 그들이 종교 폭동에 연루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변수로 두고 반 로힝자 무슬림 폭동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답. 이곳 라이자에도 아라칸 군(Arakan Army, AA)이 있다. 정치국 없는 무장단체다. 그래서 AA에게 ALP같은 다른 정당들과 협력하라고 조언했다. 아라칸 폭력사태는 관심있게 지켜보지만 노코멘트다.

질. 관찰하고 있다니 관전평이라도

답. 이 나라 정책과 연계된 것이라 내 사견을 말하는 건 좀 부적절할 것 같고. 다만, 문제가 종교분쟁으로 번지지 말았어야 한다. ‘무슬림’ 으로 말하자면 카친, 버만, 다른 종족에도 무슬림이 있다.  종교를 자극하면 사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질. 아웅산 수치에 대해 실망했나?

답. 아웅산 수치는 처음부터 소수민족 문제를 진중하게 다뤄오지 않았고 민주화에 집중해왔다. 우리가 그녀에게 소수민족 문제를 다뤄달라고 책임지울 이유는 없고 협력만 할 뿐이다.

질. 중국당국이 베이징에 KIO 사무실을 열도록 초대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중국과 KIO는 어떤 관계인가?

답. 중국에도 카친족이 많이 살고 국경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그쪽 관료들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베이징에 KIO 사무소를 열 필요도 없고 중국 정부가 우리더러 사무소를 열으라고 말할 이유도 없다.

질. 수많은 중국업체들이 이곳에서 돈되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카친 자원을 착취하는 그들과 협력도 불가피한 것도 사실아닌가. 중국비즈니스에 대해 목소리 내기 거북한지?

답. 우리도 일부 허가를 주고 대부분의 허가는 버마 정부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걸 문제삼으면 중국은 물론 버마 정부와 이 문제로도 옥신각신 해야 하고 골치아프다.

질. 국제사회에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답. 국제사회는 버마가 민주화되면 소수민족 문제도 해결될 거라 보는 것 같다. 두 문제는 같이 풀어야 할 별개의 문제다. 2년여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나니 이제서야 국제사회가 우리의 존재를 좀 아는 것 같다. 우리가 안정을 찾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

*판롱협정 (Panglong Agreement) : 1947 2 아웅산 장군이 이끄는 버마정부와 , 카친, 개의 소수민족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에 앞서 종족의 자치를 보장한 연방 정부 구성에 합의한 조약. 이미 버마 통치를 받아오던 다른 소수민족들은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자치를 보장한 판롱정신 소수민족 협상에 원칙적 토대로 거론되곤 한다.       

** 아라칸해방정당 (ALP) : 1967 창당하여 1974 군사부인 아라칸해방군(ALA) 두고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인도버마 국경에 본부를 두고 있으나 세력은 미미하다. 새로 뜨는 무장조직 아라칸 (AA) 통합논의 중이다.  

라이자(버마 카친주)=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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