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떠나는 사람들

[세계]물에 빠져 죽고 돌아와 맞아 죽어도 스리랑카를 탈출하는 보트피플…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타밀족 난민 인정을 회피해

글 싣는 순서

1회: ‘접근 금지’ 비밀 수용소의 참상
2회: 피난민 재정착 지역 잠입 취재
▶3회: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 보트피플

* 아래 기사는 지면관계상 실리지 못한 내용을 포함하였습니다

“엄마가 죽었어”

‘내가 바로 그 아무개 기자…’ 라며 소개하는 필자에게 수젠드란 구나세카람(27)이 ‘대뜸’ 건넨 첫 인사가 딱 그랬다. 20대 후반 청년이라기 보다는 울음보 터지기 직전의 어린애 같았다. 그럴만도 했다. 지난 해 10월 초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향하는 난민밀항선에 올랐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스리랑카로 돌아온 건 오로지 엄마의 병 때문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외아들은 공항에서부터 연행되었고, 고문실의 상징인 “4층”, 범죄 수사국(CID)과 악명 높은 부사 캠프로 이송되며 고문에 시달렸다. 그리고 올해 1월 풀려났다. 지난 해 연행 소식을 듣고 필자는 수젠드란을 원거리 취재하며 간간히 교신해왔다. 고문 후유증과 여전한 협박을 견디며 엄마를 간호해왔는데, 귀국의 이유였던 엄마는 9월 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살.

4년간 이어진 휴전이 어긋나며 전쟁이 고조되던 2006년 이래 타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납치와 고문의 위협에 노출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각종 브로커선을 타고 인근 국가로 빠져나왔다. 인도계 타밀족이 인구의 7%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는 소통의 어려움도 덜 겪고 잘하면 일자리도 얻을 수 있는 ‘선호국’이다. 수젠드란도 2009년 6월 말레이시아로 갔다. 거기서 밀항선박 브로커를 만나 10월 초 난민선박에 올랐던 게다.

수젠드란은 난민 밀항선에 올랐다가 호주정부의 보트난민 거부대응으로 인도네시아에 정박했다. 우여곡절끝에 스리랑카로 돌아간 그를 기다린 건 구속과, 고문이다. 아무런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풀려난 그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젠드란 처럼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의반 타의반 귀국하거나, 강제 송환된 수많은 난민 신청자들이 실종, 체포, 고문의 위협에 노출된 게 스리랑카의 전후 현실이다. (Photo @ Yu K. Lee)

그는 말레이시아 남부 도시 조호루바루(Johor Baru) 인근 정글에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달가량 숨어지내던 253명의 또다른 타밀난민들과 함께 제야 레스타리(Jeya Lestari)호에 올랐다. 그런데 열흘도 되지 않아 배가 엔진고장을 일으켰다. 많은 짐들을 바다에 버렸고, 인도네시아에서 엔진을 갈려던 참에 해군 경비정에 걸렸다. 자바섬 끝자락 메락(Merak)에 강제로 정박한 난민들은 이때부터 시위를 벌였다.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는 스리랑카에서 살수 없다”, “호주가 아니면 내리지 않겠다”

그 즈음 78명의 타밀난민을 태운 또 다른 배 한척이 조난을 당해 호주해군이 구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해군은 구출한 난민들을 호주가 아닌 인도네시아 영해로 데리고 갔다. 당시 호주 총리 캐빈 러드는 난민 배를 막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대통령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었다. ‘돈을 댈테니 인도네시아 손에서 해결하라’고, 이른 바 ‘인도네시아 솔류션’ (Indonesia Solution)이다. 수많은 난민들이 세월 모르고 갇혀 있는 인도네시아 빈탕 섬의 탄중 피낭(Tanjung Pinang) 수용소는 그렇게 난민들을 거부하는 ‘호주 머니’로 지어진 것이다.

난민을 거부하는 ‘호주 머니’

타밀 난민들에 대한 국제적 혐오반응은 머나먼 캐나다까지 이어지고 있다. 8월 13일 캐나다 벤쿠버에 도착한 난민선박 MV Sun Sea 는 도착하기 전부터 캐나다와 미국의 모니터 망에 걸려들었다. 492명을 태운 이 밀항선은 3개월 전 타이 남부 송클라항을 출발해 단 한명만 목숨을 잃은 기적같은 항해를 치뤘다. 캐나다 영해에 들어서면서부터 현지 방송들이 생중계를 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던 이 선박을 두고 캐나다 공공안전부 장관 빅 토우(Vic Towe)는 “테러리스트와 인신매매단이 배후에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리랑카 정부의 프로파간다까지 더해지면서 ‘테러리스트 보트’가 언론을 달궜다. 스리랑카 전쟁 막바지 콜롬보 유엔 대표부 대변인을 지낸 골든 와이스는 이와 관련, 캐나나 일간지 ‘메일 엔 글로브’(Mail and Globe) 8월 28일자 기고문을 통해 “누가 보트피플이 안보를 위협한다고 말하는가”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냉정히 말해보자.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주의 경우 돈 있는 이들은 미화 4만 달러를 주고 가짜 비자를 여권에 박아 비행기를 타고 간다. 그게 안되는 이는 1만 6천 달러를 주고 보트를 타지만 그마저 없는 이들이 투성이다. 보다 더 높은 수치로 공항에 도착하는 이들은 감금생활없이 난민심사를 받는 반면, 보트피플들은 온갖 인종주의적 수사(修辭)에 직면함은 물론, 난민 심사기간 이민국 수용소에 갇혀 지낸다. 올해 초 알자지라는 호주에서 보트피플 중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한해 평균 200명에 불과하고, 비행기 타고 온 이들은 평균 2,200명이 난민으로 인정받는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주로 영어권 출신 관광객인 주를 이루는 장기불법 체류자는 약 55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정부의 보트피플에 대한 제노포비아적 반응은 올해 4월 보트피플의 다수를 이루는 스리랑카 난민과 아프간 난민(절대 다수는 소수 하자라족)들 난민 심사를 각각 3개월, 6개월간 중단하는데 이르기도 했다.

이런 차별에도 불구하고 보트난민들이 ‘죽어도’ 호주나 캐나다등에 닿길 원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이 스리랑카를 탈출하면서 도착하는 말레이시아, 타이, 인도, 인도네시아, 인도 등은 제네바 난민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보호는 커녕 대량구속과 본국강제송환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지난 10월 6일 방콕 북부 사판마이 지역에서 130명 가량의 스리랑카 타밀난민들이 대거 연행된 건 좋은 본보기이다. 일부 언론은 “또 다른 타밀난민들이 보트 탈 준비를 하는 것 같다”는 방콕내 캐나다 정보국의 팁으로 단속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방콕의 유엔난민기구(UNHCR) 키티 맥킨시 대변인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2달된 아기까지 연행한 이 단속을 강하게 비판했다.

“18명이 4살 미만 어린이고, 4명의 임산부도 끼어 있다. 밀항 브로커 조직을 단속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작금의 단속은 밀항 브로커를 제대로 겨냥하고 있지 않다. 진짜 난민과 불법 이주자를 구분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연행되는 난민들이 갇히는 방콕 이민성 감옥에는 ‘7년 장기수’가 있고, 인도네시아 난민 수용소에는 ‘10년 장기수’가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한 난민카드를 지니고 있어도 별 소용이 없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스리랑카 난민들은 전 세계 24개 국가들이 난민들의 재정착을 받아주는 이른바 ‘난민 제 3국 정착’ 프로그램에서도 찬밥이다. 타밀 호랑이 반군이 전 세계 32개국에서 테러리스트로 찍힌 효과는 그들의 사후에도 지독하게 적용되고 있다.

두 달 된 아기를 단속하기도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향하는 난민선에 오르기 직전 단속에 걸렸던 타밀 젊은이들. 그들은 '다음 배'를 기다린다. 수많은 난민들이 항해길에 물에 빠져죽고, 난민인정을 거부당하는 현실에 아랑곳없이 안전하게만 살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한다 (Photo @ Yu K. Lee)

정체된 난민심사, ‘제 3국 정착’ 프로그램 차별, 타밀난민들이 피난처를 찾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그리 넓지 않아 보인다. 이들의 절박함은 여러차례의 조난사고가 가슴 아프게 반영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12명의 난민을 태운 보트가 뒤집혀 몰사당한 사건을 비롯, 5월 에는 호주 당국이 모니터하던 5명의 난민보트가 대양에 잠겼다. 지난 해 11월에도 호주 영해 코코스 섬 부근에서 보트가 뒤집혀 12명이 빠져 죽었고, 그 한달 전인 10월에는 100명의 타밀 난민을 태운 보트가 호주로 떠났지만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물론! 기회만 되면 다시 탄다. 여기선 아무것도 보호받을 수 없다. 안전하게 살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렇게 호언하던 네 명의 타밀청년은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 바루에서 호주행 밀항선에 오르기 하루전인 2009년 9월 8일 단속에 걸렸드랬다. 그러나 ‘다음 선박’을 타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강고했다. “내일 당장이라도 배에 오를 각오는 물론 죽을 각오도 되어 있다” 고 말했다. 온갖 종류의 친정부 타밀 민병대가 설치는 와우니아 지방에서 마을 남자들의 릴레이 실종을 보며 말레이시아로 온 칸다사미 마니발라완 (44), 2009년 2월 마저 탈출나온 아들의 교육때문에 배 타기를 희망했다.

“말레이시아에선 내 아들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갈수만 있다면 배를 탈 거다”

한편, 메락에 정박했던 254명의 시위가 세상의 관심을 잃어가는 사이 세 명이 사망했다. 한 명은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서, 두명은 호주로 밀항하던 중 물에 빠졌다. 또 다른 두명은 앞서 언급한 캐나다 행 엠브이 선 씨(MV Sun Sea) 에 다시 올랐다. 올해 4월 모두 강제하선한 후 탄중 피낭 수용소에 갇혔던 이들은 그중 75명이 수용소를 탈출하여 또 다시 밀항선을 타고 결국 호주에 닿았다. 122명만이 현재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봐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위험을 알면서도 다시 밀항브로커에게 또 다른 돈을 지불하고 호주로 오지 않는가. 호주 정부가 지금 밀항업자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는 꼴이다”

호주의 난민운동가 사라 네이뜬의 따끔한 지적이다.

또 다시 탈출을 갈구하는 건 수젠드란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병환때문에 일찌감치 국제이주기구(IOM)가 마련해준 항공권으로 IOM 가방을 들고 귀국한 수젠드란에게 전쟁이 끝난 스리랑카는 전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문당했다고 말하면 더 심한 고문에 시달려

2009년 11월 26일 오전 1시, 콜롬보 외곽 반다라나이케 공항 입국 심사대에 도착해 여권 심사를 받던 수젠드란은 이민성 직원이 부른 세 명의 범죄 수사국 (CID) 직원의 손에 끌려갔다. 타밀어를 못하는 그들은 수젠드란을 사무실에 앉혀 놓고 나가버렸고, 바로 얼마 후 동부 바띠깔로아 억양의 타밀어를 말하는 이가 들어왔다. “카루나 당”(주1 ) 에서 온 이가 분명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수젠드란을 ‘패기’ 시작했다.

“네가 갖고 있는 그 IOM 가방…걔네 구호물자로 가장해서 타밀 호랑이에게 무기 조달한 단체 아냐. 네가 그 일에 관여했구! 맞아 안 맞아?!”

한 바탕 구타를 치른 후 수젠드란은 다시 범죄 수사국 직원들 손에 이끌려 녹색 지프차에 올랐다.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져 죽으러 가는줄 알았는데, 도착한 곳은 “4층”, 범죄 수사국이었다. 그리고 12월 3일 부사 캠프로 이송되었다.

“눈 부위를 특히 많이 맞았고 초첨을 못맞추겠어.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 가면 의사가 어쩌다 눈이 그렇게 되었냐고 물을 거고 그러면 고문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내 기록이 들어가면 또 나를 잡아갈 거 아냐. 게다가 정부 병원 싱할라 의사들은 타밀어를 못해”

싱할라어를 조금 알아듣지만, 읽지는 못하는  수젠드란은 그러나 싱할라어로 적힌 어머니의 진료 기록을 잘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민주사회주의 공화국 스리랑카” 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의료혜택을 ‘거부하고’ 있었다. 의료비가 비싼 개인 병원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정부 병원’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과대망상만은 아닌 듯 했다. 현지 인권운동가들에 따르면, 다른 곳에서 심문을 당하다  부사 캠프로 이송된 수감자들이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만나는 면담 의사에게 이전 감옥에서 고문이 있었노라 밝힐 경우 더 심한 고문을 당한다. 수감자와 의사의 면담 기록이 부사캠프 당국자에게 전해진다고 어렵지 않게 추정되는 부분이다. 수젠드란 역시 12월 3일 도착한 부사캠프에서  ‘고문을 당했냐’고 묻는 의사에게 ‘아니오’라고 답했단다. 의사가 떠난 후 수젠드란은 거꾸로 매달리면서 본격적인 고문을 받기 시작했다. “무기는 어디있나?” “자금을 모았는가?” 등의 질문과 함께 철체 파이프와 자전거 부속품 등으로 맞고 벽으로 내동댕이 쳐지기도 했다. 2009년 12월 3일 오후, 지옥같은 세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올해 1월 20일 수젠드란은 30 여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석방되었던 이들 중 두 명은 다시 실종되었다. 수젠드란 역시 5월 21일 범죄 수사국 직원의 협박성 전화를 받은 후 휴대폰 심카드를 바꿨다. 그는 현재 스리랑카 국내에서 유일하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스위스 대사관에 난민 비자를 신청한 상태다. 이 비자를 신청한 이는 수천명에 이른다.

그리고 지난 10월 6일, 수젠드란과 같은 배에 탔던 젊은이 세 명이 다시 자발적으로 스리랑카로 왔다. 이들 역시 공항에서 ‘실종’되었고, 수소문 끝에 “4층” 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IOM과 UNHCR 모두 탄중 피낭 수용소 난민들에게 본국으로 가지 말것을 권고한 상태다. 국제 위기 그룹 역시 지난 5월 발표한 스리랑카 전범 보고서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타밀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s)들은 물론 (해외로 빠져나온) 타밀 호랑이 대원들까지도 본국 송환하지 말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연행과 고문으로 이어지는 본국 송환에 대한 두려움은 난민신청자들의 자살과 자해 그리고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주 시드니의 빌라우드 난민 수용소에 12개월 갇혀 있다 난민심사에서 거부당한 슈레스 쿠마르. 그가 지난 23일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난민운동가 사라 네이뜬은 전했다. 대학시절 군에 끌려가 고문당했던 쿠마르는 전쟁 막바지 살아 남았다가 탈출한 난민신청자다. 아울러, 9월 20일 오후 1시부터 30시간 가까이 빌라우드 수용소 지붕위에 올라 뛰어내리겠다고 시위를 벌인 11명의 다국적 난민들의 모습 역시 이들이 직면한 본국 송환의 두려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날 오전 본국 송환 통지를 받은 피지(Fuji)출신 40대 남성은 결국 뛰어내려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현실에 아랑곳없이 난민문제를 밀항브로커 혹은 ‘인신매매’ 의제로 전환하는 호주, 캐나다 등과 스리랑카 정부는 ‘인신매매 브로커’들을 검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상호 협력을 아까지 않고 있다. 콜롬보 주재 호주 대사관의 경우 범죄수사국(CID)과 물적지원과 정보 교류를 나누고 있다. 싱할라족 보트피플로 지난 해 10월 5일 강제 송환된  수미스 멘디(30)는 연행과 석방을 반복하다 지난 8월 14일 다시 연행되었고 고문당했다. 그는 고등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싱할라족 보트 피플로 떠났다가 강제 송환된 후 체포된 수미스 멘디(30)의 가족들. 수미스는 어린 아들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게 구타와 갖은 수모를 당했다. 밀항선 네트워크를 단속하겠다며 스리랑카 정부와 호주정부는 협력을 아끼지 않지만, 스리랑카 당국은 수미스를 취조하며 밀항선 네트워크에 대해 묻기 보다는 타밀 호랑이 재건여부를 집중 추궁했다고 가족과 변호사들은 말한다. (Photo @ Yu K. Lee)

“고문 당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아시아계 얼굴의 호주 대사관 직원이 봤다. 그는 내가 강제 송환자인 걸 잘 아는 이다. 그는 그 부서 (밀항브로커 수사팀)를 돕고 작은 냉장고를 기증하러 거기에 왔었다”

수미스는 아들, 아내 가족들 앞에서 경관에게 구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싱할라족인 그에 대한 고문과 심문은 엉뚱하게도 “타밀 호랑이 재 조직화를 도와준 혐의”에 모아지고 있다. 실제로 그의 밀항선을 조직화한 선박 주인은 며칠 수사만 받고 풀려났다. 또 다른 싱할라족 보트피플로 지난 해 11월 4일 강제 송환된 후 사라 폰세카 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던 라산다 위제라트나 (31) 역시 보트피플시절 타밀난민들과 친하게 지냈던 ‘친 타밀 성향’을 집중 추궁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항 브로커들’ 망을 파고드는 수사보다 이미 무찔렀다고 자랑스럽게 선전한 반군유령을 좇는 스리랑카 정부, ‘국경보호’와 안보를 내세우며 전범 논란에 오른 정부와 협력하는 호주, 캐나다 그리고 여타 난민협약국가들. 이들 사이에서 스리랑카 보트피플들이 처한 처참한 현실은 “난민이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와 같은 유엔캠페인 구호를 실감나게 하고 있다.

콜롬보, 칠라우, 가네물라, 니곰보 (스리랑카)/ 쿠알라룸푸르, 조호루바루(말레이시아)/방콕(타이) = 이유경 penseur21@hotmail.com

주1. 카루나는 타밀 호랑이 동부 사령관으로 2004 정부진영으로 넘어간 타밀 민병대를 운영하며 타밀 호랑이 반군과 대치해왔다. 그의 민병대는 수많은 인권침해와 타밀인 납치에 연루되어 왔다. 타고난 전투력을 발휘하던 카루나의 배신 그가 스리랑카 정부군에 제공한 타밀 지역 교전 정보는 타밀 타이거가 패배에 결정적 원인 하나로 꼽히고 있다. 카루나는 현재 재정착부장관이다.

관련 기사<한겨레21> [2010.11.05 제834호]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84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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