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시간, 피로 물든 레드 셔츠

[2010.05.28 제812호]

[특집2] 5월19일 방콕, 시위대 무력진압 현장 르포…
시민의 ‘자기 방어용’ 바리케이드에 쏟아진 타이 지배 세력의 총격

학살의 시간, 피로 물든 레드 셔츠

새벽 5시: 군과 장갑차 살라댕 방향으로 이동 중.
아침 6시: 첫 번째 경고사격.
아침 6시30분: 레드 셔츠 바리케이드에 대한 공격 시작.
… 레드 셔츠 사수대의 2시간여 격렬한 저항 뒤 살라댕 바리케이드 몰락.

5월19일 이른 아침, 기습처럼 뜨는 속보(브레이킹 뉴스)를 타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리는 머릿속은 온통 ‘레드 셔츠’투성이였다. 암흑 속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레드 셔츠 사수대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이틀 전 아피싯 웨차치와 정부의 해산 데드라인을 넘긴 뒤 피난처 빠툼와나람 사원에서 만난 소녀 나타몬 통요이(8)의 해맑은 얼굴과 아줌마 시위대의 얼굴이 범벅이 됐다. 소녀도 사수대원도 아줌마도 “메이 꾸아!”(두렵지 않아!)를 반복하긴 마찬가지였다. 소녀가 피신한 사원도, 사수대원들이 지키던 바리케이드도, 아줌마들이 모인 라차쁘라송 본무대도 군의 진압구역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의회가 해산되기 전에는 죽어도 떠나지 않겠다”던 묵다한 지방 출신 여인 수타드 웽와이(46)가 불끈 쥐던 주먹은 여전한지…. 먹고사는 게 바빠 열흘 전에야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지금’이 몹시나 궁금했다.

» 타이 진압작전

새총 든 자에게 총 겨누는 진압군

설마 했다. 왕실과 민주당 그리고 유력 영자지 <방콕포스트> 소유주 등 사회 초엘리트 계층의 자산과 고급 쇼핑가가 집중된 방콕의 금싸라기 땅 라차쁘라송으로 총탄을 부어댄다는 게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 무력 진압이 벌어진다면 시위대가 주변 건물을 가만히 둘 리 없다는 건 자명했다. 지난 두 달간, 정부와 레드 셔츠 지도부가 협상을 벌인 ‘며칠 정도’를 빼면, 거의 매일 밤 진압 소문‘만’ 나돌았던데다 시위의 본무대인 라차쁘라송을 지키던 수천 명의 시위대는 노인·여성·어린이, 이 삼박자가 절대다수였기에 더더욱 설마 했다. 그러나 M16 방아쇠를 당기며 진군한 군인들은 간이 컸고, 잔인했다. 레드 셔츠가 점령한 구역의 남쪽, 살라댕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린 그들은 라차담리 길을 따라 북쪽 라차쁘라송 방향으로 서서히 레드 셔츠를 밀어붙였다.

“옥빠이!”(나가라!)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밀고 들어오는 군인들이 쏘는 연발 사격에 겁먹고 숨어든 시위대를 향해서도, 살라댕 교차로와 멀지 않은 지점, 루암까타뉴 파운데이션 부근에 모여든 시위대를 향해서도 이 한마디가 던져졌다. 저항할 생각 말고 나오거나, 접근할 생각 말고 물러서라는 의미였다. “옥빠이” 뒤에는 방아쇠가 당겨졌다. 총소리에 조용해진 반대편을 관찰하기 위해 어떤 군인들은 망원경을 들었고, 무엇이 발견됐는지 다시 총을 연발했다. 단순한 시위 진압이나 시위대 해산이 목적이라면 그런 총질은 조금도 필요치 않았다. 그건 시위대의 목숨을 노린 발포였고 학살이었다. “저기 레드 셔츠가 있다”고 군인에게 알려주는 어떤 방콕 시민도 군인 못지않게 잔인해 보였다. 나무 방패와 새총, 화염병과 죽창으로 맞서온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 빈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그런 잔인함에 부딪히며 붉은 피로 튀었다. 한 달 반가량 그들이 점거했던 ‘붉은 영토’가 장갑차에 서서히 깔려 들어갔다.

이날 낮 12시께 살라댕 교차로에서 라차쁘라송 방향으로 후퇴하던 시위대의 또 다른 저항 지점, 사라신 교차로에서 10여 명의 시위대가 포로로 잡혔다. 여성 3명과 승려 2명이 포함된 이들의 손은 뒤로 묶였고, 승려 2명을 제외한 나머지 포로의 두 눈은 하얀 천으로 가려졌다. 포로들은 군의 명령에 따라 눕거나 앉기를 반복했고, 한 국경 수비대는 군홧발로 포로의 배를 눌러댔다. 그즈음 친정부 성향의 영자지 <더네이션>의 브레이킹 뉴스가 떴다. “20명의 무장한 검은 복장 사나이들, 사라신 교차로에서 군인들에게 잡혀….” 그러나 ‘검은 복장의 사나이’들이 이 포로 중에 몇 명이나 섞였는지는 검은 복장을 한 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검은 복장의 사나이들은 지난 4월10일 시위에서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인 이들로, 정부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불러왔다.

이 포로들이 경찰차에 실려 ‘어딘가’로 끌려가기까지 약 3시간 동안 사라신 교차로 부근은 이따금 십자포화의 현장이 되었다. 4월10일 그날처럼, 검은 복장 사나이들이 다시 등장한 듯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땅바닥에 배 깔고 엎어지기를 두어 번, 고개를 들 만하면 다시 시작되는 연발음에 기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취재진은 작은 골목으로 뒷걸음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남쪽 방향 룸비니 공원 인근에서 M79 유탄기로 발사된 수류탄이 최소 세 번은 터졌다. 이 폭발에 사진기자 1명과 군인 4명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취재진 사상자는 오전에 이탈리아 기자 파비오 폴렝기가 사망한 것을 비롯해 이날 하루만 사망 1명, 부상 3명이었다.

2010년 방콕의 5월은 가난한 이들의 피로 물들었다. 정부군 탱크와 총격에 ‘겨우’ 새총을 쏘며 대항하는 본까이의 시위대(맨위). 딘댕 시위 현장에서 총격을 피해 몸을 숨긴 '홈리스' 여성(가운데). 방콕의 중심가에 나타난 무장 군인들. (Photo by Lee Yu Kyung)

이날 나온 군인 부상자는 5월13일 밤 레드 셔츠 지지자인 카티야 사왓디폴 소장이 피격당한 이후부터 벌어진 도심 교전 이래 처음이었다. 사실 이날 진압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약 6일간 이어진 격렬한 충돌에서 30여 명이 죽고 300여 명이 다쳤지만, 모두 시위대나 현장을 우연히 지나던 시민, 기자나 의료진이 피해자였다. 이유는 자명했다. 군은 시위대 방향으로 주로 실탄을 쐈고, 이에 맞선 시위대의 주 무기는 폭죽, 화염병, 돌멩이 그리고 사제폭탄이었다. 시위대는 타이어를 태워 군인들의 조준 사격을 최대한 막았다. 타이어는 끊임없이 조달됐고, 검은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군의 실탄 사용이 ‘자기방어용’도 공중사격이 결코 아니고, 정부가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시위대의 수제 무기가 사실상 ‘자기방어’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이 두 현장을 취재한 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이게 다다. 왜 저렇게 총질을 해대는지 모르겠다.” 진압 사흘 전인 5월16일 밤 방콕 중북부 딘댕 시위 현장에서 만난 파이롯 따놈탄(41)의 말이다. 봉쇄된 도로를 뚫고 방나 지역에서 수십km를 오토바이를 타고 온 그는 뭐가 억울한 듯 울먹이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방콕 도심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딘댕’ 지역과 빈민가 끌롱또이의 ‘본 까이’ 구역은 최근 며칠 가장 격렬한 전투 현장이 되고 있다. 분명한 건 이 지역들에서 시위가 폭발한 게 카티야 소장의 피격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언론이 그를 레드 셔츠 지도부급으로 격상시킨 것과 달리, 그는 레드 셔츠의 지도부인 적도 없고, 사수대를 이끈 것도 아니다. 논란이 되는 검은 복장의 사나이들과 군인 출신 카티야 소장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됐을 거라는 분석은 제법 설득력이 있지만, 이따금 현장을 방문해 자기 인기를 확인하고 조언 몇 마디 하는 게 그의 주된 행보였다. 그렇다면 5월13일 밤부터 급격히 악화된 폭력 사태의 배경은 뭐였나? 그가 피격당한 13일 밤의 상황을 잠시 짚어보자.

5월13일 밤부터 급격히 악화된 폭력 사태

이날 저녁 7시께 카티야 소장이 살라댕 교차로 룸비니 전철역 부근에서 정부군 저격수의 소행으로 보이는 피격을 당한 뒤 살라댕 바리케이드의 레드 셔츠 영토 쪽으로 의문의 폭발이 잇따랐다. 이날부터 정부가 전기와 물을 모두 끊어놓은 상태라 암흑 천지 교차로에서 알 수 있는 건 폭발물이 터진다는 ‘소리’뿐이었다. 잰걸음을 치는 노인들을 비롯해 공포에 빠진 일부 시위대들은 라차쁘라송 쪽으로 피신했고, 또 다른 무리들은 자체 제작한 화살과 죽창을 들고 바리케이드 쪽으로 웅성거리며 몰려들거나 바리케이드 밖을 향해 폭죽을 던졌다.

그리고 밤 10시30분께, 룸비니 공원 동쪽 방향에 위치한 ‘룸비니 권투경기장’에서 총성이 울리면서 폭력 사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경기장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군인이 배치됐고, 이곳과 가까운 본까이 구역에선 정부의 봉쇄 때문에 시위 현장으로 향하지 못한 레드 셔츠가 거점을 잡고 있던 참이다. 이날 밤 군의 발포로 노트북을 들고 블로깅을 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위 대원이 죽었고, 이어 살라댕 교차로에서 폭발음이 잇따르며 밤을 달궜다. 다음날인 14일부터 딘댕과 본까이 지역은 무차별 총격이 난무하는 격렬한 시위 현장으로 돌변했다.

14일 딘댕 지역 라차쁘라폽 도로를 취재한 독일 사진기자 닉 노스티츠는 ‘킬링 존에서 닉’이라는 블로그 기사를 통해, 몇 개 안 되는 타이어와 엎어진 몸을 겨우 가릴 정도의 시멘트 벽을 방패 삼은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군인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총격을 해댔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날 기자가 취재한 살라댕 교차로에서는 오후 5시께 도로를 점령한 시위대 사이로 난데없이 탱크 한 대가 들어와 빙글빙글 돌면서 시위대를 자극했다. 그리고 이내 방향을 감잡기 어려운 총소리와 수류탄 폭발이 여러 차례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폭발과 공포의 밤을 장식했다. 교차로 인근 두싯타니 호텔로 들려온 부상자가 병원으로 긴급히 실려나가는 중에도 굉음은 이어졌다.

“군이 시위 현장을 조금씩 봉쇄해 들어가면서 공격하는 이번 진압 양상은, 예컨대 4월10일 허술했던 진압과 달리 꼼꼼히 준비한 것 같다.”

13일 밤부터 사실상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진압 과정에 대해 타이 군부 문제에 정통한 폴 챔버 박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정치학회 위원인 폴 박사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진압은 무력 진압에 소극적인 아누퐁 파오친다 현 참모총장보다는 수도 방콕을 소관하는 제1군 사령관 카닛 사피탁 중장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퀸스 가드(Queen’s Guard·왕비 경호군)의 제2사단장을 지낸 카닛 사피탁 중령, 차기 육군참모총장으로 유력한 프라윳 차누차 대령, 아누퐁 파오친다 현 육군참모총장, 프라윗 웡수완 국방부 장관 모두 군내 상위직을 지배하는 퀸스 가드 정파다. 그런데 은퇴를 앞둔 아누퐁 참모총장은 진급을 위해서 뭔가 과시할 필요가 없는 반면 카닛 중장과 프라윳 대령은 좀 다르다. 군내 최고직을 향해가는 그들은 진급을 위해 뭔가 기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챔버 박사는 이렇게 군내 승진 문제와, 각기 다른 정치권과 연계된 군부의 분열상과, 앞으로 들어설 정권에 대한 미지수가 군의 진압이 늦어진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수많은 레드 셔츠들이 비무장 평화 시위를 벌였다(왼쪽). 군인들은 5월19일 체포한 시위대를 눈을 가린 뒤 어딘가로 데려갔다. (Photo by Lee Yu Kyung)

52명 사망·399명 부상, 실제 수치는 그 이상

한편 최근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나 시민, 그리고 취재진을 더한 공포로 몰아간 건 높은 건물에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 저격수다. 이미 몇주 전부터 살라댕 교차로 바리케이드 부근과 라차쁘라송 거리의 높은 빌딩 곳곳에 저격수가 배치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한 오스트레일리아 여행객이 높은 건물에서 누군가를 겨누는 저격수를 촬영한 것이 최근 공개되면서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카티야 소장도 이 저격수의 총탄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라차쁘라송 시위 현장은 지도부 암살을 막기 위해 검은 천으로 뒤덮인 지 오래고, 밤이면 바리케이드 최전선에선 저격수에게 포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빛을 쓰지 않았다. 전투가 격렬한 딘댕과 본까이 현장에서는 모두가 저격수 때문에 허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숙인 채 뛰어다녔다. 5월15일 오후 본까이 현장을 취재한 일본인 사진기자 다나카에 따르면, 이날 저격수의 총탄에 시위대 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대적인 군의 진압이 벌어지던 19일, “메이 꾸아”라고 말하던 소녀를 비롯한 여성과 노약자의 피난처인 빠툼와나람 사원에서도 6명이 숨졌다. 여기엔 의료구호 활동을 벌이던 여성 간호사도 포함됐다. 이것 역시 저격수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무력 진압이 최고조에 이른 19일 인명 피해의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다. 5월21일 현재 공식 통계는 14일 이후 52명 사망, 399명 부상이지만, 높은 위험도와 당국의 봉쇄로 현장 구석구석에 대한 목격과 취재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고려하면 실제 수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전혀 알 수 없는 수의 시위대가 군경 차량에 실려 ‘어딘가’로 끌려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는 눈이 가려진 채였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는 5월20일 성명을 내고 “구금자 수를 밝히고 왜 그들의 눈이 가려졌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위원회는 구금자에 대한 변호사와 의료진의 접견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사태를 꾸준히 관할해온 비상사태해결센터(CRES)는 지난 두 달간 다양한 계층의 레드 셔츠를 소환해서 꾸준히 심문해왔다. 레드 셔츠 운동에 공식 동참해온 타이학생연합(SFT)의 중앙위원 술룩파이 라무볼(22)도, 이 조직의 사무총장 아누띠 데떼라폰(22)도 그렇게 불려가 심문을 당한 뒤 풀려났다. “나는 그래도 학생이고, 심문에 당당하게 응했지만, 거기 불려온 택시기사·간호사 등 일반인들은 겁에 질린 듯했고, 무조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술룩파이의 경험담이다.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약속하며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지도부 자투폰 프롬판과 나타웃 사이끄아도 19일 오후 1시가 넘어 투항했다. 다음날에는 닥터 웽 토지라칸, 그리고 시위 종식 문제를 놓고 다른 지도부와 이견을 보여온 위라 무시카퐁도 자진 출두했다. 사실 이번 진압이 있기까지 레드 셔츠 지도부의 책임이 전혀 없진 않다. 5월3일 아피싯 총리가 발표한, 11월14일 선거 실시를 비롯한 이른바 ‘로드맵’은 냉정히 말해 시위 종식만을 생각해 서두른 안이었다. 그러나 협상 대표로 나선 온건파 지도부인 위네 무시카퐁의 서투른 양보에 이어 지도부가 협상 결과를 깨끗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조건을 덧붙이면서 혼란을 부추겼다. 대표적인 조항 중 하나가 수텝 투악수반 부총리가 4월10일 10여 명이 숨진 폭력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경찰서에 출두할 것을 요구한 조항이다. 처음부터 일관되고 견고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뒤늦게 조건 하나를 더 붙인 모양새는 정부와 군에 ‘정치적 해결 불가능, 무력 사용’이라는 빌미를 얹어주었다.

아피싯 정부, 결국 자기 무덤 판 꼴

반면, 막바지에 분열하고 우왕좌왕한 지도부와 달리 레드 셔츠 시위대는 원칙적이었다. 두 달의 취재 경험으로 보건대, 별다른 성취 없이 시위 해산 명령이 내려질 경우 시위대의 반발은 예고된 것이었다. 오늘내일 군이 친다는 그럴듯한 정황이 잡혀도 붉은 아이디를 발급하는 테이블 앞에는 여전히 기나긴 줄이 이어질 만큼 레드 셔츠가 보인 정체성과 동지애는 타이 엘리트 기득권층의 강고한 연대만큼이나 단단했다. 그런 레드 셔츠 시위대는 투항한 지도부의 ‘해산하자’는 눈물의 호소를 뒤로한 채 극단적 편파 보도로 자신들을 매도해온 언론사를 비롯해, 기득권층의 부와 권력의 상징들을 전역에서 불태웠다. 방콕 시내만 30여 곳이 불타올랐다. 지도부를 체포하고 무력 진압으로 레드 셔츠를 잠재울 수 있을 거라 계산한 아피싯 정부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혼란상에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었다. 비폭력 대중운동의 노력이 거듭 짓밟힌 레드 셔츠의 분노가 이후 어떻게 조직화될지, 방콕은 불편하고도 고요한 통행금지의 밤을 보내고 있다.

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Published by <HanKyoReh21> at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3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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