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속 헤매다 벼랑 끝 몰린 버마 난민들

군사정부 토벌작전에 불안과 배고픔으로 뒤숭숭한 난민촌 르포…
내부 저항동력 유출로 ‘저항의 공동화’ 현상도

[2009.10.16 제781호]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버마의 민주화운동. 승려들이 대열의 맨 앞에 섰다고 해서 승려복의 색깔을 따 ‘샤프란 혁명’으로 불렸다. 그 여름의 잇단 시위를 호들갑스레 ‘혁명’의 반열에 올려놓은 건 ‘국제사회’로 불리는 외부인들이다. 미완의 혁명이 군홧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힌 지 2년이 지났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지난 9월 말 타이-버마 국경지대를 찾아, 국제사회가 더는 관심을 갖지 않는 그 혁명의 오늘을 살폈다. 두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 ‘혁명 2주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버마군이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흉흉하던 지난 9월 말 타이와 국경을 맞댄 버마의 카렌족 난민촌 ‘이투타 캠프’ 마당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Photo by Lee, Yu-Kyung)

“거긴 마을이 없다니까! 우린 은신처에서 왔어.”

어느 마을에서 피난을 왔느냐는 질문에 귀가 어두운 노인 텔리(75)의 언성이 높아졌다. 울고 보채는 손자 6명을 포함해 열 식구가 일주일 동안 밀림을 헤쳐나왔단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살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1975년 이래 ‘은신처 찾기’ 인생을 살고 있다는 그는 현재 머무는 이투타 피난민 캠프에서 보낸 3년이 그나마 오랜만에 얻은 ‘안정적인 삶’이라고 말했다. 항간의 소문대로 캠프가 공격받는다 한들 그냥 이곳에 남겠다면서.

“힘들어…, 너무 늙어서 더는 움직일 수가 없어.”

군부, 정글로 수도 이전 뒤 군사작전 강화

기억도 가물한 몇십 년 전,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들이닥친 버마군의 손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던 청년 텔리. 중년의 나이엔 버마군의 포터(정글 속 전투에 나선 군이 무기와 물자를 수송하려고 강제로 동원한 민간인)로 끌려가 죽도록 배고프게 일하다가 도망쳐 살아남았다. 평생을 도망치다 이제 기력이 쇠한 노인이 된 그에겐 더 이상 피신할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타이 북부의 작은 마을 매삼렙에서 배로 약 2시간이다. 살윈강을 사이에 두고 3곳의 타이군 초소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버마군 초소 1곳을 지나고 나면, 버마의 카렌족 반군 조직 ‘카렌민족연합’(KNU)이 ‘제5여단’으로 지정한 구역 한켠에 이투타 피난민 캠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캠프 내 4천여 명의 피난민은 모두 2005년 말 건기(11월께)부터 이듬해 봄 우기가 시작될 무렵까지 이어진 버마군의 대대적 군사작전을 피해온 이들이다.

“이전과 달랐어. 그전에는 다른 데로 도망쳤다가 작전이 끝나면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는데, 2006년 작전은 카렌주 전역에서 벌어져서 피신할 곳이 있어야지. 그래서 여기(국경 근처)까지 오게 된 거야.”

카렌주 탕우 지구 콜루 마을에서 열이틀 걸려 피난왔다는 소우 마슈(53)의 말이다. 2005~2006년의 군사작전은 버마 군부가 수도를 랑군에서 네피도로 옮긴 시점과 맞물려 진행됐다. 2005년 11월 군부가 불현듯 정글 지역으로 수도를 옮기는 바람에 ‘정글 수도’라 불리는 네피도는 카렌·샨·카레니 등 소수민족 주와 묘하게 인접해 있다. 새 수도에 대한 반군들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소수민족을 괴리시키기 위해 벌인 군사작전은 예상대로 강제이주 작전을 동반했다. 마을에 불 지르기 같은 악랄한 방법이 으레 동원됐다.

이투타 캠프에서 북쪽으로 30분정도 배를 타고 올라간 뒤 돌밭과 냇물을 가로질러 당도한 우에끌로 지역. 이곳에서도 이투타 캠프의 ‘6지구’로 불리는 캠프가 하나 더 있다. 480명의 피난민이 거주하는 이곳은 2006년 작전에도 고향 땅에서 버틸만큼 버티타 뒤늦게 피난온 난민들이 2007년 7월 만들었다. 난민들은 풍성한 정글뿐이던 두 캠프 지역을 모두 사람 사는 ‘마을’로 바꿔 놓았다. 하지만 비옥한 땅 덕분에 자리만 잡으면 채소, 바나나, 옥수수 재배가 손쉬웠던 이투타 캠프와 달리 우에끌로 지역은 사정이 좋지 않았다. 돌밭투성이라 농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도 처음엔 여기 도착했어. 등붙일 곳도 업이 열린 하늘을 보고 일주일간 지내다 이투타로 이동했지.” 병든 남편을 등지게에 지고 12일간의 ‘정글 트레킹’을 견뎌내야 했던 낸시(60)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비옥한 이투타 캠프에도, 돌이 밭을 이룬 우에끌로에도 최근 또다시 ‘군사작전’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6월 버마군과 ‘민주카렌불교도군’(DKBA·1995년 카렌민족연합 주류에 반란을 일으키며 분파한 친군부 카렌 무장조직)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카렌주 남부 ‘제7여단’을 겨냥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카렌 반군과 3주간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이 지역을 점령해버렸다.

교전의 여파로 이 지역에 있던 러퍼허 피난민 캠프의 4천여 난민들은 타이 쪽 ‘타송양’으로 대거 피신했다. 카렌주 주도인 파안시와 파안 지구로 뻗어 있던 7여단이 정부군 손에 함락된 것은 카렌 진영에서 보면 1996년 매너플로 함락 이래 최대 손실이다. 무엇보다 ‘연합군’이라고는 하지만, 친정부 무장조직 카렌불교도군을 최전선에 내세운 버마군의 작전은 ‘카렌 대 카렌’이 싸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 한번 연출하고 말았다. 이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패배한 카렌 해방군 잔존 세력은 빼앗긴 땅에서 매복·게릴라전에 집중하고 있다.

7여단 함락 직후부터 “우기가 잦아드는 9월 말이나 10월 초가 되면 ‘연합군’이 5여단을 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통상 건기에 치르던 관습을 깨고 우기 한복판인 6월에 감행한 군사작전을 승리로 이끈 자신감에서다. 최근 휴전 지역인 버마-중국 국경 쪽 코캉 지역에서도 버마군의 군사작전이 있었던 터다. 게다가 버마 군부는 최근 휴전한 소수민족 무장그룹들을 향해 시한까지 못박으며 ‘국경수비대’로 전환할 것을 명했다. 이는 군부가 지난해 5월,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몰고 온 대재난으로 약 13만 명이 목숨을 잃은 시점에서 강행 통과시킨 신헌법 제7장 338조 “버마 연방 내 모든 무장세력은 버마군의 지휘 아래 들어간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0월 초까지 민주카렌불교도군 등 3개 무장그룹만이 국경수비대로 전환하는 것에 동의한 상태다. 대부분의 무장조직은 완강히 버마군 편입을 거부하고 있다.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잠잠하던 휴전 지역에서 버마군과 소수민족 그룹들이 각각 대열을 정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군 9~10월 추가 공격설에 긴장

“5여단과 7여단은 다르다. 그쪽(7여단)에는 워낙에 민주카렌불교도군 세력이 좀 있었고…. 여기(5여단)와 3여단은 우리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쉽지 않을 거다.” 5여단 제1대대 초무(59) 대령은 자신만만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카렌민족연합의 한 간부 역시 타이군과 버마, 타이군과 카렌반군이 각각 1980년대 말 맺었다는 ‘동의안’을 한 배경으로 5연대 공격설을 일축했다. 그가 말하는 ‘동의안’의 내용은 이렇다. 카렌주 5여단과 마주 보는 타이 쪽 매삼렙은 건기가 본격화되는 11월부터 살윈강을 보려고 몰려드는 여행객으로 붐비는 지역이고, 타이 쪽에 큰 관광 수입을 올려준다는 것. 하여 타이군은 ‘이 지역에서 제발 총소리가 들리지 말게 하라’는 요구를 버마 정부군과 카렌 반군 모두에게 던져놓았단다.

버마 카렌주 북부 카렌주 제5여단 관할 지역에 속하는 웨지에서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대원들이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Photo by Lee, Yu-Kyung)

전혀 다른 분석도 있다. 땅께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은 “군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장애물이 될 만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최근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감금 기간을 연장한 것이나, 국경지대에서 군사작전을 강화하는 것도 모두 이런 ‘방해물 제거 작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5여단에 속하는 카렌주 북부 파푼 지구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최전선’이다. 5여단이 공격받고 전선이 넓어지면 인적으로나 무기 면에서 취약한 민주전선도 전투에 휩싸일 수 있다. 5여단 관할 지역인 웨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우마웅우(50) 민주전선 웨지 지역 서기가 “연합군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투타 캠프 난민들 사이에서도 “공격이 현실화하기 전에 미리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가고 있다. 한 가정이라도 떠나면 자칫 캠프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이주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캠프 자치위원회 간부들은 예외 없이 무전기를 손에 든 채 주민들을 다독거리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투타 캠프에서 도보로 약 2시간 걸리는 곳- 험준한 정글 상황을 고려하면 아주 가까운 거리다- 에 자리잡고 있다는 서너 곳의 버마군 캠프를 감시하는 카렌 반군의 보고 내용과 카렌 쪽 ‘정글 정보부’가 전하는 상황보고가 시시각각 무전기를 타고 전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카렌 반군과 버마학생민주전선이 24시간 공통 순찰도 벌이고 있다.

“버마군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바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 각각 50명, 100명을 태울 수 있는 보트도 2대 준비해뒀다.” 캠프 대표인 소 야뚜(54)의 설명이다. 2대의 보트로 4천여 난민을 안전지대까지 대피시키려면 최소한 30차례는 왕복을 해야 한다. 교전이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에선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소 야뚜 대표의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다. 이투타 캠프 난민들은 타이 쪽 난민캠프와 마찬가지로 12개 구호단체로 이뤄진 ‘타이-버마 국경 컨소시엄’(TBBC)이 제공하는 쌀과 소금을 지원받고 있다. 캠프 내 학교는 외국계 기독교단체 등이 지원하고 있다. 물론 타이 국경 쪽 난민캠프 지원에 비하면 턱없이 열악한 게 사실이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이중고 겪어

따지고 보면, 국제사회의 지원이 몰리는 타이 영토로 난민이 쏠리는 현상이 벌어진 건 이미 오래다. 그새 소수민족들의 해방 투쟁도, 민주세력들의 반독재 투쟁도, 국경을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됐다. 버마 내부에선 저항의 불씨가 갈수록 사그라진 반면 국제사회의 캠페인이 집중된 타이 쪽 국경지대에선 시끌벅적하게 이어졌다. 버마 내부의 저항운동 동력이 국경 너머 타이 쪽으로 새나가는 ‘저항의 공동화’ 현상이 빚어진 게다.

‘9~10월 공격설’로 뒤숭숭한 난민캠프에 어김없이 밤이 찾아들었다. 밀림의 밤하늘을 촛불로 밝힌 채 난민캠프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일단 한 달은 무사히 넘겼다. 남은 한 달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화톳불을 둘러싼 것은 불안의 심연이다.

이투타·우에끌로 난민캠프(버마)·매솟(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published by <Hankyoreh 21>

at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59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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