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에 돌아가 다시 혁명에 나설 것”

타이 국경지대로 망명한 ‘샤프란 혁명’의 주역들…
국내 승려들과 문자메시지 주고받으며 새로운 ‘기회’ 기다리는 중

[2009.10.23 제782호]

“총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있는 힘껏 달려 어느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지난 2007년 11월5일, 버마 중북부의 작은 마을 포코쿠에서 만났던 승려 우산디마(28)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군인들의 고함 소리에 겁을 먹고 제 발로 걸어나왔다는 그는 보안군에 끌려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뭇매를 맞았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이따금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승복까지 벗기는 모욕을 당한 뒤에야 풀려났다. 웃옷도 없이 롱지(버마인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입는 치마)만 걸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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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2주년, 그날을 기억하라.’ 지난 9월21일 버마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타이 북부 매솟에서 버마 난민들과 지원단체 활동가 등 200여 명이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며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Lee Yu Kyung)

사건은 꼭 두 달 전인 그해 9월5일 벌어졌다. 정부의 연료보조금 제도 폐지 등에 항의하려고 거리로 나선 평화시위대를 보안군은 무참히 짓밟았다. 전통적으로 버마에서 존경과 예우의 대상이던 승려도 이날만큼은 예외가 아니었다. 우산디마를 포함한 3명의 승려가 붙들려가 폭행과 조롱을 당한 이날의 사건은 흔히 ‘포코쿠 승려 폭행사건’으로 불린다. 이 사건으로 버마 승려들이 대거 반정부 시위에 뛰어들었다. ‘샤프란 혁명’의 기폭제였다.

군사정부, 시위 주도 승려에 63년형 선고

“사실 포코쿠 시위 전부터 전국 사원을 돌며 ‘메타수타’(우애) 운동을 조직했다. < BBC > 라디오를 통해 우리의 계획과 활동을 알리기도 했고, 군사정권이 끝장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스톱 사인’(손바닥이 그려진 동그라미 안에 가위표를 한 표지)도 확산시키고 있었다.”

당시 승려 시위의 핵심 조직가였던 킹제로(32·본명 아신 이사리야)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샤프란 혁명’ 이후 당국에 쫓겨 1년여 도피생활을 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초 국경을 넘어 타이 북부 매솟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킹제로뿐 아니다. 4개로 나눠져 있던 기존 승려단체를 통합한 ‘전버마승려연합’(ABMA)을 조직해 ‘샤프란 혁명’의 중추 구실을 하는 데 앞장섰던 다른 승려들도 당국에 붙잡히거나, 타이·인도·미국·프랑스 등지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킹제로와 함께 ABMA를 이끌었던 우감비라(30)는 시위가 무자비하게 진압된 뒤 수배를 받아오다 그해 11월 초 버마 중부 만달레이에서 체포됐다. 현재 북부 시가일 지방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진 우감비라의 형량은 무려 63년이란다. 그의 ‘반정부 활동’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붙들린 가족 4명도 갇힌 몸이다.

“우감비라 스님은 랑군 교외의 작은 사원을 거점으로 오래전부터 승려 시위를 준비해왔다. 2006년부터는 아예 랑군 일대 사원을 지역에 따라 26개로 나눠, 유사시 사원별로 행동에 나설 순서까지 따로 정해놓고 있었다. 내가 속한 사원은 8번째였다.”

승려들, 군사정부에 사과 요구 성명 내기도

우감비라를 도와 승려 조직화에 참여했던 우피냐사닛(24)은 “이 때문에 이미 2005년부터 기관원들이 우감비라 스님의 뒤를 캐고 다녔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체포 위협을 용케 피해가며 버마 내부에서 머물러온 우피냐사닛은 올 2월 초 타이 국경을 넘어 현재 북부 노포 난민캠프에서 머물고 있다. 매솟 등지에서 만난 버마 출신 승려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감비라 외에도 비구니 50여 명을 포함해 290명가량의 승려가 당시 시위와 관련해 버마 각지에서 복역 중이다.

‘샤프란 혁명’은 무장투쟁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타이 국경지대를 기반으로 한 버마 ‘반군조직’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혁명’ 막바지였던 2007년 9월28일 랑군 시내에서 시위를 벌이다 보안군의 폭력 진압으로 친구 12명을 잃었다는 영어교사 출신 윈초뚜(31)는 지난해 7월 중순부터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소속 게릴라로 변신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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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2주년, 그날을 기억하라.’ 지난 9월21일 버마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타이 북부 매솟에서 버마 난민들과 지원단체 활동가 등 200여 명이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며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Lee Yu Kyung)

“군부의 손에 12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젠 진짜 혁명을 해야지….” 지난 9월 말 웨지 난민캠프에서 만난 윈초뚜는 여전히 의욕이 넘쳐 보였다. 그가 입고 있는 노란색 셔츠가 도드라져 보였다. 정글에선 어울리지 않는 차림, 아직 도시 티를 다 벗어내지 못한 듯싶었다. 하긴 정글의 ‘배고픈 현실’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을 게다. 그는 “우리(게릴라)는 가난에 허덕이는 주민(난민)들이 제공하는 음식과 기부금으로 살아가는데, 주민들의 삶이 나날이 피폐해지고 있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무겁게 말했다. 그 ‘책임감’이 망명지에서나마 어떻게든 짓밟힌 혁명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어떻게 스님들에게 총질을 할 수 있느냐’고 혼자서 용감하게 보안군에게 따져묻다가 총을 맞고 쓰러진 소녀의 모습이 2년이 지난 지금껏 눈앞에 아른거린다.” 역시 1년 넘게 숨어 지내다 올 초 매솟으로 왔다는 승려 우난다사리아(25)도 그중 한 명이다. 2007년 9월18일 포코쿠 사건에 대한 군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랑군 시위 대열에서 깃발을 들고 앞장섰던 그는 현재 매솟 인근 노포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타이 국경지대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승려들은 지난 9월 다시 한번 군부 정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ABMA와 국제버마승려기구(IBMO) 명의로 된 성명을 내어 “10월3일까지 2년 전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수감된 승려 전원을 석방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게다. 이에 따라 승려들의 집단행동을 우려한 버마 군부는 9월 말부터 랑군 도심의 경계경비 태세를 한층 강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월3일 저녁, 매솟의 승려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슈웨다곤 사원(랑군 시내 중심가에 있는 버마 불교의 상징)에서 승려 50명 모여 시국기도회 개최!”

버마 내부에서 전해온 소식을 다시 망명 승려들이 퍼나른 게다. 매솟 등지로 망명한 승려들은 그동안 버마 내부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승려들과 부지런히 ‘소통’해왔다. 이 때문에 매솟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버마 땅 미아와디에 매솟에서 이뤄지는 전화 통화까지 도청할 수 있는 고성능 안테나가 설치됐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랑군뿐 아님. 만달레이 포함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10명, 20명씩 모여 시국기도회 열었음.”

난민캠프 한 귀퉁이에서 소식을 접한 승려들은 간만에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매솟에서 생활하는 망명 승려들의 쉼터 격인 ‘승려도서관’에서 만난 킹제로도 웃고 있었다. 그는 “물론 턱없이 작은 규모”라며 “하지만 철통같은 경계 속에 있는 버마의 상황을 생각하면 스님들의 집단 기도회 소식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실은 남루하지만 ‘믿음’ 버리지 않는 승려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혁명 2주년, 이상은 여전히 멀고 현실은 남루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망명 승려들의 ‘믿음’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킹제로는 “버마 내부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고 있다는 평가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2년 전 ‘우리의 혁명’ 이후 더 많은 스님들과 국민들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망명 신청? 난 그런 거 하지 않는다. 언제 버마로 돌아가 혁명에 참여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매솟(타이 북부)=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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