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봉쇄 속 치르는 전쟁, 고립무원 속 고통받는 타밀인들

스리랑카의 내전이 “95% 종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물론 스리랑카 군의 주장입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북부 타밀 지역에 대한 언론의 독립적 취재가 원천 봉쇄된데다, 지난 25년 간 스리랑카 군과 타밀 타이거 반군이 후퇴와 재탈환을 반복해온 점을 상기해보면 스리랑카 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는 건 ‘민망한 저널리즘’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밀 타이거의 후퇴가 전례없이 큰 폭인 것 또한 현실인 듯 합니다. 

이 글을 쓰는 2009년 1월 29일 현재 전선이 형성된 북부 물라이티브 지역에 수십만 명이 민간인이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있다고 합니다. 타밀 타이거가 후퇴하면서 함께 빨려들어간 이들과 그 지역에 오래 살고 있는 타밀 민간인들입니다. 스리랑카 군은 타밀 타이거가 이들을 ‘민간인 방패’로 쓰고 있다고 대대적 공세를 벌이면서, 또 다른 한편 자신들이  ‘안전지대’로 선언한 지역까지 공격하여 여러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야기했습니다. 

어이없게도 스리랑카 국방부 장관 고타뱌 라자팍세 (Gotabhaya Rajapaksa, 현 대통령 마힌드라 라자팍세의 남동생)  ‘민간인 피해 제로’ 라고 말합니다. ‘민간인 피해’는 타밀 타이거 프로파간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 치피 리브니(Tzipi Livni)이 “(가자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없다” 고 한 황당발언이나 이스라엘 관료들이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 거짓말보다 더 심한 거짓말이지요.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전쟁이 시시각각 보도되었던 것과 달리 피해규모가 ‘결코 덜하지 않은’ 스리랑카 내전은 군의 발표가 아니면 한 줄 보도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군과 동행 취재한 것으로 보이는 어느 스리랑카 기자는 ‘PRESS’ 딱지 조차 붙지 않은 국방색 자켓과 그에 어울리는 헬맷을 쓰고 군이 탈환한 지역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습니다. 군인인지 기자인지…전쟁의 첫번째 피해자는 ‘진실’이라는 말이 이렇게 적중할 때가 있을까요?

그곳이 어디든, 아시아든 아프리카든 가자지구든 스리랑카든 이정도의 대량 살상이라면 국제사회가 달려들어 휴전을 압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콜롬보 (스리랑카 수도) 주재 미 대사관은 지난 1월 7일 “타밀타이거와의 협상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소위 국제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거나 무관심합니다.

아래 기사는 2005년 초 제가 스리랑카 취재를 마친 뒤 그 해 여름에 썼던 기사입니다. 제가 공저로 참여한 <평화를 향한 아시아의 도전> (나남, 2008) 의 밑천이기도 합니다.  머나먼 과거의 기사이지만 조금 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이 소름끼치는 무관심을 깰까 싶은 마음에 붙여봅니다.

이유경 / 방콕 (2009.1.29)  

 

내전과 부패를 넘어 매혹의 , 스리랑 

 

 

 

스리랑카 동부 왈리까도 지�� 한 마을 입구에서 스리랑카 군이 들고 나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2005.4월/photo by Lee Yu Kyung)

스리랑카 동부 왈리까도 지역 한 마을 입구에서 스리랑카 군이 들고 나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2005.4월/photo by Lee Yu Kyung)

6월 24일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 타이거(LTTE)가 ‘쯔나미 협력체계(A Post-Tsunami Operational Mannagement Structure, 협력체계)’에 드디어 사인했다. 2002년 2월 22일, 휴전협정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이래 평화협상 중재 역할을 계속해왔던 노르웨이 팀이 이 안을 제안한 지 거의 반년만이다. 집권연정인 ‘인민자유동맹(UPFA)’ 내에서 각각 제1, 2당인 ‘스리랑카 자유당(SLFP)’과 ‘인민해방전선(JVP)’이 협력체계에 대한 이견으로 불안한 동거의 끝을 향해 가는 동안 사인을 기다리다 못한 타밀 타이거는 “협력체계에 사인이 이루어진다 해도 제대로 수행이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드러냈었다.

협력체계를 두고 아슬아슬했던 6개월은 협정 조인이 이루어지던 날 노골적으로 투영되었다. 6월 16일, 집권연정을 떠나겠다고 공식 선언한 인민해방전선은 이미 강경파 승려들과 함께 협력체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왔고, 24일 아침에는 수도 콜롬보의 의사당 주변에 헬기까지 동원된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시위대의 일부는 의사당 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의사당 안에서는 휴회가 선언되었고 이후 몇 분 동안 진행된 의원들의 찬성 서명에 이어 재건복구장관 자야싱헤(M.S. Jayasinghe)가 정부를 대신하여 협정문에 최종 사인했다.

쯔나미 협력체계

이 ‘종이’는 스리랑카 주재 노르웨이 대사인 한스 브라츠카르(Hans Bratskar)의 헬리콥터로, 헬리콥터는 다시 타밀 타이거 본부가 있는 북부 킬리노치로 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내전 재발과 평화협상 재개라는 갈림길의 변수로 인식되던 협력체계가 이렇게 극적으로나마 조인됨으로써 스리랑카 국내외에는 일단 안도의 한숨이 돌았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스리랑카는 현재 대통령 선거 시기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과 국민들의 분노로 시국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타밀 타이거의 동부 정치서기 카우살렌이 살해된 2월 이래 동부지역에서는 폭력사태가 끊이질 않고 있다. 6월 26일에는 북부 킬리노치에서 동부 바띠깔로아로 이동하는 타이거들을 겨냥하여 지뢰폭발사고가 발생했고 그 두어 달 전인 4월 28일에는 저명한 타밀 저널리스트 시바람(D. Sivaram)이 납치, 다음날 살해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급기야 타밀 타이거는 ‘타이거들의 안전이동’ 보장을 요구하며 ‘7월 14일 데드라인’을 던졌다. 그러나 7월 10일, 보란 듯이 타이거의 한 중령과 소위 그리고 두 명의 타밀 민간인이 동부 트링코 말리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후 타이거는 동부지역 내 타이거들의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시켰다.
13일과 14일에는 트링코 말리에서 스리랑카 군대와 경찰이 수류탄 공격을 받고 부상을 당했다. 14일에 대통령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폭력과 암살사태에 대한 깊은 유감과 자제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폭력사태와 타이거의 ‘데드라인’ 설정 그리고 대통령의 호소문. 현 상황에 대해 정치평론가들은 1995년 ‘자프나’ 협상이 결렬되고 내전이 재발했던 당시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당시에도 정부 쪽 파트너는 쿠마라퉁가의 자유당이었고 타이거는 그해 3월 폭력사태와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데드라인’을 연장하다 마침내 총을 다시 들었다. 그 덕에 ‘휴전협상을 먼저 파기했다.’며 대대적인 몰매를 맞은 바 있다. 타이거의 정치고문인 안톤 발라싱함은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자프나 반도와 와니 정글에서 고립된 타이거들은 바깥세상으로부터 실제로 단절되었다. 국내외 모든 미디어는 타이거 통제 지역으로의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고 콜롬보 내 정부 통제언론들은 본질적으로 인종주의적이고 편파적이었다. 인도 미디어는 잔인하리만치 타이거에게 적대적이다. 이처럼 소외된 상황에서 타이거는 정부가 벌인 계획적인 오보 캠페인에 대항해 효과적인 방어막을 칠 수 없었다.

2005년 7월 중순, 실론섬에는 10년 전과 유사한 전운이 조금씩 드리우고 있다.
 


실론섬 휴전 ‘매우 불안’


남아시아 최남단에 위치한 매혹적인 섬, 마르코 폴로가 지상의 낙원으로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인도양의 진주’로 묘사했던 스리랑카는 싱할라 다수족이 인구의 약 74%, 북동부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 타밀족이 약 18%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10세기 이후 아랍에서 건너온 무슬림들이 동부지역에 정착하면서 타밀 언어와 문화에 녹아들어 살고 있지만 싱할라는 물론 타밀족과의 갈등관계 속에서 ‘제3의 인종’으로 분류된다.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이 그렇듯 오늘날 스리랑카 내전과 불안한 정치의 뿌리는 식민통치에 기반하고 있다. 16세기 초 이 섬을 점령했던 포르투갈과 뒤를 이은 네덜란드는 동북부의 타밀 왕국과 중남부의 싱할라 왕국을 따로 통치했다. 그러나 1796년 네덜란드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은 영국은 수월한 식민통치를 위해 1833년 두 왕국을 강제 통합시켰고 이는 13세기 이래 별 탈 없이 동거해왔던 두 인종 간 내전의 씨앗을 뿌린 셈이었다.

강제통합에도 불구하고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구사한 건 분리지배정책이었다. 그들은 고분고분하지 않던 다수 싱할라족들을 대신하여 남인도 타밀나두의 하층 카스트인 타밀인들을 차밭 노동자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타밀 노동자들은 실론섬 중부 캔디언 왕국이 지배하는 지역으로 이주되었고 싱할라 지주들과 영국 식민주의자들로부터 이중착취를 받으며 노예 노동자의 삶을 살아왔다.

내전의 씨앗은 신분차별제도인 카스트를 이용하여 타밀족 내부를 분리지배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인도에서 이주 당한 타밀인들과 스리랑카 타밀족의 하층 카스트들이 영국 식민 치하에서 가장 억압받는 민중들이었던 반면 상층 카스트 타밀인들은 교육과 사회진출 등 특혜를 입으며 식민정부의 관료직을 담당했다. 다수족 견제책의 의미도 담고 있던 이 통치방식은 급기야 불교도 싱할라족 내에 종교적겴适씬?쇼비니즘을 생성시키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스리랑카 내 강경보수 인종주의자들 다수가 승려들이고 ‘반식민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소위 ‘맑시스트 정당’임을 자처한 인민해방전선이 평화협상의 최대 방해세력으로 등장한 국수적 인종주의 정당이라는 사실도 모두 이런 식민통치에 배경을 두고 있는 것이다.


  불교도 사상가인 아나가리까 다르마빨라(Anaharika Dharmapala)가 그의 저서 『고대 문명화의 역사(History of an Ancient Civilization)』에서 밝힌 아래의 문구는 분리지배 식민통치가 만들어낸 ‘불교도 싱할리즈 쇼비니즘’의 이면을 잘 보여준다.
“인종적으로 싱할리즈들은 뛰어나다. 그들은 노예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결코 이교도 타밀족에게도 야만적인 유럽인으로부터도 정복당한 적이 없다. 야만적 유럽인들은 지난 3세기 동안 이 땅과 고대 사원을 파괴했으며 역사적으로 중대한 우리 인종을 거의 멸종시켰다.

이 빛나고 아름다운 섬은 아리안 싱할리즈들에 의해 만들어진 파라다이스였다. 그 야만인들이 파괴하기 전까지는…….”

내전의 뿌리, 식민통치

1948년에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콜롬보를 수도로, 권력은 싱할라족에게 넘기고 이 섬을 떠났다. 이미 싱할라족 엘리트들의 가슴을 파고든 국수주의는 독립 직후 타밀인에 대한 억압과 소수민족말살정책으로 나타났다.
1956년 통과된 ‘싱할라어 유일 공식언어법(Sinhala Only Act)’. 싱할라어를 모르는 타밀인들은 교육의 기회도 공공기관 접근도 피고용의 권리도 모두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이 법은 대표적인 인종차별법으로 꼽힌다. 1970년 도입된 ‘표준화 제도’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타밀 학생들에게 보다 높은 점수를 요구했던 인종차별 교육정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쟁을 직접 야기한 건 인종폭동이었다. 크고 작은 인종폭동이 이어지면서 타밀인들은 살해와 고문, 강간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갔다. 1958, 1961, 1974, 1977, 1979, 1981년은 굵직한 인종폭동의 해다. 특히 1983년 7월에 발생한 폭동은 이 섬을 본격적인 내전 상태로 돌입시킨 최악의 폭동사태로 기록되고 있다.

아버지의 난자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는 힌두 사제 라비(Ravi), 북부 자프나 반도로 야밤 도주해왔던 피 흥건한 타밀 동족을 지켜보며 적개심을 키워온 여성 타이거 타밀 래발(Tamil Leval). 싱할라 쇼비니즘에 맞선 타밀 민족주의는 이런 과정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민족해방투쟁에 남녀노소를 불문한 참여 역시 ‘83 폭동’ 이후 급증했다. 그리고 수많은 타밀 지식인들은 해외 망명의 길에 올라 전 세계에 타밀인들의 상황을 알리는 동시에 해방투쟁의 주요 물주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스리랑카 내전은 단지 인종분쟁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물론 스리랑카 분쟁은 아시아 곳곳에서 나타나는 ‘다수족에 의한 소수족의 식민화’ 양상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인종 분쟁’ 이라고만 단순화할 수 없다. 정치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반민주적 반인권적 억압체제 그리고 소수자 하층민에 대한 엘리트들의 착취구조가 인종을 주요 변수로 하여 반복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해방’을 내걸고 20년 항쟁을 벌인 타이거가 세계 어느 반군조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치밀한 투쟁을 벌이는 것도 ‘인종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주는 요인 중 하나다.

인종갈등 이면의 반민주적 억압체제

실제로 이전 휴전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을 보면 콜롬보 정치권은 권력집중형 비민주체제 하에서 내전종식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권력 챙기기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지하게 테이블에 앉기보다는 치적 만들기와 정적 죽이기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스리랑카 정부는 타이거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기를 유도하는 듯 하다.” 지난 3월 타이거 동부정치서기인 마샬(Mashall)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언성을 높였다.
약 한 달 뒤, 타이거 정치수석 타밀샐반(S.P. Tamil chelvan) 역시 “우리 인민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는 다음 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다.”며 의미심장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최근 폭력사태가 발생한 트링코 말리 지구의 정치서기인 엘리란(Elilan)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우리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면……. 우리는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자, 지금 휴전상황은 이처럼 살얼음판인데 같은 시각 콜롬보의 정치권은 콩가루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애당초 코드가 맞지 않는 인민해방전선과 연정을 맺은 건 무리한 집권욕망이 만들어낸 졸작이었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2003년 12월 동거정부의 수반이었던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의 방미 중,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대통령이 경쟁당의 당수 라닐 총리가 일궈낸 역사적인 휴전협상(2002년)을 내내 못마땅해 했던 터다.
 

아울러 부르주아 정당인 민족연합정당의 탄압을 받고 자란 극좌정당 인민해방전선이 빈곤층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지지세를 확보해가는 판에 이 당과의 연정이 집권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계산도 미리 해놓은 상태였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자유당과 인민해방전선이 이끈 인민자유동맹은 ‘예상대로’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타밀문제에 강성인 자유당과 초강성인 인민해방전선이 집권함으로써 평화협상의 길목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헌법이 허용한 두 번의 임기를 올 12월에 마치게 된다. 프랑스 헌법과 유사한 모델을 지닌 스리랑카 헌법은 그러나 의회 해산, 각료 임명 등 대통령의 권한이 무소불위인데 비해 정부의 수장인 총리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만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이 여론을 이용하여 ‘장기집권’이라는 본심을 감춘 채 헌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바로 신헌법에서 ‘총리’로서 권좌를 유지, 여전히 집권하고 싶은 게 그의 본심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야당인 민족연합정당은 현행 헌법대로 12월 대선을 치른다면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물러날 자리를 당연히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가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민족연합정당은 12월 대선을 내걸고 소위 ‘피플파워 운동’을 펴고 있다. 7월 2일 남부에서 시작한 장외투쟁 행진은 마지막 날인 12일 콜롬보에서 약 20만 명의 군중들이 참여한 시위로 마감되었다. ‘마담(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여성이다) 집권 10년’ 동안 추락한 경제에 지친 국민들 사이에서 라닐 총리의 인기가 제법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콜롬보 정치게임에 놀아나는 ‘휴전’


20년 내전과 쯔나미로 강타당한 타밀인, 자살공격의 공포와 불안한 시국에 발 뻗지 못하는 싱할라인. 스리랑카 국민들은 오늘도 진정한 민주주의와 전쟁 종식의 그 날을 염원하고 있다. 그리고 천문학적 전쟁 비용과 부패로 바닥난 스리랑카 경제를 일으켜 보겠다고 (사실은 스리랑카 시장에 투자 좀 하겠다고) 모여든 국제지원금은 콜롬보 정치게임에 발이 묶여 있어 실론섬 주위를 맴돌고 있다.

* 기사 본문 중 타이거 최고 사령관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의 휴전협정 사인 사진은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by Anton Balasingham, 2004) 에 실린 사진을 저자의 허가하에 게재한 것입니다.


<이유경>
자유기고가
(희망세상 웹진 200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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