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기사는 <한겨레21> 1095 발행기사의 긴 버전입니다. / 이유경 Penseur21
매년 30만명 무작위 추첨해 군사훈련시키는 ‘예비군법’ 통과된 타이 주목받는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문’ 주인공 고등학생 네티윗 초티팟파이산 인터뷰 제1095호 / 2016.01.13
“폭력 몰이성 비민주주의의 상징”
연행 소식으로 어수선하던 오후 3시께. 고3 학생 네티윗 초티팟파이산(Netiwit Chotiphatphaisal, 19)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연행자 명단에 네티윗의 이름을 올리는 오보를 냈다. 이른 아침 그가 항의기차 ‘배웅’을 다녀온 걸 두고 언론이 그가 기차에 오른 것으로 오해한 탓이다. 그런 오해가 생긴데는 기자들이 팩트 확인에 게을렀던 탓도 있지만 네티윗의 ‘유명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3년 전 ‘시암해방을 위한 교육운동’(Education for Liberation of Siam)을 창시한 고등학생 운동가다. 이 운동을 통해 매 학기 초 학생들이 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꽃을 바치는 ‘와이 크루’ 의식과 조례시간 애국가 제창 등을 비판했다. 네티윗은 또한 타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16살부터 고민하다 18번째 생일이던 지난 2014년 9월 선언문을 발표했다.

2010년 5월 타이 군이 반군정 성향의 레드셔츠 시위대와 대치중이다. 레드셔츠 강성 지역인 동북부 이싼은 타이 징병제 적용으로 징집되는 사병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해 레드셔츠 시위는 학살로 끝났고 9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네티윗은 인터뷰에서 타이 군인들의 시민학살 역사를 거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선언의 큰 동기가 됐다. (© Lee Yu Kyung)
네티윗의 선언문은 ‘종교’, ‘평화’ 등 세계 양심적병역거부자들이 신념으로 채택한 주제에 더해 자신이 나고 자란 사회의 군인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빼곡하게 담았다. “타이군은 민족주의와 군에 대한 존경심을 조장하기 위해 교과서마저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언에서 징병제도가 “폭력과 몰이성과 비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선언문 보러가기 https://www.wri-irg.org/en/node/23544 )
최근 네티윗의 1년 전 선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타이 정부가 ‘예비군법’을 통과시키면서 의무병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 18~40살 남성(약1200만명 추정)중 2.5%에 해당하는 30만명이 매년 무작위로 추출돼 두 달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법안은 지난해 11월 기권 4명이 있었을 뿐 반대 없이 통과됐다.

지난 11월 군정의회에서 반대없이 통과된 예비군 법에 고등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옥외 캠페인을 계획하며 이들이 만든 종이 피켓에는 18-40세 남성의 2.5%를 매년 군사훈련에 소집하겠다는 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Lee Yu Kyung)
징병제 국가 타이에서는 ‘평균’ 60%의 병력이 자원병으로 우선 충당된다. 나머지 40%는 만 21세 이상 남성가운데 제비뽑기를 통해 보충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이 제비뽑기에 불려가지 않기 위해 타이 남자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고교 3년 동안 ‘군사교육’을 선택한다. ‘국토방위훈련’ (혹은 ‘러 더 Ror Dor’) 과정을 이수하면 제비뽑기 절차에 면제되기 때문이다. ‘러 더’ 과정은 군사훈련뿐 아니라 역사, 무기에 대한 이론 학습 그리고 국가, 종교(불교), 국왕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신교육’까지 병행하도록 돼 있다. 대학생 형, 누나들과 후아힌행 열차에 올랐던 생차이는 러더 첫 해를 마쳤다. 그는 같은 반 남학생 17명 중 13명이 러더를 이수 중이라고 말했다. 고3 니티(19)는 3년을 이수했다. 제비뽑기에 불려나가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훈련을 다 마친셈이다. 그는 “여러모로 중요한 10대 후반을 낭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군사훈련, “10대를 낭비하는 느낌”
결국 징집되는 이들은 ‘러 더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고교 중퇴자나 고등학교에 아예 진학하지 못하는 타이 동북부 빈곤가정 출신이 많다. 이들 일부는 군인, 경찰, 민병대 등 총 8만명 이상의 보안군이 배치된 타이 남부 분쟁주에 배치되어 무슬림 반군청년들과 대치하고 있다. 타이사회의 ‘을’들은 이렇게 ‘갑’옷 입은 자들이 차려놓은 애국 전선에서 소총과 폭탄으로 잘못된 만남을 이어왔다. 네티윗이 ‘징병’을 통해 ‘애국 전선’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네티윗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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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선언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나? 가족들도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아버지는 “돈 좀 찔러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선언까지 하지 않길 바라셨다. 그런데 그건 공평한 방법이 아니잖나. 우리 집이 ‘중하층’정도 되는데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 면제 받을 수 없기도 하구요.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뒤 위협받은 적이 있나
타이 남부에서 복무중인 현역 군인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두들겨 패겠다’는 등 1천 통 이상의 협박 메시지도 받았다.

타이 최남단 3개 분쟁 지역중 하나인 파타니에서 동북부 이싼(Isan) 출신 사병이 순찰을 돌고 있다. 국내치안작전사령부(ISOC)이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타이 남부에는 정규군, 민병대, 경찰 등 8만3천명 이상의 보안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이중 징집된 사병들은 반군정 성향이 강한 동북부 이싼 지방 출신이 많다. (© Lee Yu Kyung)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유는 뭔가
내 나라가 평화롭고 시민들은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해서다. 우린 군정치하에 있다. 폭력과 쿠테타를 반복하는 군인들을 멈추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학생들을 전부 군인으로 만들어 버릴 지 모른다. 양심 지키며 살고싶다.
“양심 지키며 살고 싶다”
타이 군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1947년 이전 타이 군은 그닥 강하지 않았다. 그해 민간 정부를 전복시킨 후 엄청난 권력을 세웠고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프로파간다 교육이 너무 강하다. (군은) ‘강하다,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이미지가 주입되다보니 타이의 많은 어린이들이 커서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게 현실이다.
군사문화가 교육에 미치는 또 다른 영향은 뭐라고 생각하나?
군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니까 쿠데타든 뭐든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다. 3년 전 학교에 ‘군인스타일로’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그에 반대하는 나의 목소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애국가 제창을 비판했더니 친구들이 제 앞에 와서 애국가를 부르더라. 친구들은 내게 ‘왜 애국가 제창을 반대하는지’ 질문하지만 국가를 향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학교가 학생들을 모두 군인처럼 복종적으로 만든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는지를 가르치는 ‘평화 교육’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영향을 준 사례나 사람이 있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병역을 거부했던 세계의 많은 사례들을 뜻깊게 읽었다. 타이 역사에선 라마 6세 (1910~1925년 타이 왕국 통치) 통치 기간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는데 일부 승려들이 국왕의 (영프 동맹군으로) 전쟁 참여 결정을 반대한 대가로 승려직을 박탈 당한적이 있다. 폭력과 군에 반대했던 승려들의 정신이 인상깊었다. 물론 모든 ‘불교’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공산주의자 죽이는 걸 지지한 `불교’는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기 바라나?
내가 보기엔 다들 병역 거부를 원하는데 가족 때문에 못하는 것 같다. (타이에서 징병기피자는 최대 3년형에 처해진다–필자주)
징병 기피자 최고형 징역 3년
앞으로 꿈이 있다면.
훌륭한 작가도 되고 싶고, 정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에 제3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 대선 후보에 도전하는 버니 샌더스를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
이미 작가로 데뷔했다. 쓴 책을 소개해달라.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책을 썼다. 2014년에 쓴 <학교 내 해방선언>은 두 달 전 2쇄가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 교육의 바른 방향에 대해 쓴 건데, 학생들과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썼던 글을 묶은 <내가 설명하고 싶은 역사>도 2014년에 나왔다. 2015년에는 왕실모독죄로 영국에서 망명 중인 짜이 웅파콘 전 쭐랄롱꼰대학 교수와 함께 <자본주의 체제하의 교육>을 썼다. 3년 전 <주노>라는 교육 저널의 편집장을 했는데 그때 짜이 교수에게 기고를 부탁하며 인연이 닿았다.
해가 바뀌고 사흘째 되던 2016년 1월3일, 시리찬 양통 군정 부대변인은 매년 반복해온 발표를 어김없이 이어갔다. 1월9일 어린이날을 맞아 인근 지방 군부대에서 방콕으로 무기를 이송할 것이니 겁먹지 말라는 것. 매년 어린이날이면 방콕에 위치한 제2기병부대 앞마당에는 탱크와 무기가 전시되고 군복 입은 아이들의 ‘군사 놀이터’가 연출된다. “(군이) 학생들을 전부 군인으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며 “양심을 지키겠다”는 네티윗의 목소리가 새해 벽두 독야청청 울리는 이유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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