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둥이질당하고 감옥으로 “잔인했다… 잔인했다…”

버마 학생운동의 부활에 자경단의 귀환, 군사정권하의 폭력 현장이 재현돼 트라우마 살아나

제1053호 2015.03.20
눈물의 이모티콘을 단 누리꾼들의 메시지가 떠다니던 지난 화요일, 버마의 온·오프라인은 분노와 눈물로 범벅이 됐다. 랑군(양곤) 북동쪽 90마일, 바고 지역 레파단에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자잘한 충돌과 음식을 나누며 ‘대치’ 중이던 학생과 경찰은 이날 결국 크게 충돌했다. 정부 대변인 예툿은 학생들이 신발과 물병을 던지며 바리케이드를 부쉈다고 강조했지만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과 목격자들의 진술은 경찰 진압이 거의 ‘난동’ 수준이었음을 암시한다.

1천만유로 예산 들인 ‘인권존중 진압훈련’ 중

버마학생동맹(ABFSU)을 중심으로 한 학생과 교육운동가 100여 명은 지난 1월20일부터 결사의 자유, 교육예산 20%, 중학교 무상의무교육 등 교육법 개정 11개 사항을 내걸고 만달레이에서 랑군까지 약 400마일 도보행진 중이었다(일지 참조). 그러나 3월2일부터 레파단의 바리케이드에 막혔고, 3월10일 오전 10시10분을 데드라인으로 선포했다. 저항의 상징 ‘싸우는 공작새’로 몸 장식을 한 이들은 그 시각까지 길을 내주지 않으면 행진을 강행하겠노라 밝혔다. 길을 터주는가 싶던 경찰은 오후 1시30분께부터 깃발을 흔들지 말라며 태도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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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끌려갔고 많은 학생들이 아웅미에베이크만 사원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경찰이 사원을 포위하더니 다 잡아갔다.”

현장을 취재했던 비디오 저널리스트 초 로런스 밀러는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너무 잔인했다”는 말로 반복 묘사했다. 진압 뒤 도피 중인 한 지도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증언은 사원 상황을 자세히 풀어줬다.

“사원으로 쫓아들어온 경찰이 학생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15인 지도부의 한 명인) 아웅민산이 사원 안에 있던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자 경찰은 학생들의 손을 뒤로 묶었다. 여학생 18명 정도가 여경의 몽둥이질을 당했는데 경찰은 부상자를 병원이 아니라 타야와디 감옥으로 보냈다.”

이번 폭력 사태로 크게 철퇴를 맞은 건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13년 9월부터 버마 경찰을 대상으로 ‘인권존중 진압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약 1천만유로의 예산을 들인 이 훈련에 지금까지 약 4천 명의 경찰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EU 버마 대표부는 이번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그래서 더더욱 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스완아신’이 다시 나타났다

‘과거라면 총을 든 군인들이 진압했을 터인데 지금은 몽둥이 든 경찰이 진압하고 있다’는 게 훈련을 지지하는 논리다. 그러나 폭력의 농도와 관계없이 트라우마는 살아났다. 정글까지 쫓아가 곤봉을 휘두르고, 집집마다 시위대를 색출하고, 사원 안으로 들이닥쳐 싹쓸이식 연행을 자행하는 등 군사정권하의 폭력 현장이 상당 부분 재현됐다. 게다가 인권존중 진압이 경찰훈련으로 가능해질 거라는 생각은 구조적 오판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만 따져봐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인권단체인 ‘평등 미얀마’(Equality Myanmar) 국장 아웅묘민에 따르면, 진압 명령을 내린 이는 바고 지역 국경부 장관인 텟툰 소장이다. 레파단 바리케이드도 그의 명령으로 설치됐다. 또한 지난 한 주간 서너 차례의 시위 진압에는 ‘미얀마경찰’(MPF)은 물론 ‘론테인’(Lon Htein)이라 불리는 폭동 진압 경찰, 그리고 사복 자경대까지 동원되고 있다. 이들 경찰력의 최고사령부는 내무부이고 내무부 장관 코코는 중장 계급을 유지하고 있는 장성이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 인권조사팀은 2005∼2008년 카렌 지역에서 발생한 전쟁범죄 리포트를 통해 코코를 주저 없이 전쟁범죄자로 지목했다. 전쟁범죄자급 인물이 최고명령자로 있는 한 경찰 대상 인권존중 진압 교육이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진압 현장에서 국방부 로고가 박힌 완장을 일부 수거했다”는 도피 중인 지도부의 증언은 진압 폭력이 우발적 충돌이라기보다는 구조적 환경에 기인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자경단 논란까지 붙었다. 전 <로이터> 지국장 폴 문리는 메신저 인터뷰를 통해 “곤봉 든 사복을 봤다. 지난주처럼 완장을 차지도 않았지만 진압 경찰과 같이 있었다”고 말했다. 폴이 언급한 ‘완장’은 지난 3월5일의 상황을 함축한다. 이날 레파단 학생들을 지지하며 랑군시청으로 모여든 시위대는 정복 경찰은 물론 ‘임무’라고 쓰인 빨간 완장을 찬 사복들의 폭력에도 맞닥뜨렸다. 군사정권 시절 악명을 떨친 ‘스완아신’(‘힘의 대가들’이라는 뜻)을 연상시킨 완장 무리에는 10대 소년들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다수 섞여 있었다. 스완아신은 2003년 아웅산 수치 차량을 공격한 데파윈 학살과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사프란 혁명 진압 당시 지대한 역할을 했다. 도피 중인 학생 지도자 역시 “경찰과 스완아신이 새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그동안 스완아신의 존재를 부인해온 정부는 완장 사건 이후 형법 제128조를 들먹이며 정당화했다. 식민시대 유산인 제128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불법집회를 벌이는 시위대가 해산을 거부하면 민간 남성을 조직화해 시위를 해산시키고 체포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버마 인권의 날

공교롭게도 3월13일은 ‘버마 인권의 날’이다. 27년 전 이날 랑군공대 학생 코폰모가 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작은 시위는 그해 88항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네윈 군사독재를 무너뜨렸다. 이번 학생시위의 폭력 진압으로 촉발된 분노가 27년 전 상황과 어떻게 접목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부활한 학생운동을 주시하는 게 전·현직 장성들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유경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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