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의 눈물

– 방콕 여자 (11) –   

* 아래 칼럼은 <한겨레21>에 게재되는 (2013년3월 ~) ‘베이징 여자, 도쿄여자, 방콕여자’ 중 필자가 쓰는 ‘방콕 여자’ 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칼럼 제목은 편집자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4.06.23 제1016호]

[베이징 여자, 도쿄 여자, 방콕 여자] 타이 쿠데타 진압 도중 눈물을 흘려 클로즈업된 병사…
돈 없고 빽 없고 제비뽑기 운까지 없는 사병들이 총알받이 노릇까지 하는 타이 징병제

» 2010년 레드셔츠 진압에 나섰다가 시위대와 협상 뒤 현장에서 빠지던 한 병사가 빨간 수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타이군의 사병 다수가 레드 성향이 강한 빈곤층이거나 동북부 지역 이산 출신이고 이들은 ‘수박병사’로 불린다. (Photo © Lee Yu Kyung)

» 2010년 레드셔츠 진압에 나섰다가 시위대와 협상 뒤 현장에서 빠지던 한 병사가 빨간 수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타이군의 사병 다수가 레드 성향이 강한 빈곤층이거나 동북부 지역 이산 출신이고 이들은 ‘수박병사’로 불린다. (Photo © Lee Yu Kyung)

‘병사의 눈물’은 다양한 장르를 탈 수 있는 소재임이 분명하다. 우선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어할’ 입영소 앞 청년과 그의 여자들(엄마든, 애인이든)이 슬프게 교감하는 한국적 신파가 있다. 이라크에 다녀온 병사가 ‘임무수행’ 중 민간인들을 사살했던 순간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미국적 드라마도 빼놓을 수 없다. ‘병사의 눈물’에 ‘최루액 분사기’나 ‘빨간 수건’ 같은 소품이 등장하면 이건 완벽한 타이 상황이 된다. 장르는? 반쿠데타 시위 용품으로 등장한 조지 오웰의 <1984>가 서점에서 사라지는 시국이니 리얼리티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최근 에피소드는 5월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쿠데타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과 대치하다 욕까지 흥건하게 먹은 한 병사가 젖은 눈가와 떨리는 입술로 카메라에 잡혔고 그의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뭉클하게 달궜다. 세상은 그가 ‘수박병사’일 거라는 암묵적 동의로 그의 눈물을 해석했다. 독특한 징병제 탓에 일반 사병들의 머릿수를 채우는 건 반쿠데타 레드 성향의 동북부 지방, 즉 이산출신이 많고 속내가 붉은 이들은 수박병사로 불린다. 타이 사회 지배계층의 최고봉인 군부의 동원력이 체제의 최소 수혜자인 수박병사에게서 나오는 셈이다.

그 아이러니가 가능한 타이 스타일의 징병제를 보자. 18살 이상 성인 남성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 다만 60% 이상이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필요한 보충력만 매년 4월 제비뽑기로 ‘공정하게’ 가려낸다. 검은색을 뽑으면 면제, 빨간색을 뽑으면 2년간 군복무를 해야 한다. 제비뽑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자원입대하면 대졸자는 6개월을 복무하고, 고교 시절 예비장교과정(ROTC)을 2년 이상 밟은 이는 1년만 더 복무하면 된다. ROTC 5년 전 과정 중 3년만 이수해도 군 면제를 받는다. 모든 걸 다 피해갈 방도도 있다. 뇌물이다. 3만밧(약 94만원)에서 1만밧까지 다양한 경험담이 오르내린다. 부유층에게는 ‘껌값’ 수준이고 어지간한 중산층도 어렵잖게 충당할 수 있는 액수지만, 연간소득 5만8300밧 수준(3.5인 가족·2009년 기준)의 농촌 극빈층에겐 어림없다. 이리저리 걸러지고 나면 결국 돈 없고 가방끈 짧은 이들이 제비뽑기 장으로 불려갈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박병사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대부분 방콕 출신에 언론계나 비정부기구(NGO) 계통에 몸담고 있는 내 지인들 사이에서 군대 갔다온 ‘놈’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는 건 전부 취재 현장에서다. 2008년 타이 남부 빠따니 지방의 한 불교 사원에서 만난 병사도 제비뽑기에 운이 없던 이산 출신이었다. 빠따니를 포함해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과 오토바이 총격이 발생하는 남부 3개 주는 병사들이 배치되기를 가장 꺼리는 지역이다. 2010년 4월 레드셔츠 진압에 나선 군인들이 시위대와 협상 뒤 현장에서 빠질 때였다. 한 병사가 빨간 수건을 머리 위로 흔들었고 박수가 터져나왔다. 2010년 5월 유혈 사태 뒤, 이산 르포를 위해 만난 한 사병은 방콕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바람에 ‘상경투쟁’을 했던 아버지와 ‘부자 충돌’ 할 뻔했단다. 그는 “M16·고무총탄·실탄 같은 건 부사관 이상에게만 지급됐고, 사병들은 방탄복·방패·몽둥이만 들고 맨 앞줄에 섰다”고 말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제비뽑기 운까지 없던 사병들이 총알받이 노릇까지 하는 것이다.

‘병사의 눈물’ 사진에 대해 군은 반쿠데타 시위대가 그의 눈에 최루액을 분사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군이 공개한 후속 사진 속 사병은 오른쪽 눈 아래가 붉게 부어올라 같은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눈이 최루액을 맞아서 부었는지, 무엇에 맞아 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있지도 않은 소품 탓을 하며 코미디로 장르 전환을 시도한 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날 병사의 눈물은 리얼리티쇼의 진수로 남았을 뿐이다.

이유경 : 11년전 집을 나와  5년은 집없는 소녀로 살며 방콕을 제집처럼드나들었다나머지 6년은 ‘방콕여자 거듭났지만 여전히 집을 자주 나간다방콕으로 돌아와 ‘방콕  행복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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