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 신산스런 삼지따의 삶

[2014.05.12 제1010호]

[세계_ 버마 로힝야, 제노사이드 경보 ①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들] 방글라데시로 온 버마 아라칸주 소녀, 월급 2만8천원도 못 받고
가정부 그만뒀는데 미등록 캠프 입구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 필자는 <리영희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3~4월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를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인권단체들은 지난 1월 ‘두쉬얀단(Du-chee-yar-dan)학살’, 최근의 비정부기구(NGO) 공격과 추방 등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 버마(미얀마) 서부 아라칸주에서의 ‘제노사이드 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아라칸주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로 버마를 떠난 로힝야 난민이 가장 많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에서의 생활, 그리고 보트피플이 된 이들이 인신매매 과정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기까지, 라카잉 불교도 무장단체와 버마-방글라데시 국경의 다이내믹한 종족·종교 갈등 상황 등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3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지면상 싣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보충하여 게재합니다. / 이유경 Penseur21   

로힝야 난민 삼지따는 12살 동생과 함께 치타공에서 3개월간 가정부로 일하고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 난민캠프에서 ‘로컬 멤버’ 패거리에게 집단 성폭행까지 당했다. 삼지따는 아라칸주 마웅도로 되돌아갔지만 다시 오고 싶다고 한다. (Photo © Lee Yu Kyung)

로힝야 난민 삼지따는 12살 동생과 함께 치타공에서 3개월간 가정부로 일하고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 난민캠프에서 ‘로컬 멤버’ 패거리에게 집단 성폭행까지 당했다. 삼지따는 아라칸주 마웅도로 되돌아갔지만 다시 오고 싶다고 한다. (Photo © Lee Yu Kyung)

로힝야 소녀 삼지따(17)가 동생 자난따라(12)와 함께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 앞에 하차한 건 지난 3월2일 새벽 5시30분께였다. 자매는 버스로 5시간쯤 걸리는 치타공에서 밤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집이라고 해봤자 이른 나이에 결혼한 동생네가 사는, 허접스러운 짚더미와 비닐을 대강 얹은 흙집 한 칸. 동생네는 쿠투팔롱 ‘미등록’ 난민캠프에 산다. 같은 이름의 ‘등록’ 캠프도 있다. 이 등록 캠프 주변으로 2008년 중순부터 임시변통 피난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게 ‘미등록 캠프’다. 현지 마을과 인접해 있는 캠프는 언덕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등록 캠프 옆 같은 이름의 미등록 캠프

175마일에 걸쳐 넓고 길게 분포한 산악지대와 나프강을 끼고 버마 북서부와 국경을 나누는 방글라데시 동남부 일대에는 군사정권 시절부터 조직적으로 자행돼온 차별과 박해를 피해 버마 아라칸주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세계 최장 해변으로 유명한 콕스바자르, 국경타운 테크나프, 산업공단의 메카 치타공 그리고 몽골계 불교도인 줌마족들의 터전인 치타공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최소 20만 명에서 많게는 50만 명까지 추정되는 난민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1978년 버마 군부독재자 네윈 정권이 감행한 ‘킹드래건 작전’으로 약 25만 명이 피난 왔고, 로힝야 시민권을 박탈한 ‘1982 시민권법’이 본격 적용된 1990년대 초반 또다시 25만 명가량이 밀려왔다. 이 중 20만 명가량이 곧 강제 송환된 것을 비롯해 수많은 난민이 수시로 밀려오고 밀려나갔다. 나프강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난민을 실어날랐고, 이따금 집어삼키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아라칸주 마웅도 타운십을 떠난 삼지따도 이모부와 함께 나프강을 건넜다. 그리고 12월부터는 이모부의 소개로 치타공 현지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해왔다. 한 달 뒤, 외로운 삼지따를 위해 이모부는 동생 자난따라를 같은 경로로 데리고 와 같은 집 가정부로 ‘취직’시켜줬다. 취직한 뒤 하루 2시간을 자고, 하루 네 번 식사를 하는 주인 가족들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새벽 1시에 딱 한 번 끼니를 때웠다. 주인은 지독하게 인색했다. 딱 한 번 ‘오이가 먹고 싶다’는 삼지따에게 오이 하나를 건넨 적이 있다. 배고프고 피곤한 것까진 참겠는데 주인 마담이 동생을 때리기까지 했다. 삼지따는 일을 그만뒀다. 제 발로 걸어나간다는 이유로 애초 자매에게 월급 2천타카(약 2만8천원, 3월 기준 1타카는 약 14원)를 약속했던 주인은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자매는 치타공에서 만난 친절한 이웃 덕분에 난민캠프를 지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 도착하자마자 날벼락을 만났다.

“처음에는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았는데….”

“로힝야들의 다리도 많이 잘랐어”

버스에서 내린 자매를 붙잡은 건 ‘경찰’ 2명과 캠프 인근 마을 주민 자심 우딘, 그리고 인근 불교도 마을 바루아 주민 등 4명이다. 바루아는 방글라데시 불교도 종족 중 하나로 몽골계 외모의 다른 불교도들과 달리 남아시아 외모에 가깝다. 캠프를 자주 들락거려 익히 알려진 인물 자심과 그의 일당은 뺏을 게 없는 자매를 숲 속으로 잡아끌었다. 거세게 우는 동생은 몇 대 맞은 뒤 풀려났지만 삼지따는 숲 속으로 30여 분 더 끌려간 뒤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실을 알린 건 캠프 입구로 들어서며 난민들의 새벽잠을 깨운 자난따라의 울음소리였다. 오전 10시께 만신창이가 되어 풀려난 삼지따는 이내 ‘로컬 멤버’에게 불려갔다.

139951674790_20140509‘로컬 멤버’는 한국의 ‘면’ 정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유니언’(union) 산하 세 구획(ward)에서 각기 4명씩 선출되는 지역 관료를 말한다. 정당을 끼고 당선되지만 동네 주먹들을 휘하에 두고 난민을 대상으로 갈취와 폭력을 일삼아온 게 로컬 멤버의 민낯이다. 쿠투팔롱 캠프 일대에 전설적 악명을 떨친 로컬 멤버 중에는 마울비 박티아르라는 인물이 있다. 2010년 1월 정부의 로힝야 난민 단속 당시 쿠투팔롱 미등록 캠프로 쫓겨와 임시 거처를 짓는 난민들에게 돈을 뜯은 건 마울비 패거리들의 사소한 범죄 중 하나다.

“너무 잔인한 인간이야. 로힝야들의 다리도 많이 잘랐어.”

쿠투팔롱 등록 캠프에서 20년 가까이 살다가 보트피플로 1년 전 말레이시아에 온 카비르 무하마드는 10여 년 전 발생한 잔인한 장면 하나를 풀었다. 당시 유엔난민기구(UNHCR)는 난민들에게 오두막을 지으라며 대나무를 나눠줬다. 구호물자 분배는 현지 토호세력의 손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고 박티아르도 그런 토호세력 중 하나였다. 그때 난민 청년 무하마드 라피크는 UNHCR가 제공한 좋은 자재 대신 허접스러운 걸 배분하는 마울비에게 “강하고 좋은 나무를 달라”고 건의했다. 카비르는 그 건의 자체가 대단히 용감한 행위였다고 말한다.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조심해!”

박티아르에게서 경고를 받은 뒤 일주일, 라피크는 그 일당에 의해 인근 숲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다리 하나를 절단당한 채 돌아왔다.

로컬 멤버들은 2002년 10월, 방글라데시민족당(BNP) 정권이 2만 명 가까운 보안군을 동원해 ‘테러·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치른 ‘클린하트 작전’(Operation Clean Heart) 당시에도 악명을 떨쳤다. 콕스바자르 지구 현지인들 틈에 끼어 살던 수많은 로힝야 난민들을 색출한 게 바로 로컬 멤버였다. 그때 쫓겨난 난민들 다수가 테크나프 타운에 임시방편 피난처를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미등록’ 캠프인 ‘탈(Tal) 캠프’가 생겨났다. 2008년 다시 시작된 단속으로 탈 캠프 난민들이 쿠투팔롱 일대와 레다 등으로 피난했고 두 개의 미등록 캠프가 태어났다.

“콕스바자르와 테크나프 일대에 주먹을 끼지 않은 로컬 멤버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이 고용하는 주먹들은 주로 마을수비경찰(VDP)이고 VDP는 정당과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신분증까지 차고 다니는 경찰의 한 부류다.”

방글라데시에서 14년을 보낸 뒤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로힝야 난민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난민위원회’(RARC)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사덱 무하마드(42)의 말이다. 2011년 12월4일 쿠투팔롱 미등록 캠프 오두막 방화 사건도 이런 ‘경찰’의 만행이었다.

주먹을 끼지 않은 로컬 멤버는 없어

“이 나라 시민들조차 법외 사형이나 실종 등 공권력의 폭력에 노출되는 판에 신분 없는 로힝야 난민들은 오죽하겠나.” 로힝야 난민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아브라르 다카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삼지따 성폭행 사건에 대해 “별로 놀랍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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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동안 공식 인정된 난민을 버마로 되돌려보낼 궁리만 했지 새로 도착하는 난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많은 난민들이 난민 보호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아브라르 교수의 뼈아픈 지적이다.

실상 방글라데시에 머무는 로힝야 난민 수십만 명 중 UNHCR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약 3만 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1992년 정부가 난민 심사를 중단하기 이전에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이다. 아브라르 교수는 난민 심사가 중단된 이래 지난 20년간 UNHCR가 정부를 압박하고 제대로 협상을 벌여왔는지에 의구심을 표했다.

UNHCR 다카 사무소 난민보호국장 스콧 폴은 방글라데시 당국이 절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UNHCR 심사를 통한 난민 인정이 아니더라도 일정하게 신분을 보장할 문서라도 발급해서 보호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스콧 국장은 방글라데시 정부를 관대히 평가했다. 방글라데시가 ‘1951년 난민협약’(1951 Refugee Convention) 가맹 국가가 아님에도 이 협약 정신을 대체로 존중해왔다는 게 그의 평가다. 반면 아브라르 교수는 난민 강제 송환, 국경 폐쇄 등 협약국이 아니라도 준수해야 할 협약 정신을 위반해왔다고 지적한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 심사만 중단한 게 아니다. 2010년부터는 난민들의 제3국 재정착 프로그램도 중단시켰다.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국가들 일부는 로힝야 난민들의 자국 내 정착에 적극적이라는 게 스콧 국장의 귀띔이다. 그러나 이미 엄격한 심사를 마치고 재정착을 대기하던 난민들도 방글라데시 정부의 중단 조처로 발이 묶여 있다.

한편 로컬 멤버 앞에 불려갔던 삼지따는 두 가지 명령을 받았다. ‘성폭행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사라질 것’.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프다”는 17살 소녀의 호소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삼지따는 등록·미등록 관계없이 난민 혹은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국경없는의사회(MSF) 병원에서 소변검사와 피검사만 받은 뒤 외진 곳에 사는 친척집으로 사라졌다. 소녀를 만난 건 약 일주일간 숨어 지내다 아라칸주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삼지따는 “엄마 품에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틀 뒤 자매는 나프강을 건넜다. 마웅도로 무사히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로힝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없는 그 땅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지따가 다시 방글라데시로 오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들려왔다. 난민촌의 열악한 생존 환경과 위험을 모를 리 없는데도 말이다.

오늘도 난민은 배에 오르고

2014년 3월, 늦은 오후가 되면 나프강 주변으로 국경수비대가 순찰을 돌았다. 아라칸주 마웅도에서 피난 오는 배도 단속하고, 방글라데시를 떠나는 밀수선도 단속한다. 2012년부터 강화된 단속이 그러나 보트피플 행렬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밀수선을 타고 지난해 10월 방글라데시를 떠난 자심(35)은 지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 빈자리를 누르 베굼(여·가명) 가족 같은 이들이 채웠다. 지난 1월13일 발생한 아라칸주 두치얀단 마을 학살에서 살아남은 누르 가족 8명은 1월 하순 저녁 8시께 마웅도를 출발하는 어선에 올랐다. 30명가량 태운 어선은 45분이면 닿는 거리를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하느라 밤 11시가 되어 도착했다. 테크나프 ‘ㅈ’ 마을에 정박한 어선 주위에는 사지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마중 나온 친척들이 소리 없이 뒤엉켜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다카·콕스바자르·테크나프(방글라데시)·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Lee@penseur21.com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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