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로 팔려가다

[2014.03.03 제1000호]

[세계] 인신매매 캠프 전락한 카친-중국 접경 르포
내전은 병사의 목숨뿐 아니라, 관계도 존엄도 다 앗아갔다

콘자(가명)는 쉴 새 없이 구토와 설사를 했다. 그녀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자다. 돈 벌러 중국에 간 뒤 인신매매 브로커로부터 버려져 고향으로 돌아왔다. (Photo © Lee Yu Kyung)

콘자(가명)는 쉴 새 없이 구토와 설사를 했다. 그녀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자다. 돈 벌러 중국에 간 뒤 인신매매 브로커로부터 버려져 고향으로 돌아왔다. (Photo © Lee Yu Kyung)

버마 북부 카친주와 중국 접경지대에 자리잡은 반군 수도 라이자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제양 피란민 캠프는 1월 말 현재 피란민 8272명의 삶터다. 우아한 모양새의 대형 바위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른 캠프 안 풍경이나 맑은 냇물을 경계로 중국 땅과 마주한 정경 모두, 만일 인간들이 바글대지 않았다면 더욱 아름다웠을 이곳의 본모습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2년여 전 재개된 내전은 수많은 피란민을 국경 목전까지 빼곡하게 몰려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구멍난 국경을 넘나드는 ‘인간사냥꾼’들의 눈길이 이 피란민들에게 꽂혀 있다.

“중국에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제양 캠프에서 만난 지홈(가명)은 모습 그대로가 꽃다운 18살 소녀였다. 북부 샨주 출신의 카친족인 지홈 가족은 2년 전 버마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마을로 들이닥치기 직전 살던 마을을 떠나 이곳 제양 캠프로 피란했다. 대부분의 피란민들이 그러하듯, 지홈네 여섯 식구 역시 구호물자와 식량으로 목숨만 간신히 부지할 뿐이다. ‘생계’ 수단이라곤 없다. 4남매 중 첫째인 지홈이 지난해 초부터 라이자 시내로 식당일을 다니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난 지난해 4월 초께 시내에서 안면 트고 지내던 친구 하나가 속삭였다. “중국에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가지 않을래?”

“아버지는 신장이 좋지 않고 엄마도 일을 못하시고 나는 맏딸이고…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지홈은 엄마에게 중국으로 돈 벌러 가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리고는 100위안(약 1만7천원)을 챙겨넣은 뒤 중국으로 향했다. 친구는 지홈에게 카친-중국 국경에서 잘 닦인 도로를 2시간 달리면 닿는 중국 도시 잉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국경통과증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었고, 버스에 오른 뒤에는 휴대전화 메시지로 이동 상황을 중계하며 잉장에서 하차해 탈 없이 친구와 조우했다(카친 반군 지역은 모두 중국 통신사의 유심 카드를 사용한다). 그곳에서 친구는 50대 중국 남자를 소개해주며 쿤밍으로 함께 가라고 했다. “네가 중국 신분증이 없으니까 이분이 도와주실 거야.” 친구도 다른 버스를 타고 따라가겠노라고 했다.

다음날 정오께 쿤밍에 도착했지만 친구는 없었다. 대신 30대로 추정되는 또 다른 중국 남자가 나타나 지홈을 인계받았고, 같이 여행한 50대 남자는 자리를 떴다. 이 30대 남자와 다시 버스에 오른 지홈은 다음날 아침 한 어촌에 도착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그곳엔 동행했던 이의 아내와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지홈에게 방 한 칸을 내주고 하루 10위안(약 1700원)가량의 용돈을 쥐어주었다. 그러나 여러 명의 중년 여성들이 번갈아가며 지홈을 감시했다.

“동네 사람들, 우리 집에 처녀 하나 있습니다. 신부가 필요하신 분은….” 지홈을 마을에 데려온 30대 남자가 이렇게 떠들고 다닌 건 3일이 지난 뒤부터였다. 그제야 지홈은 자신이 팔려온 걸 확신했다. 집에 보내달라고 밤낮없이 우는 지홈에게 잉장 출신 동네 아줌마는 지홈이 3만위안에 팔려왔음을 알려주며 포기하라고 말했다. 라이자 ‘친구’와 50대 남자, 그리고 30대 남자, 그 3명이 나눠갖는 금액이었다.

타이 북부 치앙마이에 본부를 두고 지난 10여 년간 카친-중국 접경지대의 인신매매를 모니터해온 카친 여성단체 KWAT(Kachin Women’s Association Thailand)는 중국으로 팔려간 카친 여성 90%가 지홈처럼 ‘아내’로 팔려간 것으로 본다. 엄격한 산아 제한으로 성비가 불균형해진 중국 내 사회문제가 옆나라의 분쟁 상황과 맞물리면서 소녀들이 ‘아내’나 ‘대리모’로, 심지어 여러 가정이 ‘공동구매’해 ‘공동소유’하고 ‘다목적’으로 이용하는 준노예로 팔려가는 경우까지 있다. KWAT가 내전 재개 이후인 2012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 ‘벼랑 끝으로’(Push to the Brink)에 따르면 4살배기 아들을 파는 엄마도 있고, 삼촌에 의해 중국 남자의 아내로 팔려가는 조카도 있다. 내전은 전선에서 병사의 목숨만 앗아가는 게 아니었다. 삶의 터전도, 관계도 그리고 인간의 존엄도 모두 앗아가고 있다.

피해 여성 90%가 ‘아내’로 팔려가

“인신매매의 첫 단계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의 꼬드김에서 시작된다.” KWAT 마이자양 지부 소속 연구원 응쿰복타웅의 말이다. 지난해 8월, 온 가족이 제양 캠프에서 피란 생활을 하던 뭉아웅(18·가명)에게 중국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전화를 걸어온 것도 친척이었다. 뭉아웅은 곧 국경을 넘어 잉장으로 가서 친척이 연결해준 브로커 3명을 만났다. 그중 1명과 그의 카친 부인이 뭉아웅과 동행했다. 잉장에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나흘이 걸려 도착한 곳은 머나먼 산시성 콩시라는 작은 도시였다. 카친, 샨, 팔라웅 등 버마의 다양한 소수민족 남성 7명도 그곳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뭉아웅은 자신이 팔려온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엄마에게 전화까지 걸었다. “엄마, 일 구했어요. 월급 받는 대로 부칠게요.”

콩시에서 이들이 한 일은 벌목 작업이다. 그러나 석 달 동안 돈이 한 푼도 도착하지 않자 수상히 여긴 엄마가 아들에게 걱정스럽게 물었고, 아들은 작업장 매니저에게 왜 월급이 없는지 캐물었다.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그 커플에게 이미 줬다”는 게 매니저의 대답이었다. 뭉아웅을 데려다준 커플은 7명의 여러 달치 월급을 모두 챙겨간 뒤였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브로커의 카친 아내 역시 인신매매 피해자였다. 북부 샨주 출신으로 후난성으로 팔려갔던 그녀는 이제 그녀 자신이 인신매매단의 일원이 된 경우다.

카친주의 인신매매는 휴전이나 내전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돼온 고질적인 문제다. 그런데 내전 재발 뒤 지난 2년여간 심각한 문제 하나가 불거지고 있다. 바로 피란민들이 인신매매의 주 대상이며, 실제 피란민 캠프 안에서 인신매매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반군 통치 구역 피란민 캠프의 얘기다.

KWAT가 2004년과 2007년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들은 주도(主都)이자 정부 통치 구역인 미치나 등에서 3분의 2가량의 인신매매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내전 재개 이후를 기록한 보고서가 사례 연구로 채택한 24건 중에서는 15건이 피란민 캠프에서 발생했고 4건이 라이자 시내에서 발생했다.

한 남성이 버마 북부 카친-중국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한 남성이 버마 북부 카친-중국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피란민들은 일자리가 있다는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인신매매의 표적이 된다. 중국 국경도시 인장의 야경. 국경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이 도시는 인신매매의 핵심 기착지이자 종착지다. (Photo © Lee Yu Kyung)

피란민들은 일자리가 있다는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인신매매의 표적이 된다. 중국 국경도시 인장의 야경. 국경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이 도시는 인신매매의 핵심 기착지이자 종착지다. (Photo © Lee Yu Kyung)

KWAT의 라이자 담당 숑숑은 착취 구조에 가장 취약한 그룹이 바로 피란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대부분 농업인구인 카친족들에게 피란살이는 생계 수단이자 삶의 원천인 ‘땅’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극심한 생계난에 직면한 이들이 ‘중국 일자리’ 얘기에 귀가 솔깃한 건 무리가 아니다. 전체 피란민의 3분의 2 이상이 거주하는 반군지역 피란민 캠프 다수가 카친-중국 국경선을 따라 점점이 자리잡고 있는 지리적 환경도 합법으로든 불법으로든 구멍난 국경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브로커들이 피란민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아예 국경선을 끼고 차려진 라이자 인근의 제양 캠프나 나무다리만 건너면 두 나라를 오고 갈 수 있는 플룸양 캠프가 주 타깃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약에 빠진 남자들… 생계는 여성 몫

내전이 인신매매에 미친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카친독립기구(KIO)는 지난 2년여간 정부군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 이 문제에 신경을 못 쓰고 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닌데.” 불만을 토로한 건 비단 카친여성협회(KWA) 콘라(55)만이 아니었다. KIO는 오랜 세월 카친 여성단체들과의 공조 아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왔다. 탈출한 여성들이 중국 경찰의 도움으로 버마 땅을 밟는 경우라도 정부가 통제하는 국경으로 넘겨지게 되면 도움과 위로는커녕 벌금이나 감옥행을 감수해야 했던 반면, KIO 당국에 인도된 피해자는 여성단체들이 운영하는 쉼터로 보내지거나 재정착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 그러나 KIO ‘반군정부’가 여타 사회문제에 쏟을 관심과 재원, 그리고 인력이 모두 내전이 재개된 이후에는 교전과 구호, 휴전협상에 투입되고 있다.

이 밖에도 높은 마약중독률과 신분증 문제도 인신매매를 악화시키는 고질적 원인이다. 휴전 기간에 인신매매 사례가 가장 많이 보고됐던 미치나는 카친주 옥 채굴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 파칸트와 함께 마약중독률이 대단히 높다. 미치나에 본부를 둔 카친침례교단은 지난해 초 마치나 카친 젊은이 80%가 중독자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부분 주사 한 방에 1천차트(약 1천원)밖에 되지 않는 헤로인 중독이다. 중독자 다수가 남성인지라 생계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 몫이 되었고, 아내와 딸들은 인신매매에 쉽게 노출돼왔다. 지난 2년간 KIO의 마약 퇴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카친 사회에서 삼촌·오빠·아빠가 “마약 과다 사용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촌으로 팔려갔던 지홈은 20일 만에 구출됐다. 다행히 강제 결혼 전이었다. 엄마의 전화번호를 기억했던 그녀는 마을에 사는 샨족 여성의 도움으로 그 여성의 남편 전화기를 이용해 엄마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제양 피란민 캠프 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렸고, 캠프 위원회는 잉장 경찰서에 신고했다. 잉장 경찰은 발신자 위치추적으로 어촌마을까지 날아왔다. 경찰들과 함께 잉장으로 돌아온 지홈은 마중 나온 엄마와 눈물의 상봉을 했다. 카친어와 버마어를 하는 지홈과 샨족어밖에 모르던 샨족 여성은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단다. 자신보다 어려 보였던 그녀 역시 인신매매로 결혼한 게 아니었나 지홈은 의심하고 있다.

뭉아웅도 무사 귀환했다. 어머니의 신고로 추적은 시작됐다. 추적 기간 뭉아웅은 콩시 벌목장에서 광둥 공장으로, 다시 콩시에서 쿤밍으로, 친척이 포함된 브로커 네트워크에 의해 여러 차례 끌려다녔다. 경찰로부터 ‘뭉아웅을 풀어주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경고를 받은 브로커가 뭉아웅을 쿤밍으로 해방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 초, 뭉아웅은 제양 피란민 캠프로 돌아왔다.

탈출 경비 청구한 중국 경찰

가족 부양을 위해 중국에 갔던 지홈은 3천위안(약 53만원)의 빚을 졌다. 중국 경찰이 탈출 경비를 청구한 탓이다. 이 돈이 있을 리 없는 가족은 제양 캠프의 공금을 빌렸다. 경찰의 동행 없이 복귀한 뭉아웅의 경우, 잉장 도착 직전에 머물렀던 바오산에서 무일푼이 됐다. 한 운전자에게 잉장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고, 운전자가 요구한 300위안은 KWAT의 지원으로 운전자 통장에 입금됐다. 그제야 뭉아웅은 잉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엄마와 상봉했다.

“중국 경찰들은 돈을 주지 않으면 좀체 움직여주지 않는다.” KWAT 활동가 숑숑의 한숨이다. 그러나 돈을 밝히는 중국 경찰도 인신매매 피해자를 조건 없이 카친 쪽에 넘겨준 적이 있다. 콘자(30대·가명)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해 11월4일 라이자 병원에서 처음 본 콘자는 ‘살 수 있을까’ 싶은 환자였다. 쉴 새 없이 구토와 설사를 했던 그녀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자다. 3일 전 중국 경찰에 의해 KIO 당국에 넘겨졌고, KIO는 KWAT에 그녀를 넘겼다. 쉼터에서 콘자의 대소변까지 받아내는 일을 치른 이틀 뒤 KWAT는 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중국에 돈을 벌러 간 콘자는 HIV 환자들이 복용해야 할 항레트로바이러스(ARV) 약통도 들고 갔다는 후문이다. 약만 먹으면 환자 티도 안 났고 일상생활에 지장도 없을 터였다. 라이자 병원의 사낭징복와는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여러 날 약을 복용하지 못했고,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채 버려진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중국 경찰이 병원으로 데려갔을 텐데 HIV 보균자로 밝혀지자마자 서둘러 이곳으로 넘긴 게 아닌가 싶다.” 의사도 여성단체도 그렇게 추정했다.

11월 중순 마이자양. 또 다른 국경도시 무세에서 마이자양으로 막 돌아온 응쿰복타웅은 한숨이 깊었다. 정부 통치 구역인 무세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 방지 자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온 그녀는 “무세 지역에 ‘우리 딸이 중국으로 시집갔다’며 뿌듯해하는 어머니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이 아예 노골적으로 돈을 들고 와서 거래한다는 게 응쿰복타웅의 설명이다. 카친 전역이 교전 아니면 정부와의 휴전협상 이슈로 떠들썩한 시절, 지난하고도 만연한 인신매매 문제를 다루는 건 온전히 KWAT와 KWA 등 여성단체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었다.

라이자·마이자양(버마 카친주)=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 2012년 평균환율 1위안=약 175∼180원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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