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물바다’

– 방콕 여자 (2) –   

* 아래 칼럼은 <한겨레21>에 게재되는 (2013년3월 ~) ‘베이징 여자, 도쿄여자, 방콕여자’ 중 필자가 쓰는 ‘방콕 여자’ 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칼럼 제목은 편집자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3.04.29 제958호]

[베이징 여자, 도쿄 여자, 방콕 여자] 타이 ‘송끄란’ 축제 올해도 321명 사망, 금주구역 86곳 설정했지만 소용없어

송크란 새해 물축제기간 타이 전역은 물바다가 된다. 복을 기원하며 물세례를 가하던 전통은 그러나 높은 음주사고와 과도한 물싸움으로불편해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Photo © Lee Yu Kyung)

송크란 새해 물축제기간 타이 전역은 물바다가 된다. 복을 기원하며 물세례를 가하던 전통은 그러나 높은 음주사고와 과도한 물싸움으로불편해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Photo © Lee Yu Kyung)

여러 달 전, 오랜 ‘가출’ 끝에 방콕으로 돌아온 다음날 시장가방 두 개를 메고 슈퍼로 향했다. 깨알 목록에 없는 주류 코너를 도는 찰나 멈칫하다가 들어섰다. 타이산 허브와인을 집는데 점원의 손가락이 살며시 선반 위 안내판을 가리킨다. 아차, 술을 살 수 없는 오후 3시다. 타이에서는 오후 2~5시, 자정~오전 11시에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 야간 판금은 그렇다 치고 낮술 판매를 금하는 이유는 아리송하다. 술이 고픈 이는 식당 가면 되고, 10ℓ 홀세일은 가능하니 말이다.

슈퍼 주류코너에 가면 어디나 붙어있는 안내판. 타이에서는 오전 11-오후 2시, 오후 5시-자정에만 술을 살 수 있다. (Photo © Lee Yu Kyung)

슈퍼 주류코너에 가면 어디나 붙어있는 안내판. 타이에서는 오전 11-오후 2시, 오후 5시-자정에만 술을 살 수 있다. (Photo © Lee Yu Kyung)

3월 초 방콕 시장 뽑던 날, 하필 집에 놀러온 친구는 맥주를 “커피나 한잔…”쯤 여기는 영국인이다. 술을 팔 수 없다며 난감해하는 구멍가게 주인에게 ‘저는 이 나라 투표권이 없어요’라고 꼬드겨 배낭 안에 ‘대자’ 한 병 담아왔다. 타이에서는 선거일, 불교 4대 기념일에도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

이쯤 되면 백성들 술상에 왜 나라님이 간섭하느냐고 궁시렁댈 수 있겠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나면 술상 무게 조절하려는 나라님 심정 이해할 만하다. 골목과 대로변을 누비는 오토바이가 술을 만나 크고 ‘잦은’ 사고를 낳기 때문이다. 음주사고의 심각성은 송끄란(동남아 새해) 물축제 기간에 잘 드러난다. 4월13일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공휴일은 앞뒤로 부풀어 6~7일 홀리데이가 되기 십상인데, ‘위험한 7일’로 불리는 이 기간에 방콕 전역은 ‘물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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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크란 새해 물축제기간 타이 전역은 물바다가 된다. 복을 기원하며 물세례를 가하던 전통은 그러나 높은 음주사고와 과도한 물싸움으로불편해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Photo © Lee Yu Kyung)

송크란 새해 물축제기간 타이 전역은 물바다가 된다. 복을 기원하며 물세례를 가하던 전통은 그러나 높은 음주사고와 과도한 물싸움으로불편해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Photo © Lee Yu Kyung)

올해 ‘물바다’를 앞두고 더욱 긴장감이 조성된 건 3월 말 발표된 ‘도로사고조사센터’ 보고서가 타이 도로를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6위’에 올려놓은 탓이다. 당국은 고심에 빠졌다. 송끄란 기간에 주류 판매를 전면 금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 궁여지책으로 나온 건 전국 86곳 ‘금주구역’ 설정. 효과? 별로다. 사고 2828건, 사망 321명, 부상 3040명. 올해의 송끄란 성적표다. 지난해보다 1명 더 죽었다. 물론 헬멧 미착용, 과속 등 복합 요인도 있다.

한때 물싸움에 정신줄 놓던 내가 ‘물총 거부자’가 된 건 8년 전. 북부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곡예길 버스를 달리는데 물세례가 끊이지 않았다. 아찔했다. 물총 싸움 현장에서 전사하는 게 아닐까 하고. 치앙마이에선 원고 전송차 노트북 들고 인터넷 카페로 향하며 ‘두 손 들고’ 살금살금 걷는 내게 물대포가 쏟아졌다. ‘월중 행사’까지 치르던 몸은 화딱지에 부들거렸다. 그즈음 물과 술이 범벅된 ‘송끄란 사상자’의 진실까지 알아버렸다. 아, 과해도 너무 과하네.

송크란물축제기간 유니폼처럼 옷을 맞춰입은 젋은이들이 맥주 한모금과 물싸움을 병행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송크란물축제기간 유니폼처럼 옷을 맞춰입은 젋은이들이 맥주 한모금과 물싸움을 병행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물총, 물바다. 물바가지 다 좋다. ‘구악’(舊惡) 쫓는 물의 여신이 몸 쓸어주는 기분 짜릿하다. 하나, ‘항복 자세’도 소용없는 공격성. 경제성장을 탄 오토바이 구매력이 알코올과 만나 일으킨 몹쓸 화학작용. 40년 전 축제에는 없었을 ‘신악’(新惡)들이 내게서 그 촉촉한 물맛을 앗아갔다.

이유경 : 10년전 집을 나와  5년은 집없는 소녀로 살며 방콕을 제집처럼드나들었다나머지 5년은 ‘방콕여자 거듭났지만 여전히 집을 자주 나간다방콕으로 돌아와 ‘방콕  행복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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