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얼굴, 아시아의 투쟁 / Portraits of Asia – Nepal

2008년 4월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 카브리 지방 사무실은 선거준비로 바빴다. 2006년 네팔의 제 2 민중항쟁으로 봉건왕정을 무너뜨린 후 2년 만에 실시되는 제헌의회선거는 10년 무장투쟁을 접고 하산한 마오이스트 공산당에게 중요한 시험대였다. ‘제헌의회선거’는 바로 그들이 목숨 걸고 쌓워온 주 의제였기 때문이다 (© Lee Yu Kyung 2008)

네팔 제헌의회선거에서 당선된 마오이스트 여성지도자 히실라 라미(당시 48세)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젋은 시절 이래 줄곧 공산주의 운동과 산악반군지대에서 보내온 그녀다. (© Lee Yu Kyung 2008)

네팔연방공화국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2006년 4월, 주류정치권의 야당과 산악지대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던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연대한 ‘제 2 민중항쟁’을 거쳐 238년 힌두 왕국은 마침내 공화국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공공의 적, 왕정주의자들이 힘이 꺼진 공화국의 정당들은 이제 그들간의 정책과 권력다툼으로 여전히 불안한 시국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4월 10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제 1당으로 깜짝 등장한 마오이스트 공산당 의장이자 총리직을 맡고 있던 푸슈파 카말 다할 (일명 ‘프라찬다 동지’)은 계속되는 보수정당들의 ‘반란’ 에 대한 항의표시로 2009년 5월 총리직을 사임했다. 2008 제헌의회선거 당시 자신의 강력 지지기반인 수도 카트만두에서  마오이스트 후보에게 패배하는 치욕을 경험한 네팔공산당(맑스-레닌연합) 사무총장 마다브 쿠마르 네팔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도 2010년 6월말 사임했다. 새 정부 구성을 두고 다시 몸살을 앓고 있는 네팔의 얼굴을 2006년 제 2민중항쟁, 그리고 2008년 제헌의회 선거 취재를 바탕으로  올린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시장풍경. 네팔은 가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순박하고 쾌활하며 외향적이고 정치에 관심도 많다. (© Lee Yu Kyung 2008)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 최고 사령관 프라찬다 동지. 본명 푸슈파 카말 다할, 전직 교사. 10년 내전으로 네팔을 붉게 물들인 프라찬다는 2008년 제헌 의회 선거결과 마오이스트가 제 1당이 된 후 네팔 공화국의 총리직을 역임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항의 표시로 자진사퇴했다. 2008년 5월 28일 공화국으로 선포된 네팔은 그러나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한 채 정치 혼란을 겪고 있다. © Lee Yu Kyung 2008)

네팔 수도 카트만두 북부에 자리잡은 어둑한 건물안에는 마약 중독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합숙하고 있다. 마오이스트 산하 청년공산당연맹(YCL)이 운영하는 소위 ‘사회교화소’이다. (© Lee Yu Kyung 2008)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 대원이 벨기에산 박격포를 챙기고 있다. 1996년2월, 농기구와 사제폭탄으로 ‘인민전쟁’을 시작한 마오이스트의 무기는 해를 거듭할 수록 진화했다. 네팔 왕실군 (현 ‘네팔 군’) 이 잃고 간 미국산, 영국산, 벨기에산…산…산 무기들이 마오이스트 반군의 손으로 넘어왔다. (네팔, 2006) 마오이스트는 1만 3천명의 희생을 낳은 10년 무장투쟁을 접고 2006년 하반기 주류정치권으로 들어왔다. (© Lee Yu Kyung 2006)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 인민해방군(PLA) 여성대원이 산골마을 집회에 도착하며 모여든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 Lee Yu Kyung 2006)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 인민해방군(PLA) 여성대원이 산골마을 집회에서 상념에 잠겨 있다. (© Lee Yu Kyung 2006)

마오이스트 문화선전단이 마을 정치집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문화선전단은 마오이스트 인민해방군 부대와 늘 동행하며 마을을 방문하고 정치집회를 연다. (© Lee Yu Kyung 2006)

네팔 마오이스트 대원. 무장 투쟁 당시 (1996-2006) 그들은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 Lee Yu Kyung 2006)

마오이스트 대원이 네팔 중부 람중 지방 산악지대에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과 조우하고 있다. (© Lee Yu Kyung 2006)

무장투쟁 시절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 2006년 봉건왕정을 무너뜨린 제 2의 민중항쟁을 계기로 무장투쟁을 접고 주류 정치권으로 들어와 있다 (© Lee Yu Kyung 2006)

네팔 마오이스트 공산당 인민해방군 (PLA)에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최소 1/3은 여성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Lee Yu Kyung 2006)

힌두왕국에서 ‘인민공화국’으로 가는 길이 쉬울리 없다. 2006년 힘을 모아 봉건왕정을 무너뜨린 네팔의 피플파워는 그러나 2008년 제헌의회 선거과정에서 급진, 진보, 보수 정당간에 폭력과 비방전이 그늘을 드리웠다. 소위 주류정당들은 마오이스트를 폭력과 협박을 일삼는다며 맹비난했지만, 마오이스트 역시 폭력사태의 모자라지 않은 피해자였다. 사진은 당시 선거 폭력 사태로 사망한 마오이스트의 장례식 장면. (© Lee Yu Kyung 2008)

2008년 4월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수도 카트만두 인근 카브리 지역의 버스정류장에는 마오이스트들의 선전물로 도배되어 있다 (© Lee Yu Kyung 2008)

네팔공산당 (맑스-레닌연합) – CPN (UML) – 카트만두 집회 모습. 마오이스트 보다는 온건하고, 의회당보다는 좌편향적인 이당은 수도와 지식인 층에 지지층이 많다. (© Lee Yu Kyung 2008)

한 네팔 여성이 2008년 제헌 의회 선거에서 투표하고 있다. 2006년 제 2민중항쟁으로 봉건왕정을 무너뜨린 네팔은 2년 후 치뤄진 제헌 의회 선거를 거치며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 Lee Yu Kyung 2008)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라라 (G.P. Koirala)는 의회당 대표이자 네팔 주류정치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2010년 3월 85세로 생을 마감했다. (© Lee Yu Kyung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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