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타이의 ‘레드존’

[2010.06.25 제816호]

‘레드 셔츠’의 본거지 이산을 가다… 공산 게릴라의 전통을 품은 타이 동북부에서 살아난 붉은 기운

» 이산에는 레드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키티삭 포사왕처럼 과거에 타이공산당에 몸담았다가 레드 세력이 된 사람이 적잖다. (Photo by Lee Yu Kyung)

6월4일 찾아간 어둑한 방 안에는 여느 타이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푸미폰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주인 잃은 방은 단정했고, 가운데 놓인 선풍기가 여전히 사람 사는 집인 듯한 착각을 자아냈다. 타이 동북부 깐라신 지방에 자리잡은 이 민가는 지난 5월19일 방콕에서 타이 정부군의 ‘레드 셔츠’ 시위대 진압 당시 사망한 아카라데 깐 게우(22)가 살던 집이다.

“어머니는 10년 전 에이즈로 사망하고, 2년 전에는 함께 살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뜬 뒤 녀석 혼자 지냈어. 내가 옆집에 살면서 끼니를 챙겨줬지….” 이모 인타라참 인풍(58)은 목이 메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지난해 4월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한 송끄란 유혈 사태를 계기로 레드 셔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카라데는 방콕의 레드 셔츠 시위에 참여하면서도 주로 의료 텐트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몸집이 작아 사수대 같은 건 못한다”는 게 이모의 말이다.

사원에서 저격당한 ‘레드 청년’

지난 5월19일, 진압이 시작되자 아카라데는 마지막 피난처 빠툼와나람 사원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생을 마감했다. 이틀 뒤 장례식에 참석한 한 목격자는 그가 저격수의 총을 맞은 간호사를 도우려다 총에 맞았다고 했다. 간호사 역시 앞서 총탄에 맞은 이들을 돕다가 저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맞은 이들과 손 내미는 이들의 피로 ‘붉은 사원’이 돼버린 빠툼와나람 사원의 총격 사건은 5월19일 유혈 진압의 가장 큰 논란으로 남았다.

사원 총격의 공포를 고스란히 안고 눈물로 레드 셔츠가 회군한 지 보름이 지난 뒤에야 기자는 그들의 뒤를 밟았다. 레드 시위대 다수가 돌아간 타이 북동부 ‘이산’ 지방으로 향했다. 이산은 타이 인구 3분의 1에 달하는 약 2천만 명이 거주하는 타이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다. 농촌이 대부분인 이 지역은 인접한 라오스 말과 가까운 방언을 쓰고,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을 또 다른 수도로 여길 만큼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민간 자본이 영세한 이산은 정부 정책이나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타이 시골 지역을 연구해온 앤드루 와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박사는 이산 주민들이 시국과 정부정책에 유독 민감한 배경을 그렇게 설명한다. 탁신 전 총리의 ‘30밧 의료정책’은 물론 ‘100만밧 마을기금’ 등의 정책이 상대적 빈곤과 소외 속에 살아온 이산 주민에게 획기적으로 와닿은 배경이다. 이렇게 이산은 인구의 절대다수가 레드 셔츠 지지자인 ‘레드존’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방콕의 엘리트가 중심이 된 ‘옐로 셔츠’와 대비되는 세력이다.

가난한 붉은 지역, 이산

» 타이는 가난한 농촌지대인 동북부(이산)와 북부, 방콕이 있는 부유한 중부, 무슬림이 일부 거주하는 남부로 나뉜다. 짙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동북부에 레드 지지세가 가장 강하고, 옅은 붉은색의 북부가 그다음 강하다. 중부와 남부엔 현 집권 세력 지지가 강하다.

이산의 푸판 산맥은 1970~80년대 타이공산당(CPT·80년대 중반 이후 쇠퇴해 사멸) 게릴라가 넘나들던 곳이다. 베트남과 라오스에 이어지던 공산화 도미노의 영향에 CPT 게릴라의 본거지 푸판 산맥까지 있어서 사꼰나콘, 깐라신, 묵다한 등 동북부 지방은 예전부터 ‘붉은’ 기운이 강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올해 방콕 중심가를 두 달 넘게 점거한 주역이다. 묵다한 지방 빡총 마을 전체 200여 가구 중 절반 이상이 방콕 시위 현장을 다녀갔다. 과거에는 베트남전을 치르는 미군의 군사기지로 활용돼 공산 게릴라가 얼씬하기 힘들었던 이산의 중심도시 콘깬과 우돈타니도 지금은 붉디붉은 ‘레드존’이다. 콘깬 지역의 한 레드 셔츠 지지자는 콘깬 주민의 약 70%가 레드 셔츠라고 자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빈곤 지역 젊은이들이 주로 징집 대상이 되는 타이의 징병제 아래서, 진압에 동원된 군인 중에도 이산 출신이 많다.

“방콕에 있는 동안 아들과 수시로 통화하고, 위치를 확인하고… 심지어 부대를 도망쳐나올 수 있는지 물었다.” 깐라신 지방 출신 프라윗(58·가명)은 4월7일 방콕 시위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사흘 뒤 방콕에서 유혈 진압에 투입된 군인 아들과 조우할 뻔했다. 그날 이후 프라윗은 차마 방콕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M16, 고무 총탄, 실탄 같은 건 하사관 이상에게만 지급됐고 우린 방탄복, 방패 그리고 몽둥이밖에 없었다. 진압 당시 맨 앞줄에 배치된 건 우리 사병들이다.” 군에서 휴가를 받아 집에 머물고 있던 통차이(22·가명)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는 논란이 돼온 실탄 사용과 발사 여부, 발사 각도와 관련해 상부의 명령 없이 살상을 노리는 각도로 실탄을 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통차이는 “군복무를 마친 친구 한 명도 레드 셔츠 사수대를 했다”며 “군복무를 마친 뒤 레드 셔츠 시위가 재개된다면 기꺼이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진압에 ‘끌려’나왔지만, 속은 시위대와 같이 붉은 전형적인 ‘수박 병사’였다.

한편 시위 진압 뒤 평온을 찾은 듯 보이는 타이의 뒷마당에선 레드 셔츠 활동가를 포함한 반정부 인사의 검거와 체포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나날이 심해지는 미디어 검열로 가히 ‘공안 정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레드 셔츠 핵심 지도부는 최소 3년형에서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테러리즘죄’로 수감 중이고, 이산의 코랏 지역에서는 4월9일 밤 레드 셔츠 현지 지도부 콩 케우(24)가 괴한의 총을 맞아 죽었다. 인권단체가 시위 진압 이후 100여 명이 실종됐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타이 일간지 <마띠촌> 6월10일치는, 지난 두 달여간 비상사태령 위반으로 85명이 연행되고 형법 위반으로 819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전했다. 이 중 787명이 지방 출신이다.

이산의 사꼰나콘 지역 출신 르완 시수포(46)도 검거를 피해 거처를 옮겨다니는 수백 명의 레드 셔츠 중 한 명이다. 그는 5월25일까지 경찰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았고, 6월7일까지 소환 날짜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답을 얻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친탁신 정당에 투표한 적이 없다는 그는 레드 셔츠 운동과 거리를 유지해오다 3월12일 재개된 시위 때부터 동참했다. 레드 셔츠의 ‘의회 해산과 민주적 선거’ 요구가 너무나 정당했기 때문이란다. 르완은 “정부는 주민의 마음을 잃었고, 레드 셔츠는 그 마음을 얻었다. 다음 시위엔 더 많은 이가 모여들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 방콕의 레드 셔츠 진압 당시 빠툼와나람 사원으로 피신했다 숨진 아카라데 깐 게우의 집에는 푸미폰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저강도 내전으로 이어질 전망도

패배감과 혼란도 있지만, 이산에서는 ‘다음’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다. 일요일에 여는 시장에서 붉은 셔츠 입기, 군인에게 물건 팔지 않기 같은 소박한 실천방안이 논의되는가 하면, 콘깬 지방에서 교사로 일하는 파니 탐마(51) 같은 이는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선거가 공정할지 의심스럽다”고 우려한다. 좀더 과격한 충돌 양상을 점치는 전문가도 있다. 풀 챔버 박사(독일 하이델버그 정치학회 회원)는 올해 시위에 출몰해 정부군 사령관을 저격한 ‘블랙 셔츠’(군 내부의 레드 지지 세력으로 짐작됨) 등을 중심으로 “선포되지 않은 저강도 내전”이 지방에서부터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산 지방에는 “탄압이 계속되고 지하운동이나 무장조직이 조직되면 동참할 사람은 널려 있다”거나 “(반군에) 먹을거리와 피난처 정도는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전 CPT 출신 레드 셔츠들은 “이 땅에선 비폭력 투쟁이 먹히지 않는다”는 푸념을 털어놓고 있다고 일부 주민들이 귀띔해주었다. 부활한 레드존에 반란의 기운이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다. 2009년 송끄란 유혈 진압 사태에 분노해 2010년 방콕 거리로 나선 이가 더욱 많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아나는 민병대의 공포

받들어 왕실!

“그냥 방아쇠를 당기는 거야, 5월19일 군이 한 것처럼. 누가 공산당이고 아닌지 알 수 있나….”

타이 동북부 묵다한 지방 주민 용 농숙(57)은 공산반군을 잡던 자신의 과거를 거리낌 없이 풀어놨다. 1971년부터 약 20년간 그는 1954년 창설된 타이 최대 민병대 ‘국방의용군’ 소속으로 공산반군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이제 그는 반정부 레드 지지자다. 그는 예전엔 정부군과 함께 반군을 잡던 총잡이였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부에 대한 증오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며 고개를 저었다.

알고 보면 그가 민병대가 된 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었다. 용은 15살 때부터 공산군을 돕다 18살 때 군에 체포됐고, 민병대로 차출된 뒤 반군 진압에 동원된 것이다. “우리 모두 타이 피플,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레드 셔츠 진압 현장에서 이따금 군의 스피커를 타던 노래나 연설은 대략 그런 유였는데, 39년 전 체포된 용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던 교관도 그런 말을 물리게 해댔다. 그러나 막상 군사훈련에 돌입하자 “보이는 대로 (공산군을) 쏘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역시 공산당원이던 키티삭 포사왕(58)도 “과거에 공산반군을 진압하는 걸 경험했기에 나이 좀 있는 이들은 타이군이 얼마나 잔인한지 잘 안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사실 방콕 시위의 유혈 진압 이후 레드 셔츠에 대한 옥죄기가 계속되는 요즘 이산은 공산반군 시절에 왕성하던 민병대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있다.

일부 마을에서 5월 말부터 돌고 있는 종이가 그런 조바심에 불을 댕긴다.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왕실을 숭배하고 보호할 것이며….” 깐라신 지방 한 마을의 이장들은 내무부에서 지방정부를 거쳐 마을로 내려보낸 이런 내용의 종이에 300명씩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유사한 문구가 적힌 또 다른 종이는 이장에게 서약을 ‘이행할’ 주민 20명을 조직할 임무를 부여했다.

레드 셔츠를 ‘반왕정주의자’로 몰아세운 정부가 사병 조직을 만들어 이들을 감시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무슬림 반군이라는 ‘유령 게릴라’와 싸우고 있는 타이 남부 분쟁 지역에서도 민병대는 물론 마을 단위로 조직된 무장 사병들이 반군작전에 이용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이산 주민들의 우려가 괜한 게 아니지 싶다. “우린 이미 왕실을 존중하고 왕을 사랑하는데….” 서명 용지가 도는 한 마을의 주민 퐁판(55·가명)은 말끝을 흐렸다.

묵다한·깐라신·콘깬(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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