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스리랑카 인권운동가로부터 온 편지 (8월 1일, 2009) –

아래 편지는 스리랑카 인권운동가이자 2009년 ‘지학순 정의 평화상’ 수상자인 루키 페르난도 님으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소수 타밀족은 물론 (인종을 불문하고) 반 정부 인사에게 가해지는 정권의 살인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루키님은 스리랑카 내전으로 인한 인권 침해 실상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국제사회에 알려온 인물입니다. 아래 편지는, 정부군이 선포한 내전 ‘종식’ 이후의 스리랑카 상황을 요약 하면서 국제사회, 특히 한국  시민사회가 행동에 나서줄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과 운동가들께서도 편지를 받으셨을 줄 압니다만, 늦게나마 한글로 번역하여 보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8월 1일 받은 편지인데 ‘인터넷이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을 떠난 지금에서야 올리는군요. 님들이 속한 조직과 까페 동무들에게 널리 퍼뜨려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

– Penseur21 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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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 스리랑카 정부는 반군 타밀 타이거(LTTE)의 패배를 선포하고, 타이거의 군사 및 정치 최고 지도자들의 죽음과 그들이 7년간 통치하던 영토를 수복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싱할라 커뮤니티 (스리랑카 다수족)는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였습니다. 눈여겨 볼 대목은 타밀 커뮤니티(스리랑카 소수민족) 사이에서는 이런 축하행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타밀 타이거에 대한 동정과 지지가 없는 나의 타밀 친구들조차도 종전을 축하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들은 타밀 타이거의 손에 고통 받은 경험이 있거나 심지어 타밀 타이거에 매우 비판적인 이들인데도 말입니다.

싱할라족의 축하행사는 수 많은 타밀인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부상자들과 함께 비참하게 울부짖는 와중에 벌어졌습니다. 280만명 이상의 타밀족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음식도, 물도, 거처도, 의료시설도 그리고 친구나 친지를 자유롭게 만날 자유조차 박탈 당한 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난민캠프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습니다. 하여, 나의 친구들과 친척들, 그리고 엔지오 일꾼들, 불교도, 크리스챤 성직자들까지도 (다수족들의) 종전 축하에 참여하는 걸 보며 저는 비탄을 금할 길 없습니다. 이건 마치 한 누이의 장례식이 뒷방에서 치뤄지는 동안, 같은 집 앞방에서는 또 다른 누이의 결혼식이나 생일축하 파티를 여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두 행사를 동시에 말입니다! 축하 분위기가 일정하게 수그러들긴 했지만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 중, 그리고 전쟁 이후 많은 관심들이 북쪽 (최후까지 교전이 벌어진 지역) 에 맞추어져 있는 동안, (2년전 전투가 종료된) 동부 지역 피난민들은 아직도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습니다. 살해로, 실종으로, 정부군과 동맹한 무장 세력(주로 타밀 민병대)에 의한 어린이 병사 모집 등으로 말입니다. 동부 피난민들은 그들이 돌아가기 두려워하는 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있습니다. 피난민들과 (강제 이주 후) 재 정착한 이들을 위한 생필품 부족현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부지역과 수도 콜롬보 그리고 여타 다른 지역에서 검문소 수치는 줄어들었고, 고기잡이에 대한 제약조치도 완화되었지만 말입니다.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 어부들의 고기잡이 조치를 번번히 제한해 생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어왔음 – 역자 주)

반 정부 인사에 대한 전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타밀 타이거와의 종전 이후 되려 새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콜롬보 외곽과 지방선거가 예정되었던 북부지역에서는 저명한 기자가 납치 되고 구타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북부지역에서는 신문들이 불타고 미디어 조직들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법조인과 인권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위협과 협박 조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야당의원들은 경찰에 심문당하고 유효한 비자를 소지한 외국 국회의원(카나다)이 추방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 그나마 유일하고도 미미하게 구호활동을 벌이던) 국제적십자사(ICRC)는 정부로부터 활동 폭을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일꾼들과 기자들은 그들의 의견을 표현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감금당하고 있습니다. 전투 지역에서 극단적인 어려움과 위험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부상자 치료를 감행했던 의사들 역시 감금중입니다. 그 전투 지역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민간인들과 함께 남아 그들을 돌보던 여섯 명의 신부들과 수녀들도 마찬가지로 감금 중입니다. 또 다른 카톨릭 신부는 군 검문소에서 보인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상태입니다. 최근 킬리노치 지구 (Kilinochchi : 타밀 타이거 통치 구역의 수도이며, 올해 1월 2일 정부군에 의해 재 점령된 지역)의 정부 집행관(Government Agent : 스리랑카 각 주마다 배치된 공무원 수장을 일컬음)이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의사도 구속되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비록 정부는 가장 잔인한 테러리스트 조직과 그 지도부를 패배시켰다고 주장하지만, 2006년 이래 벌어진 수많은 인권침해에 대해서 그들은 단한 번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위에 열거한 최근의 사례들을 포함하여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에는 국회의원, 구호단체요원, 기자, 신부에 대한 암살도 포함됩니다. 인권운동가, 유엔 그리고 일부 외국 정부 (한국정부는 제외입니다) 가 스리랑카 전쟁 기간 국제법을 위반한 사례에 대한 국제적 규모의 수사를 하자고 요구해왔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이런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지학순 평화상 수상이후 저는 태국과 캄보디아, 프랑스, 스위스, 말레이시아 그리고 다시 한 번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방문길에 저는 스리랑카민간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언론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부 관료들에게 지속적으로 환기시켰습니다. 그리고 4개월 이상 떠나 있던 스리랑카로 돌아온 게 약 한달 전입니다.

스리랑카로 돌아온 이후 저는 인권운동가들, 저널리스트, 교회 일꾼, 그리고 부상을 입거나, 감금되고, 위협에 놓인 이들을 지원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금된 이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법정에 참석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다른 이들을 조직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인도 뉴델리에 가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리랑카 인권운동가들이 직면한 탄압상황에 대해 알렸습니다. 또한 타밀 피난민들이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며 캠페인을 벌이는 시민단체와 야당을 지지하는 활동도 한 바 있습니다. 저는 또한 북동부(타밀족 거주 지역) 친구들과 동료들과의 연락을 재개하기 시작했고 일부와는 콜롬보에서 만났습니다. 동부를 방문하였고, 북부도 곧 방문할 예정입니다. 제가 운영하던 인턴쉽 프로그램도 재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부 출신 타밀인들은 인턴에서 제외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단체의) 마지막 타밀 인턴이 연행되어 두달간 감금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학순 평화상의 파급력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09년 5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 특별회의소집을 지지하였습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지지한 국가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또한 이 특별회의의 최종 결의안에서 스리랑카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투표에서는 기권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스리랑카 정부의 입장에 호의적인 결의안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길 바랬지만, 그나마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한국과 일본정부가 그 안에 찬성 투표하지 않은 건 다행입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지학순 평화상을 수상한 뒤 한국의 외무부 장관과 만났던 점, 그리고 스리랑카 상황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 저의 인터뷰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평화상 수상뉴스는 스리랑카 카톨릭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다른 조직들과 뉴스 웹사이트들도 나의 수상 소감을 보도해주었고, 스리랑카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을 야기시키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 수상 소감은 불어로도 번역되어 온라인에 올려졌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밝힌대로, 저는 제가 받은 상금을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인권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상금 중 큰 부분을 떼어 위협과 감금에 시달리던 한 인권운동가 (그는 북쪽 출신 타밀입니다)와 그의 가족이 이 나라 밖으로 피신하는데 썼습니다. 또 16개월째 감금 중인 기자의 아내에게도 큰 몫을 기부했고, 전투 지역에서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치료하다 감금된 의사들 (5명) 중 한 명의 가족에게 식비로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감금 중인 또 다른 기자의 안경 구입을 위해서도 제 상금이 쓰여졌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십시오

대 타밀 타이거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되었지만 타밀 민간인들과 정부 비판자들 (인권운동가, 기자, 법조인, 교회 지도자 그리고 국회의원들)에 대한 전쟁과 탄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여, 저는 제 수상소감에서 밝힌 호소를 이 글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하는 바입니다.

“제게 이 상을 수여하고 축하해 주고자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여러분! 단순히 이 자리 참석하는 데 그치지 말아 주십시오. 한국 국민들, 종교(교회) 지도자들, 정부 지도자들, 또다른 영향력 있는 이들과 단체들을 동원하여 탄압받는 스리랑카 국민들과 인권운동가들을 지지해주십시오. 우리는 권리와, 존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실천방안을 제안합니다.

첫째, 스리랑카의 민간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업데이트 해주십시오. 한국정부가 스리랑카 정부와의 양자회담에서 이런 이슈들을 다루도록 압력을 넣어 주십시오. 더 나아가 한국 정부가 IMF, 세계은행, 아시안 개발은행 등 스리랑카에 기부하는 기관들과도 만나 스리랑카 문제를 의논하도록 요구하십시오.

둘째, 한국 언론에 스리랑카 인권운동가와 민간인이 탄압받는 실상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고, 한국 언론이 스리랑카 정부에 대한 우려의 표시를 하는 보도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이런 문제제기와 우려의 표시는 유엔회의 (제네바와 뉴욕)에서 의제화될 수 있습니다.

셋째, 위혐과 협박에 처한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역시 필요합니다. 만일 – 정부가 아닌 – 한국 국민들로부터 그런 지원이 온다면 대단히 큰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넷째, 한국 시민사회와 교회, 종교 단체들을 조직하여 인권운동가와 민간인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을 벌이는 스리랑카 정부에 항의 하는 시위와 행동을 보여주십시오. 이 행동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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