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타밀호랑이’는 죽지 않는다

전향한 사령관이 만든 친정부 단체 응징… 타밀족 지지 받으며 게릴라전 지속

스리랑카 동부 바티칼로아의 한피난민 캠프에서 난민 여성과 아이들을 만났다. 지난 2006년 동부 트링코말리 지역에서 정부군과 타밀호랑이 반군이 벌인 치열한 전투를 피해 피난길에 오른 이들은 전투가 끝난 지금껏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Photo by Lee Yu Kyung)

스리랑카 동부 바티칼로아의 한피난민 캠프에서 난민 여성과 아이들을 만났다. 지난 2006년 동부 트링코말리 지역에서 정부군과 타밀호랑이 반군이 벌인 치열한 전투를 피해 피난길에 오른 이들은 전투가 끝난 지금껏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Photo by Lee Yu Kyung)

지난 3월14일 새벽 2시30분께, 스리랑카 동부 바티칼로아 지구와 암파라 지구 사이에 위치한 삼만투라이에서 친정부 성향의 타밀족 정치단체 TMVP 소속 민병대원 4명이 괴한들의 습격을 당해 숨졌다. 제법 많은 무기류도 탈취해간 이 괴한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이하 타밀호랑이)다. 스리랑카 정부군이 2006년과 2007년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동부 일대에서 궤멸시켰다던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게다.

대략 300~400명으로 추정되는 타밀호랑이 게릴라들이 여전히 신출귀몰하고 있는 동부 지역은 스리랑카의 미래를 예감하게 해준다. 북부 지역에서 정부군에 맞서 ‘최후’가 될지 모를 전투를 벌이고 있는 타밀호랑이 진영이 결국 패배하더라도, 스리랑카 정부가 그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살아남은 반군 게릴라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정글로 돌아가 소규모 비정규전을 이어가며 세력을 추스를 것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스리랑카 동부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한 아일랜드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던 ‘아일랜드공화군’(IRA)조차 꾸준히 테러 행각을 벌여왔다. 최근에도 영국군 2명을 공격하지 않았나. 하물며 타밀호랑이는 타밀족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얼마든지 스리랑카 사회를 흔들어댈 수 있다.”

 동부 피습 발생 지역 검문 삼엄

필리얀(본명 시바네사투라이 찬드라칸탄) Photo by Lee Yu Kyung

필리얀(본명 시바네사투라이 찬드라칸탄) Photo by Lee Yu Kyung

타밀호랑이가 이를 갈고 공격하는 TMVP는 타밀족 정당이다. 타밀호랑이의 전 동부 지역 사령관 카루나(본명 비나야가무티 무랄리다란)가 반군을 이탈해 ‘전향’하면서 만든 단체로, 휘하에 친정부 민병대도 거느리고 있다. 이후 이 단체는 다시 분열해 카루나파가 떨어져나갔고, 현재 동부 주지사를 맡고 있는 필리얀(본명 시바네사투라이 찬드라칸탄)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카루나는 지난 3월9일 국가통합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스리랑카군에 타밀호랑이의 전술과 각종 군사기밀을 적극 제공함으로써 타밀호랑이가 수세에 몰리게 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지난 3월18일 바티칼로아를 떠나 무슬림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인 아카라이파투로 향했다. 나흘 전 괴한들의 습격 사건이 발생한 지역으로 이어진 길은 무장 보안군과 경찰들이 거의 규칙적이라 느껴질 만큼 줄지어 서 있었고, 여러 곳의 ‘몸수색 검문소’(신분증과 차량을 살피는 것으로 끝나는 일반 검문소보다 직접 몸을 더듬어 수색하는 검문소가 더 많았다)를 지나야 했다. 최근 보안군(또는 경찰)이 14살 소녀를 성폭행해 문제가 된 웰라웰리 지역에도 어김없이 중무장한 보안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마을에선 아무도 성폭행 사건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상태인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 택시) 운전기사와 일부 여성들의 입을 타고 ‘험악한 진실’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타밀호랑이가 사라진 이후 민주적 선거를 통해 스리랑카의 미래를 보여주는 모델’이라던 집권 세력의 선전이 무색하다. 공권력의 엽기적 폭력과 그에 따른 무한 공포,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타밀호랑이 잔존 세력의 게릴라전 등이 범벅이 된 혼란상이 스리랑카 동부 일대의 현주소였다.

“타밀호랑이가 요즘 아카라이파투까지 내려오고 있어. 보도가 안 돼서 그렇지 게릴라전은 지금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아카라이파투에서 만난 원로 언론인 시바프라가삼(72)은 “타밀호랑이가 사라질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일레”(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 대해 묻자 “1958년 이후 모든 선거는 총구 앞에서 치러졌다”며 쓰게 웃었다.

‘총구 앞 선거’를 통해 지방정부를 장악한 TMVP는 현지에서 보안군 못지않게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납치범’ ‘강간범’으로 통하는 TMVP 민병대원들은 타밀정당들의 연합체인 ‘타밀민족동맹’(TNA) 소속 의원이나 구호단체인 ‘타밀재건기구’(TRO) 요원들까지 주저 않고 납치·살해하는 ‘대담성’을 과시해온 터다. 무엇보다 타밀호랑이 시절부터 소년병 강제 모집으로 이름을 알려온 카루나는 ‘전향’ 이후 그 악명을 더욱 강화했다. 지난 2004년 타밀호랑이 소년병들을 인터뷰한 자료를 토대로 “반군 소년병 대부분을 카루나가 강제 모집했다”고 고발했던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06년 내놓은 후속 보고서에서 “TMVP의 소년병 강제 모집 과정에 스리랑카 정부군도 가담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타밀호랑이는 나름의 엄격한 원칙과 규율을 유지하고 있다. 성폭행 같은 패륜 범죄를 저질렀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본 일이 없다. 반면 TMVP 민병대는 산만하고 원칙도 없고….” 지난 2005년 지진해일(쓰나미) 이재민 긴급구호를 위해 바티칼로아에 온 뒤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는 한 국제구호단체 요원의 말이다. 이 ‘산만하고 원칙도 없는’ 조직은 그나마 지난해 둘로 갈라선 이래 서로를 헐뜯느라 여념이 없다.

“카루나는 지난해 지방선거 때 여기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주지사가 된 게다. 그런데도 카루나가 내 자리를 탐하다가 내분이 생겨 두 정파 사이에 죽이고 죽는 갈등이 벌어졌다.”

땅딸한 키에 다부지게 생긴 주지사 필리얀은 1시간 남짓 인터뷰 하는 내내 ‘옛 동지’ 카루나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 ‘카루나의 이탈이 타밀호랑이 패퇴의 결정적 원인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는 통역을 기다리지 않고 “물론!”이라고 외치더니, 다시 카루나 비난을 이어갔다. “동부 타밀호랑이 출신자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조직을 분열시킨 카루나를 봐라. 지금 남부 중앙정치 무대로 자리를 옮겨 우리(동부 타밀족)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말들만 하고 있지 않나. 이젠 진정한 동부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양쪽은 지난 3월 초 트링코말리에서 발생한 6살 소녀 납치·살해 사건을 두고도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럼에도 스리랑카의 주류 언론들은 이들을 두고 “타밀호랑이의 독재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편으로 들어온 훌륭한 타밀족 출신 정치인들”로 치켜세우고 있다.

 상이한 공동체에 정파 분열 겹쳐 ‘화약고’

 타밀족, 무슬림, 신할리즈족 등 상이한 세 공동체가 모여 언제고 지역 공동체 차원의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불씨를 간직한 게 스리랑카 동부다. 여기에 최근 타밀족 내부 정파 간 분열과 분쟁까지 가중되면서 이 일대는 ‘실론섬의 발칸’, ‘잠재적 화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그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괴한’으로 출몰하는 타밀호랑이가 언제까지 ‘원칙’을 지키며 버텨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수도 콜롬보에서 발행되는 비판적 주간지 <선데이리더>의 대표인 랄 위키레마싱헤는 “국제적으로 조직망을 잘 갖추고 있는 타밀호랑이가 (정부군의 공세로)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덧붙였다. “스리랑카 정부군이 타일호랑이라는 조직을 무너뜨릴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타밀호랑이가 대변해온 ‘이념’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바티칼로아·암파라(아까라이빠뚜)·트링코말리=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source :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7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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