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방콕의 사원 폭탄 폭발… 공격 규모와 치밀한 방식에 국제 테러조직도 후보군으로 떠오르지만 국내 세력일 가능성 더 높아
- 소행 밝히지 않으면 국내 세력 가능성 높아
- 전례없는 공격규모와 치밀한 방식에 국제테러조직도 후보군으로
- 치안강화 명분, 공안정국 몰이 할수도
- 인권단체는 공정한 사법절차 강조

8월17일 방콕 중심가 라차프라송 구역의 에라완 사원에서 터진 폭탄은 2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120명 이상의 부상자를 낳았다. 중국계 버마(미얀마)인 지궈리안이 에라완 사원에서 기도와 헌화를 하고 있다 (© Lee Yu Kyung)
복을 비는 이들이 북적대던 관광 명소
방콕의 공립초등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중국인 장웨이(Zhang Wei, 32)는 “방콕을 여행하는 중국인들에게 에라완 사원은 필수 코스”라고 말했다. 종교를 떠나 복을 비는 전통 때문이란다. 사원은 바로 옆 ‘하이엇 에라완’ 호텔 건축 과정에서 잦았던 사고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 1956년 점성가의 조언으로 지은 힌두사원이다. 다신을 섬기는 힌두교의 포용력을 반영하듯 우주의 신 브라마는 국적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번 폭탄의 최연소 희생자인 4살 꼬마 리징쉬안(Lee Jing Shian) 가족도 그날 그 무리에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꼬마의 가족 7명 가운데 4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원이 위치한 라차프라송 일대는 시위와 국가폭력 그리고 희생자 추모가 낯설지 않은 공간이다. 2010년 5월19일 이곳에서 두 달 넘게 시위하던 반정부·반군정 ‘레드셔츠’ 수십 명이 군의 진압에 학살당했다. 그해 7월에는 사원 동쪽 약 500m 지점 슈퍼 앞에서 폭탄이 터져 한 명이 죽었다. 사원 서쪽으로 이어진 시암 거리 위 하늘길(Skywalk)에서도 올 2월 폭탄이 터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폭탄은 차원이 달랐다. 시간대와 장소 모두 대량 인명 피해를 의도했다. TNT 폭발물이 담겼다는 ‘파이프 폭탄’도 과거 사제폭탄이나 ‘M79’ 수류탄과 달랐다. 충격에 빠진 방콕은 그날 이후 ‘누가’ ‘왜’ 를 논하느라 날이 새고 날이 지는 분위기다. 용의자군은 넓다. 레드셔츠부터 이슬람국가(IS)까지. 유례없는 규모와 외국인까지 겨냥했다는 점에서 국제 테러조직의 소행일 가능성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사상자를 야기한 국제 단체가 공격 이후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방콕을 근거로 한 싱크탱크인 시암인텔리전스유닛(SIU) 칸 유영 국장의 말이다. SIU 칸 국장의 말은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외국 세력의 소행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지만 국내 정치 상황을 원인으로 보는 것이 더 신빙성 있다. 반군정 극단주의 세력부터 반탁신 극단주의 세력까지 모두 다 가능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알카에다나 IS 등 국제 테러 주도 세력들은 누가 죽든 상관없이 자기 메시지 전달에 무게를 둬왔다. 동남아 무장단체 연구자인 자차리 아부자 박사 역시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학술 블로그인 ‘뉴만달라’(New Mandala) 기고문에서, 만일 이번 공격이 IS의 소행이라면 “왜 지금 (공격 대상이) 타이인가” 정도의 메시지가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구르가 동정표 잃을 이유가 있을까”

경찰 병원에서 중국 언론인들이 방콕시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희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이번 폭탄 사고는 20명 이상의 사망자 가운데 적어도 7명은 중국인이다. (© Lee Yu Kyung)
중국, 타이, 그리고 한국 언론까지 반짝 달궜던 위구르족의 소행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부자 박사는 ‘낮다’고 봤다. “위구르족 (테러) 네트워크는 이 정도의 공격을 감행할 만큼 방대하지도 정교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위구르의 분노가 중국 내에 국한된 것이지 다른 누구를 향한 것은 아니다. 이런 공격으로 그나마 얻고 있는 국제적 동정표를 잃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위구르족 소행설은, 지난 7월 타이 정부가 120명 이상의 위구르족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것에 대한 보복 가능성 외에는 근거가 희박하다. 현재 타이에는 아직 50여 명의 위구르인이 이민성 감호소에 남아 있다. 이들을 ‘중국으로 송환하지 말라’는 메시지조차 없는 폭탄이라면 적어도 논리적 퍼즐에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19일 하루 ‘위구르설’에 쏠린 바 있다. “방콕 도심 폭탄 테러, 위구르족 소행 가능성 급부상” 이라 제목을 단 연합뉴스는 물론 경향, 중앙도 유사한 제목을 달았다. 문제는 “급부상”을 뒷받침 할 근거가 이날 타이 경찰이 공개한 몽타주 정도다. 연합뉴스는 “중동출신 인물로 보인다는 점에서 위구르족 소행 가능성”을 보고 수사중이라며 부각시켰으나 타이 경찰은 따옴표속 표현대신 여전히 방대한 후보군을 애매하게 거론해 왔다. 그런 언론들이 전날(18일)에는 하나같이 ‘레드셔츠’를 제목에 올렸다. 폭탄 터진 직후 군정 대변인 삼선 커캄넛(Samsern Kaewkamnerd) 이 레드셔츠를 암시한 것과 프라윳 총리의 “동북부 반정부 세력”발언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프라윳 총리가 CCTV 속 용의자를 지칭해 “동북부 지역 반정부 세력(레드셔츠)” 라고 했다는 AFP 1보는 오보다. AFP는 바로 정정했지만 연합뉴스 등 여러 언론이 ‘CCTV 용의자=레드셔츠’로 만드는 오류를 범했다
‘CCTV 용의자=레드셔츠’ 는 프라윳 총리 발언 잘못 인용한 AFP 오보 받아쓰기
몽타주 외모로 범인 맞추기 제목다는 한국 언론
그렇다면 레드셔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쿠데타 뒤 1년6개월 동안 레드셔츠의 활동은 사실상 마비됐다. 레드셔츠 주류정파인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은 자체 방송 <피스 TV>(Peace TV) 활동에 방점을 두고 있고, 동북부 지역 레드셔츠는 군정의 밀착 감시가 심해 운신의 폭이 좁다. 한때 무장투쟁을 희망하던 극소수 급진세력은 물자와 조직력에서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정설이다. 굳이 가능성을 찾자면 비폭력 정치투쟁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인식이 쿠데타를 전후로 꾸준히 조성돼왔다는 점 정도다.
한편, 군정 소환에 불응하며 일본에 사실상 망명 상태인 파빈 차차발퐁푼 교수는 외국 세력에 좀더 무게를 둔 타이 분석가 중 한명이다. 파빈은 8월19일 BBC기고문에서 “사원을 공격한 게 단서”라며 국내 단체라면 사원과 같은 ‘종교시설’을 공격하지 않았을 거라 봤다.
파빈 교수의 주장은 ‘민간’ 세력에는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폭탄범이 군과 관련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0년 5월19일 저녁 타이군 저격수는 레드셔츠가 피신한 불교사원에 총을 겨눈 전력이 있다. 당시 간호사를 포함해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라완 사원 서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파툼완 불교사원이 그 현장이다. 따라서 ‘종교시설’ 변수보다는 소행을 밝히느냐의 여부가 국내외 단체 배후를 밝히는 좀더 현실성 있는 지표로 보인다.
군 인사이동과 권력투쟁이 단서일까?
타이 국내 단체의 소행이라면 누구도 영원히 스스로 밝히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남부 분쟁 주의 말레이 무슬림 반군들은 10년 넘게 그랬다. 레드셔츠 급진파든, 또 다른 국내 후보군인 군정파든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힐 리 만무하다. 이런 면에서 최근 군 인사이동과 권력투쟁을 이번 폭탄과 연계해서 보는 분석가가 적잖다.
흥미롭게도 타이 국내 치안 작전명령부(ISOC·Internal Security Operation Command)조차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8월17일 폭탄이 터진 직후 ISOC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정치 분쟁’ ‘국가기관 (군 포함) 인사이동’ ‘국제 테러리즘’. SIU 칸 국장은 누구의 소행이든 타이 정치 분쟁이 이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겉으론 평온해 보였지만 갈등이 곪아가고 있다. 이번 사태가 국내 정치 분쟁과 관련된 것이 맞다면 우린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다시 조용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또다시 업그레이드된 폭력이 돌출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고조될 것이다.”
기사를 마감하는 금요일 오후 현재 타이 당국은 국내 세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이다. 2006년 쿠테타 이래 꾸준히 증가해온 군 예산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허약한 정보력을 드러낸 군정이 이 유례없이 복잡한 폭탄의 배후를 공평한 수사로 밝혀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국가안보를 내세워 한줌씩 잠식해온 시민들의 자유를 더 옥죄는 건 아닌지 방콕은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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