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석탄’ 운동하다 무참히 살해당한 국숫집 아저씨…
자본·마피아·관료의 카르텔 속에 16년 동안 타이 환경운동가 27명 살해당해
7월 28일 오전 9시께였다. 타이 중부 사뭇 사콘(Samut Sakorn) 지방, 타 사이 (Tha Sai) 탐본 (‘서브 디스트릭트’, ‘마을’ 바로 윗 단위이자 지방 정부의 가장 작은 행정단위) 길은 인근 공장으로 출근하는 발걸음들이 총총히 사라진 뒤였다. 그 길로 들어선 오토바이 한 대, 뒷 사내는 길목 한 켠 국수집 앞으로 가 아침 신문을 읽던 주인 통낙 사윀친다 (47)에게 40구경 반자동 권총을 난사했다. 어깨, 등, 가슴, 허벅지 등 전신 여덟 군데에 총상을 입은 통낙은 병원에 도착하자 마자 숨졌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는 순박한 사람이었는데…”
자녀가 없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내 좀크완 사윀친다(46) 가 버겁게 입을 열었다.
사건 직후 타이 언론은 ‘저명한 환경운동가 살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순박한’ 국수집 아저씨 통낙은 어찌하여 ‘저명한’ 환경운동가가 되어 살해의 운명을 맞이한 걸까.
국수집 아저씨에서 환경운동가로
8월 3일 이른 아침 방콕 서남 지역과 경계를 나눈 사뭇 사콘 지방에 들어섰다. 아침 출근길의 상큼함은 커녕 목은 칼칼해지고 콧 구멍이 답답해왔다. 만만치 않은 오염 도시 방콕을 능가했다.
다운타운을 가로질러 통낙의 동네로 향하는 길, “우리는 석탄을 원치 않는다”는 플랑카드가 스쳤다. 이어 ‘그린 파워 플러스’, ‘아시아그린 에너지’ 등, ‘그린’ 으로 치장한 각종 석탄 공장 간판들도 휑하니 지나갔다. 타이 내 최대 석탄 공급업체인 아시아 그린 에너지는 이 지역에 새 공장을 세우던 중에 시위를 만나 잠시 멈췄다. 동네 사람들은 이 회사 대표가 민주당 아무개 의원의 ‘경제 자문’ 이라며 “믿는 구석이 있어 투자하는 거”라 투덜댔다.
이 지역 노동단체 ‘노동권 신장 네트워크 재단 (Labor Rights Promotion Network Foundation, LPN)’ 에 따르면 사뭇 사콘에는 3천여개의 미등록 공장을 포함, 대략 7천여개 크고작은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절대 다수가 해산물 가공 공장이고, 수십 개의 석탄 공장이 있다. 문제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타이 전역 공단내 연료로 각광받는 게 ‘가장 더러운 에너지’라 불리는 석탄이라는 점다. 바로 그 석탄이 국수집 주인을 환경운동가로 바꾸어 놓은 ‘주범’이기도 하다.
사뭇 사콘의 경우를 보자.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진 석탄은 타 친 (Tha Chin)강 항구에 도착한 후 수십개의 공장으로 옮겨져 저장고에 쌓이고, 재분배 과정을 거쳐 여러 공장들로 이송된다. 이 지방은 석탄이송 길목이자 소비 지방이다.
“밭이 다 누래졌다. 코코넛 농사도 다 망했다. 폐도 안 좋고, 가려움증에…”
타사이 마을 주민 깃스나 파완 (60)의 말처럼 석탄 공장이 인근 밭들은 누리끼리 했다.
사뭇 사콘에 석탄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06년. 아랫동네 사뭇 송크람 지방 주민들의 반대를 만나 공장이 이곳으로 옮겨온 온 그 순간부터 주민들의 시위는 시작되었다. 그 5년간의 투쟁이 귀 막은 당국과 언론의 눈을 피해갔을 뿐이다.
그러다 7월 13일 통낙을 선두로 한 천 여명의 주민들이 ‘라마 2’ 고속도로를 막는 대 소동 시위를 벌인 후에야 언론이 주목했고, 28일 통낙의 죽음은 언론의 관심에 더더욱 불을 댕겼다.
“이런 캠페인의 경우 업체들이 주민들 일부를 매수하여 분열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에서는 그런 분열이 전혀 없었다.”
휴먼라이츠워치 타이 리서쳐인 수나이 파숙 (42)은 대신 시민사회가 옐로우와 레드로 분열된 탓에 이지역 투쟁에 대한 단일한 지지와 연대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석탄 관련 업체들이 들어선 지 5년, 심각한 환경 오염으로 과일, 채소밭들이 누렇게 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 지역 제지업체가 사들여 폐휴지 처리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 이전에 과일농사를 짓던 곳이다. (© Lee Yu Kyung)
13일의 시위는 결국 ‘석탄 운송 중단’ 이라는 주지사 명령을 끌어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주지사의 명령을 위반하는 트럭을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22일, 통낙은 석탄을 운송하던 한 트럭을 막아선 적이 있다. 통낙 암살의 핵심 배후로 지목된 이가 운영하는 운송 회사, ‘테크닉 팀’ (Technique Team) 트럭이다. 회사 대표는 통낙을 위협하고, 거친 말들을 뱉어 온 인물이기도 하다.
“아니 그래, 당신 국수에 석탄 알갱이가 빠지기라도 했는가? 그렇게 설쳐대다가 당하는 수가 있어. 조심하라구!.”
석탄 알갱이가 통낙의 국수에 빠졌는지야 확인키 어렵지만, 석탄 운송 선박들이 뿜어내는 가루와 석탄 연료 공장들이 내뿜는 ‘석탄 물’은 이 지방 젖줄 타 친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모니터한 자료와 위반 증거 사진 등을 29일 주지사에게 보낼 참이었는데, 그 전날 통낙이 살해당했다”
여러해 동안 함께 캠페인을 이끌어왔던 캄폴 통치우 (51) 자신도 통낙이 죽기 이틀 전인 26일 밤 10시께, 석탄 운반 차량을 모니터 하던 중 미행 당했다고 말한다. 다행히 그는 작은 길로 차를 돌려가며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29일, 통낙 암살 다음 날 중앙행정법원은 타 사이 탐본 지역을 통과하는 석탄 운송 중단을 명했다.

사뭇 사콘 지방을 흐르는 ‘타 친’ 강은 예로부터 중국과의 무역 항으로 유명했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부터 들여오는 석탄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석탄 운송석박들이 야기하는 ‘석탄물’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 Lee Yu Kyung)
개발이익과 주민 인권 충돌
지난 16년간 타이 사회에서 27명 환경 운동가가 살해되었다. 2007년에는 승려 프라수폿 수와요가 북부 치앙마이에서, 2004년 환경운동가 짜른 왓 악슨이 중부 프라추압에서, 2001년에는 솜폰 차나폴이 남부 수랏타니에서 살해당했다. 통낙은 27번에 이름을 올렸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석탄’ 아니면 ‘불법 벌채’에 맞서던 지역 운동가들이었다.
환경 갈등이 두드러진 곳이 주로 지방이라는 점, 그들이 대항하는 업체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 청부살해 네트워크가 타이 사회에 적잖다는 점, 여기에 뒤를 봐주는 경찰과 공무원 변수까지 가세하며 지역 환경운동가들은 보다 많은 희생을 감내해 온 셈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인권운동가들이 직면한 위험상황을 모니터해 온 인권단체 프런트 라인 (Frontline)의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 부장 짐 라프란도 이 점을 우려했다. 그는 <한겨레21>과의 스카이페 인터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콕과 달리 지방 활동가들은 보다 높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문을 연 뒤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경제 개발을 내건 업체들의 이익과 주민들의 인권, 토지권이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소수 권력자들의 부를 위해 주민 인권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란 있어서는 안된다”
짐 라프란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암살범 뿐 아니라 배후세력을 분명하게 처벌하여, 운동가들을 겨냥한 청부 살해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현직 군인들, 마피아들이 복합적으로 연루된 이 네트워크를 건드리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총잡이 요틴 테프리안(25)가 자수하고 7명의 혐의자가 체포되는 등 일단 초등 수사에 속도가 붙는 듯하다. 그러나 당국의 강력한 의지때문이라기 보다는 CCTV 덕분이라고 주민들은 싱겁게 받아들였다. 살해범이 타고 온 오토바이가 주차한 곳은 하필이면 (탁신의 친빈민 정책 중 하나였던) ‘빌리지 펀드 스킴’ (Village Fund Scheme) 사무실 근처 CCTV가 있는 곳이었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뭇사콘 경찰 서장 차이찬 푸라타나농 (41) 역시 이 부분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울러 차이찬 서장은 핵심 공모자 3인 중에 사뭇사콘 지방 내 ‘푸야이 반’ (‘마을 이장’ 격) 한 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통낙 사윀친다 (47) 살해 핵심 배후자 혐의를 받고 있는 석탄운송업체 대표 아무개씨(53).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조사 받은 뒤 그의 집을 수색하려는 경찰팀과 움직이고 있다. (© Lee Yu Kyung)
“시스템의 실패다. 경찰, 군부, 지방 정부 등 관련 기관들의 총체적인 개혁은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절실히 요구되어 왔던 바다. 이번 사건을 수많은 범죄 사건 중 하나로 단순취급해선 안된다”
인권운동가 수나이 파숙은 총제적 개혁을 다시한 번 강조했다.
통낙 캠페인에 법률지원을 해왔던 단체, ‘지구온난화 반대’의 스리스완 잔야 변호사는 타이의 수많은 환경관련 법안들만 제대로 준수해도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관련 법안들은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청회를 거치도록 명하고 있다. 토지 사용과 운송의 경우 통과 지역 환경과 공동체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함도 명시하고 있다. 뇌물에 약한 관련 부처들이 이런 조항들을 무시하고 있다”
2007년 군사 정권이 기안한 현행 헌법 역시 환경이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프로젝트는 승인전에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명시하지만 구체적 가이드 라인은 부재다.
이런 허점구조와 공무원 부패수준을 모를리 없는 업체들은 얄팍한 해결책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일례로, 아시아 그린 에너지는 8일 3일 보도자료를 통해,
“(29일) 중앙행정법원의 일시 중지 명령은 우리 회사에 적용된 것이 아니” 라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 회사는 페차부리, 촌부리, 아유타야 지방에 이미 석탄 저장고와 공장이 있음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객서비스를 할 수 있다” 고 밝혔다. 그러나 8월 10일, 이번에는 아유타야 지방에서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동을 텄다.
석탄, 가장 더러운 에너지
1992년 북부 람팡 지방 ‘매모(Mae Moh)’ 마을에 들어선 석탄화력발전소 반대 투쟁을 비롯, 타이 지방 주민들의 ‘대 석탄’ 투쟁은 사실 수 십년간 계속되어 왔다. 유황가스 불법 방출로 이후 10년간 약 120명의 주민 목숨을 앗아간 메모 발전소는 지금도 돌아가지만, 1995년 이래 7년 가까이 싸웠던 프로추압 지방 보녹 마을의 투쟁은 공장을 멈추게도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이끌던 자른 악 왓슨이 살해당하는 댓가를 치뤄야했다.
나사(NASA)의 지구 과학자 제임스 한센은 “문명과 지구 생물체에 단독으로 가장 위험한 물질” 로 석탄을 뽑았다. 그는 석탄 연료 공장을 ‘죽음의 공장’이라 표현한다. 2008년 “석탄 = 기후변화” 라는 구호를 걸고 타이 투어 캠페인을 벌인 바 있는 그린 피스는 석탄을 “가장 더러운 에너지”라 정의한다. 하여, 통낙과 수십명의 환경운동가들 그리고 수백명의 주민 목숨을 앗아간 ‘삽질’과 ‘검은 연기’가 더러운 에너지를 피워대는 한, 죽음의 공장에 대항한 주민 공동체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뭇사콘(타이)= 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 위 기사는 <한겨레21> [2011.09.05 제876호] 게재된 기사의 긴 버전입니다. (한겨레21 기사 원문 보러 가기)
* 위 기사 관련 참고 자료들 :
http://www.greenpeace.org/international/en/multimedia/photos/greenpeace-launches-a-stop-glo/
http://www.greenpeace.org/international/en/news/features/decision-on-thai-coal-plants/
http://www.greenpeace.org/international/en/press/releases/accept-or-reject-on-polluting/
http://www.greenpeace.org/international/en/multimedia/photos/Thai-Coal-Plant-Protest/
http://www.greenpeace.org/international/en/news/features/thailand-coal-rainbow-warrior280708/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09/feb/15/james-hansen-power-plants-coal
http://www.hrw.org/news/2011/07/30/thailand-investigate-murder-environmentalist
기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