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군부독재, 60여년 내전. ‘버.마.’
풍부한 자원과 고등인력으로 한 때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국가였다는 버마의 오늘은 ‘참’ 참담하다. 군부 독재가 말아먹은 정치와 인권은 거의 회복 불능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교육, 의료, 경제 등 기본생존권과 최저생활은 정말 많이 망가졌다.
88 랑군항쟁 이후 버마를 빠져나온 젊은이들과 민주세력들의 상황도 못지 않게 괴롭다. 타이-버마 국경 정글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생계에 허덕이는 게릴들은 조금씩 잃어가는 정글 터전을 부여잡고 있다. 그 정글을, 여전히 버마를 탈출하는 이들과 난민들이 헤쳐 지나가고 있다. 2007년 승려들이 몰고온 일말의 시위바람이 잠시 세상을 놀라게 했으나, 유혈진압당한 ‘샤프란 혁명’ 역시 동트는 새벽을 기다리기 보다는 또 다른 탈출로 이어졌다. 탈출한 일부 승려들은 이미 난민 정착 프로그램을 타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났고, 일부는 타이 국경 도시 메솟이나, 이동의 자유가 없는 난민캠프에서 지내고 있다.
2010년 버마의 정치는 더더욱 술렁이고 있다. 90년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 (NLD) 압승을 인정치 않고 권력을 쥐고 있던 군부정권 (SPDC)은 2010년 말에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총선이 90년 총선 이후 별다르게 한 것 없이 세월을 보낸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 (NLD) 은 물론 여러 민주 진영을 더더욱 갈라 놓고 있다. 우선, NLD는 선거 보이콧을 천명함에 따라 강제 해산당했다. 그리고 당원 일부는 탈당하여 ‘민족민주세력’ (National Democratic Forces) 라는 신당을 창당해 총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88세대’ 등이 주도한 ’88세대 학생당’ (88 Generation Student Youths) 도 선거 참여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버마에 민주주의라는 지푸라기를 가져다줄거라는 기대나 분석은 기대하지 마시라. 되려 ‘민’ 동반한 영구집권을 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권력은 여전히 군부들의 손에 있으며, 군부가 ‘길러낸’ 민간 사병 조직들이 버마의 일상에 박혀버린 오늘이다.
2004년 여름 처음 취재한 버마는 나의 안테나를 수시로 건드린다. 불법일수 밖에 없는 버마 내부 취재, ‘사실상 불법’일 수 밖에 없는 타이-버마국경 취재 등으로 담은 사진들 중 몇 장 추려 올린다.

2008년 6월 19일 아웅산 수치의 생일 잔치를 치르던 민족민주동맹 (NLD) 당사 본부에 친정부 행동대원들이 출동했다. 생일잔치는 옥외시위로 번졌고 당원들은 스크럼을 짜고 당사를 지켰다. 그리고 사복경찰과 친정부 행동대원들은 당원 몇 명을 잡아갔다. (Burma, 2008 / Photo © Lee Yu Kyung)

랑군 쉐다곤 파고다를 한 승려가 걷고 있다.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샤프란 혁명’ 이 거세게 일던 사원이기도 하다. (Burma, 2007 / Photo © Lee Yu Kyung)

흔히 ‘티 숍’ (Tea Shop) 이라 불리는 거리 까페는 랑군 시민들, 젊은이들이 사회관계를 맺는 주요 공간이다. (Burma, 2007 / Photo © Lee Yu Kyung)

버마 중북부 도시 만달레이 야시장에서 한 승려가 헌책들을 들쳐보고 있다. 2007년 9월 ‘샤프란 혁명’을 주도한 버마의 승려들은 정치적이고 사회변화에 관심이 많다. 정식 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는 버마에서 사원은 교육 기관이자, 무료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수양처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가난한 배경을 지닌 이들은 종교적 귀의목적이 아니더라도 승려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Burma, 2007 / Photo © Lee Yu Kyung)

사진속 여인은 2008년 5월 버마를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피해자이다. 최소 13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엄청난 재난을 눈앞에 두고 버마 군부는 긴급 구호를 수월히 하기 보다는 막기에 급급했다. “처음엔 정부가 조금이라도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라며 야속한 정부에 대해 말을 잇지 못하는 여인의 가족은 남폄을 포함해 일곱 식구가 모두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가족 총수입은 하루 평균 3천 차트 (3달러 미만)이다. (Burma, 2008 / Photo © Lee Yu Kyung)

2009년 9월 타이 버마 국경 정글에서 카렌반군 (KNU) 와 버마학생민주전선 (ABSDF) 의 공동 순찰이 진행 중이다. 그해 6월 제 5여단으로 지정된 이 구역이 버마군의 대대적 공격을 받았고, 9월 공격설이 도는 가운데 반군들도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타이-버마 국경지대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대원이 타이-버마 국경을 가르는 살윈강을 배로 건너고 있다. 멀찌감치 보이는 가게로 ‘쇼핑’을 가는 길이다. 랑군의 봄. 버마의 88 민중항쟁 후 정글로 쏟아진 이들이 결성한 버마학생민주전선은 그러나 자금줄이 급격히 차단되면서 심각한 생계난을 겪고 있다.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버마학생민주전선 (ABSDF) 신입대원. 그는 2007년 샤프란 혁명으로 불리는 시위가 유혈진압당하자, 무장투쟁에 동참하겠다며 정글로 왔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건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배고픈 게릴라 조직이다. 그의 모습 뒤로 보이는 어린이 사진은, 난민정착 프로그램으로 미국으로 떠난 전 대원의 어린 시절, 또 하나는 비폭력 저항의 예찬론자인 아웅산 수치.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툰툰윙(28)은 버마 88항쟁 이후 타이-버마 국경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대원이다. 버마군이 마을주민들을 포터(군사물자를 실어나르는 강제 노동)로 이용하는 걸 보며 자란 그는 1998년 집을 몰래 빠져나와 정글로 왔고 버마군과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007년, 마을에 보급투쟁을 나갔다가 버마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오른쪽 팔에 총상을 입었다. 총상 입은 환자를 누인 나무평상을 어깨에 들고 동료들은 3주 동안 험한 정글을 탔다. 국경을 넘어 타이 북부 치앙마이 병원까지 실려온 그는 그러나 한달 치료 후 팔을 절단해야 했다. 오른 팔을 잃은 그는 왼팔로 쉴새 없이 담배를 핀다. 2004년 처음 민주전선을 취재할 때 그는 두팔 지닌 게릴라였다. 2009년 다시 찾아간 정글에서 긴옷 속에 묻힌 잃어버린 팔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전까지는…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버마 군으로 복무하다 반군 통치영토로 넘어온 버마군 탈영병사 (오른쪽 두 명)들이 카렌 반군 (왼쪽 두명)의 ‘보호’아래 지내고 있다. 강제 모집과 납치 등에 의존하는 버마군의 모집 방식때문에 버마군을 탈영하는 병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주로 반군 지역으로 넘어와 반군이 되어 싸우거나, 국경넘어 타이 북부로 넘어와 불법 이주노동자로 살아간다.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이 남성은 버마 군에 의해 포터로 이용되다 반군인 카렌해방군 영토로 넘어왔다. 배가 고프고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해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타이-버마 국경과 맞닿은 이투타 피난민(IDPs :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캠프의 어린이들. 이투타 캠프는 2006년부터 강화된 버마 군의 군사 작전으로 쫓겨온 카렌 난민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Thai-Burma border EiTuTha IDPs camp, 2009 / Photo © Lee Yu Kyung)

타이-버마 국경과 맞닿은 이투타 피난민 (IDPs :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캠프의 병원에서 폐렴 환자가 누워있다. 이 정글 병원에는 말라리아 환자가 가장 많다. (Thai-Burma border EiTuTha IDPs camp, 2009 / Photo © Lee Yu Kyung)

우틴쉐 (72)는 승려로 살아간다. 그의 사원은 타이-버마 국경 웨지의 버마학생민주전선 본부 근처 정글 한가운데 있다. 카렌족인 그는 1962년 부터 78년까지 버마 군이었다. 군 생활을 그만 둔 뒤 10 년간 자신의 고향에서 카렌 반군의 첩자노릇을 했다. 그리고 88 년 랑군의 봄을 거치며 정글로 도망친 그는 버마학생민주전선 (ABSDF) 게릴라가 되었다. 나이가 너무 들어 게릴라 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그는 2002년 이래 정글 사원의 승려로 살아가고 있는 게다. (Thai-Burma border, 2009 / Photo © Lee Yu Kyung)

“마을이 있긴 어딨나. 피난처에서 왔지. 2년간 먹을 것도 없이 헤매다가…” 어느 마을출신인지 묻자 그렇게 답하는 사진 속 노인은 버마 소수민족인 카렌족, 이름은 소우 텔리 75세. 60년 넘게 세계 최장기 내전을 벌이고 있는 버마-타이 국경 부근 카렌주에서 노인은 1975년부터 피난처 찾아다니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버마-타이 국경과 맞닿은 정글 내전 지역에서 버마군은 마을을 불태우고, 소수민족 여성들을 강간하고, 주민들을 포터로 강제 동원하거나 총살하고 있다. (Thai-Burma border EiTuTha IDPs camp, 2009 / Photo © Lee Yu 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