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위기 분쟁의 미래] ‘인종청소’ 40년… 벼랑 끝에 선 로힝야

극한 상황 처한 그들… “우릴 위해 기도해주세요”

이유경 기자입력 : 2017.08.26 05:00:00 | 수정 : 2017.08.29 10:50:13

[쿠키뉴스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ray for us.” 기자에게 시시각각 속보를 전하는 로힝야 알리(가명)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 문구를 적어 보냈다. 반군이 그의 마을에 와서 함께 싸우자고 한다면 어떡하겠냐고 알리에게 물었다. 그는 말했다. “방법이 없잖아. 우린 지금 막다른 골목에…. 그렇지만 여전히 평화적인 대화를 원해.”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고픈 숱한 알리들이 미얀마 정부에 우선 원했던 건, 사실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21세기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리는 로힝야 게토의 철조망을 걷어내 이동의 자유를 누려보고,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도 어떠한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삶. 자신들의 게토로 오는 구호물자를 막지 않아, 아이들이 불필요한 죽음을 맞지 않는 것도 이들의 바람이다. 군인들이 돈을 갈취하지 않고,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금목걸이를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당연한 삶을 이들은 꿈꾼다.

Rohingya_AungMingalar_Sittwe_Blocked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 주도인 시트웨 시내 한가운데에는 ‘아웅 밀갈라’ 라는 로힝야 게토가 있다. 2012년 로힝야 학살 당시 살아남은 유일한 로힝야 마을로 불교도와 보안군의 검문소로 둘러싸혀 있다. 매우 제한적 출입만 허용되는 이 게토는 5년째 봉쇄중이다. 최근 로힝야 다른 마을들도 유사한 봉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 Lee Yu Kyung

이러한 바람에 대해 아웅산 수치 정부가 ‘호의’를 내보였다면, 25일의 공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로힝야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수치 정부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길 손꼽아 기다렸다. 철조망 안에 갇혀 사는 자신들을 한 번이라도 와서 봐주길 또한 기다렸다. 그러나 바람은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인종주의로 점철된 정부 대변인의 성명은 로힝야들의 심장을 후벼 팠다.

기자는 지리·정치·사회적으로 로힝야처럼 완벽하게 고립되고, 기본권을 박탈당한 ‘왕따’ 소수민족을 본 적이 없다. 절박한 그들은 현재 벼랑 끝에서 쿠쿠리를 무기삼아 서 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는 것도 로힝야들이다

몇 해 전 로힝야의 자취를 따라 담은 사진 몇 장을 독자들과 나눈다. 40년 가까이 인종청소 상태에 신음해온 고통의 무게가 사진 몇 장에 담길 리 만무하다. 다만, 로힝야에 대한 지독한 편견의 철조망을 다소 걷어내고 싶은 건 기자의 절박함이다.

◇ 인종청소 위기 직면한 로힝야

Rohingya Ethnic Cleansing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 슬럼가. 1978년 미얀마 정부군의 ‘대 로힝야 축출 작전’을 시작으로 로힝야 난민들은 방글라데시로 꾸준히 넘어오고 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인구는 지난 해 10월 로힝야 무장단체가 동을 틔우면서 시작된 군사작전으로 7만 명 이상이 새로 넘어오면서 약 50만~60만 내외로 추정된다. 이중 3만 명 내외만이 유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상태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 슬럼가.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 주도인 시트웨 시내 한가운데에는 ‘아웅 밀갈라’ 라는 로힝야 게토가 있다. 2012년 로힝야 학살 당시 살아남은 유일한 로힝야 마을로 불교도와 보안군의 검문소로 둘러싸혀 있다. 매우 제한적 출입만 허용되는 이 게토는 5년째 봉쇄중이다. 최근 로힝야 다른 마을들도 유사한 봉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방글라데시 레다 캠프 로힝야 난민 어린이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 주도인 시트웨 시내 한가운데에는 ‘아웅 밀갈라’ 라는 로힝야 게토가 있다. 2012년 로힝야 학살 당시 살아남은 유일한 로힝야 마을로 불교도와 보안군의 검문소로 둘러싸여 있다. 매우 제한적 출입만 허용되는 이 게토는 5년째 봉쇄중이다. 최근 로힝야 다른 마을들도 유사한 봉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 주도인 시트웨 시 외곽에 있는 로힝야 피난민 캠프의 한 난민여성. 이 난민 여성의 아들은 2013년 난민보트를 타고 피난민 캠프를 탈출한 뒤 소식이 없다. 2012년 로힝야 학살 직후 생겨난 외곽의 피난민 캠프 역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채 검문소로 둘러싸인 광활한 게토다. 미얀마 당국은 이 캠프로 향하는 구호물자에 제약을 가하거나 중단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군사작전으로 인한 인명 살상은 물론 체계적으로 기본권과 식량권, 의료권 등 모든 형태의 생존권을 박탈해온 미얀마의 수십 년 지속된 정책은 ‘대 로힝야 인종청소’로 비판받고 있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 시트웨시 외곽에 위치한 로힝야 피난민 캠프에서 군경의 총격(2013년 8월 9일 발생)으로 부상당한 환자가 부상당한지 하루가 지나서야 이웃들의 자전거를 타고 의료시설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피난민 캠프내 의료시설은 의료진이 없기 일쑤며 의료시설이라 명명한 공간만 지어놓은 상태다. 시내에 있는 유일한 병원으로 가는 길은 검문소에 막혀 가지 못할 때가 많다. ‘대 로힝야 인종청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 시트웨시 외곽에 위치한 로힝야 피난민 캠프의 한 로힝야는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등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피난민캠프내 의료시설은 의료진이 없기 일쑤며, 의료시설이라 명명한 공간만 지어놓은 상태다. 시내에 있는 유일한 병원으로 가는 길은 검문소에 막혀 가지못할때가 많다. ‘대 로힝야 인종청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 Lee Yu Kyung

Rohingya Ethnic Cleansing

2013년 당시 유엔의 미얀마 인권 보고관인 토마스 퀸타나의 현장 조사 방문에 아라칸 주 라까잉족 불교도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퀸타나의 뒤를 이어 인권보고관을 맡고 있는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 역시 현장조사 방문길마다 유사한 시위대를 만나고 있다. © Lee Yu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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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의 시트웨시에 자리한 쉐자디 불교사원. “미얀마 역사에 ‘벵갈리’(로힝야를 경멸하는 호칭)는 없다”는 목소리를 가장 선두에서 외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승려들이다. 사진은 2013년 유엔 인권 보고관 토마스 퀸타나의 방문을 받는 승려들 모습 © Lee Yu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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