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위기 분쟁의 미래] 스리랑카의 전쟁범죄를 묻다

스리랑카의 킬링필드②

이유경 기자입력 : 2017.09.22 00:06:00 | 수정 : 2017.09.21 21: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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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정부군의 타밀 타이거 반군 포로를 처형하는 모습. 비무장 전쟁 포로 처형 역시 전쟁 범죄에 속한다. 사진=영국 <채널4> 다큐멘터리 ‘스리랑카의 킬링필드’ 화면 갈무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단체 ‘국제진실정의프로젝트’(ITJP, 이하 정의 프로젝트)가 지난달 28일 스리랑카의 자가뜨 자야수리아 전 대사를 브라질 법원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법원에 전쟁범죄 혐의로 고발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내전 후 전범 혐의를 받아온 군 장성들을 외교관으로 임명, 면책특권을 부여해왔다. 정의 프로젝트를 비롯해 국제인권단체들이 스리랑카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자가뜨 자야수리야 전 대사의 전쟁 범죄 혐의는 ▶병원폭격 ▶전쟁 포로나 투항하는 비무장 반군 총살 ▶전쟁 후 반군 포로에 대한 성적 학대와 고문 등이 포함된다. 그가 총 책임자로 있었던 ‘와니특수 사령부’, 즉 ‘조셉캠프’로 불리던 그곳은 전쟁 후 반군 포로와 타밀족 민간인 수감자들이 고문과 강간을 당했던 공간 중 하나다. 일명 스리랑카의 ‘강간캠프’라 불리는 여러 군 캠프 중 하나다.

따지고 보면 샤벤드라 실바와 자가뜨 자야수리야의 혐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샤벤드라는 실바는58사단장으로서 현장 사령관이었고, 자가뜨 자야수리아는 현장지휘를 포함해 보다 책임이 막중한 와니특수사령관으로 고발된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자가뜨 자야수리아는 자신의 지위를 2010년 2월 인도 군사매거진 <SP’s Land Forces>와의 인터뷰에서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북부 전역의 작전과 전술적 책임은 내 명령 하에 이루어졌다. 나는 현장 작전에 활발히 관여하며 육군본부와 국방부로부터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다.”

군사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전쟁 영웅으로 보이고자 뱉은 이 말은, 그러나 전쟁 범죄로 고발된 현재 상황에서 볼 때, 그가 전쟁 범죄의 총 책임자였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8월말 귀국 후에 스리랑카 언론과의 여러 인터뷰에서 “전선 상황을 내가 다 파악한 건 아니다”라며 궁색한 변명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폭격한 북부는 타밀족 대학살 현장이 됐고, 이 책임을 부인키는 어렵다. 특히 당시 타밀족 지역의 병원은 폭격으로 남아나질 않았다.

당시 유엔 대변인이었던 골든 와이스는 전쟁 막바지 5개월 동안 최소 65차례의 병원 폭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타밀타이거 반군 수도 킬리노치(Kilinochchi)에 있는 ‘킬리노치 디스트릭트 병원’은 이미 2008년 10월 25일과 12월 24일 및 30일에 폭격을 당했다. 반군 통치 수도라 하더라도 병원은 국제법상 보호대상이며, 무장 반군이 거점을 두지 않는 한 타밀족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폭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09년 들어 자가뜨 자야수리야 사령관은 1월 20일과 2월 12일 각각 두 차례 일명 ‘비폭격 지대’(No Fire Zone)를 선언했다. 얼핏 보면 비전투원인 민간인들을 ‘비폭격지대’로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전투원인 반군과 구분해 싸우겠다는 취지인 듯 했다. 그러나 해당 구역은 오히려 집중 공격대상이 됐다.

가령, 1차 비폭격지대에 있었던 ‘왈리푸남 병원’(학교에서 병원으로 개조)은 1월 18과 19일, 또한 ‘비폭격지대’의 선언 당일인 1월 20일에도 폭격을 당했다. 병원 측은 와니특별사령부와 직접 꾸준히 소통을 해왔기 때문에 자가뜨 자야수리야 사령관이 병원 위치를 모를 리 없다고 말했다. 2월 12일 선언한 두 번째 ‘비폭격 지대’도 마찬가지다. 해당 구역에 속한 푸투마탈란 병원은 반복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또 다른 병원인 ‘푸티꾸루리루푸 병원’(Puthukkudiyiruppu, PTK 병원)은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다. 유엔에 따르면, 이 병원은 2009년 1월 29일부터 2009년 2월 4일까지 병원시설물이 대부분 파괴돼 부상자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시피 할 당시에도 거의 매일 공격받았다. 병원 폭격은 병원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됐다. 연일 폭격을 퍼부으며 밀고 들어오는 정부군에 해안가로 밀려난 수십만의 타밀족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물리바이칼 병원’이 있었다.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천막 아래 환자를 눕힌 수준이었다. 이곳도 5월 8일부터 12일 사이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급기야 5월 14일 마지막까지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은 계속되는 폭격과 치료 및 수술에 필요한 병원 의약품이 공급되지 않아 의료 활동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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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밀리니는 타밀 타이거 여성부대 정치국장이었다. 2009년 전쟁 막바지 투항하면서 18년 반군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그는 피난민캠프에 정부군과 함께 나타나 난민들 속에 숨어든 반군을 가려내는 역할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여러 반군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일명 ‘재활캠프’에 갇혔던 타밀리니는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2013년 6월 석방됐다. 그리고 2년 뒤 암으로 사망했다. © Lee Yu Kyung

◇ ‘비폭격지대(No Fire Zone)=폭격지대’ 

자가뜨 자야수리야 사령관의 전쟁범죄 혐의에는 타밀타이거 간부의 ‘하얀 깃발 투항사건’도 포함된다. 반군의 패색이 짙어가자 타밀 타이거 정치국장 발라싱함 나데산(Balasingham Nadesan)과 타밀 타이거 평화사무국 국장 시바라트남 풀리데반(Seevaratnam Puleedevan)은 투항을 결심했다. 이들은 외교가와 유엔, 스리랑카 국내 타밀 정치인 등 닿을 수 있는 모든 루트를 통해 투항의사를 스리랑카 정부에 전달했다.

일정한 중재 끝에 ‘하얀 깃발’을 들고 천천히 정부군 방향으로 나오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이 투항 그룹도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항한 반군과 민간인들이 항복하며 향한 곳은 58사단 관활 영토였다. 이곳은 뉴욕법원에서 전쟁범죄 고발을 당했다 면책특권으로 재판을 면한 샤벤드라 실바가 책임자로 있던 구역이었다.

당시 투항 반군을 ‘맞으러’ 간 인물 중에는 샤벤드란 실바와 그의 ‘보스’인 자가뜨 자야수리야 사령관도 있었다는 게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뒤늦게 유출된 두 명의 반군 간부 시신에선 여러 개의 총상자국이 발견되었다. 병원폭격과 고의적인 민간인 공격은 엄연히 국제인도주의 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이다. 이 모든 폭격과 총살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지난달 말 ‘도주’하기 전까지 남미 6개국 대사를 지낸 자가뜨 자야수리야 사령관이다.

자가뜨 자야수리아는 전쟁범죄 고발 소식을 미리 접하고 부랴부랴 브라질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자국의 ‘전쟁영웅’ 누구도 법정에 세우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스리랑카 정부는, 그러나 스스로 딜레마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자가뜨가 브라질을 떠난 것은 도주한 게 아니라 대사로서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임기를 마친 그는 더 이상 외교관의 면책 특권을 받지 않는다. 브라질 법정 및 그가 고발된 다른 법정에서 해당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 그는 국제적인 수배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스리랑카 정부의 자체 조사를 거듭 주문해왔다. 압력에 못이기는 척 2012년 스리랑카 정부가 진행한 ‘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위’의 위원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가뜨 자야수리아가 맡았다. 가해자가 진상조사위 위원장을 맡고, 4~5명 진상조사 위원들 모두 가해자인 상황에서 위원회가 제대로 조사할리 없었다.

전쟁 범죄와 인종학살 등의 중차대한 범죄는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이 여전히 권력 곳곳에 포진해 있는 한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자국 내 인물이나 자국에서 벌어진 범죄 사실이 아니어도 고발장이 접수되면 수사 가능한 ‘유니버설 사법권’(Univercial Jurisdiction)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브라질을 비롯해 호주,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스웨덴 등이 이런 사법권을 받아들이고 있다. 26년 내전 기간 발생한 인권침해와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진상조사 의지가 없는 스리랑카는 유니버설 사법권을 적용하기에 적절한 경우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유니버설 사법권’ 해시태그가 ‘스리랑카’ 에 따라붙는 이유다.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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