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위기 분쟁의 미래] 스리랑카의 ‘목격자 없는 전쟁’

스리랑카의 킬링필드③

이유경 기자입력 : 2017.09.30 05:01:00 | 수정 : 2017.09.30 17:47:04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아들이 타밀 타이거 반군에게 강제 징집되는 걸 막기 위해 참호 속에 숨겨 오줌과 똥을 다 받아냈다는 어머니. 그러나 아들은 전쟁 막바지에 결국 반군에 징집됐고, 전쟁 후에는 반군 포로수용소(일명 ‘재활캠프’)에 갇혔다. 생존자 증언을 기록해온 인권단체들은 이 재활캠프가 반군 포로에 대한 고문과 성적 학대를 일삼은 ‘강간캠프’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 Lee Yu Kyung

지난 2009년 상반기 스리랑카 북부에선 목격자들이 철저히 차단된 채 타밀족 대학살이 벌어졌다. 26년 내전의 마지막 5개월 동안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 타이거를 겨냥해 대반군 작전이라며 타밀 구역을 밤낮으로 폭격했다적십자의 표식이 선명한 병원이나머리가 자그마한 아이도앙상한 노인 모두 직격탄을 입었다. 30만 이상 타밀족들이 내몰린 좁고 기다란 해안가는 생지옥이었다. ‘스리랑카의 킬링필드

아무도 모른다몇 명이 죽었는지. 4만에서 최대 10만 명사라진 목숨의 추정치는 그렇게 넓게 분포해있다목격자 없는 전쟁이지만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오늘날 목격자로 남아 있다지난 8년간 이들은 증언을 하고 기록을 남겼다그 기록을 토대로 현장을 전두 지휘한 군 장성들이 하나둘 전쟁범죄 고발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갈 길은 멀다외교관으로 분한 군 장성들의 면책특권은 장애물이고, ‘전쟁영웅을 법정에 절대로 세우지 않겠다는 스리랑카의 결의도 장애물이다그럼에도 전범자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산지브 루바가나따는 2010년 당시 세살 고아였다. 종이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산지브는 자신이 그림에 대해 시신이나 하늘에서 폭탄이 쏟아지는 폭격장면이라 말하곤 했다. 산지브의 몸 곳곳에는 파편 자국이 있다. © Lee Yu Kyung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사진 속 타밀 소녀들은 스리랑카 내전 막바지 3년 이상 끊임없이 피난을 다녔다. 전쟁에서 다행히 살아남았고, 강제 수용소라 불렸던 국내피난민 캠프에 여러 달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폭격의 기억으로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자매는 고맙게도 카메라 앞에 서 주었다. © Lee Yu Kyung

War Survivors, Sri Lanka

스리랑카 전쟁 막바지 정부군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피난할 기회를 준 적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사지에 남았던 8명의 사제가 있었다. 고아를 돌봐왔던 사진 속 신부는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8명의 신부중 6명이 생존했다. 한명은 강제실종, 다른 한명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Lee Yu Kyung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타밀 가족이 자신들과 끝까지 ‘살아남은’ 도구를 내보였다. 바로 참호를 파는데 쓰는 삽들이었다. 반군 영토쪽 타밀족은 전쟁 막바지 3-4년간 지속적인 피난살이를 해야 했다. 그 피난길마다 이 무거운 삽들을 반드시 챙겼다고 말한다. 참호를 파야했기 때문이었다. © Lee Yu Kyung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사진 속 여성은 딸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딸은 타밀 타이거 반군이 2007년께부터 실시한 ‘1가족 1타이거’ 정책에 따라 2008년부터 반군에 징집됐다가 전쟁 후 소식이 없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심하게 부상당한 이 여성의 딸은 오만따이 검문소(북부 타밀 지역 관문격 정부군 검문소)에서 군에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 Lee Yu Kyung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10살 타밀 소년(2010년 기준)은 전쟁 막바지 폭격이 계속된 반군 영토에서 폭격을 가하는 정부군 영토로 넘어오는 길에 엄마와 누이 둘을 잃었다. 외연으로도 트라우마가 두드러져 보였던 이 소년은 친척들에 따르면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기절하는 일이 잦다. © Lee Yu Kyung

Enforced Disappearance, Sri Lanka

스리랑카 내전 26년 동안 수많은 강제 실종(enforced disappearance) 사례가 발생했다. 사진 속 여성은 실종된 남동생의 사례가 실린 기사를 들어보였다. 남동생은 2007년 군 검문소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연락이 없다. 이 여성의 언니와 오빠, 엄마는 90년대 초 스리랑카 군에 총살당했다. © Lee Yu Kyung

War Widows, Sri Lanka

스리랑카는 강제실종으로 악명이 높다. 사진 속 여성의 남편은 2007년 군 검문소에서 마지막 목격된 뒤 소식이 없다. 여성은 여러 인권단체, 경찰서 등 남편의 강제 실종 사실을 신고하거나 보고하고 받은 각종 증서들을 다 모으고 있다. © Lee Yu Kyung

War Survivors, Sri Lanka

30대 타밀 남성은 2009년 5월 14일 전쟁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당시 반군 영토에서 정부군 영토로 넘어오면서 아내와 두 딸을 잃었다. © Lee Yu Kyung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5살 타밀 소년(2010년 기준)의 몸은 파편 조각으로 인해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가운데 발가락 끝도 사라졌다. 소년은 전쟁 막바지 부모님을 잃었다. © Lee Yu Kyung

Witness of the war without witness in Sri Lanka

전쟁 부상으로 다리를 잃은 타밀 청년. 그는 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 Lee Yu Kyung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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