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리랑카에서 반(反)무슬림 폭동이 잇달아 일어났다. 시리세나 정부는 집권 뒤 개혁에 지지부진했고 반무슬림 폭동을 일삼고 있는 불교 극단주의 세력 진압에도 실패했다.

스리랑카 내전 막바지 수도 콜롬보 거리에는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 대형 플랑카드나 초상화가 내걸렸다. 소수타밀족 대학살이 가속화될 수록 그와 그의 동생이자 국방부 장관인 고타바야 라자팍세는 전쟁 영웅이 됐다. © Lee Yu Kyung
그나나사라는 2004년 2월 승려들이 창당한 극우 성향의 민족유산당(JHU) 소속이었다. JHU는 제도권 정당을 표방한 불교 극단주의 세력이다. 그해 그나나사라는 JHU 후보로 콜롬보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JHU는 물리적 폭력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지만 BBS는 달랐다. 2012년 7월 발족한 BBS는 반무슬림 선동을 일삼으며 폭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스리랑카 분석가인 앨런 키넌은 “라자팍사 정권은 BBS를 다양하게 지원해왔다”라고 말했다. 키넌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라자팍사가 지방선거에 성공함으로써 폭동에 가담한 불교도들을 더 대담하게 만든 효과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늑장 대응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곧 반무슬림 폭도(불교도)들에게 더 호의적인 정치인이 정권을 잡을지 모른다고 계산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키넌의 분석대로 경찰은 늑장 대응과 방관뿐 아니라 폭동의 피해자인 무슬림들을 구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인권운동가 루키 페르난도가 온라인 미디어 <그라운드뷰(Groundview)>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폭동 지역에 배치된 경찰 특수부대는 무슬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우리에게 화염병을 던진 것처럼 설정하자”라는 대화를 목격자 증언으로 전했다. 폭동 둘째 날인 3월5일 오후 5시 캔디 지방 암바가할란다에서 벌어진 일이다.
폭력 방관하고 피해자 구타하는 경찰
스리랑카에는 원래 불교도인 싱할라족이 75%, 힌두·기독교를 믿는 타밀족이 15%, 그리고 무슬림이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무슬림은 동북부에서 타밀족과 어울려 살았다. 그러다 1990년 10월 타밀 반군인 ‘타밀타이거(LTTE)’가 북부 지방 무슬림 7만여 명을 축출했다. 무슬림들이 정부군의 첩보원 노릇을 한다는 이유였다. 이 사태로 타밀족과 무슬림 사이에 골이 깊어졌다.
2009년 라자팍사 정권은 타밀족 반군과 벌인 25년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타밀족 대학살을 낳았다. 내전 승리로 싱할라족 민족주의와 불교 극단주의의 결합이 더 강해졌다. 2015년 대선에서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정부는 ‘소수 종족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공약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타밀족과 무슬림 유권자들이 캐스팅보트 구실을 한 결과였다.
시리세나 정부는 집권 뒤 개혁에 지지부진했고 반무슬림 폭동을 일삼고 있는 불교 극단주의 세력 진압에도 실패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다음 날인 3월7일 시리세나 대통령의 행보는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날 캔디 지방을 방문해 BBS의 그나나사라를 비롯한 승려들을 만나 불교도의 불만 사항을 들었다. 반면 폭동의 직접 피해자인 무슬림은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ICG 분석가 앨런 키넌은 “이 상황은 라자팍사가 주도하는 야권 세력만 강화시킬 뿐이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