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국민 모욕’ 타이에선 ‘왕실 모독’

70년 통치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서거 이후 20명이 왕실모독법으로 체포 조사 중
붉은 옷 입어 ‘마녀사냥’ 당하고 SNS 댓글 때문에 회사 해고되기도

제1136호 등록 : 2016-11-10 17:38

지난 10월13일 푸미폰 아둔야뎃 타이 국왕이 서거한 병원 마당에서 방콕 시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 Lee Yu Kyung

타이에 사는 누구라도 조마조마했을 순간이 오고 말았다. 2016년 10월13일 오후 3시52분, 대다수 타이 국민이 평생 ‘국부’로 여겼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방콕 시리랏병원에서 88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이곳에서 6년 넘게 치료를 받아왔다. 병원 마당을 가득 메운 시민 수천 명은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며 국부를 잃은 슬픔을 분출했다. 부활의 기적을 염원하는 이도 있었지만, ‘백성’들의 사랑과 만수무강 외침 속으로 세계 최장기 군주는 영면했다. 1946년 6월9일 오전 9시 의문사한 형(아난다 마히돈, 라마 8세)의 뒤를 이어 라마 9세에 즉위한 지 70년 만이다.

젊은 국왕 푸미폰은 사진을 찍고 색소폰을 불고 재즈를 작곡하는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농촌 ‘현장 지도’에 헌신하는 서민적 이미지도 인기 비결이었다. 미국과의 철저한 동맹으로 냉전시대를 버텼고, 쿠데타로 얼룩진 굴곡의 현대사를 지나며 그는 거의 절대적 신봉 대상이 됐다. 사실과 이미지는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군중재판’ 자처하는 자경단

국왕 서거 뒤 3주가 지난 11월 초에도 왕궁 주변 추모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추모 의상으로 권고받은 검은 셔츠는 일찌감치 동났고, 일부 시설에선 검은 셔츠 염색 서비스를 하고 있다. 30일간 유흥 자제와 축제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생계 지장이 불가피해졌다. 관광산업 타격을 우려한 듯, 타이 관광청은 ‘여행객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다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화려하지 않은 차림으로 현지 문화를 존중해달라고 여행객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나 일부 극단적 성향의 왕정주의자들이 연일 폭력을 휘두르면서 국왕 서거 뒤 예측되었던 불안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아른거린다. 붉은 셔츠를 입고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다 자신도 모르게 사진이 찍힌 뒤 인터넷상에서 마녀사냥을 당한 사례는 차라리 유순했다. 국상 기간에 밝은 색을 입고 외출했다는 비난으로 그쳤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일은, 왕실 모독으로 간주되는 인터넷 포스팅을 한 당사자를 찾아가 ‘군중재판’(mob justice)을 자처하는 자경단 현상이다.

최악의 사례는 지난 10월18일 관광지 파타야로 유명한 마을 촌부리에서 발생했다. 관련 정보를 종합하면 이렇다. 타이스틸케이블(Thai Steel Cable PCL) 노동자 지라왓 파툼통(19)은 10월17일 밤 야간근무 중 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댓글을 주고받았다. 농담으로 시작한 댓글이 왕실 모독 성격의 댓글로 이어진 모양이다.

다음날 회사는 그를 해고하며 페이스북 프로필에 있는 회사 이름을 지우라고 했다. 그러나 성난 무리는 이미 회사로 몰려왔다. 이들은 “모독성 댓글을 단 놈”을 찾았다. 인사과장은 그들에게 지라왓의 집주소를 알려줬다. 결국 그는 성난 무리에게 끌려나와 구타당했다. 피 묻은 얼굴을 깊이 숙여 푸미폰 국왕의 사진 앞에 절하는 것으로 군중재판은 끝났다.

그러나 사법절차는 이제 시작이다. 형법 제112조 ‘왕실모독법’은 위반 사례 한 건당 최대 15년형을 규정하고 있다. 국왕과 왕비 그리고 국왕 내정자 3인에 대한 모독이 금지돼 있다.

자경단식 처벌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폭력의 즉각성이다. 10월17일 방콕에서 발생한 사건이 그렇다. 이날 버스 안 나이 지긋한 여성은 ‘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다른 승객들에 의해 강제 하차당했다. 하차한 그를 기다린 건 행인의 따귀였다. 경찰은 그냥 지켜봤다. 페이스북에 오른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이 여성은 오랫동안 혼자 중얼거렸단다. 그가 언급한 ‘왕’은 “드라마에 나오는 주먹 세계의 왕” 같은 거였다.

타이 정론지 <카오솟> 영문판의 고참 기자 쁘라윗 로자나프룩은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0월19일 자신의 페이스북 포스팅 댓글을 통해 경찰의 말을 전했다. ‘이 여성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병원에 여러 해 입원한 이력이 있고 한동안 약물치료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왕정주의자들의 과도한 충성심이 빚어내는 거리에서의 폭력적인 군중재판, 이 모습은 얄궂게도 국왕 서거 일주일 전인 10월6일 40주기를 맞은 탐마삿 학살의 악몽을 연상시킨다. 1976년 10월 레드가우어(Red Gaur), 보이스카웃, 나와폰(Nawapol) 등 준민병대 수준의 극우왕정주의 조직은 그보다 3년 전인 1973년 10월14일 민주화 시위로 물러났던 독재자 타놈 끼띠카쫀의 귀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며 학살을 저질렀다.

흥미롭게도 푸미폰 국왕의 친민주주의 이력으로 거론되는 사건 중 하나가 1973년 10월14일 시위대에 왕궁 문을 열어준 일이다. 1973년 ‘10·14 민주화운동’은 기념관 설립과 공식 추모로 기억되는 민주화 역사로 남았다. 반면 1976년 10·6 탐마삿 학살은 여전히 금기의 역사다.

차기 국왕은 언제쯤 승계 가능할까?

왕실을 모독하는 댓글을 페이스북에 달았다가 ‘성난 무리’한테 구타당한 노동자 지라왓 파툼통(왼쪽). 국왕 서거 뒤 검은 옷을 입으라는 복장 규제 내용이 인터넷에 게시됐다(오른쪽)

현재 마녀사냥 불똥은 해외로까지 튀고 있다. 10월18일 유럽에 거주하는 한 이탈리아계 타이 남성이 “유럽에 망명 중인 왕실모독법 위반자들을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전투적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프랑스의 타이 교민 사회가 들썩였다.

10월16일 극우왕정주의 온라인 그룹 ‘쓰레기처리반’(RCO·Rubbish Collection Organisation) 대표 리엔통 나나는 왕실모독법 혐의를 받고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난민, 사란 추이차이(일명 ‘움 네코’)를 ‘공개수배’했다. 그는 사란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의 주소를 공개하며 “프랑스에 사는 모든 타이인들은 이런 이름이 주변에 있는지 체크해서 연락 주기 바란다”고 온라인에 올렸다. 또 10월 28일에는 ‘마녀사냥’으로 호주에 거주하는 한 태국인이 식당에서 해고됐다.

마녀사냥에 가장 부적절하게 대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유엔난민기구(UNHCR)다. 10월18일 ‘유엔난민기구 타일랜드’는 움 네코의 망명을 도운 거 아니냐는 극우 진영의 비난에 대해 “아무런 연계가 없다. 프랑스에서의 난민 신청은 오로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해명했다. 성명은 이어 “유엔난민기구는 그가 국왕 서거와 관련해 부정적 코멘트를 남긴 것을 강력히 비난한다”며 난민기구의 난민 비난 성명 기록을 남겼다.

이 문제에 대한 타이 당국의 태도는 표면상 혼선이 보인다. 우선 법망을 벗어난 사회적 제재를 “가장 좋은 방식”이라 두둔한 이는 다름 아닌 법무부 장관 빠이분 쿰차야다. 법무부는 프랑스의 움 네코를 포함해 해외 망명 중인 왕실모독법 위반자 6∼7명의 본국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폭도식 재판 행위를 멈추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온라인상 마녀사냥을 부추기고 외국 언론 검열을 위해 인터넷 사업자가 ‘알바’까지 모집하는 것은 현 군정의 초강도 검열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10월26일 현재 왕실 모독법으로 체포 조사 중인 이는 20명이다.

타이 군정의 진정한 혼선은 왕위 승계 문제를 둘러싼 행보에서 감지된다. 10월19일 위싸누 끄레아응암 부총리는 승계 문제에 대한 ‘사실’과 ‘절차’를 타이 언론매체 와 인터뷰하며 공식 거론했다. 그는 “이 시점이 되도록 승계 절차에 대한 성명을 내지 않은 것에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다”며 “그로 인해 다양한 억측이 난무했다고 본다”고 인정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가 차기 국왕으로 지명된 인물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새로운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타이 헌법에 따르면 국왕이 (서거로) 부재하고 후계자가 명확할 경우 의회를 소집해 차기 국왕 안을 발의해 통과시킨다. 의회가 차기 국왕을 ‘초대’하는 절차다. 그러나 국왕 서거일 밤 9시 긴급 소집된 군정의회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초대’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어 타이 현대사의 권력 심장부를 쥐어온 쁘렘 띤술라논(96) 추밀원 원장이 사실상 국왕 권한 대행에 해당하는 임시 섭정에 올라 억측이 난무했다.

위싸누 부총리는 왕세자가 차기 국왕에 오르는 시점을 푸미폰 국왕의 다양한 장례 절차가 끝나는 때, 최소 172일 이후(2017년 4월 이후)로 암시했다. 이는 하루 전날인 10월18일 쁘라윳 총리가 “1∼2주 안에”라고 언급한 것과 상당한 시간차를 보인다.

타임라인의 혼선은 더 있다. 군정은 지난 8월 국민투표를 통과한 뒤 왕실 승인 절차를 기다리는 20대 신헌법을 “와찌랄롱꼰 왕세자가 틀림없이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헌법은 통과로부터 6개월 안에, 즉 내년 2월 안에 왕실 승인 절차를 마쳐야 한다. 위싸누 부총리가 제시한 타임라인에 따르면 와찌랄롱꼰 왕세자가 내년 2월 안에 국왕에 즉위한다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이 경우 왕실 승인 절차에 서명권을 갖는 건 국왕 대행을 맡고 있는 쁘렘 띤술라논 임시 섭정이다. <로이터> 통신은 11월2일 익명의 군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2월1일 와찌랄롱꼰 왕세자를 국왕으로 선포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쁘렘의 임시 섭정으로 공석이 된 추밀원장 자리에 오른 건 타닌 끄라이위치엔 전 총리다. 타닌은 1976년 탐마삿 학살 뒤 권력을 잡은 쿠데타 정부하에서 임시총리를 했다. 그는 탐마삿 학살에 연루된 극우조직 나와폰에도 관여한 바 있는 반공정신이 투철한 타이의 전형적 극우 엘리트다.

국왕 서거 뒤 타이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새 시대에도 80~90살 연로한 권력들은 균열을 보이면서 엎치락뒤치락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타이는 아직 ‘10월의 역사’를 살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이 1970년대 유령에 휩싸여가는 것처럼.

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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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기사는 본 사이트가 휴면 상태에 들어간 지난 2년간(2016.8~) 발행된 기사 중 하나로서 뒤늦게 업로드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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