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강제실종, 의문사..타이군정 2년 ‘출구’가 안보인다

  • 군부대안 구금시설운영, 타이판 ‘블랙 사이트’ 악명  
  • 비판세력 체포는 ‘납치스타일’로, 총리 절대권한 부여한 임시헌법 44조가 근거   
  • 페이스북 개인메시지함 적힌 글자하나 왕실모독법 위반혐의로 군사재판에 부쳐져       

방콕 = 이유경 LEE@penseur21.com

*아래 기사는 <시사인> 465호에 실린 <군부의 쿠테타 이후 타이의 ‘긴조’ 시대> 원본입니다. 제목은 편집자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9일 저녁 7시께 타이 남부지방 수라타니에 사는 사라윳 밤룽키티쿤(37) 집으로 30여명의 군경이 들이닥쳤다. 영장제시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군경은 사라윳을 차에 태우고 눈을 가린 채 달렸다. 도착한 곳은 수라타니 지방내  45여단 군부대(45TH Army Circle Camp), 그곳에서 사라윳은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열린토론”을 폐쇄할 것과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서약서에 사인했다. ‘열린 토론’은 2만여명의 ‘좋아요’와 수십만명의 방문 기록을 지닌 인기 페이지였다.

지난 4월 27일 이른 아침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체포된 10명 중 8명에게 선동죄가 적용됐다. 그 8명 중 2명은 왕실 모독법 위반까지 겹쳤다. 페이스북 포스팅과 댓글로 잡혀간 이들은 ‘페이스북유저8’이라 부른다. 5월 10일 군사법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 Sa-nguan Khumrungroj)

지난 4월 27일 이른 아침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체포된 10명 중 8명에게 선동죄가 적용됐다. 그 8명 중 2명은 왕실 모독법 위반까지 겹쳤다. 페이스북 포스팅과 댓글로 잡혀간 이들은 ‘페이스북유저8’이라 부른다. 5월 10일 군사법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 Sa-nguan Khumrungroj)

군경30명이 들이닥쳐 체포하다

타이군정이 쿠테타를 감행한지 2년이 흘렀다. 2년전 5월 22일 “행복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던 프라윳 찬 오차 총리는 페이스북 토론페이지를 운영했다는 이유만으로 운영자를 납치하듯 데려가는 공포정치를 펴고 있다. 근거는 군정이 도입한 임시헌법 44조다. 총리에게 절대권한을 부여한 이 조항은 지난 해 3월 쿠테타 10개월만에 게엄령을 해제하면서 발동됐다. 바로 이어 발표된 긴급조치 3호 (“Order 3/2558”, 2558 불교력에 따라 2015년을 지칭)에 따라 당국은 영장없는 체포와 비밀구금을 7일간 이어갈 수 있다. 이기간 변호인 접견권도 온전히 거부당한다.

지난 5월 22일 쿠테타 2주년을 기념하여 방콕 민주탑에서 치뤄진 시위는 신민주주의운동(New Democracy Movement, NDM) 학생들이 주최했지만 중장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앞치마를 두른 여성 (가운데)은 근처 노점상이다. 2014년 쿠테타 이후 2년간 군사독재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것만 200명이 망명길에 올랐고 군정의 고소고발이 남발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 Lee Yu Kyung)

지난 5월 22일 쿠테타 2주년을 기념하여 방콕 민주탑에서 치뤄진 시위는 네오민주주의운동(New Democracy Movement, NDM) 학생들이 주최했지만 중장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앞치마를 두른 여성 (가운데)은 근처 노점상 상인이다. 2014년 쿠테타 이후 2년간 군사독재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것만 200명이 망명길에 올랐고 군정의 고소고발이 남발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 Lee Yu Kyung)

지난 5월 22일 쿠테타 2주년을 기념하여 방콕 민주탑에서 치뤄진 시위에서 신민주주의운동(New Democracy Movement, NDM) 소속 학생운동가들이 연설중이다. 시위는 전례없이 허용됐고 학생들이 주최했지만 중장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2014년 쿠테타 이후 2년간 군사독재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것만 200명이 망명길에 올랐고 군정의 고소고발이 남발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 Lee Yu Kyung)

지난 5월 22일 쿠테타 2주년을 기념하여 방콕 민주탑에서 치뤄진 시위에서 네오민주주의운동(New Democracy Movement, NDM) 소속 학생운동가들이 연설중이다. 시위는 전례없이 허용됐고 학생들이 주최했지만 중장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2014년 쿠테타 이후 2년간 군사독재체제가 공고히 되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것만 200명이 망명길에 올랐고 군정의 고소고발이 남발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 Lee Yu Kyung)

그날 밤 서약서에 사인한 후에도 사라윳의 구금은 계속됐다. 다음날 군은 그를 비행기에 태워 방콕으로 데려왔고 서북부 나콘차이시마도로에 위치한 11연대 군부대(11th Army Circle Camp)로 직행했다. 부대안에는 임시구금시설이 있다. 변호인도, 가족도 면회가 불가한 비밀시설이다. 테러리스트 혐의자를 가두던 CIA의 제3국 비밀구금시설에 비유되면서 타이판 ‘블랙사이트 (Black Site)’라 불린다. 지난해 8월 방콕폭탄범 혐의를 받고 잡힌 위구르 청년 두명도 이곳에 있고, 군정이 “태도교정”을 하겠다며 소환하는 비판세력들도 모두 이 구금시설로 불려왔다. 5월 31일이 돼서야 국방부 장관겸 부총리인 프라윗 웡수완이 “태도교정 장소를 군부대 밖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사라윳은 가느다란 빛줄기가 새어들어오는 공간에 갇혔고 세명의 군이 돌아가면서 그를 지켰다. 구금 셋째날, 군은 그가 ‘반왕정 네트워크’에 관여한바 없는지 집중심문했다.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왕실모독성 메시지가 없는지도 샅샅이 뒤졌다. 형법 112조 즉 왕실 모독법에 걸리면 한 건당 최대 15년형까지 처해질수 있는 중범죄자 된다. 법조항은 국왕과 왕비 차기국왕으로 내정된 왕세자를 모욕한 경우 처벌대상으로 규정했지만 반정부세력과 정적을 겨냥 악용돼 왔다.

타이법률엔지오 iLaw에 따르면 쿠테타 후2년간 67명이 왕실 모독법으로 기소됐거나 재판중이다 (7월 21일 현재 업데이트).  그중 지난 해 말 왕실모독 혐의를 받고 11연대 시설내 구금중이던 두명은 시체로 돌아왔다. 경찰간부 프라콤 와룬프라파파라는 인물과 수리얀 수차릿폴웡(일명 점쟁이 모용)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반정부 세력도 아니었다. 모용은 왕실 최측근 점쟁이였고, 프라콤은 왕실모독법 조사를 전담하던 경찰부서 간부였다. 의문사였다. 이들이 어떤 모독으로 처벌받았는지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른다. 광범위한 오독과 남용, 문제가 된 콘텐츠를 보도용으로라도 반복할 수 없는 거 또한 이 법의 성격이다.

타이 푸미폰 국왕의 초상. 두사람 모두 병원 신세중이다. 타이에서 왕실 가족에 대한 비판이나 거론은 왕실 모독법에 따라 중범죄로 다뤄진다. 그러나 왕실모독법이 광범위한 오독과 남용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겨냥하여 악용돼 왔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 Lee Yu Kyung)

타이 푸미폰 국왕의 초상. 두사람 모두 병원 신세중이다. 타이에서 왕실 가족에 대한 비판이나 거론은 왕실 모독법에 따라 중범죄로 다뤄진다. 그러나 왕실모독법이 광범위한 오독과 남용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겨냥하여 악용돼 왔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 Lee Yu Kyung)

“구금 3일째 지나면서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라윳의 말이다. 하필 그날, 3월 11일은 군정최고기관 ‘평화와 질서회복 국가평의회 (NCPO)’ 대변인인 피야퐁 클린판 소령이 기자들에게 “사라윳이 체포됐는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우린 모른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 날이다.

잡혀간 후 8일만에 사라윳은 무사히 귀가했다. 군은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구금당한 8일간 사라윳은 ‘강제실종’ (enforced disappearance)상태였다. 그의 행방을 유일하게 아는 군정이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강제실종은 “국가의 관료나 기관이 시민을 체포하거나 구금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 구금자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2004년 5명의 경찰에 의해 납치된 뒤 강제 실종된 변호사 솜차이 닐랄파이짓(Somchai Neelapaijit) 의 사진이 걸린 전시회에서 한 타이 언론인이 외국인 관람객을 인터뷰하고 있다. (© Lee Yu Kyung)

2004년 강제 실종된 변호사 솜차이 닐랄파이짓(Somchai Neelapaijit) 의 사진이 걸린 전시회에서 한 타이 언론인이 외국인 관람객을 인터뷰하고 있다. 타이 남부 무슬림 반군 혐의청년들을 변호하던 솜차이 변호사는 5명의 경찰에 의해 납치된 뒤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 Lee Yu Kyung)

강제실종유엔조사그룹에 따르면 1980년 이래 타이에서 발생한 강제실종은 최소 82건이다.  인권단체들은 훨씬 더 많을 걸로 보고 있다. 이중 단 한건도 진상이 밝혀진 건 없다. 1월 7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UN High Commission for Human Rights)의 자이드 라아드 알 후사인(Zeid Ra’ad Al Hussein)은 82건을 재조사하라 권고했지만 조사는 커녕 강제실종은 되려 늘었다. 강제실종은 국제법상 범죄다. 하지만 역대 타이 정부는 이를 범죄로 규정하길 거부해왔다. 그러다 5월 24일 군정이 자신들이 임명한 군정의회에 “고문과 강제실종 방지”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가해자가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방지하자며 법안을 제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게다.

한편, 사라윳이 ‘납치 스타일’로 잡혀갔다면 탐맛삭 대학 정치학도 시라윗 세리티왓은 문자그대로 납치을 당한 경우다. 1월 20일 밤 10시 30분, 친구와 교문밖을 걷던 시라윗은 달려드는 군인 8명에 붙들려 강제로 차에 올랐다. 번호판 없는 차량은 불빛 반짝이는 도로 속으로 사라졌다. 납치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군정의 즉각 반응은 “모른다”였다.

올 1월 탐맛삭 대학 랑짓 캠퍼스 부근에서 군에 납치됐다 풀려난 시라왓 세리티왓 (Sirawit Seritiwat) 이 지난 해 (2015) 체포된 동료 학생운동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Lee Yu Kyung)

올 1월 탐맛삭 대학 랑짓 캠퍼스 부근에서 군에 납치됐다 풀려난 시라왓 세리티왓 (Sirawit Seritiwat)이 지난 해 (2015) 체포된 동료 학생운동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Lee Yu Kyung)

다음날 새벽 2시 30분 경 시라윗이 경찰로 넘겨지면서 그를 잡아간게 공권력 이라는 건 금새 확인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납치군인들은 보병 2사단 2연대 (2nd Battalion of the army’s 2nd infantry regiment) 소속 군인들이다. 시라윗은 차안에서 눈이 가려졌고 총으로 추정되는 단단한 물질로 머리를 가격당했다고 말했다. 야산으로 먼저 끌려간 그는 무릎이 꿇린채 발길질도 당했다고 주장했다. 납치군인들의 질문이 특이했다. “왜 언론과 인터뷰 하는가? 유명해지고 싶은가?”

언론과 인터뷰하는가?”        

프라윳 총리는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시라왓의 사례는 “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며 “정부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비판세력을 옥죈 군정 2년간 약 200명이 정치적 망명길로 올랐다. 총 167명의 민간인이 군사재판을 받았으며 선동죄(형법 116조)로 잡혀간 39명 중 다수는 프라윳 총리를 풍자한 죄다. 떠나지도, 잡히지도 않은 자들은 눈과 입이 틀어막혀서인지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다. 그나마 마지막 소통공간이던 페이스북도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4월 27일 새벽 페이스북 이용자 10명이 비판적 포스팅과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동시다발 체포됐다.

2년전 쿠테타 직후 쿠테타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군인들이 거리에 배치됐다. 시위는 일주일 내외 이어지다 유혈충돌을 우려하며 사그라들었고 그날 이후 지난 2년간 타이사회는 군사독재국가체제를 점점 더 공고히 해가고 있다. (© Lee Yu Kyung)

그런데 ‘바닥’은 더 남아 있었다. 40세 여성 파트나리 찬킷이 자신의 페북메시지함에 도착한 어떤 메시지에 “응” 정도에 해당하는 태국어 “쨔”를 적었다는 이유로 왕실모독법 위반혐의로 소환돼 조사받았고 군사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군정이 그를 겨냥한 진짜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파트나리는 군정에 납치됐다 보석석방으로 풀려나고도 비판을 멈추지 않은 대학생 시라윗의 엄마다. 가사도우미, 청소일, 다림질 등 온갖 허드렛일로 아들을 명문대에 공부시켜온 홀엄마다. 파트나리가 타이군정의 탄압지수를 가장 또렷이 부각시킨 시민으로 부상하며 타이는 군정통치 3년째로 접어들었다.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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