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약 어기고 타이에서 중국으로 강제 송환된 ‘120명’의 위구르족… 아내와 아이들은 터키로 남편은 중국으로 흩어져, 3주 흘렀지만 송환자의 운명은 깜깜무소식
“늦은 밤 비밀스럽게, 그것도 굳이 라마단 기간에 서둘러 쫓아내야 했는지 모르겠다.”
타이 무슬림 인권운동가인 앙카나 닐라파이짓은 지난 7월8일 밤 타이 정부가 이민성 감호소에 구금 중이던 위구르족 ‘불법’ 이민자들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것이 인권유린이라며 분노했다. 앙카나는 타이 남부 분쟁 주 무슬림 젊은이들을 변호하다 2004년 강제 실종된 인권변호사 솜차이 닐라파이짓의 아내다. 그날 이래 강제 실종, 고문, 그리고 종교 자유에 관한 것은 늘 자신의 일처럼 챙겨왔다.

중국 화면 갈무리 사진들. 7월8일 위구르족 이민자들이 검은 두건으로 얼굴이 가려진 채 중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중국 정부는 강제 송환자 수를 109명으로 발표했지만, 한 사진(오른쪽 아래)에 ‘12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CCTV’ 화면 갈무리, 맨 아래 오른쪽은 세계위구르협회(WUC) 터키지부 제공
하필이면 그것도 라마단 기간에
앙카나가 ‘라마단’을 언급한 건 한 무슬림의 볼멘소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슬람력의 신성한 달로 간주되는 라마단 기간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교사, 학생, 공무원들에게 단식 금지령을 내렸다. 특정 구역에 히잡을 두른 여성이나 턱수염이 있는 남성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경고문을 심심찮게 붙여놓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신장 주의회는 ‘공공장소 부르카 착용 금지’ 법안도 통과시켰다. 컴퓨터에 종교 자료를 저장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공무원도 있다. 카스 지방 수러현 ‘농업기술촉진센터’ 공무원 압둘 칼릴리 아부리미티의 사례다.
<한겨레21>이 입수한 해고공문 ‘勒人社字 2013-42호’에 따르면 압둘은 수러현 ‘인사 및 사회 안보부’ 명령 18호, ‘관공서 직원 징계 방침’ 3장 16조 5항과 8항에 의거해 해고됐다. 지난 2월 우루무치에서는 이맘(종교지도자)들이 ‘문명화’의 이름으로 동원돼 거리에서 집단무를 추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맘들은 ‘아이들에게 종교를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기도는 영혼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칠 것도 강요받았다. 켜켜이 쌓여가는 종교적 문화적 모멸감, 이번 ‘라마다 송환’은 그 모멸감을 극대화했다.
송환 다음날 중국 관영방송의 보도 화면을 보자. 가슴에 70번을 단 송환자는 비행기 안에서 중국경찰특공대(‘SWAT’)에 둘러쌓여 속절없이 앉았고, 80번대를 단 송환자들은 중국에 도착한 뒤 부축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려왔다. 모두 검은 두건으로 머리가 온전히 가려진 채였다. 종교적 차림에 불과한 히잡이 금지 목록에 오르는 바람에 저항의 상징물처럼 됐다면, 권력이 뒤집어씌운 검은 두건은 강제송환자들의 개별 정체성을 이그러트리며 ‘강제 실종’의 우려마저 낳았다.
“우리가 확보한 정보와 방송 화면을 모니터한 결과 강제 송환된 이들은 (중국 정부가 발표한) 109명이 아니라 최소 120명이다.” 세계위구르협회(WUC) 터키 대표인 세잇 툼투르크는 가슴에 숫자 ‘120’이 선명히 보이는 송환자의 사진을 근거로 제공했다.
‘120’ 숫자가 가슴팍에 선명한데
“8일 (워싱턴 시각) 오전 2시(방콕 시각 오후 1시)께 전화가 왔다. (이민성 감호소에서) 공항으로 이송되는 중이라고. 강제송환 되는 거 같은데 저항하겠다고 하더라. 그정도까지 하고 말은 끊겼는데 전화기 건너편으로 괴성, 구타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세계위구르협회 의장 레비야 카디르(69)는 좀체 알려지지 않았던 송환 당일(7/8일) 낮 상황을 부분 진술했다. (인터뷰 참조)
기자가 이 소식을 처음 접한 건 방콕 시각으로 지난 7월9일 아침 7시4분, 소셜미디어 라인(LINE)에 마련된 ‘타이외무부 산하 외신부’ 채팅방에서다. 송환 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방에 등록된 150여 명의 기자들은 송환 사실을 전혀 몰랐고 외무부 직원에게 ‘확인’을 닦달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간밤에 발생한 위구르 시위대의 타이영사관 공격 기사가 실마리였다. 거의 하루 종일 걸린 송환 과정은 그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위구르족들이 중국과 국경이 맞닿은 다양한 동남아 국가들로 탈출하는 현상은 지난 5년간 서서히 고조돼왔다. 지난해 3월 남부 정글에서 발견된 220명을 포함해 다양한 국경에서 타이 경찰에 의해 잡혀온 이들이 약 450명이다. 이들은 5개 타이 이민성 감호소에 갇혔있다 100여 명은 ‘탈출’에 성공해 말레이시아를 거쳐 터키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3살 된 압둘라 압두웰리의 삼촌도 탈출자 중 한 명이다. 혼자 남겨진 압둘라는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감호소에서 결핵에 걸려 지난해 12월 사망했다.
“타이 정부에 전해달라. 우리를 중국으로 추방할 거면 그냥 여기서 사살하라고. 고문받으며 중국 감옥에 갇히느니 여기서 죽겠다.”
지난해 이들을 면회했던 터키의 세잇 툼투르크도, 이들을 옥바라지해온 위구르족 활동가 하산(가명)도 이런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강제 송환의 공포에 떠는 이들을 박해국으로 추방한 건 국제인권법이 명시한 ‘강제추방금지’(Non-Refoulement) 위반이다. 타이가 각각 2007년, 1996년 사인한 ‘고문방지협약’(CAT)과 ‘시민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 모두 이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강제 송환 직후 발표된 터키 외무부의 성명 역시 “강제추방금지 원칙은 난민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생명권을 지닌 누구에게라도 적용돼야 한다”고 짚었다. 게다가 터키는 위구르족 이민자를 받아들이겠노라 거듭 천명해왔다. 강제 송환의 한편에서 6월29일 172명, 7월11일 8명이 추가로 터키로 보내졌다. 이들 모두 터키의 카이세리에서 정착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년간 중국정부의 종교복장제약이심화되고있다. 금지 복장에는 이슬람의 상징 문양 중 하나인 초승달 그림이 박힌 티셔츠도 포함되어 있다. 빨간 바탕은 터키 국기이고, 파란 바탕은 신장 지역을 일컫는 “동투르키스탄” 깃발이다.
“터키로 간 172명 중 다수는 여성과 어린이이고 추가로 보내진 8명도 여성 넷, 아이 넷이다. 반면 중국으로 송환된 100여 명은 대부분 남자다. 터키와 중국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타이국가인권위원회 니룬 피탁와차랏 위원은 정보공개가 투명하지 않아 정확한 이산 가족 수를 알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9년 송환된 20명 중 일부 종신형
강제 송환 뒤 3주가 흘렀다. 이민성 감호소에는 아직 52명이 남아 있고 중국으로 송환된 이들은 깜깜무소식이다.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타이 ‘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 아누싯 쿠나콘이 송환자들 상황을 체크하겠다며 지난 7월15일부터 3일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더라.” 그가 전한 이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론 증거 사진도 없다. 2009년 12월9일 캄보디아에서 강제 송환된 위구르족 20여 명의 경우 비공개 재판을 거쳐 일부는 2012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09년 7월5일 발생한 우루무치 폭동 이후 중국을 탈출한 이들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중국 인권단체 ‘두이화재단’이 2014년 2월10일 발표한 ‘동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자치구) 전년도 현황을 보면 2만1061건의 재판 중 296건이 ‘국가안보위협’(ESS·Endangering State Security)과 연관돼 있다. 신장고등인민법원의 연간 보고서에 기반한 이 자료는 ESS 재판이 전년(2012년)보다 10%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재판을 받은 이의 대부분은 신장위구르자치구 극서지방이자 위구르 문화의 상징지역인 카슈가르(喀什噶爾) 출신이다.
게다가 강제 송환자들이 도착한 7월9일 이후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인권변호사와 활동가 200여 명을 연행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유례없다”고 표현한 단속이다. 연행된 이들 중에는 펑루이법률회사 소속 변호사들도 포함돼 있다. 바로 위구르 경제학자이자 분리주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일함 톨티를 변호하는 로펌이다.
공안정국을 반영하듯 강제송환 후 중국 언론은 연일 ‘귀환한 테러리스트’ 스토리를 내보냈다. 7월20일 CCTV가 조명한 아이케바이어(Aikebia)도 그중 한 명이다. 아이케바이어는 2013년 이후 터키를 거쳐 시리아로 가서 폭탄 제조업을 배운 뒤 돌아왔다고 “자백”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 강제 송환된 ‘불법 이민자들’도 예비 ‘지하디스트’”라며 “이 중 13명이 테러리스트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전 세계가 울분하는 ‘IS 가입경로’, 중국 정부는 모두의 공감대를 자극할 줄 알았다. 지난 해 5월 시진핑 주석이 반테러 캠페인 “강타”(“Strike Har”)를 선언한 참이다.
한편, 위구르인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는 터키상황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 있다. 위구르족 탄압은 ‘터키 민족주의’ 또한 자극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라마단 단식 금지’ 조치에 거리시위가 달아오른 건 다름 아닌 터키였다. 7월4일 한국 여행객이 공격받은 것으로 보도된 시위의 주축 세력은 극우단체 대연합당(Great Union Party·BBP)으로 알려져 있다. 대터키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폭력적 성향의 극우단체 ‘그레이 울프’와 가까운 단체다. 이와 관련, WUC 터키 대표 세잇 툼투르크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 말미에 “한국인들과 타이인들에게 거듭 사과한다”고 강조했다. 세잇은 7월8일 밤 이스탄불의 타이영사관 공격은 강제 송환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불확실한 정보가 전해지면서 흥분한 시위대가 범한 오류라고 말했다.

타이 정부가 위구르족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 후 터키 위구르족들 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courtesy : World Uighur Congress – Turkey)
역사상 최대 폭력 사태 ‘야르칸드 학살'(Yarkand Massacre)도 7월에
7월은 위구르족에게 추모의 달이다. 2009년 인종 폭동도, 역사상 최대 폭력 사태로 거론되는 지난해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사처현(야르칸드)에서의 학살도 모두 7월에 발생했다. 사처현 학살은 군의 머리 스카프 단속에서 시작됐다. 한 가족의 무참한 사살에 위구르족들이 항의행진을 벌였고 경찰서를 공격했다. 그리고 학살로 이어졌다. 정부가 통계한 사망자 수는 한족 35명을 포함해 96명이지만 위구르 망명 그룹은 2천 명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발행된 공산당 기관지 <취스>(Quishi)에 따르면 신장 지역 군 고위 간부는 “신장 지역을 ‘근대문명화’하자”고 주장했단다. 히잡을 벗기고 검은 두건을 씌우는 게 ‘근대문명화’인가. 누구도 감히 묻지 못하는 질문이다. 터키조차도.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7월28일 중국 방문길에 100명이 넘는 비즈니스맨들을 동반했다. 중국은 터키의 3대 교역국이다.
방콕(타이)=이유경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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