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친 주 반군 수도인 라이자에 본부를 둔 아라칸 군(Arakan Army) 대원들이 라이자 시내에서 장을 보고 본부로 돌아가는 길이다. 버만족의 통치(Burmanization)는 물론 ‘이슬람화'(Islamization)에 대항해서도 맞서겠다는 아라칸 군은 반 로힝야 무슬림 정서와 라까잉 불교민족주의로 무장한 ‘극우 인종주의’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속 대원의 군모에 나찌의 심볼 스와스티카가 붙어 있는 건 그의 의도와 어떠하든 아라칸 군의 성격을 일면 말해주고 있다. 또 다른 대원이 입고 있는 유니폼은 카친 반군(KIA)의 것이다. 버마의 소수민족단체들은 공식 인정받는 종족, 소위 ‘에뜨닉'(Ethnic)단체들과의 연대에는 적극적인 면이 있지만, 로힝야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종족과는 거리감을 두고 있다. 그 이면에는 광범위하게 점철된 ‘반 이슬람 인종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는 다민족 국가 버마의 민주화 과정과 평등을 향한 투쟁 과정이 자칫 ‘자민족민주주의'(Ethnocracy)라는 한계에 매몰될 수 있음을 드러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Photo © Lee Yu Kyung 2014)

카친 주 반군수도 라이자에 본부를 둔 아라칸 군(Arakan Army)의 군 캠프 강당내부로 들어서면 ‘父國의 수호자들'(Defenders of Our Fatherland)이라는 표어가 정면에 들어온다.(Photo © Lee Yu Kyung 2014)
역사적으로 버마-방글라데시 국경과, 버마-인도 국경 그리고 3국 국경이 맞물린 트라잉 앵글 지역은 아라칸 반군들과 로힝야 무슬림 반군들의 베이스이자 활동무대였다. 몽골계들이 주류인 인도 북동부, 몽골계 줌마족들의 터전 치타공 산악지대(Chittagong Hill Tracts) 등 이 일대의 인종적 변수까지 고려하면 이 지역의 다이나믹한 환경은 내 호기심을 극대화시켰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가속화된 방글라데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들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장 단체들을 무력화시켰고 일부는 인도쪽 국경으로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무력화된 단체 중 하나인 로힝야연대조직(Rohingya Solidarity Organization, RSO)은 라까잉 단체들이나 우 위라뚜(U Wirathu) 같은 불교극단주의 승려들이 이슬람 혐오 스피치에서 가장 많이 거론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RSO가 여전히 국경 지대에서 ‘활동’한다고 볼 근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방글라데시에서 오래 거주한 바 있고 현재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는 로힝야 활동가 사덱은 “RSO가 ‘존재’하는 건 맞지만 ‘활동’한다고 볼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동국가들에 체류하는 RSO 전 간부들이 여전히 조직 이름을 걸고 로힝야 이슈를 ‘팔아’ 중동 무슬림 커뮤니티로부터 자카(Zaka, 기독교의 십일조에 준하는 무슬림들의 사회 헌금)를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무장 반군이었던 아라칸로힝야이슬람전선(Arakan Rohingya Islamic Front, ARIF)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대테러 작전과 국제 정세에 맞물리며2000년대 중반부터 정치 조직으로 전환했다. 아라칸 로힝야민족기구(Arakan Rohingya National Organization, ARNO)가 바로 ARIF를 전신으로 둔 정치 조직이다. 이 조직은 기관지 격인 칼라단 뉴스(Kaladan News)를 통해 언론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볼 때 로힝야 무장단체 혹은 무슬림 무장단체에 대해 필자가 내린 현재까지의 잠정 결론은 일단 두 가지다.
첫째, 로힝야 무장조직이 빠른 시일 내에 재집결, 조직화, 부활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상황이 악화 일로로 간다면 로힝야 조직이 아니더라도 초국적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이 이슈를 이용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지난 해 발생한 멕틸라 학살에서 보듯 로힝야는 물론 버마 무슬림 전체가 지속적으로 혐오와 폭력의 대상이 되고 상황이 악화된다면 ‘무슬림 무장단체’의 부상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조심스런 예측이다. 이와 관련 지난 해 말 카친 주에서 ‘힌트’를 접한 바 있다. 카친 반군 고위 사령관 아무개씨는 내게 지난 해 반 무슬림 폭력의 후폭풍 일화를 건넸다. 당시 ‘일단의 무슬림들이 찾아와서 군사 훈련을 받고 싶다’고 접근한 적이 있으며 ‘거절했다’는 것. 이는 마치 라까잉 무장단체인 아라칸 군(Arakan Army)이 여러해 전 ‘군사 훈련을 받고 싶다’는 말로 카친 반군에 접근하여 오늘날 카친 주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한겨레 21> 1012호 관련 기사 참조)

로힝야 보트 난민 어린이가 말레이시아 한 엔지오 단체에 등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UNHCR에 공식 난민으로 등록하는 절차와 기간이 복잡하고 길어짐에 따라 많은 난민들이 엔지오를 통해 우선 자신의 존재를 등록하고 유사시 그 등록증으로 신분 확인 과정을 거친다. 물론 엔지오 등록증이 신분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Photo © Lee Yu Kyung 2014)
그 과정을 거쳐 카친반군으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은 아라칸 군(Arakan Army)은 ‘버만화’와 ‘이슬람화’라는 두 개의 적개심을 표현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섬찟한 혐오 발언과 시각, 과거 아라칸 왕국을 모델로 삼고 있는 강렬한 불교민족주의 등을 고려해볼 때 나는 그들이 아라칸 주 ‘국민군대’로 입성하는 날 로힝야 무슬림들의 비명 소리가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아라칸 군은 기존 반군 중에서도 불교민족주의의 극단적 신봉자이며 더 나아가 2012년 이래 폭력 사태의 배후로 끊임없이 의심받아온 아라칸 해방당(ALP)과 합병 논의 중이다.
버마-방글라데시 국경에서 관찰한 아라칸 군(AA)은 정부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준 자치구역 치타공 산악 지대(CHT)를 발판 삼아 활동의 폭을 넓히는 모양새다. ‘방글라데시 라까잉 족’들도 이 조직에 가담하고 있으며 CHT 정치 조직들과도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연대를 맺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천착해오던 또 하나의 이슈 일명 ‘모델 촌'(Model Village)에 대한 실마리도 포착됐다. ‘나탈라(Natala)’라 불리는 이 모델촌은 90년대 초반부터 킨윤 전 정보국장이 주도하에 추진된 불교도 정착촌을 말한다. 군사정부는 로힝야 무슬림 주류 지역인 마웅도 타운쉽에 40개도 넘는 모델촌을 건설하여 두 커뮤니티간 갈등의 씨앗을 정책적으로 뿌려왔다. 정착촌 건설 당시 수많은 로힝야들이 땅을 빼앗겨 그 시절 방글라데시로 떠난 이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정착촌 건설에 동원된 강제 노동도 로힝야 무슬림들의 몫이었다. 이 정착촌의 마을 이장이나 타운쉽 관료가 모두 불교도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최근 더더욱 위험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2년 이래 ‘벵갈리’에 치를 떠는 방글라데시 라까잉족, 줌마족 불교도들이 이 정착촌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서도 마지막 기사(<한겨레21> 1012호)에 자세히 담았다.
‘모델촌’의 음모
“그들이 사는 난민캠프를 보는 순간, 당신이야말로 밀항선에 오르고 싶어질 거다”
지난 해 이맘때 말레이시아에서 로힝야 보트난민을 취재할 당시 인터뷰했던 <아라칸 프로젝트>(Arakan Project) 크리스 리와가 내게 한 말이다. <아라칸 프로젝트>는 아무도 로힝야 문제에 관심을 주지않던 7년 전 이 문제를 집중 조사해온 인권 리서치 단체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지난 해 8월 나는 아라칸 주 시트웨 외곽에 있는 로힝야 피난민(IDPs)캠프와 도심의 무슬림 게토 ‘아웅 밍갈라’ 구역을 취재한 후 리와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 방글라데시 캠프를 취재한 후에는 리와의 말이 온전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들이었더라도 배를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만 남는다면 밀항선은 몇 달의 고통 끝에 적어도 불법 노동자로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므로.

로힝야 보트 난민 무하마드 라피크(18)가 고무줄 등을 이용하여 자가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난민 밀항선과 인신매매캠프에서 무릎 굽은 자세를 강요받은 채 여러 달 보낸 보트 난민들은 말레이시아로 풀려난 이후 대부분 마비 증세를 경험하며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한다. (Photo © Lee Yu Kyung 2014)
다시 말레이시아를 찾았다. 여전히 밀려드는 보트피플들을 만나니 브로커들의 유형과 경로 등이 사소하게 바뀐 점은 있으나 그들이 당했던 고문과 위험천만한 환경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한 해 로힝야 보트 피플 문제가 여러 지면과 방송을 장식하면서 경각심은 생겨났지만 인권 침해를 줄이거나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자국을 거쳐가는 로힝야 인신매매 문제로 골치 아파하던 타이 당국은 몇 차례 단속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이들을 ‘송환’하는 척하면서 또 다른 인신매매 단체에 넘기기까지 한 것 또한 타이 당국의 아찔한 두 얼굴이다.
4월 중순 모든 취재를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비록 배에 오르진 않았지만 그들의 발자국을 거칠게 밟고난 후 들어선 내 ‘궁전’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둘러싼 장식은 다름 아닌 UNHCR 엽서들이다. ‘용기’, ‘희망’, ‘존엄’..그리고 사무치는 문장 하나가 눈에 아프게 들어왔다.
‘난민이 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합니다’ (It takes courage to be a refugee)
* <미얀마(버마) 개혁과 민주화 이행기에 직면한 도전들> 기획 취재와 취재후기 연재를 마칩니다. 취재를 지원해주신 <리영희 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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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는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여 나라가 개판입니다.
그들이 비록 영국에 부역하고 버마족을 탄압하였지만
“보편적인 인권을 위하여 그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해야 한다.”?
미얀마의 승려들에게 2016년 대한민국을 보여 주며
응원을 보내고 싶군요.
지금까지의 역사와 경험으로 보면
무슬림이 득세하면 다른 종교를 탄압하고 학살하는데
그때 기자는 뭐라 말할지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