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버마 출신 인권문화 운동가 소모뚜 (Soe Moe Thu)씨가 12월 31일 (2013)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에 필자가 단 댓글입니다. 버마 사회의 ‘블랙홀’이나 다름없는 로힝자 문제에 대해 한국에 거주하시는 버마 난민, 운동가들과 꼭 한 번 허심탄회한 토론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입니다. 그 토론이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단 소모뚜씨의 포스팅에 대한 제 답글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이유경 / Penseur21
소모뚜 (Soe Moe Thu) 씨, 수찌여사의 발언 묶음 편집 잘 보았습니다. 가장 비판받은 발언 중 하나였던 “Muslim power is great..”의 출처 10/24일자 BBC Mishal Hussain 인터뷰 등이 누락된 건 안타깝지만 수찌 여사의 핵심은 그럭저럭 반영된 영상편집 같습니다. 포스팅 텍스트에 제 이름을 적진 않으셨지만, 제가 이 문제를 포함하여 여러 이슈를 두고 수찌여사에게 매우 비판적인 기자 중 하나라는 걸 아실거라 짐작합니다. 부족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나름 공부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님이 지적하신대로, 바로 지금 (혹은 ‘최근) 시점에서 보자면, 아웅산 수찌여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게 아닙니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침묵’이라는 단어로 수찌여사를 비판하기 시작한 그리고 여전히 비판하는 맥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첫째, 그 ‘침묵’에 대한 비판이 실제로 침묵했던 것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건 맞습니다. 제가 틀리지 않다면 (틀리다면 증거를 가지고 정정해주십시오) 수찌 여사는 이 문제에 대해 ‘알아서’, ‘먼저’ 혹은 ‘폭력 사태가 진행중인 동안 혹은 직후’ 코멘트 한 적이 없습니다. (She never came out to comment anything on this violence ‘timely’ or before being asked by journos or others) 늘 인터뷰어들이 이 문제를 두고 질문했을때 ‘답변으로’ 발언했습니다.
두번째, 비평가들이 여전히 그녀의 ‘침묵’을 비판하는 건 단순히 ‘그녀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가 아닙니다. ‘인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이름값을 할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댓글에서 로힝자 무슬림 문제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기회가 된다면 아라칸 주 한 번 가보시길 권합니다. 로힝자 무슬림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준하는 환경입니다 (It’s de facto “Burma’s Apartheid“. You have my words). 반 로힝자 무슬림, 더 나아가 전 무슬림에 대한 혐오스피치와 폭력의 강도를 이해, 인정한다면 수찌 여사의 그 ‘소극적’, ‘추상적’, 그리고 무엇보다 양쪽의 폭력을 ‘동급화’하는 발언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더 나아가 ‘위험한’ 논평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 하나 수찌 여사의 발언에 존경을 표하는 건, ‘시민권 법이 국제 수준에 맞아야..’ 입니다. 그러나 의식 있는 고등학생도 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으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게 ‘존경스럽소’라고 말하는 건 참 민망한 것입니다. 수찌 여사 스스로 예전에 그랬었죠. “핍박하는 자와 핍박받는 자 사이에서 중도를 유지한다는 건 핍박하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To stay neutral between an agressor and a victim is to side with the aggressor” Aung San Suu Kyi)
저는 소모뚜씨를 포함하여 한국에 머무는, 그리고 여전히 한국으로 향하는 이주노동자나, 난민신청자들 모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두팔 벌려 환영합니다. ‘중도’의 이름이나 “법치”(“rule of law”, which has become Suu Kyi’s iconic words)를 먼저 내세워 기계적인 판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한국태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권 유린에 직면할 자격은 없는 겁니다. 이 원칙은 전 세계 어디서나 적용되어야 할 인권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하물며 태어난 땅에서 (몇 세대가 몇십년을 혹은 몇 백년을 살았든간에) 시민권을 거부당하고 이동, 결혼, 출산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로힝자 무슬림들의 현실은 이미 오랫동안 소름돋는 현실이었습니다. 여기에 이슬람포비아+불교쇼비니즘으로 무장한 이들의 폭력에까지 노출되어 있습니다. 소모뚜님은 이 부분을 인정하시는지요? 제가 보기에 수찌 여사는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법치’를 실행하지 못하는 ‘정부 책임론’ 에 집중 반복하고 있죠. 그러나 버마의 야당, 시민사회는 백만년 희생자이고 핍박받는 이들이 아닙니다. 이런 류의 사회 문제에 야당은, 게다가 국제적으로 유일하게 인정받는 수찌여사 같은 인물은 당연히!! 책임이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개혁/개방 로드에 선 버마안팎에서 인권의 ‘보편적 가치’는 그냥 실종입니다. 인권이 뭔지 이해 못하는 멍청한 군인들 얘기가 아닙니다. 소위 ‘민주화 투사출신들’ 조차 ‘편파적 인권론’자들입니다. 저는 이 점이 오늘날 버마의 큰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0여년간 수백만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난민들이 전 세계의 문을 두드릴때 혹독한 세월을 견뎌내야 했지요. 그 혹독함을 호되게 비판하며 국제사회는 연대의 손길을 보냈습니다. 단언컨대, 버마 만큼 국제연대의 손길에 별다른 질문없이 노출되었던 이슈는 없을 겁니다. 아울러 제도적 난민인정으로 여러 국가들이 화답하기도 했지요. (그게 완벽한 보호였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따뜻한 손길과 포옹, 인정을 이제 당신 나라에서 가장 밑바닥에 처한 이들에게 내밀 순 없는 겁니까? 당신들이 존경하고 변호해마지 않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수찌 여사에게서 그런 온기는 나올 순 없는 걸까요? 해외 순방길 많이 바쁘시겠지만 ‘더럽게’ 목숨 부지하고 있는 로힝자 무슬림 난민 캠프 한 번 방문할 수는 없는지, 더 나아가 추위와 반복된 피난생활에 파탄난 삶을 견뎌내고 있는 카친 난민들을 한 번 만나 보듬어 줄 순 없는지 묻고 또 묻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찌를 굳이 ‘그녀는 침묵하지 않았다’는 클립 모음으로 변호할 필요가 있는지도.
이 글이 쓰여진 후 3년 사이 혹시라도 소모뚜 씨를 비롯한 한국 내 미얀마/버마 출신 난민/이주민/활동가와 로힝야 문제에 관한 공론이 이루어진 적이 있는지 넘나 궁금한 것. 미얀마/버마 현지에서 지켜 본 NLD 지지층의 969 운동에 대한 직간접적 동조는 넘나 무서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