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4 제981호]

[기획 연재2_ 버마 종족·종교 갈등의 현장을 가다 (하) 만달레이주 메이크틸라 학살의 상흔들] 

민주화 투쟁 이끌던 종교인·사회활동가도 적극 동조… 권력 복귀 노리는 구세력의 사회 혼란 유발 공작인가

* 필자는 <리영희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26일까지 버마(미얀마) 서부 아라칸주와 중북부 만달레이주 만달레이와 멕띨라를 취재하고 왔습니다. 아라칸 주는 지난 해 6월과 10월, 중북부 만달레이 올해 3월 무슬림계 소수민족 로힝야와 캄만 무슬림 그리고 버마 무슬림들에 대한 불교도들의 약탈과 학살로 극심한 혼란을 겪은 지역입니다. 약 2년에 걸쳐 진행중인 버마의 민주화와 개혁은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의 철저한 배제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기획 기사는 2회에 걸쳐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에 게재됩니다. 본 사이트에는 지면상 싣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보충하여 게재합니다. / 이유경 Penseur21

사원, 학교, 마을, 학생. 이슬람에 관한 모든 존재들이 총체적으로 공격받은 메이크틸라 학살 후 이 지역 무슬림들의 생활 기반은 회복 불능에 빠졌다. 4천여 난민은 여전히 피난민(IDPs) 캠프에서 기약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고, 폭동으로 입은 인명 및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은 없다.  대신 관료들의 으름장만 이어지고 있다.

학살 첫날 메이크틸라로 ‘출장’ 갔던 만달레이 주지사 우예민은 4월 12일 이 지역 무슬림 대표들을 불러 약 45분간 (폭력 사태에 대한) 무슬림 책임론을 일장 연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에는 만달레이 지방 치안을 담당하는 우쵸무 대령이 다시 200명 가량의 무슬림 대표들을 멕띨라 타운쉽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무슬림 원로 나잉 웅(가명)에 따르면 , 우쵸무는 공터로 남은 학살 현장은 이제 정부 소유이며  그곳에 아파트 등을 건설할 계획이라 밝혔단다. ‘살던 땅으로 하루속히 돌아가길 원한다’는 난민들의 의견을 전하자 우쵸무 대령은 이렇게 응대했다.

‘’당신들 지금 말할 주제 아니니 듣기만 하라’’

보상은 없다. 으름장만 있을 뿐

사실 메크틸라는 지난 몇 년간 갈등의 변수가 조금씩 불거지고 있었다. 우선, 2011년 7월 25일 이 도시에 100년 넘게 자리잡고 있던 수니 무슬림 묘지가 불도우저에 밀려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망명언론이었던 미지마(Mizzima, 과거 망명언론 대부분이 현재 버마 안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에 따르면 멕띨라 무슬림들은 이미 2008년과 2011년 정부에 묘지를 철거하지 말라고 요청해왔다. 불도우저를 들이민 건설업체 세인 란 소 프레이 예이 (Sane Lan So Pyay Yay)는 자신들이 땅을 사들였다며 토지 소유권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멕띨라 폭력사태에서도 신속하게  불도저가 동원되어 모스크 등을 파괴한 건 일종의 ‘데자뷔’인 셈이다.

불교도들 입장에서도 못마땅한 건수가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일본의 교전지였던 멕띨라에는 당시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의 묘가 남아 있다. 터키 정부는 최근 자국군인들의 묘지를 재조성 하겠다고 했고 버마 정부는 이를 수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조성되는 묘지에 ‘영웅’ 이란 문구가 들어갈 참이었다. 묘지 조성에 안그래도 못마땅한 불교도들이 ‘무슬림’과 ‘영웅’의 조합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반발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밝은 만달레이 거주 무슬림 지도자 마웅 윈 (가명)의 설명이다. 유엔인권대사 콴타나가 멕띨라를 방문했을때 항의서한을 전달했던 ‘88세대’ 멕띨라 대표 테잉 민 카잉은 바로 ‘터키참전용사묘 반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던 인물이기도 하다.

멕띨라에 위치한 군기지와 무슬림 상인들과의 관계도 누적된 변수라 볼만하다. 군부대가 진행하는 각종 프로젝트, 부대안팎으로 들고 나는 군필품 등, 군과 연계된 사업전반의 파트너들은 대부분 무슬림들이었다. 부패한 군인들은 군용 물자 입출 내역이 불교도 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쌓인 무슬림들의 부가 모스크 건축과 리모델링에 아낌없이 들어갔고, ‘군부와 결탁한 무슬림’ 이미지가  불교도들에게 곱게 비쳤을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들이 지난 해 이후 왕성해진 반 무슬림 캠페인 ‘969 운동’을 만나며 거칠게 숙성되어 갔다. 그리고 학살 몇달 전 969운동의 지도자 우 위라뚜는 멕띨라를 향해 강렬한 반 무슬림 설교를 날렸다.

다년간 뿌려진 분쟁씨앗, ‘969 운동’으로 숙성

메이크틸라 학살은 아라칸주의 반 로힝야 무슬림 폭력의 연장선이자 종교변수에 집중된 폭동의 확산을 예고했다. 이후 바고, 샨주, 몬주 그리고 8월 24일 중북부 사가잉 지방까지 곳곳에서 약 30건의 크고작은 폭동이 발생했다. 그리고 기사를 마감하는 10월 2일 현재, 아라칸 주  탄드웨 (산도웨이 Sandoway라고도 함. 135개 인종 중 하나로 인정받는 캄만 무슬림들이 주로 거주) 에서도 5일째 폭동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한 무슬림 주민과 그의 집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불교도 주민 사이의 언쟁이 불씨가 됐다. 폭도의 칼에 찔려 사망한 무슬림 할머니 도 에 치(Daw Aye Kyi)를 비롯해 사망자 수가 9-25명으로 거론되고 있고, 수십 채 가옥과 모스크 등이 불타고 있다. 8월 중순께 <한겨레21>은 탄드웨 주민 3명의 이름과 함께 이들이 랑군으로부터 1억차트 (약 1억원)의 돈을 송금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특검으로 계좌라도 털지 않는 한 검증하기 어려운 정보였다. 바로 그들의 이름이 지금 폭동을 주도한 인물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두 ‘969운동’과 아라칸 주 지역 라까잉 족 극우정당인 라까잉민족개발당 (RNDP)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들이다.

그러고 보면 반 무슬림 혐오와 폭력이 발생하는 곳이면 어디나 ‘969 운동’이 작동함을 알 수 있다. 969운동은 ‘무슬림 상품 보이콧’ 으로 시작되었으나 끝없는 ‘혐오 스피치’와 ‘헛소문’으로 반 무슬림 폭동에 불을 지르는 극단주의 불교운동이다. ‘969운동’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사원이 하나 있다. 바로 급진 불교민족주의 전통을 지닌 만달레이 마수예인(Masoyein) 사원.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원 승려들이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강타한 뒤 구호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최근에는 중북부 지방 토지 수탈 (Land Grab)의 상징적 사례인 ‘라파다웅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해왔다는 점이다. 지난 해 12월 미국무부 동남아 담당 국장이 라파다웅 문제를 두고 이 사원을 방문하여 우 위라뚜를 비롯한 승려대표들을 만났을 정도다.  2003년 중북부 도시 촉세에서 종교폭동을 선동한 죄로 수감생활을 하던 중 지난 해 대통령 사면으로 석방된 위라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사원의 주지승이 됐는지는 안갯 속이다. 다만 반독재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마수예인 사원이 최근 ‘969운동’의 ‘본부’ 노릇을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8월 24일 사가잉 지방 칸불루(Kanbulu) 타운쉽 폭동에서도 마수에인 사원 소속 승려들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마수에인 사원 승려 세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들은  2주전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사태 직후 현장에 긴급 출동했던 활동가 민코코(가명) 의 말이다.  

이슬람 혐오+불교민족주의+소수민족극우주의=?    

서부 아라칸 주에서도 ‘969운동’이 왕성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라까잉민족개발당 (RNDP)의 인종주의 프로파간다가 그것 인데, 바로 이 인종변수가 또 다시 분열을 낳는 지점이다. 예컨대, 중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반 무슬림 폭동을 막기 위해 종교간화해 캠페인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만달레이 88세대’ (랑군 중심의 88세대와 다르다) 도 아마니는 단연코 이 캠페인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이랬다.

‘’벵갈리들은 버마 시민이 아니다. 라카잉주를 점령해서 벵갈리주로 만들고 싶어한다. 카렌주와 달리 라카잉주에는 내전도 없는데 불쌍한 척 난민인양 주장하며…’’

‘이슬람 혐오’와 ‘불교민족주의’, 그리고 라까잉족이 발산하는 ‘소수민족극우주의’ (Ethnic Nationalism)가 결합한 ‘반이슬람 인종주의’가 지금 버마를 휘감고 있는 유령이다. ‘반 이슬람 인종주의’ 앞에선 민주와 반민주, 군인과 시민, 통치자와 대중 간 차이는 별로 없다. 감정이 좋지 않은 라카잉 불교도와 버마 불교도들도 ‘안티 벵갈리 (로힝야) 연대’에서는 하나가 된다. 아웅산 수찌의 침묵이나, 민족민주동맹(NLD)당원 일부의 969 운동 참여 그리고 88세대 주류의 ‘민족우선’ 논리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됨직하다.

다른 한편, 군부독재가 형식적으로나마 사라진 공터를 ‘반이슬람 인종주의’가 채워가는 이면에 정치적 동기가 없을리 없다. 멕띨라 사례에서 보듯 사소한 언쟁이 순식간에 학살로 확산되며 불도우저까지 동원하는 능력은 이슬람 혐오에 세뇌된 군중들의 능력을 넘어선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설은 강경파 배후론이다. 개혁을 방해하고 혼란을 조성해 군인들을 다시 정치에 불러들이는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혹은 현재와 같은 형식적 민간정부라도 과거 군부 실세들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길 원하는 이들이 준동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는 소위 강경파 온건파가 따로 없다.

이런 관점에서 반 무슬림 폭동이 지난 해 4월 보궐선거 이후 나타난 현상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혁 이후 처음으로 치른 그 선거에서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NLD는 전체 45석 중 43석을 얻었다. 개혁이 순항하면 권력관계가 변화될 수 있음을 예고한 선거였다. 그리고 두달 뒤인 6월, 아라칸 주에서는 많은 의혹을 남긴, 무슬림 남성에 의한 불교도 여성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반로힝야 무슬림 폭동이 이어졌다.

이 시점은 또한 한 인물의 행보가 주목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버마의 최고 갑부이자 전 군사정권 최고 실력자 탄쉐의 측극인 아웅타웅 하원의원. 위키리크스가 유출한 2008년 미 외교부 케이블이 ‘악명높은 강경파’로 묘사한 아웅 타웅은 2003년 5월 아웅산 수찌 암살 시도로 해석된 데파윈 학살의 배후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데파윈 폭력에 동원된 조직은 현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전신인 통합단결발전협회(USDA)의 행동부대 ‘스완아신’ (‘권력의 정복자’라는 뜻)이다. 기자는 데파인 학살 당시 아웅산 수찌의 보디가드였던 전 NLD당원으로부터 ‘’승복을 입은 이가 수찌의 차량을 멈춰세우더니..’’라는 증언을 들은 바 있다. 전과자, 범죄자는 물론 전투적 승려들도 일부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조직에 최근 생계가 어려워진 빈민, 농민들도 동원된다는 후문이다.

침묵하는 아웅산수찌에게도 책임은 있다

캐나다에 근거를 두고 ‘제노사이드 위험지역 조기 경보’ 활동을 벌이는 국제 비정부기구 (INGO) ‘센티넬 프로젝트’의 최근 보고서는 스완아신과 ‘타웅타군’ 같은 민병대 조직이 969 승려들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타웅타’는 중북부 타운쉽 이름이자 아웅타웅 의원의 지역구다. 돈, 권력, 조직, 그리고 잔혹함 등의 특징이 도드라진 폭동을 두고 분석가들은 요건을 두루 갖춘 아웅 타웅 같은 인물이나 그와 연계된 세력들을 주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제압하지 않는’ 테인세인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버마 사회를 주물러온 군부독재는 강온파든 혹은 권력투쟁 관계에 놓인 각기 다른 정파든 너나 없이 ‘이슬람 혐오’를 체계적으로 조장해왔다. 일례로 이번 취재과정에서 기자가 접근한 군 장교 교육 자료집은 소위 ‘(버마의) 이슬람화’를 막기 위한 ‘이슬람 혐오’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무슬림은 동물을 잔인하게 죽인다던가, 불교국가 버마에는 모스크가 많은데 사우디 메카에는 절이 없다든가.  969 승려 우 위라뚜에서부터 반 로힝야 운동의 최전선에 선 라까잉 여성네트워크 활동가 도뇨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암송’하듯 되뇌이던 이슬람 혐오 독트린이 장교 교육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료집은  (무슬림 인구가 많은)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류 과정이 행여 버마 무슬림 커뮤니티를 강화시켜주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다.

‘침묵의 아이콘’이 돼버린 아웅산 수찌 역시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  샤프란 혁명 주동자이자 전 승려인 우 감비라는 반 무슬림 폭력 사태를 두고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고 믿는다. 그의 덧붙이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침묵하는 이가 많다는 건 아직도 이 사회가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버마＝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취재지원 리영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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