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도 못 끝낸 ‘내부 식민지’

[2013.04.08 제955호]
[특집2] 휴전 이후 각종 개발사업으로 대규모 토지 수탈과 생계 위협 처한 버마 카렌주 농민들… 개발 반대 않는 수치에 민중 분노

* 아래 기사는  <한겨레21> 955호 <휴전도 못 끝낸 ‘내부 식민지’> 의 원본입니다. 지면 관계상 실리지 못한 부분과 사진을 추가하였습니다. 아울러, 기사에 밑천이 된 보고서  빼앗기는 땅 (Losing Ground) 등 주요 자료도 링크 해놓았습니다.  

– 이유경 penseur21 –  

‘토지수탈’ , ‘강제노동’, ‘강제이주’

지난 2년간 개혁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버마에 더 이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다. 15년 가택 연금당했던 민주화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가 차기 대권을 꿈꾸는 세상이 왔고, 존재감이 없던 취재 비자는 석달이상 ‘넉넉히 주겠노라’ 호언하는 호탕한 테인 세인(Thein Sein) 정부 덕에 ‘랑군의 봄’이 제발로 걸어 온 듯하다. 실제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NLD)은 3월 10일  88년 창당이래 첫 전당 대회를 열고  2015 총선 본격 채비에 들어갔다. 그 전당 대회를 취재하러 방콕 주재 외신 기자들도 대거 랑군으로  향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야 떨쳐버릴 수 없지만 버마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듯 하다.

» 타이-버마 국경을 가르는 살윈강 부근의 카렌반군(KNU) 초소에서 반군 병사들이 일종의 ‘출입국 업무’를 하고 있다. 60년 내전을 거쳐 지난 1월 정부군과 휴전에 합의한 이후, 반군진영도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개발사업에 끼어들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타이-버마 국경을 가르는 살윈강 카렌반군(KNU) 초소. 반군 영토인 이곳을 지나는 배들은 초소에 기본 사항을 등록해야 한다. 60년 내전을 거치며 일정한 영토를 통제중인 반군은 지난 해 1월 정부군과의 휴전 이래 쏟아진 개발프로젝트 일부에도 관여하고 있다. 카렌인권그룹(KHRG)은 개발로 인한 토지수탈 문제에 반군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Photo © Lee Yu Kyung)

법률 근거로 농민들 땅 빼앗는 정부

그 바람은 세계 최장기 내전 지역 카렌주에도 이르렀다. 반군 카렌민족연합(KNU)과 버마 정부는 지난해 1월12일 휴전협정을 맺고, 형식적이긴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다. 방콕 주재 미 대사관은 올 6월 이후로는 버마 난민들의 ‘미국 재정착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타이 정부도 국경지대 수십만 버마 난민 송환 계획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모두 정글 너머 땅이 ‘안전’하고, ‘살 만하다’는 전제 때문일 거다. 과연, 2살짜리 개혁은 60살 내전 지역을 안전하게 만들어놨을까?

카렌인권그룹(KHRG)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 ‘빼앗기는 땅’은 버마 개혁에 대한 장밋빛 덧칠에 경각심을 준다. 2011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카렌주에서 진행 중인 35개 개발 프로젝트를 모니터한 이 보고서는 주민 증언록 809건 중 개발 프로젝트와 직결된 99건을 추려 분석했다. 이 가운데 토지 수탈, 강제 이주, 강제 노동으로 볼 만한 증언은 각각 54건, 31건, 26건씩이다. 보고서는 수력발전용 댐, 인프라 구축 사업, 벌채, 광산 개발, 플랜테이션 농업 등 분쟁 때문에 막혀 있다가 휴전 직후 밀려드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주민들이 광범위한 토지 수탈과 생계 위협에 내몰렸음을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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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국경과 인접한 카렌주 정글지대 국내 난민(IDPs)캠프(2009년 촬영). 60년 내전기간 척박한 정글을 생활터전으로 가꾸기 반복하며 일상적으로 경험한 강제 이주, 토지수탈 문제는 소위 ‘개혁’과 ‘휴전’의 봄바람이 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타이 국경과 인접한 카렌주 정글지대 국내 난민(IDPs)캠프(2009년 촬영). 60년 내전기간 척박한 정글을 생활터전으로 가꾸기 반복하며 일상적으로 경험한 강제 이주, 토지수탈 문제는 소위 ‘개혁’과 ‘휴전’의 봄바람이 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버마군 제549 대대가 주둔하면서 내 땅이 사라졌다. 내 농지에 내가 가는데도 ‘당신이 이 땅 주인이라는 문서라도 있냐?’고 묻질 않나…. 여긴 군인들 땅이고, 모든 건 군부 소유라면서 말이다.”

카렌인권그룹이 인터뷰한 카렌주 파안 지역 주민 나우(54·여·가명)의 말이다. 파안은 벌채 산업, 광산 채굴, 플랜테이션 농업 등 여러 사업이 동시에 진행 중인 카렌주 주도다. 또 다른 파안 주민 사우(60·남·가명)는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조직적으로 땅을 뺏지는 않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전에는 일정한 대가를 갖다바치면 농사는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12년부터는 토지를 몽땅 빼앗아갔다. ‘개발사업에 땅을 양보한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을 하라는데, 거부하면 ‘이 땅은 국가 소유이고 마을 주민들은 권리가 없다’고 윽박지른다.”

‘나라 땅’이라고 우기는 데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군사정권이 마련해 2008년 5월 국민투표로 통과된 버마 헌법 1장 37조 1항은 “버마 연방의 지상과 지하, 해상과 해저, 그리고 공중에 존재하는 모든 토지 및 천연자원의 궁극적 소유주는 정부”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토지를 국유화해 무상분배 방식으로 토지개혁이라도 하겠다는 건 결코 아닐 터다. 이 조항의 노림수는 지난해 3월 버마 의회가 통과시킨 ‘휴한지와 신착지 관리법’ (Vacant Fallow and Virgin Lands Management Law) 에 잘 나타나 있다.

법에 따라 버마 정부는 이른바 ‘버려진 땅’을 ‘농업 생산과 광물 채굴, 기타 장기적인 국가 이익이나 공중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과 사전 논의 없이 사기업에 재분배할 권한’을 갖게 됐다. 버마 인구 3분의 2 이상이 농민이다. 카렌주를 포함한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선 농토와 관개수로 등을 전통적으로 공동 소유한다. 새 법이 어떤 현실을 만들어낼지 어렵잖게 짐작된다.

지난 60년여 내전 기간에 강제 이주와 토지 수탈은 일상이었다. 사실상 ‘내부 식민지’였던 게다. 카렌인권그룹(KHRG) 대변인 쿠쿠주는 “개발사업 현장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바로 휴전 이전까지 소수민족을 살상하고 강제 노동과 강제 이주를 주도해온 자들”이라고 말했다.
 

반군마저 개발업자와 밀착해 주민 수탈

‘개혁’이란 깃발 아래 급증하는 각종 개발 프로젝트로 돈을 긁고 있는 집단도 관심거리다. 먼저 이른바 ‘개혁’ 이전엔 한 몸뚱이였던 관료와 군인, 국경수비대가 있다. 한때 마약왕 쿤사의 경쟁자였던 로싱한이 이끄는 ‘버마의 삼성’인 아시아월드컴퍼니 등 국내외 거대 기업도 빼놓을 수 없다. 휴전 이전부터 호시탐탐 버마 개발사업을 노려온 중국·타이 등 주변국과 다국적기업도 이익 선점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1995년과 2007년 각각 카렌민족연합에서 떨어져나간 민주카렌불교도군(DKBA)과 카렌평화위원회(KNU/KNLA PC) 등 카렌 민병대도 ‘떡고물’의 수혜자다. 마지막으로, 정부군과 휴전에 들어간 반군(KNU) 역시 일부 개발업자와 밀착해 주민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카렌인권그룹은 보고서에서 한 주민의 말을 따 “천연자원 개발을 원하는 업자들이 반군이나 민병대 조직 지도부와 안면을 트기 위해 찾아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바로 파안·타톤·카익토 등지에서 광산 개발을 한답시고 주민들을 쫓아낸 자들”이라고 전했다.

지난 60년여 내전 기간에 강제 이주와 토지 수탈은 일상이었다. 사실상 ‘내부 식민지’였던 게다. 카렌인권그룹 대변인 쿠쿠주는 “개발사업 현장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바로 휴전 이전까지 소수민족을 살상하고 강제 노동과 강제 이주를 주도해온 자들”이라고 말했다. ‘민족 해방’을 내걸고 싸우던 ‘아군’마저 그들과 합세했으니, 주민들이 느낄 좌절감의 깊이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휴전 이후, 카렌의 ‘내부 식민지화’는 되레 속도가 빨라지는 모양새다. ‘버마를 위한 아세안대안네트워크’(Altsean) 활동가 데비 스토타드는 이렇게 말했다.

“카렌 주민들은 지난 60년 동안 당해온 일들을 지금도 똑같이 겪고 있다. 땅도, 삶의 기반도, 안전망도 모두 빼앗기고 있다. 주변국들은 카렌 난민을 버마 땅으로 밀어낼 생각만 하는데,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건 이익에 혈안이 된 관료와 군인, 은퇴한 반군과 업자들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내난민(IDPs)으로 떠돌거나, 타이 등지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내몰리고 있다.”

타이 국경과 인접한 카렌주 정글지대 국내 난민(IDPs)캠프 카렌학교 (2009년 촬영). 카렌난민 어린이들은 이 학교에서 카렌어와 카렌역사를 배우고 카렌애국가를 부른다. 소수민족 차별에 저항해 60년간 내전을 벌인 카렌주에도 개혁의 봄바람을 타고 휴전이 왔지만 개발프로젝트로 인한 토지수탈 문제가 복병으로 작용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타이 국경과 인접한 카렌주 정글지대 국내 난민(IDPs)캠프 카렌학교 (2009년 촬영). 카렌난민 어린이들은 이 학교에서 카렌어와 카렌역사를 배우고 카렌애국가를 부른다. 소수민족 차별에 저항해 60년간 내전을 벌인 카렌주에도 개혁의 봄바람을 타고 휴전이 왔지만 개발프로젝트로 인한 토지수탈 문제가 복병으로 작용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카렌 지역뿐 아니다. 지난 2년여, 버마 전역에서 군대를 동원한 ‘땅따먹기’가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예컨대, 지난 해 7월 14일의 랑군 교외 농민 200명이 랑군으로 ‘상경투쟁’을 벌였고, 2월 26일 버마 남부 이라와디 지역 모빈 타운쉽에서는 유사한 시위로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 경찰, 주민 수십명이 부상 입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리고 군부가 소유한 ‘미얀마이코노믹홀딩스’(UMEHL)가 중국 기업 완바오와 함께 북서부 라파다웅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구리광산 개발사업(라파다웅 프로젝트)이 대표적 사례다. 광산 개발 과정에서 수질오염과 농토 파괴, 불교 사원 훼손 등이 잇따르면서 지난해 11월29일 현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중무장한 군경에게 무참히 짓밟혀 승려를 포함해 적어도 90여 명이 다쳤다. 항의 시위가 이어지자 버마 정부는 아웅산 수치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이 사건에 대해 아웅산 수치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가 3월 11일 발표한 보고서는 진압 경찰의 포스포러스(phosphorus) 사용을 확인하고, (버마 법조인들과 미국의 Justice Trust 위원회의 또 다른 진상 보고서가 ‘백린탄 White Phosphorus’ 이라고 구체 지목한 것과 달리 수치 위원회 보고서는 그냥 phosphorus가 경찰이 던진 연막탄에 사용됐다고만 언급했다) ‘과도한 물리력을 동원한 무리한 시위 진압이었다’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책임자 처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더 나아가 이웃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테인세인 대통령이 임명한 진상조사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보고서 발표 직후  주민들은 아웅산 수치에게도 울분하고 있다.

“수치, 더는 민주화의 상징 아냐”

“만일 사업을 중단한다면 (그간의 공사로)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어디서 구할 건가?” 지난 3월13일 현장 방문길을 가로막고 해명을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수치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라파다웅 주민들과 수치 일행이 대치하는 장면은 쇼셜네트워크(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졌다. 소식이 알려지자 300명 남짓이던 라파다웅 시위대는 3천 명까지 늘었다. 그러나 3월 중순부터 계속된 당국의 경고에 주민들은 연좌농성을 일단 정리한 상태다.

이를 두고 저명한 버마 망명 언론 <이라와디>는 편집장 칼럼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1988년 항쟁 이래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수십 년간의 가택연금 중에도 그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 더는 아니다. 수치가 하는 일은 모두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믿던 시대는 끝났다.”

아웅산 수치의 부메랑, 시대의 종언

한편, 랑군이나 몽유와처럼 내전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지역과 달리 카렌주는 수십년에 걸쳐 군사화된 지역이다. 하여, ‘개혁’의 시대에도, 휴전이 들어서도 시위나 저항이 쉬운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주민 위원회’가 꾸려지고 있다는 게 KHRC 보고서의 전언이다. 2011년에는 고작 3건이던 위원회 구성이 2012년에는 20건으로 늘었다. 그리고 지난 해 3월, 양레빈 (Nyaunglebin) 디스트릭트 5개마을 주민 400명은 반복되는 홍수사태를 야기하는 쉐진(Shwegyin)강 ‘촉 나가 댐’ (Kyauk N’Ga Dam) 건설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용감한 시위대의 외침이다.

“댐 건설에 반대한다. 우리의 빼앗긴 땅에 보상하라. 그리고 강물이 흐르게 하라”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기사 원문 보러 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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