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대처하는 세계 주부들의 자세

[특집]
한국ㆍ중국ㆍ일본ㆍ캄보디아ㆍ영국ㆍ독일ㆍ에콰도르 7개국 주부들의 생생한 물가불안 체험기

회사 앞 식당의 가격표가 많이 바뀌었다. 메뉴마다 500원씩 오른 게 기본이다. 정유사들이 ℓ당 100원씩 휘발유 가격을 내렸다지만,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고물가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진다. 아랍권의 민주화 바람에도 빵값 등 식량값 폭등이 한몫했다. 멕시코에서는 주식인 토르티야의 원료인 옥수수, 인도에서는 카레에 많이 쓰이는 양파 가격이 인상될 때마다 국민의 불만이 치솟는다. 고물가 시대에 세계의 주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물론 캄보디아, 영국, 독일, 에콰도르까지 각국 주부들의 살림살이 모습을 알아봤다. 공식 수치에 나타난 물가상승률보다 몇 배는 더 껑충 뛴 물가를 체감하고 있었다. 먼저 서울 도봉구에 사는 주부 박현정씨의 장보기 동행으로 시작한다._편집자

캄보디아 주부 헹 로타. (Photo @ Lee Yu Kyung) 오른쪽 그래프 단위:%, 자료: 국제통화기금(IMF)

[캄보디아] “친정집에 얹혀살기로 겨우 버텨”

중산층 주부 헹 로타가 전하는 캄보디아 물가… 기름값과 고기류 제일 올라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아”

“버는 건 뻔한데 나가는 돈은 늘어만 가고. 정말 힘들어요.”

결혼 4년차, 두 살짜리 아들을 둔 헹 로타(23)는 소녀티가 나는 주부다. 남편 얘기만 나오면 행복한 표정이 줄줄 흐르는 새댁이다.

“옷가게를 제대로 해보려고요. 생계에 보탬도 돼야 하고.”

의상학원 선생님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헹 로타 (왼쪽). 로타가 배우는 의상은 캄보디아 여성들이 잔치때 입는 드레스 정장이다. 한벌 주문가가 약 40달러. (Photo @ Lee Yu Kyung)

친정 지원과 텃밭 채소 재배로 생활비 줄여

‘옷가게 프로젝트’를 위해 로타는 1년 과정 의상학원에 다니고 있다. 의상학원 등록금은 무려 180달러(약 20만원). 캄보디아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적잖은 돈이다. 육아와 살림에 전념해온 로타는 6개월 뒤 의상학원을 마치면 옷을 만들어 팔 생각이다. 로타가 배우는 의상은 캄보디아 여성들이 잔치 때 입는 드레스 정장으로 한 벌 가격이 약 40달러니 주문만 잘 들어오면 수입이 괜찮다.

4월12일, 시엠리아프 시내에서 40km 남짓 떨어진 로타의 집으로 향했다. 마당에 들어서니 개 서너 마리 다음으로 반기는 건 도요타 캠리다. 친정아버지가 1천달러를 보태주고 은행 융자를 받아 장만한 8천달러짜리 중고차지만 보물 1호다. 10년 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 넘게 훌쩍 늘어 2112달러이고 초등교사 월급이 100달러, 식당 노동자 월급이 50~70달러인 캄보디아에서 로타네는 중산층에 가깝다. 기술자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은 100달러다. 남편은 중고 오토바이 매매 등을 해 월 최소 200달러는 벌어온다.

“매월 은행 융자 180달러를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아직 여덟 달이나 남았는데.”

야채 중심으로 파는 식품점에서 로타는 간장과 젓갈만 각 한 병씩 샀다. 야채는 물가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지출하지 않는 품목이다. 간장 젓갈은 각각 300 리엘씩 올라 총 3000 리엘 (820원)을 지불했다. (Photo @ Lee Yu Kyung)

로타네가 융자를 갚고 남은 몇십달러로 버티는 비결은 친정집에 얹혀살기다. 60명의 인부를 두고 농사를 짓는 부모님 덕에 쌀값은 들지 않는다. 이 덕에 로타 부부가 지출하는 건 약간의 먹을거리와 닭 모잇값, 그리고 하루 1달러 미만의 오토바이 기름값 정도다.

“지난해 기름값이 1ℓ당 3500리엘(약 959원)이었는데, 약 5개월 전부터 4500리엘로 올랐어요.” 물가가 가장 많이 오른 품목으로 로타는 기름값을 꼽았다. 물가 상승을 뼈저리게 느끼는 품목을 묻자 고기를 꼽았다. “체감 상승폭은 두 배예요!”

“옷을 안 사요. 채소도 밭에서 키운 걸로 대충 때우고.”

오전 10시30분께. 더 더워지기 전에 장에 가야 한다며 로타가 방과 부엌을 들락거린다.

“쇠고기와 생선은 500g만 사고 케이크 두 개, 바나나, 생강, 주스, 콩, 젓갈, 간장….”

꼼꼼하게 적힌 쇼핑 품목을 위에서부터 다시 훑는다. 역시 채소는 없다. 캄보디아 최대 명절인 ‘쫄 츠남’(캄보디아의 설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건만 시장은 그리 북적이지 않았다. 옆 나라 타이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느라 전기요금이 비싼 시엠리아프 지방에는 냉장고 없는 가정이 다수다. 하루에 두 번 장터를 다녀가는 게 흔한 까닭이다. 장터를 도는 로타는 깎아달라고 조르진 않았지만 이따금 표정이 일그러졌다. 시장에서 돌아온 로타와 가격을 비교해봤다. 우선 6천리엘 하던 생선 500g이 오늘 9천리엘이었고, 케이크는 두 봉지는 5천리엘에서 7천리엘로 올랐다.

명절이라 두 배 또 오른 물가

“바나나는 딱 두 배 올랐어요. 한 묶음에 1500리엘이었는데 오늘은 3천 리엘이나 하잖아요!”

총 4만5천리엘을 지출했다. 명절만 아니었다면 2만리엘로 때울 수 있었단다.

“명절이라 또 오른 거예요. 설 연휴가 지나면 물가가 내려가야 하는 거잖아요?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아요.” 2년 안에 분가하려는 로타 부부의 계획은 로타의 옷가게 프로젝트에 달린 듯하다.

시엠리아프(캄보디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ublished by <HanKyoReh21>

* 다른 필자들의 기사인 한국ㆍ중국ㆍ일본ㆍ영국ㆍ독일ㆍ에콰도르 주부들의 이야기는 기사 원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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