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마구잡이 신병 모집에 어린 훈련병 넘겨주고 돈 거래도
2009 11/24 위클리경향 851호
버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군사독재정권은 버마 민중이 겪고 있는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탄압의 실상과 관련한 ‘정보’조차 대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아시아 분쟁지역 전문기자인 이유경씨가 태국과 인접한 버마 국경의 내전 지역에서 생생한 현지 소식을 보내 왔다. 태국 북부 매홍손 지방의 매삼렙은 살윈강이 가른 이웃 나라 버마와 마주보는 자그마한 국경 마을이다. 강 건너편은 버마 동부 카렌 주, 약 60년 동안 내전 중인 이 땅은 카렌 반군인 카렌민족연합(KNU)이 장악하고 있다. <편집자 주>
매삼렙에서 만난 탄 나잉(37)의 발은 많이 갈라져 있었다. 2009년 8월 빠하이 마을 정부군 캠프를 탈출하기 전까지 그는 ‘맨발의 포터’였다. 버마 정부군은 교통편이 없는 내전 밀림 지역에서 전투 물자를 실어 나르는 ‘포터’로 민간인을 강제 동원해 왔다. 탄 나잉은 벌레가 떠다니는 허름한 식사에 56kg나 되는 짐을 지고 길도 없는 밀림을 신발 없이 9개월 동안 헤집고 다녔다.
2008년 12월 서부 아라칸 주의 부디따웅 감옥에서 복역 중에 끌려나와 또 다른 복역수 15명과 함께 카렌 주로 배치받았다. 내전이 가장 격렬한 카렌 주에서 전투 한복판에까지 군 물자를 실어 날라야 하는 그야말로 포터의 시한부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국경 밀림지대 잇단 탈출 행렬
그에게는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다. 2009년 5월 3일 오후 3시경 빠하이 캠프 경보병 216사단에서 벌어진 총살 사건이다. 기력이 쇠해 포터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북부 마구에 감옥 출신의 아웅 나잉(당시 36세)이 총살당했다. 떼인 텡 병장이라는 사람의 소행이다. 시신은 캠프 근처에 대충 묻혔다. 탄 나잉과 함께 불려온 15명 가운데 한 명이 그렇게 죽고, 열 명은 이미 도망쳤다.
8월 중순에 지뢰를 밟고 부상한 병장을 업고 군 캠프로 이동하던 날 말라리아에 걸려 골골한 탄 나잉을 병사들은 밀림에 홀로 버려 두고 떠났다. 그날 밤 밀림에서 시름 시름 앓다가 밤 2시쯤부터 네 발로 기어 군 캠프에 간신히 닿은 그는 우선 먹을 것을 입에 대고 기운을 차렸다. 그러고는 사흘 뒤 탈출을 감행했다. 반군 지역으로 넘어온 그의 거친 발에는 이제 ‘쫄조리’가 신겨져 있었다.
피란민만이 아니다. 버마 국경 밀림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탈출 행렬은 탄 나잉과 같은 포터와 탈영병 등 다양하다. 주로 반군과 정부군이 경계한 마을에서 ‘선’을 많이 넘는다. KNU에 따르면 지난 8월 카렌 주에서만 30여 명의 정부군 사병이 탈영했다. 비슷한 기간에 샨 주 북부에서는 경보병 324사단 소속 정부군 70명이 카친 반군 쪽으로 넘어왔다고 버마 캠페인 단체인 알트세안(Altsean) 은 전하고 있다. 이런 끝없는 탈출 행렬은 다시 약 50만 대군에 채워 넣기 위한 강제 징집으로 이어지고 있다. 감옥 복역수와 어린이들이 그 주요 대상이다.
포터나 정부군의 탈출이 잇따르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강제 징집과 턱없이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임금도 신발도 없는 포터는 차지하더라도 그나마 공식적으로는 ‘유료 노동’인 군의 경우를 보자. 신병으로 입대하면 1만5000차트(약 1만5000원), 6개월 후 2만1000차트가 그들의 공식 월급이다. 그러나 밀림에서 만난 탈영병 누구도 그런 돈을 쥐어본 적이 없었다.
“그놈들은 군인이 아니라 절도범이고 강간범이다!”
그 자신이 절도범 출신인 또 다른 탈영병 테인 윈(37)은 분노했다. 그가 ‘강간’을 입에 담은 건 작전이나 순찰을 나갔다가 소수민족 여성들을 강간하고 돌아와서는 자랑스러운 듯 떠벌리던 동료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승려들의 시위가 한바탕 나라를 뒤덮은 후였다. 당시 카친 주에서 금광석 캐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신병 모집책’ 5명이 ‘이리 오라’고 해서 갔다. 그들은 ‘군대 갈래 감옥 갈래’라고 협박하며 나를 ‘군은 당신을 원한다’ 간판이 걸린 건물로 데려갔다. 사실 매년 그맘 때면 그들이 왔다. ‘이리 오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다 안다. 승려 시위 이후에는 노비스(20세 미만 어린 예비 승려)들도 그렇게 끌려갔다고 들었다.”
몰윈(20)은 중북부 몽유아 지방 ‘아야로 신병 훈련소’로 보내져 4개월간의 군사 훈련을 받았다. 거기서 그는 군번 ‘4017XX’를 단 12살 신병 아웅지를 만났다. 식당에서 일하던 아웅지는 컵을 깬 것이 화근이 되어 주인에게 구타당하고 도망치다가 신병 모집책에게 걸려들었다. 그 역시 한 달 동안 ‘군은 당신을 원한다’ 캠프에 갇혀 있다가 훈련소로 보내졌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식당 주인과 모집책 사이에 돈이 오고갔다. 2007년에 휴먼라이츠워치는 보고서 ‘팔려간 병사들’에서 2005년 현재 이 거래 금액이 2만5000차트에서 5만차트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필자가 인터뷰한 최근 1, 2년 사이에 탈영병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금액은 훌쩍 오른 10만 차트였다.
인권단체, 어린이병사 30%로 추정
아웅지와 몰윈이 함께 훈련받던 2008년 중반에 이야로 신병 훈련소에는 1000명 가운데 약 300명이 15세 미만으로 추정되는 어린이들이었다. 인권단체들이 추정하는 버마정부군의 어린이 병사 비율인 약 30%와 거의 일치했다. 몰윈과 함께 탈영한 렌웬이 훈련받은 네피도(수도) 근처의 예니타운 ‘신병 훈련소 3’에서도 어린이가 넘쳐났다. 이 훈련소에선 11명이 탈출했다가 1명은 붙잡혀 왔고 10명은 탈영했다.
“그 건물에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올해 3월 랑군의 한 검문소에서 자신의 신분증이 가짜라고 우기는 군인 손에 끌려 갔다 4개월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렌웬의 뼈저린 말이다. 실제로 양곤 시내 버스나 기차역, 군 캠프 주변에는 ‘군은 당신을 원한다’라는 간판이 널려 있다. 바로 ‘신병 모집소’다.
“병사들은 지금 2010년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 이후 좀 처우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나아지지 않으면 장담컨대 대탈출 사태가 일어날 거다. 군대에 있을 때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탈영병 테인 윈의 말이다. 과연 내년에 대탈출 사태는 일어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분열 정책으로 파고들며 반군 영토와 통치력을 조금씩 떼어 갔던 버마 군부의 들이미는 기세는 여전히 만만찮다. 조금씩 좁아지는 그 땅에는 세력이 약화되는 반군과 정부군의 군사작전에 벼랑 끝까지 내몰리는 수십만 피란민들, 그리고 정부군 캠프를 이탈한 각종 탈주자들이 오늘내일하는 군사 작전 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카렌 주(버마 국경)·이유경<아시아 분쟁지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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