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언더 파이어’

파키스탄이 또 다시 불타고 있습니다. 10월 5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유엔세계식량계획 (WFP) 사무소가 폭탄 공격을 받아 5명이 사망한 이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습니다. 15일 하루에만 5건의 연쇄 공격이 발생했고 이를 정신없이 진단하던 외신은 정신차릴 틈도 없이 오늘 (16일) 다시 북서변경주 폐샤와르에서 발생한 자살 공격 소식을 전합니다. 최소 12명이 사망했다고. 연이은 소식에 2년전 베나지르 부토 암살 전후의 파키스탄이 떠오는군요. 2007년 12월 부토 전 총리 암살 전후 파키스탄은 그야말로 ‘폭탄 정국’이었습니다. 뉴스위크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이라크 보다는) 파키스탄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머릿 속에 두 개의 기사가 떠올라 화일을 뒤졌습니다. 그때의 ‘폭탄 정국’에 이어 치뤄진 2008년 2월 총선 취재 당시, 총선 취재를 마치고 북부로 올라가 비자가 허락하는 시간만큼 쥐어짰던 기록들입니다. 하나는 파키스탄 북부의 ‘탈레반화’에 대한 기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와 관련한 인터뷰 입니다.

시간대를 맞추지 못해 세상에 내밀지 못한 1년 8개월 묵은 글이지만 작금의 불타는 파키스탄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보탬이 되리라 자족하며 거친 원고 두 개를 연이어 신고합니다.

– Penseur21 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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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지대’에  ‘햇볕정책’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라왈핀디, 폐샤와르 = 이유경 penseur21@hotmail.com

흔히들 그곳을 ‘무법지대’라 부른다. ‘아프간 탈레반’을 포함하여  ‘지역 탈레반’ (혹은 파키스탄 탈레반), 그리고 알카에다 세력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훈련받는 아프간- 파키스탄 국경지대.

파키스탄 헌법이 자국 영토로 규정한 네 개 지방(펀잡, 신드, 북서변경주, 발로치스탄)에 속하지 않은 채 ‘부족 자치지대’ 로 남아있는 와지르스탄 중심의 파타(FATA:Federally Administrative Tribal Area)지역, 소수민족 발로치들의 분리투쟁공간이면서도 아프간 남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2001년 후퇴한 아프간 탈레반의 재건 본부가 되어 버린 퀘타시 주도(州都)의 발로치스탄주 그리고 최근 ‘지역 탈레반’과 파키스탄 군이 탈환과 재 탈환을 반복하는 스왓 계곡이 속한 폐샤와르 주도(州都)의 북서변경주(NWFP). 이들 지역이 대체로 ‘무법지대’에 속한다. 이중 파타(FATA)와 북서 변경주 일부 지역은 여성도 이따금 사고 판다는 부족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어 통상 ‘부족지대’로도 불린다. 물론 지방 정부가 운용되는 폐샤와르 같은 대 도시는 부족자치지역은 아니다.

“이 지역 전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두개의 전선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남부 발로치스탄을 거점으로 아프간 탈레반이 나토군 중심의 외국군대와 대치한 전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국에서 유입된 알카에다 세력이 지역 탈레반, 아프간 탈레반 일부와 함께 미군 중심의 외국군대와 대치한 동부(파키스탄쪽에서 보면 서부) 전선이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차량 폭탄 현장에 사설 경비업체 보안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출동했다. 아프간 탈레반이 급성장해온 남부가 나토 중심의 ISAF 연합군의 몫이라면, 사진 속 경비업체 '보안군'들을 포함 미국의 특수 부대 등은 아프간 동부(파키스탄 서부) 알카에다 색출 작전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이런 이중 전선의 성격을 잘 파악해온 파키스탄이 수년간 벌여온 이중 플레이로 인해 아프간동부-파키스탄 서부의 국경 지대는 알카에다의 여전한 거점과 지역 탈레반화 가속화를 보고 있다  (2007년 촬영 / Photo by Lee Yu Kyung)

아프간 수도 카불의 차량 폭탄 현장에 사설 경비업체 보안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출동했다. 아프간 탈레반이 급성장해온 남부가 나토 중심의 ISAF 연합군의 몫이라면, 사진 속 경비업체 ‘보안군’들을 포함 미국의 특수 부대 등은 아프간 동부(파키스탄 서부) 알카에다 색출 작전에 주력해왔다. 물론 남부전선에서도 이 사설 ‘보안군’들에 의한 인권침해가 발생한다 (Photo © Lee Yu Kyung 2007)

‘탈레반’의 세계적 대가이자 ‘탈레반’의 저자인 아흐마드 라쉬드(60 )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2001년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몰락한 후 미국은 서방 세계에 더 위협적인 동(서)부 전선에 몰두한 반면, 아프간과 남아시아 지역에 더 위협적인 남부전선은 방치해왔다. 바로 이점이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다. 즉 파키스탄은 남부 탈레반은 지원하는 반면, 동서부에서는 대 탈레반 군사작전까지 벌이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듯한 그림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으로서는 숙적 인도에 맞설 장기적 전략지대로 아프간에 친 파키스탄 정권을 심어야 한다는 해묵은 국가이익이 있다. 89년 소련군의 철수 이후 그랬듯 미국이 ‘언젠가는 아프간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는 게 파키스탄의 전망이라고 라쉬드는 분석한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아프간만 버린게 아니다.  파키스탄도 버린 적이 있다. 70년대에는 상대도 않던 군부 독재자 지아울 학(Zia-ul-Haq) 정부를, 미국은 80년대 들어 대폭 지원했다. 아프간에서 벌인 ‘대소 대리전’ 10년간 약 300억 달러 가량을 옆나라 파키스탄의 독재자에게 퍼부으며 소위 ‘무자히딘 전사’들을 무한대로 길러냈다. 오늘 날 지구촌을 숨막히게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씨앗은 이때 왕창 뿌려졌다. 그러다 소련군이 철수하자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개발 등을 이유로 원조도 단절하고 경제 제재로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리고는 또 다시 왔다. 9.11 이후다 대 탈레반, 대 알카에다 전쟁을 위해 전쟁 파트너 파키스탄이 필요했기에. 그러나 미국과 ‘배신’ 혹은 ‘전쟁 파트너십’ 관계를 반복하며 쓰라린 경험을 해온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독자적인 이익을 견지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테러 전쟁에 호흡을 맞추는 능구렁이가 되었다. “(아프간) 남부 탈레반을 지원하는 건 파키스탄의 ‘국가정책’이다” 라고 라쉬드는 못 박는다.

‘전쟁 파트너쉽’으로 나고 자란 이슬람 근본주의

그런데 문제는, 방치된 남부는 그렇다 치고 ‘신경써 온’ 동(서부) 전선에서도 탈레반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 지아울학 군부 독재 기간 급성장을 보여온 이슬람 무장 세력은 9.11 이후 무샤라프 군부 독재 기간 ‘제2기 급성장’ 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파트너로 삼은 두 군부 독재 하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특히나 잘 자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2기’를 보자.

두 명의 파키스탄 여성이 얼굴까지 가린 히잡을 두른 채 라호르 시내를 걷고 있다. 비교적 안전하고, 개방적인 문화의 도시로 명성을 이어가던 라호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급성장으로 더이상 폭탄 공격의 예외지역이 아니다. (2008년 촬영 / Photo by Lee Yu Kyung)

두 명의 파키스탄 여성이 얼굴까지 가린 히잡을 두른 채 라호르 시내를 걷고 있다. 비교적 안전하고, ‘개방적인’ 문화의 도시로 이름을 유지하던 라호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급성장에 영향 받으며 더이상 ‘폭탄 예외지역’이 아니다. (Photo © Lee Yu Kyung 2008)

2002년 7월, 파키스탄 10만 대군은 국가 탄생 60년만에 처음으로 ‘부족지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천 명 이상의 희생을 낳도록 지역탈레반, 알카에다와 교전을 벌여왔지만 결과는 탈레반화의 가속화였다. 관광지에서 교전지로 돌변한 스왓 계곡(북서 변경주) 은 아주 좋은 보기이다. 또 2월 18일 총선 전후로는 탈레반 사령관들이 폐사와르 인근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후보들을 협박해하기도 했다.

“우린 이슬람 율법을 지지하고 그 율법 하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다. 파키스탄 군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상황이 엉망이 됐다”

스왓 지역 에서 총알장사도 하고 운전도 한다는 카이르 울 바샤르(43, 가명 )는 파키스탄 군이 군사작전을 벌이기 전만 해도 스왓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한 평화적인 자치지대였다”고 말한다. 그는 “파키스탄군이 우리를 전쟁으로 몰았다”며 평화롭게 이슬람 율법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왓 계곡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수피 모하마드라는 인물이 이슬람 율법을 도입하고 그에 따라 통치하며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지역이다. 수피는 2001년 아프간 전쟁터로 향하던 길에 구속되었다. 그리고 3년전(20005)부터는 종교 지도자 마울라나 파주룰라라는 인물이 FM 라디오를 개국하여 이슬람 율법 통치와, 반미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부족지대에 대한 파키스탄 군의 군사 작전이 한층 강화되기 시작하더 즈음이다.

그 와중에 설교에 불붙인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된다. 2006년 10월 30일, 부족지대인 바주르 지역 마드라사(이슬람 종교학교)가 아프간 동부에 위치한 미군기지에서 쏜 것으로 추정되는 공습을 받았다. 이 공습으로 80여명 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희생자 대부분은 마드라사 학생들이었다. 이 공습으로 동생을 잃은 FM 방송의 파주룰라는 “이슬람에 대한 공격”이라며 설교톤을 한층 높여갔다. 그리고 주민들은 ‘탈레반 설교’에 흠뻑 젖어들어갔다.

스왓계곡이 결정적으로 탈레반 점령으로 들어간 계기는 지난 해(2007년) 10월 라마단 기간 발생한 납치범 처벌 사건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세 건의 납치 사건 피고들이 ‘파주룰라 법원’ 앞으로 끌려나오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쇠철 몽둥이 태형’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고 파주룰라 부대에 의해 죽지 않을 만큼 얻어 맞았다. 이 사건이 바로 스왓계곡에 대한 정부의 군사작전을 불러들였다. 파키스탄 법체계에 도전한 괘씸 죄의 모양새였다. 이에 파주룰라의 FM 설교는 더더욱 톤을 높여갔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무샤라프 정권이 이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슬람을 보호하고 싶으면 나를 지지하라!”

이 지역 출신 주민 아낄(가명, 44) 에 따르면, 파주룰라의 이런 선동적 FM설교에 지역민들은 늘 준비된 총을 들고 파키스탄 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내 고향인 이맘 바리 마을 주민들도 전부 (파키스탄 군에) 맞서 싸웠다. 우린 지하드를 통해 이슬람을 지킨다” 아낄의 말이다. 그리고 11월 초, 파키스탄 군경은 스왓계곡을 떠났고 이곳은 결국 탈레반 점령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최근 파키스탄 군이 재 탈환했다고 주장하며 기자들을 실어날라 현장을 보여주긴 했지만 글쎄다. 스왓은 여전히 피로 물들고 있다.

2월 29일, 그 전 한달 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부측과 지역 탈레반간의 협상이 북부 와지르스탄 한 관료에 의해 ‘확인’되던 바로 그날이었다. 스왓에서는 오전 자살 공격으로 숨진 경찰관의 오후 장례식에서 또 다른 자살 공격이 발생했다. 장례식에 참여한 조문객 중 44명 가량이 사망했다. 선거 전 날인 2월 17일에도 군 건물이 공격 받아 최소 10여명이 죽었지만 정확한 사망자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현장을 유일하게 취재한 사진기자 아민울 무굴(로이터/EPA 소속)에 따르면 십여명은 거뜬히 넘을 만한 사고 였지만 군이 입을 굳게 닫았다고 했다. 3월 2일에는 다라아담켈이라는 부족 지대에서 10대 소년이 알카에다와 탈레반 세력 소탕을 논의하던 마을 원로들의 모임을 공격하여 43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현재 파주룰라는 당국의 수배를 받아 지하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FM 설교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레반 설교는 ‘FM’을 타고

이처럼 부족 지대의 탈레반화 이면을 뜯어보면 우선, 이슬람 율법통치를 환영하는 주민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섣부른 군사 작전으로 이반된 민심이 탈레반화의 제법 큰 동력이 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각종 탈레반 사령관들이 이런 민심을 이용하여 세력을 넓혀가고 있고 우즈베키스탄 출신 등 알카에다 세력 역시 현지 주민들(특히 남부 와지르스탄)의 ‘신세’를 몇 년째 지고 있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자살폭탄과 전쟁에 지친 주민들이 최근 세속주의(비종교주의) 정당에 더 많은 표를 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슬람 율법을 도입하는 ‘탈레반식’ 정치에 대한 호감이 완전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나도 탈레반이다. 싸우는 탈레반이 아니라 가난한 학생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마드라사의 수많은 학생들처럼 나는 그 순수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념을 신봉한다”

바주르 지역 출신 무하마드 쿠르시드는 ‘탈레반’의 이념적 틀에 동의하는 자신을 기꺼이 ‘탈레반’이라 부른다.  필자는 무하마드 쿠르시드와 같은 ‘나도 탈레반’ 정서를 지난 해(2007) 봄께 아프간 남부 탈레반 태생지 인 칸다하르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탈레반의 기자 납치 사건에 누구보다 분노했던 기자 파르잔 (당시 30세) 조차 ‘탈레반의 이념’만은 고결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정서는 정치권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6년간 북서변경주 지방 정부를 운용해온 ‘종교근본주의 정당연정(MMA)’ 소속 ‘자마떼 이슬라미’. 이 정당은 민족주의(주로 소수민족) 운동그룹, 좌파 그룹 등과 손잡고 이번 선거를 보이콧했다. 자마떼 이슬라미의 북서 변경주 사무총장 샤비르 아흐마드 칸의 말을 들어보자.

“이번 선거에서 종교정당들이 낮은 득표를 얻은 건 “종교정당들의 패배가 아니라 자마떼 울레마이 이슬람(JUI)’(선거에 유일하게 참여한 종교 정당으로 ‘자마떼 이슬라미’와 경쟁당이다)의 패배다.”

이슬람 근본주의 자체는 건재하다고 간접적으로 항변한 것이다. “파슈툰족은 전통적으로 아주 신실한 종교인들이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물론 폐샤와르 시내 도심으로 나오면 분위기는 조금 ‘다양해진다’

폐사와르 중심가에서 영화와 음악 CD를 파는 이프티카르 아흐마드(38)는 종교정당연정이 폐샤와르를 주도로 한 북서 변경주 지방 정부로 있을 당시를 '암흑의 시기'였다고 표현한다. 2008년 총선에서 종교정당은 패배했지만 탈레반화는 파키스탄 전역에서 급진전되고 있다. (2008년 촬영/Photo by Lee Yu Kyung)

폐사와르 중심가에서 영화와 음악 CD를 파는 이프티카르 아흐마드(38)는 종교정당연정이 폐샤와르를 주도로 한 북서 변경주 지방 정부로 있을 당시를 ‘암흑의 시기’였다고 표현한다. 2008년 총선에서 종교정당은 패배했지만 탈레반화는 파키스탄 전역에서 급진전되고 있다. (Photo © Lee Yu Kyung 2008)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던 2년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음악, 영화 씨디들을 쌓아놓고 불태우는 폐샤와르 발 사진이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를 탔다. 2월 말 다시 찾은 폐샤와르는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아와미 민족정당이 압승한 선거 결과 때문인지 생각만큼 테러 공포가 감돌진 않았고 시장도 활기찼다.

“암흑의 시대였다. 수십만 루피를 잃었다”

드라마 PD이자 폐샤와르 시내에서 음악, 영화 씨디 가게를 운영하는 이프티카르 아흐마드(38)는 탈레반 등 이슬람 무장세력과 호형호제 해온 종교 근본주의 정당연정(MMA)통치시절에 대해 묻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역시 2월 초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다. ‘가게 문을 닫지 않으면 우리가 철거해버릴테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도 무슬림이다. 이슬람이 음악을 금지한 걸 잘 안다. 어느 종교든 나름대로 금지하는 것들이 다 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지구촌 시대 아닌가?!” 그의 항변이다.

반면 니아즈 칸(무역업, 40)같은 이는 이 지역 탈레반들의 싸움은 외세에 대한 독립 저항 투쟁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파슈툰 족 출신의 악명 높은 군벌이자 아프간 동부 전선에 여전히 민병대를 가동중인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90년대 초 아프간 무자히딘 정부 기간 총리 역임) 를 파슈툰 족 사이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로 꼽았다.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지만 누구도 우리 파슈툰족을 정복하지 못했다. 가장 평화롭던 스왓계곡 사람들조차 싸우는 걸 봐라”이 지역에선 보기 드물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 깔끔한 비즈니스 맨은 “전쟁에 올인한 미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망할 것”이라며 달러 하강을 예로 들기도 했다.

‘붉은 사원’ 이후 도심으로 뻗은 자살공격

이제 탈레반화의 여파는 부족지대과 폐샤와르 같은 지방도시를 넘어 수도 이슬라마바드, 군사 행정 도시 라왈핀디, 심지어는 비교적 안전하던 문화의 도시 라호르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토의 귀국길 자살공격에다 이미 종파 폭력(시아파와 수니파의 폭력적 갈등)으로 유명한 남부 도시 카라치는 말할 것도 없다.

2월 25일 수많은 인파로 북적대는 라왈핀디 몰거리에서 발생한 자살공격은 도심공격의 아찔함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냈다. 군의관 무샤탘 베이르 중장을 비롯한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공격이 군본부와 대통령 관저에서 도보로 10분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는 위치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더더욱 충격이었다. 그리고 3월 4일에는 라호르 시내 해군학교가 또 다른 자살 공격을 만나 5명의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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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라왈핀디 몰거리에서 발생한 자살공격 이후 파키스탄 경찰이 통행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날의 공격은 군본부와 대통령 관저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치안 경계지역에서 발생했다 (Photo © Lee Yu Kyung 2008)

이전에는 좀 처럼 볼 수 없었던 자살공격의 도심진출은 지난 해 7월 3일 발생한 붉은 사원 사건이 터진 이후 급증한 현상이다. 이슬라마바드 ‘G6 섹터’ , 악명 높은 정보국 ISI와도 근접해 있는 붉은 사원과 인근 마드라사는 도심과 부족지대의 무장 세력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시민사회와 치안 전문가들이  ‘수’를 써야 한다고 정부를 향해 끝없이 조언해왔지만 무샤라프 정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러던 정부가 마사지 센터 중국 여성들이 마드라사 여학생들에 의해 ‘매춘 혐의’로 납치된 이후에야 무자비한 폭격으로 맞선 것이다. 사원안에 있던 어린이 여성을 포함하여 2천 명 가량(시민단체 추정)의 목숨을 앗아 간 엄청난 규모였다 (정부와 미디어 발표는 1백 여명). 최근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 역시 “군사작전 외에는 더이상 방법이 없다”는 자극적 성명으로 군사작전을 변호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그날 이후 파키스탄 전역은 피로 물들고 있다. 붉은 사원 폭격 당시 사망한 붉은 사원의 물라(Mullah) 압둘 라쉬드 가지의 ‘보복예언’대로다.

그래도 군사개입을 원하는가

군사 작전과 강공책이 부추긴 파키스탄 서부 전선 (혹은 아프간 동부전선)의 탈레반화 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알카에다 은신처로 추정되는 부족지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간헐적으로 흘리고 있는 듯하다.

부족지대 무장세력과 싸우는 파키스탄 군을 ‘훈련시키기 위해’ 22명의 교관을 조만간 파병하겠다는 미국의 최근 입장은 이런 맥락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미국의 발표가 나온 지 하루 만인 3월 5일 이번에는 영국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교관을 파병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민주당 미 대선 후보인 오바마는 “파키스탄이 안하면 우리가한다”는 입장으로 이 지역에 대한 대 작전을 직간접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주민, 전문가 그룹, 정당 등 누구라도 할 것없이 이런 군사적 개입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두손 들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미 자국 군대의 개입조차 심한 부작용을 야기한 데다 ‘반 무샤라프 감정’과 연계된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외국군대의 개입이 가져올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부족지대 주민들의 박탈감이 크다. 박탈감을 치유해 주면서 무장세력에 대한 협조부터 끊어야 탈레반화를 막을 수 있다”

이슬라마바드 주재 독립적 띵크탱크 그룹인 ‘파키스탄평화연구소’ (PIPS) 소장 아미르 라나(34 )는”최후 수단이어야 할 군사 작전이 그 동안 첫 번째 수단이었다”며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탈레반 세력과 대화가 가능하긴 한가?”고 묻자 “아주 가능하다. 베이둘라 메수드(부토 암살범으로 지목된 탈레반 사령관. 2009년 8월 미군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조차도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지난 3-4년간 이 지역의 휴전과정을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아 보인다. 2004년 4월 정부와 남 와지르스탄 사령관 넥 무하마드 와지르간의 첫번째 휴전은 두 달 후 미국이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로 와지르 사령관이 죽으면서 깨졌다. 휴전 협상 대표를 죽이면 휴전이 깨진다는 건 ‘휴전선’의 상식이다. 그리고 최근 2005년 2월 합의된 남 와지르스탄 휴전도, 2006년9월 북 와지르스탄에서 합의된 휴전도 앞서 언급한 붉은 사원 사건 이후 모두 깨졌다. 결국 ‘미제 미사일’과 ‘붉은 사원 폭격’이 아니었다면 휴전은 유지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2월 18일 총선이후 제 1당이 된 인민당과 예상외로 선전한 나와즈 샤리프의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PML-N) 등 주요 정당들 조차 너나 없이 대화를 입에 올리고 있다. 특히 북서 변경주를 집권하게 될 아와미 정당의 입장은 남다르다.  북서변경주 부의장인 시따라 임란(여, 38)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처음부터 군사 작전을 반대해왔다. 군사작전이 뭘 해결했나? 우린 파슈툰 족을 잘 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가 필요하다”

수세기 전쟁에 지쳤지만 언제든 싸울 준비 된 부족 지대 사람들. 한편으론 탈레반화에 쉽사리 휩쓸리면서도 또 다른 한편 자살폭탄에 지쳐 ‘평화로운 이슬람 율법’을 말하는 사람들. 이들이 총을 영원히 사장시킬 그 날은 정말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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