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비구니가 되고 싶었던 나라

버마 / 방콕(태국) = 이유경 

전직 선생이었던 틴틴에(가명, 50)는 현재 비구니 승려다. 아니 그녀는 여전히 선생이긴 하다. 15년 전부터 비구니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지금 버마 중부도시 포코쿠의 한 사원에서 어린 비구니 승려들에게 불교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11월 초, 그녀의 제자 두 명과 동네사람 대 엿 명이 둘러앉은 점심 밥상에 불청객이 되어 방문한 내게 그녀는 위 아랫니 스무 개쯤은거뜬히 드러나는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사족이지만, 영화 ‘비포 선셋’ 의 주인공 제시(이단 호크 역)가 카톨릭수도원 방문경험을 상기하며 했던 말은 버마의 불자들(마찬가지로 ‘monks’와 ‘nuns’로 칭할 수 있는)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수도사들(monks)과 수녀들(nuns)이 얼마나 쉽게 웃고 쉽게 얼쩡거리며 친해지는지….” 어쩌고 했던 거 말이다. 10월 중순부터 시작한 4주간의 버마 여정에서 나는 쉽게 웃음을 터트리고 외지인과 대화하기를 참 좋아하는 그들의 열린 천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불교 사원에서 한 여성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버마 군부는 이런 주민들의 신앙심과 불교의 업보론 같은 종교논리를 독재 정치에 교묘히 이용해 왔다 (Photo by Lee Yu Kyung)

불교 사원에서 한 여성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버마 군부는 이런 주민들의 신앙심과 불교의 업보론 같은 종교논리를 독재 정치에 교묘히 이용해 왔다 (Photo by Lee Yu Kyung)

물론, 먼저 말 걸어오는 승려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랑군의 대표적 사원 쉐다곤 파고다나 지난 8,9월 시위정국의 중심지였던 술레 파고다, 그리고 승려들의 도시로도 불리는 만달레이의 명소, ‘만달레이 언덕’에는 이런 불자들의 모습 자체가 3년 전에 비해 급격히 줄어 있었다. 또 검거나 사원기습을 두려워하는 극단적 공포 속에 사로잡힌 승려들의 심리 상태도 쉽사리 전달될 만큼 심각했다. 하지만 헤집고 찾아다닌 사원 안에 들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그 열린 천성들이단박에 느껴졌다. 카메라를 향해 미소와 손을 살짝 들어 보이는 승려들도 있고, 전날 대화를 나눈 인연으로 다음 날 아침 내가 묵는 숙소로 전화를 걸어와 ‘굿 모닝’을 하는 ‘발clr한’ 승려도 있다. ‘당신 남편 잘생겼냐?’고 묻는 호기심 많은 비구니 승려가 있는가 하면, 내가 한 번도 본적 없는 가을 동화의 은서와 준서를 잊지 못하는 애틋한 감성의 비구니 승려도 있다. ‘범인’(凡人)들과 다를 바 없는 감성과 인간미를 뿜어내며 웃음을 쏟아내던 버마의 불자들. 이들이 바로 지난 8,9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항쟁 급’ 시위의 주동자들이다.

좀 더 세밀하게 기술하자면, 8월 24일 라까잉 지방(북서) 시트웨 지역 승려들이 동을 틔웠고, 9월 5일 세 명의 승려가 평화 시위 도중 폭행당한 후 정부차량 넉 대를 불태웠던 포코쿠(중부) 승려들이 ‘온 몸으로’ 불 붙였으며 그렇게 이어진 시국 중간쯤에 해당되는 9월 23일부터는 비구니 승려들도 승려들의 뒷 열을 이어 대오를 길게 늘려놓았다. 그리고 ‘범인’들은 손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불자들을 감싸며 기나긴 대오를 다시 양 옆으로 넓혀놓았다.

버마의 불교도들은 최소한 주 1회 사원을 찾아 승려와 음식을 나누고 인생 상담도 한다. 주민과 승려들은 모든 영역에서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버마의 불교도들은 최소한 주 1회 사원을 찾아 승려와 음식을 나누고 인생 상담도 한다. 주민과 승려들은 모든 영역에서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공포에 떨지만 여전히 ‘쉽게 웃는’ 불자들‘내가 버마에서 태어났다면 비구니가 되었을지도 몰라’
‘버마’를 떠올릴 때면 나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억압받고 탄압받는 그 땅에서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은 그나마 비구니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도피적 발상’이었다. 불교 주류 사회 버마에서는 승려와 비구니들에 대한 존경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버마 중부 포코쿠에서는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이 지역 불자들에 대한 보시행사가 진행된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돈을 길게 늘어선 승려들에게 주민들이 직접 퍼주고 나누어준다. 버마 제 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는 늦은 오후 시장 구석구석으로 보시를 얻으러 다니는 비구니 승려들을 한 시간 가량 ‘미행’ 한 적이 있다.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상인들은 그들이 파는 먹거리 품목을 보시함에 채워주었다. 그리고 불교도들에게 주간행사나 다를 바 없는 ‘사팟데이’에 사람들은 사원을 방문해 승려와 차와 음식을 나누며 상담도 하고 기도도 올린다. 이렇게 내미는 밥그릇에 존경과 음식을 정성껏 채워주는 민초들에게 이 ‘출가외인’들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

오후 나절 보시를 얻으러 다니는 비구니 승려들. 나는 약 한 시간가량 그들을 ‘미행’해보았다.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주민들은 음식과 기부금을 제공하고 존경을 표했다 (Photo by Lee Yu Kyung)

오후 나절 보시를 얻으러 다니는 비구니 승려들. 나는 약 한 시간가량 그들을 ‘미행’해보았다.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주민들은 음식과 기부금을 제공하고 존경을 표했다 (Photo by Lee Yu Kyung)

버마 제 2의 도시이자, 승려들의 도시로 불리는 만달레이의 명소, ‘만달레이 언덕’을 오르는 계단에 한 비구니 노승이 앉아 있다.(Photo by Lee Yu Kyung)

버마 제 2의 도시이자, 승려들의 도시로 불리는 만달레이의 명소, ‘만달레이 언덕’을 오르는 계단에 한 비구니 노승이 앉아 있다.(Photo by Lee Yu Kyung)

“우리 민중들의 경제적 궁핍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기부를 할 거라는 걸 우린 잘 알고 있고 우린 그 기부로 먹고 산다. 이 사회에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 포코쿠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승려위자야(가명, 36) 는 8월 중순 기름 값 인상 후 보시가 줄은 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내게 그렇게 말했다.

45년 독재기간 군부 역시 불교계에 듬뿍듬뿍 퍼주는 시주로 큰 사원과 승려들을 구슬려왔다. 동시에 그 승려들을 부처의 아들로 떠받드는 민중들을 군부는 또 맘껏 밟아왔다. 그러니 ‘군부가 불교를 악용하고 있다’는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랑군에서 만난65세 노인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리 사는 게 다 내 업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지 않으면 우린 이 현실을 견딜 수가 없다.” 군부는 바로 불교의 ‘업보론’ 같은 걸 독재정치에 이용해왔다. 아무튼 철옹성같은 독재자 버마 군부가 불자들만큼은 잘 안 건드리지 않을까 싶던 얄팍한 생각이 나의 ‘비구니 상상’을 만들어낸 거였는데, 8,9월 시위 사태로 내 엉뚱한 상상은 진정 엉뚱했던 걸로 판명되고 말았다.

최근 시위 사태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버마의 불자들. 그러나 그들은 쉽게 웃고 외지인과 대화하기를 즐기는 열린 천성을 갖고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최근 시위 사태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버마의 불자들. 그러나 그들은 쉽게 웃고 외지인과 대화하기를 즐기는 열린 천성을 갖고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그들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비구니건, 승려건, 외국 기자건, 일반 시민들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종교적 스승이자 그 사회 성역과도 같았던 승려들이 불경을 외며 평화적 행진을 벌였다는 이유로 벌건 대낮 거리에서, 한 밤중 사원 기습으로, 밟혔고, 맞았고, 또 강물에 시체가 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둥둥 떠올랐다. 그러니 군부가 잡아 간 비구니 승려들을 어떻게 다룰 지는 솔직히 더러운 상상도 조금 가는 바다. 승려들의 경우와 달리 비구니들을 험하게 다루는 비디오클립이나 증거는드러난 바 없지만 소문으로 떠도는 ‘비구니 성고문’ 따위도 버마 군부라면 가능하다는 그런 더러운 상상 말이다. 3년여 전 타이-버마 국경에서 내가 버마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첫 만남에서 처음 만난 ‘허스토리’가 바로 소수민족 여성들에 대한 ’강간사’였다. 그건 버마 군부 ‘전문’이었다. 그리고 “피해 여성들이 며칠이고 자기 탓만 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구술 기록자 뇨 키뇨표우가 했던 그 말은 불교사회 버마에서 남성들보다 천근만근 더한 폭력의 굴레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이중삼중 업보론을 잘 반증하고 있었다.

불교주류사회 버마에서 여성들은 이중 삼중의 업보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8,9월의 시위 정국에서는 19명의 여성이 실종되었고, 6명의 비구니 승려들을 포함한 131명의 시위여성이 구속되었다. (Photo by Lee Yu Kyung)

불교주류사회 버마에서 여성들은 이중 삼중의 업보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8,9월의 시위 정국에서는 19명의 여성이 실종되었고, 6명의 비구니 승려들을 포함한 131명의 시위여성이 구속되었다. (Photo by Lee Yu Kyung)

버마 군부의 더러운 전쟁, ‘성 고문’군부의 더러운 전쟁, ‘성 고문’으로 통칭할 수 있는 그 전쟁은 이번 시위 사태를 전후로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10월 초순께 랑군시 밍글라 뗭 뮌 타운쉽에 있는 쉐뎡 사원에서 구속된 10대 소녀 틴틴누(가명)의 사례는 그 중하나다. 자신이 지내던 사원의 수도원장과 함께 구속된 틴틴누는 고문 끝에 수도원장과 성관계를 맺었노라는 강요된 자백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군부의 ‘주둥이’로 불리는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최근 방콕 기자회견 장에서 버마여성동맹(womenofburma.org)이 발표한 보고서 ‘저항하는 용기’는 그 수도원장이 그녀의 삼촌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녀는 중풍에 걸린 할머니, 그러니까 수도원장 어머니의 병 수발을 들며 수도원에서 지내다 잡혀갔다는 것이다. 81세 할머니는 11월 6일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손녀는 7~8살 때부터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살았다. 10년 세월이다. 수도원장은 내 막내아들이고 정부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두 명을 함께 연행해가더니만…”
BBC가 인터뷰한 또 다른 젊은 여성은 군부가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 “나는 승려 몇 명과 성관계를 가졌노라”는 강요된 자백을 했던 친구 사례를 불었다. 버마 군부는 이제 그들의 성 고문을 승려들에게까지 끼얹고 있는 셈인데, 두말할 것도 없이 여성들은 이 ‘승려 성 고문’ 조작 시나리오의 희생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비구니 승려들. 9월 23일 이후 거리 시위의 뒷열을 이어가던 그들에 대한 폭력과 구속 상태를 증언해줄 자료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버마 군부 전문인 ‘성고문’의 우려가 나돌고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비구니 승려들. 9월 23일 이후 거리 시위의 뒷열을 이어가던 그들에 대한 폭력과 구속 상태를 증언해줄 자료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버마 군부 전문인 ‘성고문’의 우려가 나돌고 있다. (Photo by Lee Yu Kyung)

불자들에게도 성 고문이 가해지는 땅, 나는 더 이상 그 땅에서 비구니가 되는 엉뚱한 상상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었다고, 시위대에게 박수를 쳤다고, 활동가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활동가의 시어머니라는 이유로, 소수민족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승려라는 이유로, 비구니라는 이유로, 별의 별 이유로 다 검거되고 성 고문당하는 나라 버마에서는 존엄이든 품위든 유지할 수 있는 영역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를 건드리고 만군부의 설 자리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비구니 승려가 공부 중이다. 빼곡히 공부한 흔적이 책 바닥에 한 가득이다. (Photo by Lee Yu Kyung)

한 비구니 승려가 공부 중이다. 빼곡히 공부한 흔적이 책 바닥에 한 가득이다. (Photo by Lee Yu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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