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네스티인터내셔널 실상 폭로…21개 비밀구치소서 체계적으로 자행

레드존’으로 분류된 얄라주 무앙 지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보안군 (Photo by Lee Yu Kyung)
태국은 ‘테이크 어웨이’ 천국이다. 거의 모든 음식을 크고 작은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후 판매한다. 시장에서도 슈퍼에서도 비닐봉투 인심은 무한하고 분리수거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 나라가 비닐봉투 오염에 숨막히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때가 많다.
생매장 위협·이슬람 모욕 주기도
그런데 이 비닐봉투에 숨막히는 일이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바로 ‘말레이 모슬렘’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부 분쟁지역 파타니, 얄라, 나라띠왓에서다. 2004년 1월 4일 일단의 젊은이가 남부 제4군 본부를 공격한 이래 제2세대 분리주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남부에서는 반군 혐의자들에게 비닐봉투를 뒤집어씌워 숨막히게 하는 행위가 고문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1월 13일, 엠네스티인터내셔널은 2007년 3월부터 조사한 1년간의 고문실상을 발표하며 이런 고문이 공식 구치소 외에도 21개의 비밀 구치소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엠네스티가 ‘계획적(systematic)’이라고 비판한 고문 양상은 이렇다. 이른 새벽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군경 합동작전팀이 들이닥쳐 잡아가기, 비닐봉투로 숨통 막기, 생매장 위협하기, 발가벗겨 취조하기, 이슬람 모욕 주기, 취중 고문하기. 필자가 그동안 취재한 남부 고문 희생자 증언에서 발견된 양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고문이 우발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이런 점들 때문이다.
2008년 3월 보안대로 끌려가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과 맥주 세례를 받았던 나라띠왓 주민 이브라힘(가명·10대 후반). 지난 8월 필자가 인터뷰한 그는 맥주를 마시다 들이붓다를 반복하는 보안군의 ‘취기어린’ 취조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너 총 쏜 적 있지?”
“너 사람 죽인 적 있지?”
‘아니’라고 부인하는 답변에는 어김없이 더 강한 매질이 가해진다. 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매질에 반사적으로 ‘알라!’를 외치는 피의자들에게는 더 강한 매질이 가해졌다.
“두 명의 사병이 나를 연못 근처로 데려가 땅을 파게 했다. 그러고는 상관이 와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나를 생매장할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서게 한 뒤 내 목까지 흙을 채워갔다. 그러고는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나라띠왓 중년 건설 노동자, 2008년 2월 발생)
“그들은 나를 묶은 뒤 머리채를 잡아끌었고 내가 묻힐 곳을 고르라고 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파타니 젊은이, 2007년 12월 발생)
엠네스티 기록 중 생매장 위협을 당한 사람의 증언이다. 특히 중년 노동자의 경우 옷이 벗겨진 채 약 30분간 경비견과 함께 남겨지기도 했다. 개를 더럽고 불경스러운 동물로 금기시하는 이슬람에 대한 ‘모욕 주기’ 고문이었다. 이미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와 관타나모에서 악명을 떨친 바 있는 이슬람 모욕 고문 방식이 태국 남부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2007년 6월 나라띠왓 주에서 한 젊은이가 고문으로 숨진 사건의 목격자들은 “모슬렘을 먹이느니 개를 먹이는 게 낫겠다”는 보안대의 모욕적 언행을 증언했고, 이에 항의하던 젊은이가 결국 가혹한 폭력 끝에 사망한 장소는 바로 모스크 안이었다. 이밖에 “멍청한 모슬렘” “알라가 네게 먹을 것을 주는지 두고보자” “이슬람은 사람을 죽이라고 가르치는 나쁜 종교”와 같은 모욕 등을 엠네스티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태국 정부 비상조치 14번이나 연장

니마 카생(사진)의 남편 야파 카생은 2008년 3월 보안대에 끌려간 후 고문에 못 이겨 이틀 만에 숨졌다. (Photo by Lee Yu Kyung)
한편 엠네스티 보고서가 정밀하지 않다며 인정하지 않던 아브히짓 비자지바 태국 신임총리는 1월 17일 남부 3개 주 방문길에 올랐다. 그의 도착에 앞서 얄라 주에서는 3㎏의 폭발물이 발견돼 제거됐고 폭발과 총격 사건 등이 잇따랐다. 아브히짓 총리는 남부 주민을 향해 “폭력을 쓰지 않겠다”거나 “보안법이 잘 적용된다면 긴급조치 해제할 수도 있다”와 같은 모호한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지만 그의 내각은 이미 긴급조치령을 다시 한 번 연장한 터다. 2005년 7월 이래 3개월마다 14번이나 연장되었던 이 긴급조치와 2004년 이래 유지되고 있는 비상사태에 따라 남부지역 주민들은 증거나 영장 없이도 37일간 구금될 수 있다. 수많은 고문이 바로 이 기간 발생하고 있다.
태국 남부 분쟁은 독특하다. 5년간 반군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반군에 대한 정보력은 믿을 수 없이 취약하고, 단 한 번도 소행을 밝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게릴라들이 넘나드는 마을은 불신과 공포에 절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폭력 사태 배후로 대부분 민병대를 포함한 보안군을 지목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안군이 폭력 사태의 한 축이라는 점을 뒷받침하기도 하지만, 군 당국이 주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주민들의 협조와 제보 없이 대 게릴라 전에 성공할 수 없다는 상식을 곱씹어본다면 군 당국에는 치명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탁신 정부 시절 재개된 반군 활동이라 그 정권만 탓할 게 아니다. 2006년 9월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보안군을 배치하고 대량 검거 열풍을 일으키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게다가 그 쿠데타가 가중시킨 혼란의 방콕 정치는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군복들’에게 남부를 내맡긴 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문과 폭력을 행사한 보안군에 대해 단 한 건의 처벌 사례도 없는 남부에서 주민이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국가 폭력이 처벌되는 정의실현이다. 군부와 사법부의 직·간접적 영향력으로 집권한 민주당 아브히짓 정부가 과연 이 거사를 실행할 수 있을까? ‘글쎄’다.
<방콕 | 이유경 통신원 penseur21@hotmail.com>
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19262&p_date=위클리경향-8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