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대 가자지구 전쟁이 열 나흘을 꼬박 채워간다. 이스라엘 당국이 외국기자들의 출입을 봉쇄한 탓에 현장발 기사라는 건,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기자들이나 가자지구에 베이스를 두고 활동 해 온 극 소수 외신 기자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자의 경우 정확히 몇 명쯤 되는 지 알 수 없지만 중동문제를 취재하는 기자들 다수가 이스라엘, 이집트의 카이로, 혹은 레바논 베이루트에 베이스를 두고 있기에 “가자 베이스 기자”란 아주 드문 존재들이다. (2007년 가자지구의 한 무장 세력에게 114일간 납치되었던 BBC 특피원 알란 존슨은 “가자지구에 베이스를 둔 유일한 서양 기자” –혹은 외국 기자–로 묘사되곤 했다)
알자지라 영어방송 특파원 에이먼 모헤딘(Ayman Mohyedin, 전 CNN 프로듀서), 쉐린 타드로스(Sherine Tadros)는 바로 그 극소수의 가자 베이스 언론인으로서 지금 유일한 외신 방송의 ‘가자 입’이 되고 있다. 잠은 언제 자나 싶을 만큼 부지런하게 뛰는 그들을 보자니 ‘부러움’ 한편으로, 몸과 마음이 쉽지 않을 그들에게 진심어린 격려를 보내고 싶다.
한국언론으로 눈을 돌려보자. 현장 접근성으로 따지면 ‘아무도’ ‘근처도’ 안(못?) 갔으니 별다를 게 없는 조건이지만 보도의 질에는 분명 차이가 난다. 오늘 (1/14) 한겨레 온라인 판에 오른 <”폭격 멈추면 빵집으로 … 집 무너질까 두려워”> 라는 제하의 기사와 연합뉴스에 오른 <“우린 외톨이”…가자 시민의 전한 참상> 가 그 좋은 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333169.html
http://www.yonhapnews.co.kr/issues/2009/01/14/1268010000AKR20090114039500009.HTML
한겨레는 직접 현지 언론인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인’이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가자지구의 참상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했다. 현장을 접근 않고도 독자적인 ‘현장 기사’를 만들어내는 한겨레의 ‘근성’을 보여주었다. 반면, 연합뉴스의 기사는 미국 MSNBC 방송이 가자 현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재 인용한 것이다. 연합뉴스가 이집트 카이로에 특파원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근접성 면에서 좀더 수월한 조건인데도 말이다. 덧붙여 연합뉴스에서 ‘(많은 언론인들이 발 동동 구르며 취재하는) 국경 발’ 기사 하나 나오지 않는 건, 저간의 사정이 있겠지만서도, 좀 섭섭한 일이다.
연합도, 한겨레도 아닌 조선일보는 어떨까? 조섯닷컴 기준으로 보면 연합의 기사를 받아 실은 기사들이 상당량을 차지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작전 목표 달성 입박했다”> 같은 자사 작성 기사도 눈에 들어온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12/2009011200102.html
원래 전쟁을 시작한 자들은 ‘우리가 이기고 있다’, ‘끝나간다 (좀만 기다려라)’ ‘진군 중이다’ 등과 같은 선전을 끝없이 해대기 마련인데, 조선일보의 보도방향이 그렇게 잡힌 건 아닌가 싶다. 반전 시위 몇 줄 넣는다고 조선일보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건강권을 요구하는 자국 국민들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는 ‘괴담에 휘말린’ 얼간이 데모 쯤으로 치부하는 조선일보도, 유신 시절5공 시절 군부 독재의 ‘빨대’노릇을 하던 조선일보도 버마 발 기사에서는 (군부독재가 아닌) 국민 편에서 쓴다. 그러니까 이따금 조선일보에 오르내리는, 특히 국제면에 오르내리는 평화, 반전 혹은 약자를 위로하는 듯한 문장들은 원칙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그냥 ‘멋’ 인 것 같다.
그리고 이 기사,
<가자 사태 해결에 각국 영부인 팔 걷었다>.
1월 8일 연합에서 쓰고 조선일보가 받았다. (솔직히 처음엔 ‘조선일보 순수 기사’인 줄 알았다!) 가자사태를 보다 못한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이 팔레스타인을 돕기 위한 방안을 공조하기 위해 터키에 모인다는 건데…이런 게 기사거리가 되다니 좀 민망스럽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도 콧 방귀 안뀌는 이스라엘이 영부인들의 만남에 눈 하나 깜짝할까. 자기 땅에서, 그리고 쫓겨온 타국에서 기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한 채 잊을 만하면 전쟁을 만나는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한 번 이라도 다녀간 영부인들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
생필품 봉쇄, 언론인 봉쇄. 육해공이 닫힌 채 이스라엘의 폭격만이 봉쇄로부터 자유로운 땅. 가자지구. 사망자가 천 명에 육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절망이다.